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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KALEIDOSCOPE

전설적인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 빌 커닝햄

Everything I’ve Learned from the Street

글 · 조엘 킴벡 | 사진 · 뉴시스AP REX | 디자인 · 최정미

2016. 08. 09

전설이 말했다. “나는 패션의 모든 스타일을 길에서 배웠다”고. 그렇게 얼마 전까지 뉴욕 거리를 누비며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전설은, 이제 패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영면에 들었다. 1978년부터 거의 40년 동안 〈뉴욕타임스〉 일요일판 스타일 섹션의 ‘온 더 스트리트(On the Street)’를 장식하며 ‘스트리트 패션 포토그래퍼’라는 장르를 개척한 빌 커닝햄(Bill Cunningham, 1929~2016)이 6월 25일 세상을 떠난 것. 평범한 거리를 런웨이로 바꿔놓은 그를 떠나보내며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패션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했다.   

그의 비보가 전해지자 패션 관계자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 토막씩이라도 그에 대한 추억이 있을 터. 필자도 짧지 않은 시간 뉴욕 패션계에서 일하다 보니 우연찮게 그와 인연을 맺게 됐다. 몇 년 전, 그의 일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빌 커닝햄 뉴욕(Bill Cunningham New York)〉(2010)의 개봉을 앞두고 한 매체로부터 커닝햄 인터뷰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언론 노출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를 인터뷰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킨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유명인들의 스타일을 엿보는 파파라치 컷이 일상이 되고, 공항 패션 사진이 인물의 스타일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이 시대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한평생 거리에서 스타일의 모든 것을 찾고 알려온 빌 커닝햄. 당신도 언젠가 그를 만났거나, 자신도 모르게 피사체가 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뉴욕 패션 위크가 열리는 기간에는 어디에서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쇼가 열리는 행사장 바로 앞에서, 어쩌면 패션쇼의 맨 앞줄에서 혹은 조명도 잘 비치지 않는 맨 뒤쪽에 서서 대상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그를 발견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바로 20분 전 뉴욕 링컨센터 텐트 앞에서 보았던 그가 첼시의 또 다른 패션쇼 현장에서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뉴욕에 몇 명의 빌 커닝햄이 존재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냥 흘려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신출귀몰의 비밀은 바로 그의 애마, ‘슈윈 자전거’에 있다. 28번이나 도둑맞는 바람에 같은 모델을 29번이나 구입했다는 슈윈 자전거야말로 그를 뉴욕의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양탄자였다. 커닝햄 사망 후 뉴욕 시는, 그가 자신의 슈윈 자전거를 세워두고 에르메스 버킨 백을 들었거나 이세이 미야케 숄을 둘렀거나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은 패션 피플을 촬영하곤 했던 57번가 북동쪽 루이비통 건물 한쪽 면을 ‘빌 커닝햄 코너’로 명명하고 그를 기렸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알지만, 사실 커닝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일반인은 드물다. 그는 목소리로 말하기보다 사진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스타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리처드 프레스 감독이 장장 10년에 걸쳐 완성한 88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빌 커닝햄 뉴욕〉을 보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80세가 넘은 노인의 이야기를 찍는 데 10년이나 걸렸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10년 중 8년은 빌 커닝햄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영화가 완성된 후 커닝햄은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50년 동안 살았던, 복도에 화장실이 딸린 카네기홀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사안에 부딪힌 한 쓸쓸한 남자의 일상을 담담히 표현해낸 영화는 진짜 커닝햄을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 대한 커닝햄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그가 가장 흥분하는 순간은 군중 속에서 알렉산더 맥퀸의 뮤즈 이사벨라 블로나 브룩 애스터 같은, 패션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을 만났을 때다.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서 그는 “패션은 일상이라는 현실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 같은 존재다. 그것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려면 문명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패션 철학을 밝힌다.  



셀렙보다 패션을 사랑했던 진정한 거리의 사진가

여든을 훌쩍 넘긴 그였지만, 움직임이 굼뜨거나 판단력이 흐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동료들은 이런 그를 향해 “뉴욕에서 가장 빡세게(?) 일하는 기자”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했다. 그의 그 빡센 일정은 대부분 가장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성들을 만났을 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영원한 테마이자 관심의 포커스는 그녀들이 아니라 오직 그녀들이 보여주는 ‘패션’이었다.

