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이슈추적

전교조와의 갈등 후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이지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05. 14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을 둘러싸고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교조의 강압적인 서면사과 요구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는 서교장 유족측의 입장과 “‘사과하지 말라’는 교장단의 압력이 더 큰 원인”이라는 전교조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 “우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의 희생양,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두 전교조 여교사의 항변.

전교조와의 갈등 후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요구하고 부당한 장학지도를 했다”며 전교조로부터 서면사과 요구를 받던 충남 예산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56)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4월8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인의 영결식이 치러지는 동안 학교 운동장 한쪽에서는 서교장의 부인 김순희씨(53)가 “착한 우리 남편 살려내!” 하며 오열했고, 두 아들은 어머니를 껴안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전국에서 몰려온 1천여명의 교장단과 교육관계자, 학부모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영결식에선 고인에 대한 추모와 전교조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뒤섞인 각계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그 뒤로는 ‘참교육 가면 속에 교단이 무너진다’ ‘살인집단 분쇄하여 교직안정 되찾자’며 전교조를 규탄하는 수십여 개의 만장(輓章)이 늘어서 있는 등 고인에 대한 추모행사라기보다는 전교조 성토대회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학교 입구엔 ‘진○○ 교사와 전교조 소속 교사 2명의 수업을 거부한다’는 플래카드까지 내걸렸다.
서교장은 지난 4월4일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부인 김씨는 “남편이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요구하고 부당한 장학지도를 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충남지부로부터 서면사과를 요구받고 매우 괴로워한 것 이외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 2명과 보성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 2명, 그리고 서면사과 요구의 발단이 된 진모 교사(28) 등 5명을 협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학교측 “차 시중 강요한 적도, 부당한 장학 활동 한 적도 없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진 진씨는 지난 3월초 보성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임용된 지 20일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 충청남도교육청, 전교조 충남지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인 내게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차 접대, 찻잔관리 같은 ‘성 차별적 업무’를 요구했다. 심지어 ‘수업 중에도 손님이 오면 내려와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이를 거절하자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수업 장학지도를 이유로 수시로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질책하는 등 부당하게 교권을 침해했다. 또 교장 선생님이 ‘윗사람이 시켜서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라며 전교조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진씨의 글을 본 충청남도교육청과 전교조 충남지부 예산지회는 진상조사를 위해 3월24일 보성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진교사의 주장에 대해 당시 홍승만 교감은 “진교사가 먼저 ‘차 한잔 타드릴까요’ 해서 ‘좋지요’ 하니까 차를 한잔 타줬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에게도 한잔 타주는 게 어떻겠어요’ 했더니 교장선생님에게도 차를 타줬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차 접대를 강요한 적이 절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교사가 ‘아침마다 차를 타지 않겠다’고 이야기해 황당했다. 다만 찻잔과 스푼 등을 관리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라며 반박했다.
서교장 역시 “진교사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라 초등학교 수업에 익숙지 않을 것 같아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부당한 장학지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전교조 비하 발언과 관련해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조사를 마친 전교조 충남지부는 서교장에게 진교사의 원상 복직, 찻잔 관리를 포함한 접대업무 폐지, 교장과 교감의 연명 서면사과 등을 요구했고, 이에 서교장은 접대업무 폐지를 약속했다. 이틀 후인 3월26일에는 예산교육청 장학사와 서교장, 진교사가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 모여 진교사의 원상 복직과 서면사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날 오간 대화에 대해 예산교육청과 전교조측의 주장이 상당부분 엇갈린다.

