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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훔치고 싶은 인사이트 조엘 킴벡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칼럼니스트 조엘 킴벡.

editor 김명희 기자

2017. 05. 17

거부할 수 없는 마케팅으로 지름신을 내리는 한편, 남다른 통찰력으로 세계 패션뷰티 업계의 핫 이슈를 독자들에게 전해온 그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 4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열린 원더브라의 2017 F/W 란제리 패션쇼. 스냅챗 창업자이자 미국 가 선정한 최연소 억만장자 에반 스피겔과의 약혼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슈퍼모델 미란다 커의 방한으로 온통 화제가 된 이날 행사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에 매달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만화경)’라는 칼럼을 통해 세계 패션·뷰티 업계의 핫 이슈와 글로벌 명품 하우스의 동향을 심도 있게 전해온 조엘 킴벡. 이날 그는 뉴욕에 본사를 둔 광고 에이전시 퍼투(Pertwo)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원더브라, 베라왕, 시세이도, 니나리치, 투미, 이스트팩 바이 라프 시몬스, 한큐백화점, GS숍, CJ오쇼핑, 코세, 빈폴, 분더샵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광고 캠페인을 제작했고, 안젤리나 졸리, 줄리아 로버츠, 기네스 팰트로, 조시 하트넷, 소피 마르소, 아만다 사이프리드, 밀라 요보비치 등 세기의 배우들과 작업했다. 미란다 커가 2014년부터 꾸준히 한국을 찾는 것도 퍼투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더브라 광고 캠페인의 일환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4월 27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리는 ‘2017 동아 K-뷰티 미래 포럼’에서 글로벌 마케팅 성공 사례에 관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총만 안 들었을 뿐 전쟁터와 다름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해 지름신을 내리게 하고 브랜드의 매출을 쥐락펴락하는 이 남자, 궁금하지 않은가.

글로벌 시장 성공 DNA에 관하여



미란다 커가 한국을 떠나고 며칠 후 조엘 킴벡과 마주 앉았다. 요즘 가장 핫한 베트멍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로에베 해먹 백과 루이비통 휴대전화 케이스를 든 모습이 그가 화려한 세계에 속한 인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조엘과 단 몇 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그가 글로벌 패션 인더스트리에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인지,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단단한 심지의 중심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가능하다는 덕업일치(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어린 시절 포토그래퍼 브루스 웨버가 촬영한 캘빈클라인 광고를 우연히 본 후 패션 이미지에 매혹됐다. 그래서 시간이 나거나 용돈이 생길 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가 잡지를 사 모으고, 사진작가별로 카테고리를 분류해 스크랩을 하며 이런 사람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고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에 잠시 돌아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런던 골드스미스칼리지에서 글로벌 미디어학을 전공한 후 뉴욕 패션 광고 회사 ‘바롱 앤 바롱’ ‘립맨’ 등을 거쳐 2010년 일본인 파트너 카나코 마에다 씨와 함께 퍼투를 창업했다. 또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함께 작업한 스타들과의 에피소드와 인터뷰를 담은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꿈을 이룬 지금도 그는 여전히 패션과 그 업계의 사람들을 존경하며 브랜드가 생산해낸 아이템과 이미지를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이번에 미란다 커가 보여준 애티튜드가 인상적이었어요. 포토월에서 참가자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는 등 작은 부분에서도 그녀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주변에 한국과 일본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그녀 자신에게 동양적인 정서도 있고, 한국을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성격 자체도 밝고 명랑한 편이고, 일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이해관계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이 만족하고 즐겁게 하는 걸 최우선을 삼는 스타일이죠.

▼그간 함께 작업한 스타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금방 떠오르는 스타는 소피 마르소예요. 할리우드 스타들과 작업을 할 땐 보통 케이터링을 불러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하곤 하는데, 소피 마르소와 작업할 땐 식사 시간을 따로 정해놓고 테이블 세팅을 해서 만찬을 했거든요. 다음 날엔 집으로 초대해서 광고 이미지로 사용할 사진을 고르고 가족과 함께 식사도 했죠. 자신의 사진을 보정하지 말고 당시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해줄 것을 주문한 것도 잊을 수 없어요. 셀렙들과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편은 아닌데 지젤 번천과는 코드가 잘 맞아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당신의 몸이 성전이니 성물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조언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요. 정말 멋진 여성이고, 영감을 주는 모델이죠.