“저는 정말 셀레브러티들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에게 특별히 제공되는 공짜 드레스들도 마찬가지죠. 오직 멋진 의상들에 관심이 있을 뿐…. 그리고 그 멋진 패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이들에겐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프랑스의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커닝햄은 미디어들이 사랑해 마지않으며 스포트라이트를 쏟아붓는 그녀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를 물어보자 그의 대답은 심플했다.

“그녀는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의상을 입지 않았거든요.”

커닝햄과 뉴욕은 샴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니는 단어였기에 그가 맨해튼 어딘가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았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의 고향은 보스턴이었다. 필자가 “나는 한국 핏줄을 물려받았다”고 하자 그는 “나는 한국전 참전 용사”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 눈의 초점이 살짝 흐려지는 게 보였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후에 그는 모자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 그에게 모자를 제공해준 사람들 중에는 마릴린 먼로, 진저 로저스, 조안 크로퍼드 같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중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독설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커닝햄은 모자 장사가 아닌 사진에서 길을 찾았고, 50년 이상 활동하며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까지 쌓았으니 그의 선택은 분명 옳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보그〉 미국판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언젠가 “빌은 내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 사진을 찍어왔다. 만약 빌이 내 사진을 더 이상 찍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내가 끝이 났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빌 커닝햄은 자신의 일에 나름의 고집과 주관이 분명한 사람이다.

빌 커닝햄이 세상을 떠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와의 인터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패션 위크가 이어지는 기간이라 그의 스케줄이 빠듯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힘이 들었던 부분은, 커닝햄이라는 사람 자체가 인터뷰에 우호적인 타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문명의 이기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연락이 닿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거리에서 자주 만났건만 마음먹고 연락을 취하려니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애용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팩스였다. 마치 연애편지라도 보내듯, 그에게 인터뷰 요청 팩스를 얼마나 보냈는지 모른다.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왜 8년이라는 설득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공을 들이다 보니 〈뉴욕타임스〉 동료들이 그의 동선에 대해 조금씩 정보를 주기 시작했고, 패션계 지인들이 실시간으로 그의 목격담을 전해준 덕분에 길에서 일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한두 질문씩 게릴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와의 짧지만 강렬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때 진행한 인터뷰의 일부를 공개한다.

▼ 최근  길거리 사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제 뉴욕, 파리 등 패션 도시에서 스트리트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매우 흔한 풍경이 되었다. 과거와 요즘을 비교했을 때 당신이 촬영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를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

나는 그저 과거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기에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 길거리 사진이 이 시대의 패션계에 어떤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나는 오직 패션에 관심이 있다. 그 옷을 누가 입었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옷에 애정을 갖고 멋지게 표현해준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분명 있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통해 인생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이 생겼다. 그런 심미안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 시대에 많지 않을까.   

▼ 요즘 패션계에는 가랑스 도레, 스콧 슈만 등 수많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활약하고 있다. ‘원조’로서 그들과 어떤 점으로 차별화를 꾀하는지 궁금하다.

노 코멘트.

▼ 다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실례가 안 된다면 개인적으로 당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나는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

▼ 사람들이 당신을 ‘최고’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을 찍는 장소가 거리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떤 의상은 런웨이에서는 빛이 나지만, 거리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의상이 1백만 분의 1 혹은 1천만 분의 1 확률로 배경이나 상황과 어우러져 그 자체로 빛나야 하는 것이 거리 사진의 중요한 요소이자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최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 당신은 어떤 피사체에게 특히 매력을 느끼는가. 당신으로 하여금 셔터를 누르게끔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패션을 사랑해서 아름다운 의상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멋지게 소화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 당신은 이메일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요즘 보기 드물게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메일을 한번 써볼까? 디지털 카메라를 배워볼까?’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이것이 내 삶이고, 바꾸고 싶을 만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 필름 작업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을 고집하는 것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고집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자 일부이다. 다른 것, 새로운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패션을 제외하고는….

▼ 프리랜서가 되거나 책을 내면 꽤 많은 수익을 얻었을 텐데 고집스럽게 〈뉴욕타임스〉 소속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더 무엇을 바라야 하나?

▼ 거리 사진을 촬영하면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나는 패션을 사랑한다. 이 일을 하면서 내 방식으로 패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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