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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한 쌍용가 막내 김석동 회장

“재벌 그룹 계열사 사장, 재벌 2세라는 딱지 떼버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 선택했습니다”

■ 글·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3.05 18:12:00

쌍용가 막내 김석동 회장이 최근 2백20억원을 투자,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쌍용가의
막내아들로 쌍용투자증권 대표이사를 지낸 그가 돌연 연예사업에 진출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그의 야망, 재벌 2세로서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한 쌍용가 막내 김석동 회장

90년대 쌍용그룹의 공격적인 확장 경영은 재계의 화젯거리였다. 창업 1세대인 고(故) 김성곤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장남 김석원 회장은 정유와 제지, 증권, 중공업, 자동차 등 사업 다각화에 뛰어들어 거대 쌍용그룹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 거대화된 공룡은 지난 97년, IMF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말았다.
이후 쌍용가 2세 경영진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먼저 장남인 전 쌍용양회 김석원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에서 등기이사 및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났다. 그는 직함만 가지고 있을 뿐 쌍용양회의 중요한 경영활동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경영 일선에 남았지만 3남인 김석동 전 쌍용증권(현 굿모닝증권) 회장도 지난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임했다.
쌍용가의 막내인 김석동 회장(42)은 사실 쌍용그룹의 좌초 이전, 가장 주목받는 재벌 2세 중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 성장, 수학한 그는 풍부한 해외 인맥과 뉴욕 시티은행 등에서 근무하며 쌓은 금융 지식 등으로 무장, 능력 있는 최고 경영진감으로 일찌감치 손꼽혀왔던 인물이다. 93년 쌍용증권 입사 초기,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 소로스의 자금 5백억원을 수탁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외환위기 이전 ‘한국경제가 붕괴한다’고 잇달은 경계경보를 울려 유명세를 치렀던 스티브 마빈을 94년 쌍용증권에 영입했던 게 바로 그다.
그러나 그는 외환위기 직후 쌍용증권 해외매각을 추진해 굿모닝증권으로 재탄생시킨 후 회장직을 사임한 뒤,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을 선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그냥 놀았어요(웃음). 잇츠티비에도 좀 관여했는데 이름만 올려놨을 뿐 사실 제가 주도해서 한 사업은 아니었어요. 한동안 골프도 치고, 스키도 타고 편안하게 지냈죠. 그러다가 우연히 코스닥에 상장된 우량기업인데, 대주주의 개인적 사정으로 매물로 나온 영화직물이라는 회사를 발견했어요. 30년이 넘도록 적자 한번 보지 않은 회사인데 실가치보다 저평가돼 있더라고요. 영화직물을 인수하면서 친한 동생들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을 계획한 거예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일까? 그는 외모에서부터 달라져 있었다. 쌍용증권 회장 시절, 단정한 정장만 입던 모습과는 달리 그는 머리에 블리치를 넣고 프라다 스타일의 스포츠룩으로 무장, 완연한 신세대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직물 제조업체인 영화직물을 인수하는 것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질문에 그는 역시 금융·증권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듯, 경제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사업계획에 대해 정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이나 의문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는 철저한 검토가 끝났다는 자신감이 그의 말투에서 배어나왔다.
“1년 동안 마켓 리서치를 해보고 결정한 겁니다. 일단 연예 매니지먼트라는 게 3년은 지나야 수익이 나오는 사업이에요. 그 기간 운영자금을 영화직물이 맡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수익구조가 다른 두 사업체의 특성을 결합시켜, 안정을 꾀하는 거죠.”
한동안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됐다. 사람들은 영화 한편, 음반 한장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수익에 군침을 흘렸다. 그런 상황에서 벤처버블과 함께 수많은 군소 연예기획사들이 탄생, 난립의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주도권을 쥐고 연예산업을 뒤흔들 것이라 예상했던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오히려 문을 닫게 될 상황에 처했던 것.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사업 경험이 전무한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데 불안한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위험을 감안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밝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른 바 ‘대박’이라고 하는 고수익 창출이 가능한 시장이다. 하지만 3년 이상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수익도 불안정하다. 반면 제조업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질 수 있지만, 고수익 창출은 힘들다. 이 둘을 결합시키면 상보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때문에 그는 2002년 10월 직물 제조 수출 업체인 영화직물을 인수한 것.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한 쌍용가 막내 김석동 회장

“넥타이는 몇개만 남기고 다 줘버렸어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만큼 김석동 회장은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변신하겠다고 한다.


