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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exclusive 특종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세월호 7시간의 비밀 그리고 관저에서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editor 김민경·정희순

입력 2016.12.27 11:25:28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광화문을 밝힌 수백만 촛불에 한상훈(45) 전 청와대 조리장(이하 편의상 ‘한 조리장’으로 호칭)이 입을 열었다. 지난 12월 7일 〈여성동아〉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 조리장의 증언을 처음으로 단독 공개했다. 의혹에 싸인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중요한 사실과 청와대 관저에서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생생한 진실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보도의 파장은 엄청났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박 대통령의 행적과 이번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관저 출입설’이, 최씨를 청와대 관저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의 입을 통해 확인된 최초의 보도였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여성동아〉 보도가 나간 뒤 한 조리장은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국회 국정조사 증인 출석 논의 등에 부담을 느끼고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서울 모처에서 지냈다. 〈여성동아〉가 한 조리장을 다시 만난 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9일. 기자와 함께 국회에서의 탄핵안 표결 상황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그는 “어쨌든 정성을 다해 모셨던 대통령이 이런 일을 겪게 돼 안타깝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탄핵 표결 전 진실의 조각이 알려져 다행이다. 세간의 억측을 피하기 위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수백만 촛불이 모여 이뤄낸 국회 탄핵안 표결의 압도적 찬성이 그의 결심을 뒷받침했다.

한 조리장은 MB 정부 때 청와대 서양 요리 담당 조리장으로 발탁돼 2009년 초부터 ‘최순실 국정 농단’이 알려지기 직전인 2016년 6월 말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그는 청와대를 떠날 때 ‘비밀누설금지서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을 은폐하는 청와대를 보며 비밀을 유지하고 입을 다무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헌정 사상 초유의 참사 속에서, 한 조리장은 자신의 말이 진실을 드러내고 국민들에게 조금 더 오래 용기를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미 공개된 내용을 포함하여 국정 농단의 생생한 실상을 알 수 있는 인터뷰 전체를 공개한다.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 청와대 조리장의 업무는 무엇인가.

청와대 조리실에는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네 파트의 조리장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양식을 담당했다. 청와대 조리장은 대통령과 그 가족의 식사는 물론이고, 청와대 내 중요한 행사의 식사도 전담한다. 대통령이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을 떠날 때도 동행하고, 주말에도 근무한다. 네 명의 조리장이 돌아가며 한 명씩 쉬는 식으로 일했다.

▼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 2014년 4월 16일에도 근무했나.

그렇다. 관저에 딸린 주방에서 정오와 오후 6시에 각 1인분의 식사를 만들어 냈다.

▼ 관저는 청와대 내 대통령의 ‘가정집’이다. 평일 점심과 저녁을 집무실이 있는 본관이 아니라 관저에서 냈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동선과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대개 관저에서 식사를 낸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같은 일이 있을 때만 본관에 나갔다가 다시 관저로 돌아오신다. 그래서 대개 본관 주방이 아닌 관저 주방을 사용했다.

▼ 세월호 사고 당일 메뉴를 기억하는가.

기억할 수 없다. 보통 대통령의 식탁에는 여러 스타일의 요리들이 ‘반찬’처럼 한꺼번에 올라간다. 그날도 조리장 여럿이 함께 식사를 만들었다.

▼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의 아침 식사는 만들지 않았나.

박근혜 대통령의 아침 식사는 청와대 조리장들이 직접 만들지 않는다. 식재료 등을 미리 준비해두면, 박 대통령을 항상 보필하고 있는 ‘비서’가 따로 음식을 만든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그러지 않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그렇게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 세월호 사고 당일 전 국민이 충격 속에서 TV로 참사를 지켜봤고, 대통령도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는 게 청와대 발표다.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나.

(대통령은) 식사는 평소처럼 했다. 사고 당일 오후 5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한 후 관저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 조리장들은 대통령이 먹는 음식의 식전과 식후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한다. 얼마만큼 먹었는지, 어떤 음식을 남겼는지 등을 파악해 다음번 메뉴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 대통령이 식사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나.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다. 조리장의 업무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까지다. 식사를 내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에 1인분의 음식이 관저에 들어갔고, 그릇이 비워져 나왔다는 건 확실하다.

▼ 음식을 내간 사람은 대통령의 식사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얘긴가.

