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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상처 없이 누구나 공감하는 콘텐츠가 핵심”

문영훈 기자

2024. 09. 10

미디어 속에서 MZ 세대는 자기 주장은 강하지만 참을성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MZ 인류학자’로 불리는 김소정 PD가 직접 빚은 수많은 캐릭터들은 실체 없는 MZ 담론을 무찌른다. 동시대인의 열혈한 지지를 받아 ‘사내뷰공업’이 100만 유튜브 채널이 된 이유다.

“시켜줘, 명예 인류학자”

10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사내뷰공업의 유튜브 소개 멘트다. 사내뷰공업 유니버스에는 어디서 본 듯한,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산다. 사차원인 척하기를 좋아하는 ‘김민지’, 이과 전교 1등 ‘김혜진’, 자타 공인 오타쿠인 ‘황한솔’ 등이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다. 시공간을 건너뛰어 이들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김혜진이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해 자취 생활을 하는 모습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다. 일본 오사카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김아리’도 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사내뷰공업 채널은 수많은 ‘인급동’ 순위 영상을 만들어내며 성장해왔다.

파괴연구소 소속 김소정(28) PD는 이 모든 세계의 창조자이자 연기자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카메라 앞에서 뚝딱 연기한다. 일주일에 세 번 숏폼 영상을 업로드하고 주기적으로 롱폼 콘텐츠를 만들어온 덕택에 채널 개설 2년 만에 골드 버튼을 획득했다. 유튜브 세계를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진출했다. 지난해 12월 100만 구독자 보유 기념으로 연예인들이 주로 하는 이벤트 카페를 열었으며, 7월에는 황은정의 이야기를 모은 ‘다큐 황은정 : 스마트폰이 뭐길래’가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날로 확장하는 사내뷰공업 유니버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김 PD를 파괴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눈에 띈 것은 김 PD의 변신을 위한 다양한 의상과 소품, 지금까지 받아온 트로피와 골드 버튼이었다. 100만 유튜버지만 촬영은 단출하게 진행된다. 회의실에 크로마키 배경을 깔고 휙휙 찍고는 직접 편집도 한다.

‘투투’ 챙기는 황은정의 탄생

일터가 자유로워 보이네요. ‘파괴연구소’가 뭘 하는 회사인지 궁금했습니다.
크게는 콘텐츠 회사입니다. 메인 업무는 광고 대행이고요. 회사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사내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팀이 있어요. 저는 거기 속해 있는 거죠.


처음에 뷰티팀 PD로 입사했던데요.
처음엔 뷰티 필름을 찍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오리지널 콘텐츠 만드는 일이 메인이 됐죠.


사내뷰공업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인스타그램 릴스로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SNS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숏폼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제일 쉬운 방식은 제가 직접 출연하는 거였죠. 숏폼은 틱톡이 주류이던 시절이었는데 대부분 메이크오버 영상이나 댄스 챌린지였어요. 저도 갈피를 못 잡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다가 우연히 크로마키 앞에서 알바 경험을 살려 스토리텔링 연기를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콘셉트를 굳혔습니다.


서브웨이를 비롯해 카페, 놀이공원 등 김 PD의 대학 시절 실제 아르바이트 경험을 담은 ‘우당탕탕 알바 공감’은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에 올랐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한다. 2022년 1월 업로드된 ‘올리브영 알바생’ 영상은 인급동 1위에도 오른다. ‘다큐 황은정‘을 시작으로 롱폼 콘텐츠에도 도전한다. 황은정은 2010년 부산에 사는 여자 중학생 캐릭터로 ‘얼짱’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간 부담스러운 서클 렌즈를 끼고 길이를 줄인 교복 치마를 입고 학교에 다닌다. 또 엄마 몰래 부엌에서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고기만 골라 먹는다. 이들 영상은 ‘투투(애인과의 22일 기념일)’, 두발 검사, 노스페이스 패딩, 사이언 롤리팝 핸드폰 등 2000~201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큰 화제를 모았다.


