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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가을 사색길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 기획·조득진 기자 ■ 글·박성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11. 04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쩌다 낙엽진 거리를 거닐면 늦가을 정취가 바스락 바스락 발 밑에 흠씬 묻어나면서 시심(詩心)이 절로 찾아든다. 교외로 나가지 않고도 서울 도심과 근교에서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가을길을 소개한다.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유서 깊은 건물과 볼만한 공연이 많은 정동길.


그다지 넓지 않은 길을 은행잎이 한가득 덮고 있어 혼자 걷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 어깨를 마주한 연인들의 발걸음도 잦지만 혼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 이도 많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한적한 길을 따라가면 가을이 있다. 음악 분수대부터 이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바로 그것. 길 양편으로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을 가득 단 채 하늘을 향해 두팔을 한껏 벌리고 있다.
도심 속에 있는 은은하고 소박한 사색길로 손색 없는 정동길에는 전통과 낭만이 깃들어 있다. 정동교회, 성공회 건물, 덕수궁, 구 러시아공사관 등의 유서 깊은 건축물과 정동극장, 난타 전용극장 등의 문화 공연장이 있고, 배재공원 등의 아담한 쉼터가 있으며 돌담집 등의 맛집과 토담의 향이 좋은 찻집이 있다. 바쁜 서울생활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도심의 작은 섬 같은 곳이다.

서울 어디서든 찾기 쉬운남산 산책길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가을색이 완연한 남산.


남산 중턱길을 따라 한바퀴 도는 산책로는 그야말로 서울이 간직한 보물이다. 도시 한가운데서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서울 시민에게는 축복인 것. 국립극장 입구에서 남산순환도로, 팔각정, 남산식물원,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7.9km의 긴 거리지만 약수터와 휴식공간이 곳곳에 있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팔각정까지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팔각정부터 남산식물원 입구까지는 반대로 내리막길이다. 이곳은 자동차 통행이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극장에서 팔각정 쪽으로 700m쯤 가면 오른편에 상춘약수터가 있다. 오르막길을 내달아 팔각정 입구에 이르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왼편 길을 따라 600m 가량 내려가면 왼편으로 천일약수터와 자연학습장이 자리잡고 있다. 팔각정 앞부터 남산식물원까지는 5백83개의 계단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어 도보로 가야 한다.

암벽과 단풍이 어우러진 구기동 산책길
지하철 3호선 불광역 3번 출구로 나와 국립보건원에서 구기터널로 가는 길도 요즘 가을색이 만연하다. 국립보건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독박골. 큰길에서 미륵사 쪽으로 150m쯤 가면 녹번동 뒷산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조금만 오르면 놀이터와 체력단련장, 녹수약수터가 나타난다. 다시 구기터널 쪽으로 걸어 오르면 오른쪽에 거북약수와 농구장 등이 있는 장미동산. 이곳에서도 녹수약수터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작은 암벽과 키 낮은 나무의 가을 단풍이 어우러져 그것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천여종의 식물이 뿜어내는 향기 홍릉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홍릉 쪽으로 한참 걸어가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홍릉수목원이 나타난다. 모감주나무, 잣나무, 삼나무, 고광나무 등 2천여종 나무와 식물이 자라는 홍릉수목원은 일요일에만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굳이 홍릉수목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홍릉수목원에서 경희대에 이르는 회기로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으며 차량 통행이 적어 산책하기에 좋고, 인근 수목원과 세종대왕기념관, 영휘원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경희대 캠퍼스 안에도 사대 가는 길, 선동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한 길, 워커힐 숲길
워커힐호텔 주변 숲길은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가 다시 만나도록 돼 있는 길이 많아 천천히 걸으면서 담소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다. 길가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늘어서 여러 단풍을 감상하며 낙엽을 밟을 수 있다.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며 지나는 발길에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낙조도 운치 있다.

화랑로 가운데 본격적으로 낙엽이 덮인 길은 육군사관학교 후문에서 서울여대까지다. 1천2백여 그루의 버즘나무가 만든 단풍터널이 장관. 서울 공릉동 입구에서 태능 쪽으로 이어지는 길 전체도 경관이 수려하고 한적하다. 분위기를 만끽한 뒤 화랑로 주변의 카페에 들르는 것도 좋다. 도심 속 산책길에 비해 인적이 드문 편이어서 혼자 걷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찾아볼 만하다. 인적이 빨리 끊기므로 밤길은 조심해야 한다.



예술작품은 덤으로 감상 삼청동길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온몸으로 ‘예술’을 느껴보고 싶다면 삼청동길이 좋다.