아마 못 봤을 거다. MB 땐 음식을 내가는 사람이 대통령의 식탁까지 서빙을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 땐 음식을 내가는 사람도 내실 앞까지만 갈 수 있고, 음식은 ‘비서’가 내실로 들인다.

▼ 그날 주방에선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나.

우리도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 국가적 재난이 일어난 사실을 주방에서도 알았다면 대통령의 일정이나 식사 장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나.

박 대통령의 식사 일정에 갑작스러운 변동이 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 역시 별다른 지시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1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차려 냈다.

▼ 늘 1인분만 낸다는 말은, 대통령은 늘 혼자 식사한다는 뜻인가.

혼자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분이다. 술은커녕 간식도 잘 안 한다. 박 대통령은 건강식에 관심이 많아 저염식을 한다. 지방 출장이 있어도 식사는 대체로 혼자 하길 원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대부분 차에서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같은 걸 준비하곤 했다. TV에 대통령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여성동아〉 2016년 10월호에 게재된 한 조리장의 사진.

▼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어땠나.

그땐 비상소집 회의가 무척 많았다. 수시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에 조리장들도 함께 이동해서 10~2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그때에 비하면 박근혜 정부 들어 조리장들이 겪는 노동 강도는 3분의 1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도 별다른 지시가 없어서 이전 정부 때에 비해 퇴근 시간이 일정한 편이었다.

▼ 대통령이 식사하는 식당에 TV가 있나.

관저 안에 작은 크기의 가족 식당과 대식당이 있는데, 대식당은 10인 이상 손님들이 모여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두 식당에 모두 TV가 있다. 대통령은 TV 보며 혼자 식사하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안다.

▼ 박 대통령이 그날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날 미용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 청와대에서 태반 주사, 백옥 주사 등 각종 ‘영양 주사제’도 다량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주사제를 맞아본 적 있나.

비싼 걸 설마 직원에게 주겠나. 장티푸스 예방 접종 주사와 독감 주사만 맞아봤다.

▼ 최순실 씨가 실제로 관저에 드나들었나.

임기 초부터 이영선 전 청와대 2부속실 행정관이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최씨를 픽업해서 프리 패스로 들어왔다. 최씨가 온다고 하면 ‘문고리 3인방’이 관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최씨를 ‘그분’이라고 불렀다. “그분 오신다”고 하면 조리장도 세 명이 대기했다.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비선 실세 논란이 일었을 땐 최씨가 한동안 관저를 찾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그 이야기가 가라앉자 다시 드나들기 시작해 내가 청와대에서 나온 6월까지  왔었다.

▼ 최씨를 직접 만나기도 했나.

관저에 있는 주방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두 번 마주쳤다. 처음엔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신경이 쓰였는지 나중엔 주방에서 내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막자고 한 것 같다. 그래서 화장실도 한참 돌아서 가야 했다.

▼ 최씨가 관저에 와서 무엇을 하나.

최씨와 문고리 3인방이 배석해 회의를 연다. 박 대통령은 거의 동석하지 않았다.

▼ 박 대통령은 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나.

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없다. 최씨가 오는 날 주방 상황은 이렇다. 오후 6시엔 평소처럼 대통령의 1인분 식사를 낸다. 그 후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게 이영선 행정관의 식사다. 회의가 끝난 최씨를 데려다줘야 하는 게 이 행정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씨의 밥을 준비한다. 최씨는 늘 일본식 전골요리인 ‘스키야키’를 먹었다. 최씨 식사가 끝나면 문고리 3인방 차례다. 같이 먹으면 좋은데, 꼭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먹었다. 문고리 3인방 식사로 고기까지 굽느라 일요일에 더 바빴다. 그래서 모든 정리가 끝나면 오후 10시가 넘었다.

▼ 최씨가 청와대에서 음식을 싸 가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인가.

회의 때 출출하다며 김밥을 달라고 했다. 처음엔 몇 번 청와대 인근의 김밥 전문점에서 사다 줬는데, 나중엔 질린다며 주방에서 직접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시중에서 파는 김밥 속재료 제품을 사다가 멸치, 고추 등과 함께 넣고 다양하게 만들어 줬다. 회의를 마치고 집에 갈 때도 김밥을 싸 달라고 해 포일에 싸서 검은 봉지에 2~3줄씩 넣어줬다.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 관저에 전문 운동 기구가 많이 들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열흘가량 관저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그때 슬쩍 보니 지난 정부까지 안방으로 사용했던 공간을 사방이 거울로 된 방으로 바꾸고 실내 체육관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침실을 옮겼다는 것인가.