숏폼에서 롱폼으로 영상 포맷을 확장했습니다.
숏폼 영상으로 구독자가 모이긴 했지만 한 방이 필요했어요. 10만 유튜버는 비교적 할 수 있는 목표지만 100만은 또 다른 영역이거든요. 그래서 시작한 게 ‘다큐 황은정’ 시리즈입니다. 숏폼과 달리 ‘다큐 황은정’을 제작할 때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확실히 품을 들여서 영상을 만드니까 반응이 확 오더라고요.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게 보일 정도였어요.


7월에는 ‘다큐 황은정’ 시리즈 중 하나가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2년 9개월 정도 지났는데 항상 온라인 세상에서 활동하다 보니 팬들을 직접 만날 일은 없었어요. 영화가 개봉하고 무대 인사를 20번 넘게 했는데 팬들을 보니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부산에서 상영할 땐 부모님도 오셨는데, 관객들로 극장이 꽉 찬 상황에서 가운데 앉아 계신 부모님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평소에 뭐 하고 지내는지 정확히 모르셨던 부모님도 뿌듯해하셨고요.


현장성이 살아 있던데 부산에서 촬영했나요.
1편은 서울에서 찍었고 극장 개봉한 버전을 찍을 땐 직접 부산에 갔어요. 서울에서 촬영할 때도 아파트가 산 중턱에 있는 부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산 위에 있는 아파트를 찾아갔어요.


황은정의 어머니를 연기한 황경아 배우의 연기가 탁월하던데요.
배우 공고를 올릴 때 40대 여성이고 부산 사투리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어요. 사투리 연기하는 걸 꼭 보내달라고 했죠. 경아 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엄마가 떠올랐어요. 경아 님이 실제로 경남 양산에 사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만나 뵙지도 않고 바로 결정했습니다.

미소가 지어지는 캐릭터 열전

2023년 12월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은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했다. 아래는 ‘사내뷰공업’ 캐릭터 중 하나인 황은정이 출연한 ‘다큐 황은정’.

2023년 12월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은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했다. 아래는 ‘사내뷰공업’ 캐릭터 중 하나인 황은정이 출연한 ‘다큐 황은정’.

은정이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처음엔 경험에 기반해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나온 캐릭터는 제가 작가가 됐다고 생각하고 창조합니다. 황은정, 김혜진(상경한 대학생), 김아리(워홀러) 경우는 제 경험이 반영된 캐릭터라면 나혜영(자기애 빌런)이나 황한솔(오타쿠)은 허구에서 출발했죠.


캐릭터를 만들 때 다양한 디테일을 미리 설정해둔다고요.
가족 관계와 친구 관계,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인생 영화, 취미, MBTI 같은 다양한 설정을 미리 정해둡니다.


어떤 캐릭터에 제일 애착이 가나요.
아무래도 황은정이죠. 사내뷰공업 채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줬고 광고를 찍기도 했고요.


황은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처음엔 학교에 있는 일진 언니들을 모티프로 삼아서 가볍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특징이 명확했거든요. 화장으로 새하얀 얼굴과 서클 렌즈 같은 걸 끼고 돈을 뜯는 거죠. 그러다 보니 보시기에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일진’의 정체성을 좀 덜어내고 얼짱이 되고 싶은 사춘기 딸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증을 갖고 은정이를 봐주시더라고요.


“상처 주지 않는 콘텐츠를 지향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조롱하지 않아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상을 보는 사람 중에 불쾌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유머 콘텐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타인에 대한 비하가 들어가면 박장대소가 나오기 쉽거든요. 그런 터지는 웃음은 없지만 은은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싶어요. 엄청 웃기진 않아도 기분 좋은 콘텐츠로 얇고 길게 가고 싶습니다.


서울에 상경해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신입생, 김혜진 캐릭터도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혜진 영상에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았어요. 많은 대학생이 사는 원룸은 상 하나만 펴도 방이 꽉 차고 햇빛은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죠. 김혜진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요. 그걸 보고 많은 분이 댓글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주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요.
저와 비슷한 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이 20대 초반에게 해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자신도 비슷한 방에서 살았고 우울했다고 하면서, 그때는 힘든 순간을 겪는 일이 많다고 하셨어요. 나만 그렇다고 생각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자는 내용이었는데, ‘다큐 김혜진’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말이었거든요. 저도 20대 초반에는 우울한 시기를 보냈어요. 사람들이 제가 만든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응원도 해주는 걸 보며 뿌듯했습니다.