동십자각에서 삼청터널로 이어지는 삼청동길은 점심때면 산책 나온 인근 직장인들로 붐비는 곳. 그러나 그 시간만 살짝 비껴가면 오롯이 나만의 산책길이 된다. 2백5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가을 전시회가 열리는 현대화랑·국제화랑·학고재 등을 들러 예술작품을 감상해도 좋고, 진선북카페가 있는 삼거리에서 청와대 쪽으로 가는 청와로는 인적이 드물어 사색에 잠기기에 적당하다.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커피향을 음미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삼청동은 독특한 취향의 카페나 음식점이 즐비해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북악 스카이웨이
사직공원 옆길에서 돈암동 아리랑고개까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길로 원래 드라이브코스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경치를 즐기며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울적한 심정은 온데간데없이 말끔히 사라지고, 기쁨에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아 평상심을 되찾는다. 사직공원 쪽에서 2.5㎞ 떨어진 곳에 있는 팔각정에 이르면 가을 햇살과 함께 서울 전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은행나무의 강렬한 색채 용문사 가는 길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양평 용문산. 그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의 마당엔 천년 세월을 버텨온 은행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 수령은 대략 1천1백여년이나 된다. 아직도 싱싱한 이파리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노목의 모습이 신비로운데, 가을이면 마치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한 장면처럼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계곡을 따라 가는 길도 좋다. 주변에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수목이 울창하여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을 준다.

2만 그루 야생화가 눈부신 성남시 중동 산책로
경기 성남시 중동 주택가 인근 야산에 있는 이 길은 시내 번화가인 중앙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약 2㎞의 작은 오솔길이다. 산책로 주변에는 각종 나무가 우거져 있고 2만 그루의 야생화가 심어져 있어 마치 나무 전시장 같은 느낌. 성남시를 통과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중동 한신코아 앞 정류장에서 내려 500m 가량 걸으면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진달래길을 따라 2㎞ 가량 오르면 10여개의 쉼터와 원목의자가 마련돼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성남 모란시장에 들러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도 좋다.

남이섬의 은행나무길은 살아 있다. 노란 잎이 뚝뚝 떨어져 카펫처럼 깔려 있고, 울창한 잣나무 숲길에는 청설모가 이리저리 겨울식량을 모으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였던 메타세쿼이아길에서는 손을 맞잡은 연인들도 풍경이 된다. 잣나무 숲길이 끝나는 십자로와 만나면 앞쪽은 은행나무길, 오른쪽은 메타세쿼이아길이다. 메타세쿼이아숲은 드라마 <겨울연가>, 은행나무숲과 주변은 영화 <겨울나그네>의 무대가 됐다. 약 100m에 이르는 은행나무숲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잎이 뚝뚝 떨어져 노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길이 가을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차마 밟기 아까울 정도로 샛노란 오솔길이다. 흙냄새, 풀냄새, 낙엽냄새가 섞인 가을 숲길에선 옛날 추억 한 토막도 떠올릴 수 있다.

시 한수 절로 외게 되는 광주군 문형산 산책로
계곡을 따라 난 산책로로 접어들면 가을의 포근함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 자연만이 낼 수 있는 색상이 낙엽을 물들여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낙엽과 함께 어우러져 푹신한 숲길을 걷다보면 절로 시 한수 외게 된다. 분당 서현동에서 경기도 광주행 버스를 타고 오포면 문형리 중간말에서 내리면 곧바로 산책로 입구와 만난다.

15만평이 그려낸 가을 화폭 국립수목원
도심에서 가볼 만한 사색과 낭만의 낙엽길 14

수목원에 서면 나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광릉수목원으로 불리던 곳. 주 5일 입장가, 1일 입장객수 제한, 주변지역 개발억제 등 우리의 ‘허파’를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 탓에 요즘 한창 가을색을 발하고 있다. 붉게 물든 단풍, 겨자색 은행잎, 낙엽 덮인 산책로만으로도 수목원의 가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적이 드문 곳을 원한다면 덩굴이 이루는 아치가 운치 있는 만목원으로, 연못을 보며 부부나 친구와 앉아 담소를 나누고 싶다면 수생식물원으로, TV CF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면 숲 생태관찰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국립수목원에 가려면 적어도 5일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미처 모르고 갔다가 출입문에서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없다. 하루 입장객 5천명 제한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 하지만 굳이 수목원에 들어서지 않더라도 주변 길 또한 산책길로도 훌륭하다.

한나절 나들이 코스, 고양 원당 서삼릉·종마목장
은사시나무 우거진 오솔길과 푸른 초원이 눈부신 한나절 나들이 코스. 서삼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중종의 아들 인종과 그 비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 그리고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철종과 그 비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이 함께 있는 곳으로, 푸른 하늘과 키재기라도 하려는 듯 높이 뻗어 있는 길가의 은사시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다.
서삼릉 바로 옆에 있는 원당 종마목장은 지난 97년부터 일반에 공개된 곳으로, 11만평에 달하는 부지에 5만여평의 초원이 건너편 야산 밑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영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관리사무소 뒤편 목장 언덕에서 바라보는 초원이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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