MB 정부 때 관저 부속실로 사용했던 공간을 개조해 침실로 쓴 것으로 안다.  

▼ 청와대가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호랑이 대신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진돗개를 선정하라고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그 정도로 진돗개를 좋아하나.

박 대통령이 직접 개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대통령이 관저를 출입할 때 문 앞에 진돗개 두 마리를 마치 경비원처럼 대기시키는데, 그때 잠깐 보는 게 전부일 거다.  

▼ 청와대를 그만두는 날 박 대통령을 만났나.

그날 점심 식사도 직접 해드렸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박 대통령에게 인사드리고 기념사진이라도 한 컷 찍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 어디서든 청와대 경험을 발판 삼아 요리로 크게 성장하실 수 있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 대통령의 밥상 식재료는 특별한가.

특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조리장의 일이다. 나는 매일 점심 식사가 끝나면 백화점 등으로 장을 보러 나갔다. 식탁에 올릴 만한 좋은 식재료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제철 음식을 올리기 위해 직접 산지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 조리장으로서 지켜본 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고립된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개인 행사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조리장들에게 까다롭게 하진 않았다.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날 악수를 청하며 “밥이 보약이지요.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잊고 있었는데, 최근 대통령이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했다가 정정한 소동이 있었을 때 기억이 났다. 특별 메뉴를 내면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조리장이 만든 반찬에는 젓가락을 한 번씩 모두 갖다 댔다. 입에 맞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티를 내기 위해서다. 나는 그게 우리를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 신분이 공개되면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뭔가.  

특급 호텔 주방장이었던 내가 청와대에 들어간 건 대통령의 밥을 짓는다는 자긍심 때문이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나온 것도 너무 오래 그곳에 있다 보니 다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청와대를 나온 뒤에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 집회가 시작됐다. ‘대통령 밥해준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이전에 품었던 자긍심은 내게 상처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 광화문 촛불 집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추운 날 멀리서 촛불을 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니 입을 다물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관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들 최순실 씨의 존재를 알았다. 하지만 현직에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말을 못 하는 것뿐이다. 청와대를 그만둔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 인터뷰가 나간 후 한때 ‘실종설’이 돌기도 했는데.

이야기하고 나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언론들의 관심도 그렇고, 비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가족 걱정도 컸고.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에는 “식당에 불을 지르겠다”는 등의 협박 전화를 비롯해 하루에 수백 통의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들이 하도 찾아와 집에도 못 갔다. 본의 아니게 일주일쯤 쉬다가 레스토랑에 복귀했는데 손님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더라.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 좋은 일을 하신 거다”라며 감사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그게 정말 고맙고 많은 격려가 된다.

▼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

관저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그저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는 마음을 가진 일반인들일 뿐이다. 내 인터뷰로 인해 식구처럼 지냈던 동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빨리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취재 비하인드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한 조리장은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지난 12월 9일 〈여성동아〉와 정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성동아〉가 처음 한 조리장을 만난 건 지난 9월. 인터뷰를 하며 연이 닿았다. 종종 전화 통화로 근황을 나누던 중 그가 다시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로운 신년 기획을 준비하던 〈여성동아〉는 그와 함께 음식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11월 25일 편집장과 담당 기자가 함께 그를 만났다.  

이날 한 조리장은 ‘비보도’를 전제로 청와대 관저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며 본인이 마음속에서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털어놨다.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비밀누설금지서약서’를 썼다는 그의 입장을 고려해 일단 보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뒤 한 조리장은 “어제 촛불 집회를 보니 마음이 너무 괴롭다. 신문 기자들이 나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맞닥뜨리면 인터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흔들리는 심경을 전했다. 〈여성동아〉는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국민들이 한 조리장의 증언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우선 익명으로 그가 말한 내용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칼럼 연재를 위해 한 조리장을 여러 차례 만나고 통화하면서 그가 전문 셰프로서 대통령의 음식에 관해서는 매우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으며, 증언에 일관성이 있어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복수의 청와대 근무 행정관들을 통해 한 조리장의 증언이 부속실 직원들의 업무 관계, 문고리 3인방 관련 에피소드들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보도 직후부터 인터넷 언론 매체들은 해당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쏟아내기 시작했고, 12월 8일에는 일간지를 비롯한 방송에서 한 조리장의 발언 내용을 다뤘다. SNS상에 〈여성동아〉의 충격적인 보도 내용을 언급하는 게시물도 봇물을 이뤘다.

