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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koreanartist

UMZIKIM

삶의 다음 장을 만드는 4인의 움직임

editor 왕민아

입력 2016.10.17 17:53:17

비슷하게 생각하며 사는 청년 넷이 모였다.
그들은 기민하게 움직이는 동시에 묵묵히 꾸준하다.
그들의 이름은 정직하게도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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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최정용·송세진·김민지·양재혁(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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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이미 일상화했기에 문제는 언제나 더 새로운 디자인이다. 새로운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지 고민해본다. 어디에든 녹아 있는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면서 경계를 긋는 건 의미가 없을 거다. 그렇기에 ‘움직임’을 떠올린다. ‘움직임’은 양재혁 대표와 그의 서울대 공대 출신 동료들이 모여 만든 디자인 브랜드이다.

한국의 이공계 교육 시스템 속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사람이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결코 쉽진 않았을 거다. 양 대표는 어렴풋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고, 나중에야 생각해보니 그게 디자인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가 하고 싶었던 디자인이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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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라는 단어에는 ‘설계’의 의미도 있지만 ‘설계한다’로만 해석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자인한다’는 뜻만도 아니에요. 이렇게 중첩된 뉘앙스를 가지는데, 한국에서는 이걸 반으로 정확하게 자르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공학도인 제가 디자인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진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예요.”

‘좋은 물건을 만드는 데 눈에 봐서 예쁘게 만드는 건 당연한 거고, 돈 주고 사서 쓰는 사람의 취향도 만족시켜야 한다.’ 양 대표가 간단하다고 말하는 생각은 바로 이런 거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보에 대해 우려하는 걸 두고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나중에야 ‘사람들이 이걸 다르다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UMZIKIM
양재혁 대표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학사, 통합창의디자인 연계 전공과를 졸업하고 현재 산업공학과 인간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런 바탕으로 디자인이라는 말보다는 디자인의 역사를 먼저 배웠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그런 거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을 배운 사람이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미학을 느끼게 된다. 반면 ‘무언가를 만드는 건 산업적 구조와 연관되는 것이다’라는 식의 관점으로 배운 사람은 다른 걸 보게 된다는 거다. ‘움직임’ 사람들이 그렇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사람이 왜 그 시대의 위대한 건축가이고, 그의 소파가 왜 대단한 건지 생각해봐요. 결국 존중의 방식이 다른 거죠.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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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움직임’은 그저 예쁜 걸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 그들이 만든 ‘메이 소파 데스크’는 책상 바깥쪽이 아래로 기울어 있는데, 이런 작은 디테일 하나가 책상에 놓아둔 물컵이 쏟아질 걱정을 없애준다. 다들 디자인 보는 눈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결국 진짜 ‘제대로 된’ 디자인이란 이런 거다. 제품과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작지만 충분히 의미 있고 동시에 아름다운 순간을 만드는 디자인이 바로 ‘움직임’이 추구하는 것이다.

공대 출신인 그들은 재료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철저히 탐미주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LOOK AT ME’ 트레이가 그걸 단번에 보여준다.


LOOK AT ME T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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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갈망하는 것을 바라보고, 이 트레이는 그 사물을 시선 위에 담아낸다. 내 눈에 담긴 사물을 바라보는 느낌이 이런 거다.


“이건 그냥 트레이가 아니에요. 원이 두 개 있으면 사람이 자연히 그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단 말이죠. 이런 건 특별하고 어려운 원리가 아니라 가장 솔직한 인간의 본능이에요. 그런 데다 이걸 거울 소재로 만들었어요. 그럼 거기를 한참 들여다보게 될 거고, 거울에 비친 내가 보이거든요. 이건 마치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에서 나를 보려고 애쓰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데, 결국 이런 경험은 대단히 사적이고 미적인 순간이에요. 그 결과 아주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하고요.” 그들은 탐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동시에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물건을 어떻게 만들어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걸 좀 더 공학적으로 표현해서, 이들은 ‘인간은 도구를 통해서만 발전한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한다.

공학도들이 만드는 ‘움직임’의 제품은 금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철이라는 소재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해야만 했다.

“판과 파이프 형상을 잘 접고 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면서도 멀리 보았을 때는 대량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이런 점이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 업계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받아들여졌어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을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죠.”


BOOK-SL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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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치는 게 북엔드의 본래 기능이라지만, 새로운 책을 꽂고 싶을 때마다 번거로웠다. Bookslide는 그저 밀어넣으면 된다. 빨려 들어가듯 자연스럽다.




BOOKS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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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 않기 위해 뻣뻣하게 버티려고 애쓴다고 상황이 나아질까. 조금만 틀어서 보면 견고하게 기댈 곳도 있고,
서로 의지할 곳도 있다. 자꾸만 넘어져서 아예 쌓인 책과, 북엔드로 받쳐놓은 책을 보면 사람도 책과 다를 게 없다.