이런 구상으로 그는 올해초 국내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10개에 무려 2백19억원을 투자, 지주회사 형태의 토탈 엔터테인먼트사 모션헤즈를 세웠다. 모션헤즈는 ‘색즉시공’을 제작한 ‘필름지’. ‘연애소설’을 제작한 ‘팝콘필름’ 등 두개의 영화사, 연예 매니지먼트사, 그리고 방송 외주제작·유통사 등을 포괄하는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소속 연예인이 80여명에 이르는 대형 매니지먼트사로 거듭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지주회사 형태라 개별 운영체제로 운영되긴 하겠지만, 황신혜·김하늘·손예진 등이 소속되어 있는 M Tube, 김민선·공효진 소속사인 Pole Stars, 김한석·유재석·이휘재·홍록기 소속사인 G Family, 김보성·정준·정운택·우희진 소속사인 비스타, 전광렬·정웅인·오승은·추자현 소속사인 제일알 등 5개의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모션헤즈의 자회사로 영입됐다.
“연예산업은 갈수록 커집니다. 시장성, 장래성이 밝은 분야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파워쉬프트(권력이동)가 매니지먼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연예산업이 기존에는 제작자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출연자 중심으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거죠. 때문에 연예 매니지먼트를 축으로 하는 사업을 구상한 겁니다.”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고 하지만 연예계와 아무 연관 없이 살아온 그가 왜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에 눈을 돌린 것일까? 혹 재벌 2세니까 연예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해왔던 것이 아닐까 물어봤다.
“연예인들과 친분이 있는 재벌 2세가 절 의미하는 겁니까?(웃음) 그러니까 저하고 무슨 스캔들 없었냐는 거죠? 전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들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증권사 할 때나 엔터테인먼트사 할 때나 회장이 하는 일은 똑같아요. 사무를 총괄하는 거지, 제가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업무상 필요하기 때문에 요즘 일부러 TV드라마를 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연예인들을 잘 몰라요.”
연예계를 둘러싼 수많은 각종 비리 사건의 여파로 연예계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알지만, 그는 적어도 모션헤즈 산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근 문제가 됐던 성상납 문제에 대해서도 “진정한 줄은 매니저다. 매니저만 잘 만나면 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앞으로 어떤 스타가 가장 주목받으리라 예상하는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는 누구인지 특정 스타들을 지목하며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질문은 페어(fair)한데 대답하기 너무 어렵다”며 손사레를 쳤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질문에는 “그가 누구냐?”며 되묻기도 했다. 그는 “소속 연예인이 이렇게 많은데 특정 연예인을 거명, 어떤 평가를 내리는 건 경영자로서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연예계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써도 좋다. 하지만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해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어떤 짓궂은 질문에도 그는 ‘젠틀’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답하기 곤란한 문제에는 그저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곤 했다. 명문 재벌가의 자제로 태어나 외국생활을 오래 했던 덕인 듯 그의 매너와 사교적 태도는 무척 세련됐고 흠잡을 데 없었다.
선친인 고 김성곤 회장이 방직회사를 기반으로 60년대 쌍용양회, 쌍용제지, 쌍용해운, 쌍용산업 등을 잇달아 설립, 쌍용그룹의 기반을 닦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김석동 회장이 직물회사를 기반으로 토탈 엔터테인먼트사를 세운 점은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김성곤 회장은 58년 자유당 공천으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 제3공화국 때에는 공화당 중앙위원회 의장직을 맡는 등 정치인으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그러나 71년, 당시 야당이 제출했던 오치성 내무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여당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의 찬성표 속에 통과되는 이른바 ‘10·2 항명파동’의 여파로 정치권 전면에서 물러나 외유에 올랐다. 이때 그는 당시 경복초등학교 5학년이던 막내아들 김석동 회장을 미국으로 데려갔던 것.
“아버지가 나중에 귀국하시면서 저는 미국에 남아 공부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만으로 열한살이었습니다. 그 덕에 어렸을 때부터 독립심을 키우고, 지금의 해외 인맥을 쌓을 수 있었죠. 아버님 덕분에 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 아이들은 조기 유학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지금 이렇게 우리말을 하는 것도 따로 배워서 그래요. 너무 일찍 보내면 우리말을 잊어버립니다. 지금도 한자는 몇백자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최소한 중학교는 졸업시키고 보내려고 하죠.”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한 쌍용가 막내 김석동 회장

TV 드라마 보기, 잡지 보기…. 그는 새로 뛰어든 사업 공부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 중 TV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가장 힘들다고.