장학사는 “서교장은 ‘장학지도 활동이 부당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복직 문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면사과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처장은 “서교장이 서면사과 의사를 표명했고, 3월28일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해 다시 한번 서면사과를 약속했다. 진교사도 사과문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함께 서면사과를 해야 할 홍교감이 서면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해 결국 진교사가 예산교육청 홈페이지에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올렸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처장은 “당시 서교장이 홍교감의 강경한 태도에 매우 곤란해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교장과 홍교감의 서면사과가 없자 전교조 충남지부는 3월31일 예산교육청 앞에서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에는 보성초등학교 전교조 소속인 최모 교사(36)와 정모 교사(41)도 참가했다. 또한 전교조 충남지부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자료를 지역 언론사에 배포, 4월2일자 지방신문에 기사화 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4일 서교장이 자살을 한 것.
당시 상황에 대해 부인 김씨는 “남편은 4월1일 기자들이 취재를 하러 와 잠도 제대로 못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신문부터 집어들고 관련 기사를 읽더니 밥도 못 먹고 안절부절하는 등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며 울먹였다. 홍교감도 “서교장이 줄담배를 피워대며 힘겨워했다. ‘기사가 나왔으니 거짓도 사실처럼 되는 것 아니겠냐’며 ‘죽어서라도 내 누명을 벗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예산 토박이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존경받아온 서교장으로서는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실렸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진형 사무처장은 “3월29일 서교장이 진교사에게 재임용 발령장을 보냈고 4월1일 진교사가 복직했다. 학교 선생님들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그다지 불편한 기류가 흐르진 않았다고 한다. 전교조의 서면사과 요구가 궁극적인 자살 원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전교조는 4월9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건을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여교사에게 행해진 부당한 학교관행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유서가 없기 때문에 전교조의 서면사과 요구가 서교장의 자살 원인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교조의 과실이 드러나면 유족과 관계자들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또한 “자살의 원인이 지역 교장단 회의에 있는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4월2일 서교장이 참석한 예산교육청 초등교장단 회의에서 이 사건을 집중 거론하며 서교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 보성초등학교 전교조 소속인 정교사는 “교장단 회의가 끝난 후 교장선생님이 회식에 참석했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평소와 달리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했다”며 “교장단 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교육청측은 “교장단 회의에선 천안초등학교 화재 사건과 관련한 학교 안전문제가 주요 논의대상이었고, 보성초등학교 건은 안건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며 회의록을 공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초등학교 교장은 “서교장을 ‘왕따’시키기는커녕 모두가 그분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위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교장이 자살 직전까지 겪은 일을 꼼꼼히 적어놓은 메모장이 발견됐는데, 여기엔 전교조 간부가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하라. 허위로 밝혀질 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말은 법정에 가서 하라…. 우리가 곧 갈 것이다’ 하며 협박했다든가 ‘교장·교감 연명으로 사과문을 써라’고 요구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진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서교장이 자필로 사실 여부를 기록한 문건도 발견됐다. 서교장은 자신이 ‘수업중에 차를 타라’ ‘윗사람이 시켜서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 했다는 부분에 대해 ‘사실과 다름’이라고 써놓았다.

전교조와의 갈등 후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사건 이후 진교사와 전교조 교사에게 자녀의 수업을 맡길 수 없다며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했던 학부모들.


서교장이의 자살한 후 보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학부모 대책위를 만들고 장례식 전날인 4월7일부터 ‘진교사의 퇴직과 전교조 소속 두 여교사의 전보’를 요구하며 아이들의 등교를 거부했다. 학부모 대표 김정도씨(43)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지도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교사뿐 아니라 전교조 소속 여교사 두명에게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31일 전교조 소속인 최모 교사와 정모 교사가 각각 공과금 납부와 눈병치료를 이유로 연가를 내고 교육청 앞에서 있었던 전교조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과금 납부와 눈병 치료를 핑계로 조퇴하고 학교장을 비난하는 농성에 참가한 것은 교육자라고 보기 힘든 행동이며 이런 교사 밑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신의를 배울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교사와 정교사는 “공과금을 납부하고 눈병 치료를 위해서 연가를 낸 것이 사실이지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부러 연가를 낸 것은 아니다. 전교조 충남지부가 ‘같은 학교에 있으니 사건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해 집회에 참석했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는 평소 교장선생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두둔해줬다”며 억울해했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학부모들의 등교 거부와 관련해 ‘이번 사건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라는 글을 배포했다. 충남지부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등교 거부는 일부 언론에 실린 전교조에 대한 왜곡된 보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이성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생각해서 등교 거부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학부모와 전교조측의 대립으로 학생들은 한동안 마을교회와 회관에서 전교조 소속이 아닌 교사들과 인근 학교 파견 기간제 교사들로부터 수업을 받아야 했다. 김예진양(11)은 “언제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이런 식으로 수업을 받아야 하나요? 저를 비롯해 친구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말했다.
학부모와 전교조의 대립은 4월15일 진교사가 사직서를 제출, 수리되면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했다. 학부모 대책위는 “아이들이 이 일로 마음 아파하고 피해보는 것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전교조 교사들이 먼저 사과하면 우리도 ‘등교 거부’ ‘명예훼손’ 등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 전날인 4월14일 학교 정문 등에 걸었던 두 교사의 전보를 요청하는 플래카드를 자진 철거했다.
하지만 최교사와 정교사가 “사과가 자칫 우리가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우리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등교 거부’ ‘명예훼손’ 등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 학부모들과 두 교사와의 관계는 다시 급랭했다. 학부모 대책위는 “우리는 모든 것을 양보해 사과 한마디만 하면 받아주겠다고 배려한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반발했고, 두 교사 역시 “학부모들이 잘못된 사실로 우리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서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교조와의 갈등 후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영결식날 우는 제자들.


결국 예산교육청은 4월17일, 전교조 교사 2명과 교감을 다른 곳으로 전보발령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전교조 충남지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다음날부터 자녀들을 정상적으로 등교시켜 서교장의 자살 이후 심화되었던 갈등이 외형적으로는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교장의 죽음과 관련해 “전교조의 강압적인 서면 사과 요구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는 서교장 유족측의 입장과 “강압적이고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사과하지 말라’는 교장단의 압력이 원인”이라는 전교조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충남 예산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다. 사건의 진실이 어떤지는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일로 교육계의 반목을 사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한평생 교육을 위해 헌신해온 고인을 두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