▼한국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브랜드들이 퍼투의 문을 많이 두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뉴욕이나 파리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저희를 찾는 브랜드들이 많아요. 개인적으론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오래 인연을 이어온 클라이언트에 집중하면서, 칼럼을 쓰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는 지금 정도의 규모가 딱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더 일을 하게 된다면,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브랜드와 하고 싶어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고 거기서 선택을 받는 브랜드는 한정돼 있다면,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브랜드가 살아남겠죠. 아크네스튜디오나 베트멍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베이식하면서도 감도 높은 아크네스튜디오는, 그 브랜드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를 제가 분명히 알겠어요. 베트멍도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보였죠.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망설임이 보이는 순간 소비자들은 금방 알아차려요. 로또 당첨처럼 한 방에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콘텐츠와 이미지를 잘 구축해서 브랜드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조엘 씨가 즐겨 쓰는 말처럼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나와 있는 패션 시장’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패션이나 뷰티는 가볍고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이나 인생 이런 거창한 게 아니잖아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설명하고 교육하려 들면 소비자들은 다 도망가요. 립스틱을 끝까지 다 쓰고 바꾸는 사람 없잖아요. 그냥 백이 예쁘고, 패키지가 나를 불러야 해요. 패션은 사람들이 필요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안 되게끔 꿈꾸도록 만드는 거예요. 지름신을 내리고 사지 않으면 병이 나도록 만들기 위해선 마법이 필요하죠. 그런 마법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것이 패션 산업이고요.  

▼글로벌 마켓에서 한국 브랜드들은 현재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요.

패션이 그간 쏟아부은 자본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비해 뷰티 분야에서는 ‘K-뷰티’라는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어요. 화장품 매장과 SNS에 K-뷰티라는 카테고리와 해시태그가 생겨나고, 여성들도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K-뷰티를 언급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 앞에서 얘기한 선명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브랜드는 없는 것 같아요. 마스크 팩이나 슬리핑 팩 같은 걸 보면 재미있고 제품력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토니모리인지 A.H.C인지까지는 각인이 안 된 거죠. 이럴 때 치고 나오는 브랜드가 있다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한국 브랜드 중 최근 글로벌 마케팅 측면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이 있다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어요(조엘 킴벡과의 인터뷰 며칠 후 루이비통 계열의 사모펀드 L캐피털아시아가 젠틀몬스터에 투자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뉴욕 소호에 매장을 내고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는가 하면 2017  S/S 뉴욕패션위크에선 리한나 등 유명 셀렙의 스타일리스트인 멜 오텐버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해 펜싱을 소재로 독창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죠. 한국 브랜드라기보다는 그냥 미국 브랜드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런 현지화 전략이 중요한 성공 포인트라고 봐요. 그동안 무수한 한국 브랜드들이 미국 진출을 시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현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에요. 한국 디자이너들이 뉴욕패션위크에 참가해도, 쇼가 끝나면 바로 철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컬렉션을 인상 깊게 본 에디터들이 패션위크가 끝나고 연락을 하려 해도 방법이 없어요. 뉴욕은 오는 사람 막지 않지만, 필요한 것만 똑 따먹고 가겠다는 사람도 환영하지 않아요. 뉴요커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죠. 뉴욕은 로컬이지만 동시에 세계 패션의 메카이기도 해요. 뉴욕에서 살아남으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 측면에서 현지화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엘 씨 개인적으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죠.
회사를 크게 키우겠다는 욕심이 없으니까 시간이라는 선물도 생기고, 쓰고 싶은 글도 쓸 수 있어요.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 생각하면 그게 성공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한국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떠밀려가듯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한 시대를 넘어온 입지전적인 스토리가 있고 배울 점도 있는데, 젊은 친구들에게선 에너지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그런 점은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명문 학교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도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고, 열정이 없으니 재미도 없어 보이고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패션뷰티 업계에 진출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분야에 비해 패션뷰티를 쉽게 생각하는 풍토가 아쉬워요. 패션에도 땀과 눈물, 온갖 스토리와 드라마가 있는데 그런 걸 간과한 채 샤넬 백 들어보고 명품 화장품 써봤다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정보가 부족한 탓도 있고요. 제 직업인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비주얼을 만드는 직업이기 때문에 창의력이 필수인데 그걸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발전시킬 수도 있어요. 디지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예전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은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여전히 감성을 지극하고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걸 많이 보고 경험하면서 감각을 키우면 좋겠어요. 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몰입하는 경험을 해보길 바라요. 저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기회라는 게 ‘내가 기회야. 그러니 잡아봐’ 하고 오는 게 아니라 어느 날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와 앉아요. 준비된 사람은 잡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는 거죠.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퍼투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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