아버지 김회장은 그가 열네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부모와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한 김석동 회장은 83년 뉴욕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86년 워싱턴으로 옮겨 조지타운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조지타운대 시절 그의 담당교수는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였다. 이런 학맥을 쌓은 그는 졸업 후 뉴욕의 시티은행 본사에 입사, 2년여 직장생활을 통해 금융계 경력을 쌓았다.
“결혼은 조지타운대에서 공부할 때 했습니다. 결혼생활 17년째인데 집사람을 만난 건 23년 됐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잠시 귀국했다 집사람을 알게 됐어요. 당시 집사람은 미국 유학 준비중이었고, 저는 첫눈에 반해 쫓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알게 됐다가 미국 보스턴에서 다시 만나면서 가까워져 결혼한 겁니다. 연애 스토리요? 모든 연애는 드라마죠(웃음).”
아버지에 이어 81년엔 어머니 김미희 여사가 세상을 떴다. 때문에 그의 결혼식 사진에 부모님의 모습은 없다. “형들이 부모 역할을 했다”고 했다. 86년 부인 한준희씨와 결혼한 그는 슬하에 열세살 된 딸 지원, 그리고 아홉살인 딸, 아들 쌍둥이 지영·지호 남매를 두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무려 18년을 보낸 후, 지난 88년 귀국해 쌍용투자증권에 국제부 대리로 입사했다. 그리고 7년간 경영 수업을 받은 이후 95년 쌍용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랐다. 당시 쌍용증권은 약정규모 기준으로 국내 5위권의 중견 증권사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룹 전체가 흔들리면서 쌍용증권도 퇴출 위기를 맞았다.
“유동성 문제도 있었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상호연대보증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해외 매각을 주도한 겁니다.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서 그나마 우리 임직원들을 보호할 수 있었고, 그룹 전체로서도 부담을 줄일 수 있었어요. 굿모닝증권으로 재탄생한 이후에도 한 1년간 제가 공동대표로 있었지요. 좋을 때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2년전 제가 자발적으로 사임한 겁니다.”
신한국당 의원으로 있던 쌍용가 큰형 김석원 회장이 노태우 비자금 문제에 휘말렸고, 이어 쌍용의 자금줄이기도 했던 나라종금 사태가 터졌다. 잇따른 악재로 쌍용그룹 전체가 위기에 봉착하던 때, 그는 쌍용증권 매각을 주도, 지금의 굿모닝증권을 탄생시켰다. 쌍용증권 매각 당시, 큰형 김석원 회장과 갈등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는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재벌 2세인 만큼 그냥 편안히 살아도 좋을 텐데 전문 경영인으로, 또 오너 기업가로 거듭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뭐냐고 묻자 그는 “돈이 목적은 아니다. 지금도 아이들 공부시키고 편하게 살 돈은 있다. 재벌 2세가 계속 사업을 벌이는 이유라…. 사회학자도 답하기 힘든 문제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 삼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로또 복권을 산 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확률이 너무 낮아서 안 샀다. 사람마다 돈의 가치가 다른 것 아니냐?”며 다시 웃었다
“선친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정치를 할 생각도 없고(웃음). 정치를 왜 합니까? 전 그건 정말 이해가 안돼요. 사업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행복한 일 아닙니까?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라는 게 참 재밌을 것 같아요. 앞으로요? 일단 올여름 이전에 예정된 일들을 진행해야죠. 유동근, 차태현, 손예진씨가 출연하는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곧 개봉될 거고, 일본 히트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TV 드라마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증권사 입사 초기 조지 소로스로부터 직접 5백억원을 수탁, 국제통임을 과시했던 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자마자 마돈나가 대주주로 있는 미국 매버릭 필름스와 투자를 비롯한 업무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국제통, 금융통으로서 그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가 크다.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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