보도 이후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에 놀라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던 한 조리장은 탄핵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 12월 9일 〈여성동아〉와 다시 만나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채널A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금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들의 격려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한 조리장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청와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국정 농단의 실상을 지켜본 또다른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어져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대통령은 최순실을 입는다‘모델 요청’ 거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편지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

2014년 11월 3일 최순실 씨가 대통령이 입을 의상을 살피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은 일주일 뒤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옷을 입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패션 유통회사 대표에게 TV조선 방송 화면 보낸 편지(오른쪽).

‘패션 외교’로 홍보된 대통령의 옷과 가방 등이 ‘알고 보니’ 최순실 씨에 의해 제작됐고, 이로 인해 외교 및 의전상 문제들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수치심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의 옷과 관련하여 최근 〈여성동아〉는 박 대통령에 대한 ‘모델 요청’을 거절한다는 내용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편지를 입수, 지난 12월 16일 채널A를 통해 먼저 공개했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최씨의 전남편) 비선 실세’ 논란 등 대통령 탄핵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 벌어진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근무, 최씨와 ‘문고리 3인방’의 전횡 등 청와대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 12월 7일 2차 청문회까지 “최씨를 전혀 모른다”고 주장하다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네티즌의 제보를 폭로하자 뒤늦게 “최순실이란 이름은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애매하게 후퇴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패션 유통회사 A 대표에게 보낸 편지는 A 대표가 청와대로 보낸 ‘대통령 의상 협찬 제안’에 대한 답장 형식을 띠고 있다. A 대표는 2013년 말 자신을 ‘중저가 여성 의류를 만드는 중소기업의 대표’로 소개하고,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 미국의 중저가 의류 브랜드를 즐겨 입어서 자국 산업에 큰 도움을 준 바 있다. 대한민국의 여성 대통령께서 한국 중소기업 브랜드의 옷을 입는다면 한국 의류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실 뿐 아니라 검소함을 추구하는 대통령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므로 협찬할 기회를 달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서 청와대로 보냈다고 한다. A 대표에게 답장이 온 것은 2014년 1월. ‘대통령께 성원을 보내주시고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주신 데 감사한다. 그러나 요청하신 모델 요청은 안타깝게도 어려울 것 같다’는 거절의 내용이었다. A 대표는 최근 최씨가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영상이 폭로된 뒤 편지를 다시 찾아보고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의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모델 요청’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로 답이 와 대통령의 옷을 담당하는 의상 전문가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국정 농단’ 사태에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비서실장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

부적절한 단어 선택과 거친 표현, 발신일 미기재 등 미심쩍은 이 편지는 대통령의 옷을 조달한 부속실이 검토하고 답을 작성해 대통령 보좌 업무의 총책임자인 비서실장의 이름으로 발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정 농단 실상이 고스란히 기록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에는 대통령의 피복 선호도 및 구입처(업체), 개인 일상용품 구입처, 의식주 관련 습관을 모두 적은 인쇄물이 붙어 있다. 또한 김 전 비서실장으로 추정되는 ‘장’이 밍크 장사 김모 씨를 ‘꽃뱀’이라 불렀다는 대목도 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옷을 관리했음을 비서실장이 모른다고 말할 순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김 전 비서실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편지라면 최소한 내용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요청이 왜 받아들여질 수 없는지 그가 알고 있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공식적 직함도 없고 어떤 전문성도 없는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의식주를 도맡음으로써 외교상, 의전상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씨에게 ‘찍혀’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도된 한 공공기관 임원은 “전문가에게 대통령 패션 자문을 받아야 한다고 청와대에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과 최씨가 직접 만나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꽤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몸조심을 위해 김 전 비서실장이 최씨를 직접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팟캐스트에서 말했다. 또 오랫동안 청와대 수석을 보좌한 한 인사는 “김 전 비서실장은 알고 싶지 않은 건 알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최순실,  문고리 3인방 등과 영역을 나누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려 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의 편지에서처럼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수용하고 이미 드러난 문제라도 바로잡았다면,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한꺼번에 벼랑으로 몰아넣은 오늘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으리란 안타까움이 남는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7년 1월 6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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