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월넛과 베이지 컬러를 톤온톤으로 믹스 매치한 거실.
영화 ‘카모메 식당’이 연상되는 짙은 우드 톤과 편안한 무드가 인상적인 이곳은 결혼한 지 3년 차 된 서현준 · 김하진 부부의 첫 번째 보금자리다. 약 81㎡(24평)의 공간은 부부를 위한 신혼집이지만 반려묘 구름이의 집이기도 하다. “남편과 저는 흔히 말하는 집돌이, 집순이예요. 집에 머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죠. 저희가 꿈꾸는 이상적인 집의 모습은 가족 개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녹여낸 공간이에요.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의 취향대로 공간을 설계하되, 가족의 일원인 고양이도 편안하게 느낄 만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컬러를 쌓듯 톤에 조금씩 변화를 줘 답답해 보이지 않게 연출한 주방. 부부가 모두 요리를 즐기지 않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세라믹 싱크볼을 설치했다.
내부 구조보단 살기 좋은 위치에 끌려 결정했다는 부부의 집은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은 구축 아파트다. 거실과 주방, 2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은 적은 수납공간과 효율이 떨어지는 공간 구성. “저희는 두 식구지만 짐이 많은 편이에요. 짐은 많은데 절대적인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수납공간 확보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죠. 물론 벽을 따라 붙박이장을 설치하거나 수납장을 쪼르르 놓으면 쉽게 해결될 일이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좀 다르게 수납공간을 만들려다 보니 그 덕에 아이디얼한 공간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아요.”
반려묘 구름이만을 위한 캣 도어. 타공 크기는 일반적으로 폭 15~20cm, 높이는 고양이의 키보다 조금 높은 25~30cm가 적당하다.
서현준 · 김하진 부부의 수납 아이디어는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발장과 주방 옆 다용도실을 연결해 데드 스페이스가 될 수밖에 없는 1평 공간까지 야무지게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침실 옆에 슬라이딩 도어를 접목한 가벽을 설치해 별도의 드레스 룸을 만들기도 했다. 소박한 레트로 감성의 공간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짙은 월넛, 베이지 등 따뜻한 컬러를 사용해 소박하면서도 감성적인 무드를 완성한 것. “많은 분이 좁은 집은 화이트 등 환한 컬러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컬러와 조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넓어 보이는 것은 물론 집주인의 취향까지 온전히 표현할 수 있죠. 서현준 · 김하진 부부 집의 경우 바닥과 가구를 진한 색으로 통일하고 벽은 밝은 컬러를 사용했는데, 그 덕에 집 안에 공간감이 생기고 부부가 원하는 아늑한 느낌까지 더할 수 있었어요.” 시공을 맡은 스튜디오 에디 이지연 실장의 조언이다.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녹여낸 집
취침과 기상 시간이 각각 다른 부부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트윈 침대. 침대머리가 닿는 벽면을 짙은 우드로 마감해 벽 자체가 헤드 역할을 할 수 있게 디자인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
서현준 · 김하진 부부의 집은 말 그대로 부부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공간이다. 집을 보고 있노라면 부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집주인의 생활 패턴까지 짐작할 수 있다. “저희 부부는 취침 시간, 기상 시간 등 생활 패턴은 물론이고 선호하는 실내 온도, 조도 등 취향도 사뭇 달라요. 좋아하는 마음과 생활 속 불편함은 다른 문제잖아요. 가족 모두가 편안한 집이 될 수 있도록 서로의 취향과 생활 패턴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내부를 재구성했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침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침대를 트윈으로 분리하고, 침대마다 벽등과 스위치를 각각 설치해 개별적으로 점등, 소등할 수 있게 한 것. 침실에 가벽을 세워 별도의 드레스 룸을 만든 것도 수납 역할 외에 서로의 수면 시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저희는 맞벌이 부부예요. 남편은 새벽에 일어나 운동 후 출근하는 것이 하루 루틴이고, 자율 근무를 하는 저는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에요. 저는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늦은 편이거든요. 새벽부터 일과를 시작하는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요. 한 침대를 쓰면 상대방이 들고 날 때 서로의 숙면에 방해가 될 테니 2개의 침대를 놓기로 했죠. 취침과 출근 준비 등으로도 불빛과 소음이 발생하니 가벽을 설치해 파우더 룸 역할까지 하는 별도의 드레스 룸을 만들었고요.”
침실에 만든 미니 드레스 룸. 벽체를 모두 활짝 열 수 있는 슬라이딩 도어로 구성해 개방감을 살렸다.
반려묘 구름이를 배려한 디자인도 눈에 띈다. 창밖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고양이가 바깥세상을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창문 옆에 캣 타워를 둔 것은 물론, 방문마다 고양이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전용 캣 도어를 설치한 것. “시작은 고양이 화장실이었어요. 화장실 크기가 작지 않고, 냄새도 꽤 나거든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 놓고 싶은데, 구름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오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 장소를 꽤 오래 고민했죠.” 생각 끝에 고양이 화장실 장소로 낙점된 곳은 주방 옆 다용도실. 주방의 조리대와 다용도실 벽 하단에 고양이가 편안하게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로 구멍을 뚫어 캣 도어를 만들었는데, 걱정과 달리 구름이가 금세 적응했고 집사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고.
좁은 집의 편견을 깬 레트로 하우스
집 안에서 유일하게 컬러가 있는 공간인 부부 서재. 다운된 민트 컬러를 활용해 레트로 무드의 집 안 전체 분위기와 동떨어지지 않는다.
좁은 집은 무조건 ‘화이트’라는 공식을 깨고 부부는 과감하게 짙은 월넛 컬러를 주조색으로 결정했다. “시각적으로 따뜻한 집이었으면 했어요. 진한 우드가 주는 따뜻한 느낌을 평소 좋아했기에 붉은 기가 돌지 않는 짙은 월넛을 저희 집의 메인 컬러로 정했죠.”
방문과 통일감 있게 제작한 중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조상 방과 욕실 문이 나란히 위치하는데, 짙은 컬러의 문이 바로 붙어 있으니 시각적으로 답답하고 어두워 보인 것.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지연 실장이 제시한 것이 바로 ‘모루 유리’다. “모루 유리는 내부가 은은하게 비치는 유리로, 방문에 모루 유리를 넣으면 방 안의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시각적으로 답답해 보이는 것도 해소되고요.”
신발장 문을 열면 주방 옆 창고 겸 다용도실로 연결된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공간에도 길게 신발장을 짜 넣어 수납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그 아래 살짝 보이는 구멍은 구름이가 화장실에 가는 통로.
주방에 쓰인 우드 컬러도 주목할 만하다. 한 가지 컬러가 아닌, 컬러를 쌓듯 톤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는데 그 덕에 공간이 더 아늑하고 넓어 보인다. 시인 랭스턴 휴스는 “집은 일상에 뿌리내리는 나무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배려와 사랑으로 건강한 뿌리가 내린 이곳에서 부부의 앞날이 더욱 푸르고 튼튼하게 커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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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제공 스튜디오 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