우울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돈도 없었지만, 오히려 가능성이 많아서 불안했던 것 같아요. 지금 뭘 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방에 누워서도 지금 시간에 알바를 하거나, 인턴을 하거나, 워킹홀리데이를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많은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걸 해봐야 하나’ 생각했어요. 계속 불안했던 거죠.



댓글로 경험 나눌 수 있으면 대성공

대학 때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불안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학생 때는 남들 하는 거 다 해봐야 하는 성격이었어요.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살기도 하고, 동아리도 하고, 워킹홀리데이도 가보고 대학생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다 보니 ‘썰’이 많이 생겼어요. 돈을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우당탕탕 알바 공감’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는 뭔가요.
역시 서브웨이죠. 2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오픈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출근하면 그날 팔릴 빵을 계산해서 생지를 구워야 하거든요. 그런 과정이 타이쿤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재밌었습니다. 재료를 고르는 손님들과 계속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저와 잘 맞았고요.


대학생 때의 꿈이 PD였나요.
어릴 때부터 기자가 꿈이어서 다른 직업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언론 준비반에 들어갔는데 주변에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포기했습니다. 글을 써보니까 아니다 싶어서 바꾼 거죠. 그래서 ‘다큐 김혜진’을 보고 사람들 반응이 왔을 때 즐거웠습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기자를 꿈꾼 건데 영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PD는 ‘갈아 넣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 루틴이 궁금합니다.
회사가 자율출근제라 오전 8시에서 11시 사이에 나오면 됩니다. 저는 8시에 출근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거든요. 퇴근 후엔 저녁 먹고 운동하러 갔다가 10시에 자요. 거의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죠. 입사 후 야근했던 경험은 거의 손에 꼽히는 것 같아요. 주로 숏폼을 다루기도 하고 촬영과 편집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거든요. 쉴 때는 웹툰이나 책을 읽어요. 오히려 유튜브는 잘 안 봐요. 저는 유튜브를 보면 일의 연장 같아요. 재밌는 영상을 보면 불안해지더라고요.


트렌드를 어디서 캐치하나요.
사실 트렌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태된다면 그게 또 저의 운명이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쇼츠를 만들 때도 아침까지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하철에서 막 아이디어를 짜서 찍고는 합니다. 다만 일주일에 3개의 쇼츠를 만드는 원칙은 지켜요. 정말 국가적 재난이 있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무조건 월, 수, 금에 업로드하고요. 장편 다큐는 비정기적이지만 한 달에 2~3개는 발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성실함이네요.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저는 최대한 일을 미루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서 쇼츠도 항상 당일에 만듭니다. 다만 롱폼을 만들 때는 팀과 일해야 하고 그런 습관이 피해를 주니까 최대한 노력하죠.


생각보다 흐르는 대로 사는군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어떻게든 되겠지, 대충하는 마인드고요. 그냥 일단은 시작해보는 거죠. 그래서 시나리오도 금방금방 씁니다.


그럼에도 콘텐츠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댓글이 많이 달릴 수 있을 만한 소재를 고릅니다. 싸움이 날 이야기는 아니고요. 사람들이 댓글로 썰을 풀 만한 이야기인가를 생각합니다. 숏폼이나 롱폼이나 마찬가집니다. 저는 댓글창이 자신의 경험을 풀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잘될수록 제 기준엔 성공한 콘텐츠고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요.
그동안 학창 시절 이야기나 대학생 때 이야기를 많이 다뤄서 이제 직장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거든요. 그럼 그게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애 주기에 따라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상을 콘텐츠화하는 게 피곤할 때도 있나요.
콘텐츠는 가공된 삶이라 실제와는 다르죠. 그래서 저는 브이로그는 안 해요.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긴 한데 스토리도 자주 올리는 편이 아니고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올 것 같습니다.
제안을 받은 적도 있는데,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뭔가에 엄청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지금 삶이 되게 만족스러워요. 회사에서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감사하고요. 혼자 콘텐츠를 만들면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암흑의 20대를 보냈어요. 그때는 저만 그렇게 사는 줄 알았던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그 시기는 너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누구나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새로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자신도 모르게 더 괜찮은 사람이 돼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사내뷰공업 #김소정 #황은정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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