TA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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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르게 엉켜버린 둘 안에서 새로운 조화를 발견한다. 엉켰다고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조화롭다.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의 언론이 ‘아시아의 젊은 디자이너, 가구의 오랜 문제를 해결하다’란 찬사를 보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움직임’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그들은 정확하게 말해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그들에겐 디자인과 제조를 동시에 하는 것이 가능하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움직임’은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가격을 붙이고, 직접 소매상까지 찾아 판매한다. 이런 행보를 보인 그들의 목표는 한국 브랜드가 가보지 못한 곳까지 가보겠다는 거였다. 사실 그보다는 ‘갈 수 있나 확인해보자’ 정도의 마음이었을 테다. 결과적으로 ‘움직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왔고, 여전히 계속해서 예측하기 어려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제는 멈출 수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

‘움직임’은 이미 2013년부터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쉼 없이 참여하고 있고, 디자인 매장 ‘ABC 홈’과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LE Bon Marche)’에도 진출했다. 특히 봉 마르셰 백화점에 작가가 브랜드로 입점한 사례는 이전에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해외에서 먼저 제대로 인정받은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펼치는 건 물론, 이제는 두 영역을 결합하기도 한다. 최근 이들은 ‘알레시(Alessi)’의 디자이너로 국내에 알려진 스테파노 지오반노니(Stefano Giovannoni)가 새롭게 론칭한 브랜드 ‘키부(Qeeboo)’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이번에 출시한 ‘Rabbit Chair’가 바로 그들 제품. 자칫 딱딱하고 공학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의 이미지를 충분히 부드럽게 중화시켜준다. 어른과 아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이즈는 물론, 색상도 다채롭다. 이렇듯 아기자기한 멋까지, ‘움직임’이 못 하는 건 없다.


MAY SOFA 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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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넘어지지 않게 둘 수도 있고, 혹시 넘어져도 뒤쪽으로 흘러내린다. 근원적인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건 이렇게 좋다.



FLI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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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전달하는 건 나를 전달하는 거다. 그 소중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한 장씩 뽑는 데 그 어떤 불편함도 없도록 했다. 명함을 집기에 가장 좋은 구조다.

또 한 가지 ‘움직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디자이너 로사나 올란디(Rossana Orlandi)일 거다. 사실 이들의 만남이 가능하게 한 사람 역시 평범하지 않다. 양재혁 대표가 교환 학생으로 이탈리아에서 지내던 중 그야말로 운명적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난 ‘옆집 할아버지’가 바로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은퇴한 건축가 다리오 페라리(Dario Ferrari)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토일렛 페이퍼(Toilet Paper)〉를 창간하고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펼치는 사진가 피에르파울로 페라리(Pierpaolo Ferrari)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봤다. 그런 후에 양재혁 대표에게 로사나 올란디를 소개했다. 그들은 여러 방면으로 한국 청년 양재혁 대표에게 현실적이고도 사려 깊은 조언을 해주며 그의 디자인을 굳게 지지했다.

‘움직임’은 올해 밀라노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서 벽걸이 선반 ‘Robot Shelf’를 발표했다.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쉽게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20세기 중반 디자인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디터 람스(Dieter Rams)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일찍이 예견했고, 후세를 위한 특별한 디자인을 선물로 남겨놓은 겁니다.” 디터 람스의 시스템 장을 새롭게 디자인한 이 제품은 사용자가 취향에 따라 구성 요소를 다양하게 조합해 책상, 수납장, 화장대 등의 용도로 개성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양재혁 대표는 어떻게든 ‘한국’ 이름표를 달고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그래서 밀란 유명 가구 회사의 ‘합작’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아이폰은 매년 새로운 걸 기대하는데 가구에서는 왜 그걸 기대하지 않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4S를 만들고 떠났는데, 그러면 그게 클래식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이폰 7이 나오는 지금 누가 아이폰 4S를 써요? 아니잖아요. ‘왜 그런 걸 기대하지 않을까?’에 대한 답은 ‘정체돼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오래전의 디자이너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기를 바랐을 겁니다. 제가 철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때문이에요. 그들이 사랑했던 재료로 더 멋지게 만드는 거, 그게 존중을 표하는 저희 나름의 방식이에요. 뉴턴이 했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말이 있어요.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가 있었기에 ‘F=ma’라는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는 거예요. 혼자 한 게 아니라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해냈다는 말인 거죠. 지금 저희 디자인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르 코르뷔지에와 엔조 마리, 짧게는 피에르파울로 페라리와 로사나 올란디, 다리오 페라리까지, 그들의 어깨 위에서 뭐라도 하는 거예요. 과거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자, 현재의 한계를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랄까요.”

인간에게 얼마나 더 발전적인 도구가 주어졌는지가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동시에 사람의 삶에 유머와 아름다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걸 보고 감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걸 사서 걸어두고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으면 그건 도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것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 디자이너의 역할로 남는다. ‘움직임’은 다른 무엇보다도 발전에 관심이 많고, 그걸 가장 깊이 고민한다. ‘움직임’이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 ‘Escapade’는 과거로부터의 발전, ‘Desklab’은 다음을 위한 발전이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로 꽉 찬 팍팍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RABBIT CHAIR


UMZIKIM

알레시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지오반노니와 ‘움직임’이 함께 한국에 소개하는 래빗 체어.



PENHOLDER, ROBOT SH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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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던 펜이 굴러가는 건 늘 불편하니까, 걸어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펜이든 도구든, 뭐든 꽂아도 좋다.
20세기 디자인계의 전설 디터 람스의 시스템 장을 새로 해석해
사용자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 구성할 수 있게 했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홍중식 기자
사진제공 움직임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6년 10월 6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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