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 한쪽 벽에 큰 책장과 모듈형 패브릭 소파를 놓아 내추럴한 북 카페 분위기가 나는 거실. 일반적인 일자형 소파가 아닌 모듈형 소파를 놓으면 기분에 따라 구조를 바꿀 수도 있어 효과적이다.
지난겨울 곽경주·정유선 부부는 살던 집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거주하는 아파트의 재건축 이야기가 한창 나오던 시점이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살면서 느낀 불편한 점을 보완하고, 가족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집으로 새 단장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7년 전, 첫아이를 임신하고 이 집으로 이사했어요. 저희 부부의 두 번째 집이자 첫 ‘내 집’이었죠. 이 아파트가 1995년에 지어졌거든요. 손을 대자면 끝도 없을 만큼 오래됐지만, 당시엔 크게 욕심을 내진 않았어요. 집 안 대부분을 그대로 두고, 페인트를 직접 칠하는 등 깔끔하게 정리만 하는 선에서 전체 공사를 마무리했죠.” 드문드문 들던 리모델링에 대한 생각은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며 부쩍 커졌다. 곰팡이 등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위생 문제도 집수리 결심을 부추겼다. “리모델링 없이 입주한 터라 사는 내내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좋은 점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집에서 뭘 해도 쉽게 예민해지지 않더라고요(웃음). 집을 잘 고치고 입주했다면 혹시 가구를 더럽히진 않을까, 벽에 낙서를 하진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들 행동에 좀 더 예민하게 굴었을 것 같아요. 올해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아이들이 제법 컸고, 이제 수리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꿈꿔온 이상적인 집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어디에 있든 가족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오픈형으로 디자인한 거실과 주방.
살던 집을 고치는 거라 변화에 대한 니즈는 명확했다. 첫째, 유행을 따르지 않는 디자인일 것. 둘째, 획일화된 집의 모습이 아닌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날 수 있는 무색의 공간일 것. 셋째, 1층 아파트의 장점인 창밖 조경을 최대한 살릴 것이었다. 명확한 니즈는 시공업체를 고르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제가 미술 전공자이기도 하고, 구현하고 싶은 집의 모습도 명확하기에 턴키 업체가 아닌 장판과 타일, 도배 등 각각의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해 수리를 진행하려고 했어요. 이렇게 하면 예산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생각과 달리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턴키로 진행해줄 시공 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죠. 업체를 선정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디자인이었어요. 천편일률적으로 유행을 따르기보다 업체만의 개성 있는 레퍼런스가 많은 곳, 그리고 집과 멀지 않은 위치에 사무실이 있는 곳 등 몇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업체를 엄선해 최종 선택했죠.”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집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하게 연출한 오픈 주방과 다이닝 룸. 상부 장 대신 스테인리스 소재의 선반을 설치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곽경주·정유선 부부의 집은 거실 창밖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볼 수 있는 아파트 1층이다.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조경. 여름이면 초록 잎이 드리우고 겨울이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잔잔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부부에게는 최고의 집이다. 아쉬운 점은 1층이라 다소 어두운 편이라는 것. 이러한 집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부부는 조명에 대해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조도에 대한 취향은 남편과 조금 갈렸어요. 낮은 조도가 일반적인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한 남편은 차분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간접 조명을 선호했어요. 반면 저는 ‘집이란 자고로 밝아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이에 누구 하나 아쉽지 않도록 회로를 여러 개로 분리해 상황에 맞춰 조명을 선택할 수 있게 했죠. 예를 들어 가족 모두가 함께 있는 저녁 시간에는 밝은 백색 등을 켜고, 남편 혼자 거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에는 황색 간접 등만 켜는 식으로요. 스위치가 많아졌지만, 상황에 따라 조도를 고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매우 높아요.”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 뒤로 수납장을 짜 넣었다. 시야에서 가려지는 부분이라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모두 숨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아직 어린 두 자녀를 둔 이들 부부에게는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중요했다. 가족이 모이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거실과 주방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이 한 공간에 모여 지내요. 때문에 가족 공간만큼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 획일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거실 소파를 여러 모양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모듈형 제품으로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이들 가족은 거실을 최대한 미니멀하게 구성했다. 주방 역시 심플하게 구성하되 요리할 때도 거실에 있는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오픈 주방으로 시공했다. “소파와 책장 정도를 제외하고 가구를 최소화한 덕에 거실에도 각자의 구역을 만들 수 있었어요. 큰아이는 곤충과 파충류 등을 좋아해 도마뱀, 가재, 누에고치 등을 키우거든요. 한쪽에 그것들을 모아두었는데, 그곳이 곧 큰아이 구역이 됐죠. 관찰하면서 매일의 변화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해줘요.”
아이디어 넘치는 공간 구성
아이들이 좋아하는 컬러의 패턴 벽지로 마감한 방. 꽃과 나무, 새 등 자연물로 이루어진 패턴인데, 아이들이 패턴 하나하나를 짚으며 이야기 만드는 것을 즐긴다고.
곽경주·정유선 부부 집에 들어서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현관에 발을 내딛자마자 만나게 되는 2개의 중문 때문이다. “아내분이 집에서 미술치료 클래스를 운영 중이에요. 외부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만큼 집 안을 거치지 않고 클래스 룸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 변경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죠.” 인테리어 시공업체 아삼육프로젝트 권유경 실장의 설명이다. 권 실장은 한 지붕 아래 가족의 생활 공간과 구별되는 별도의 수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기존 중문의 위치를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가장 바깥에 자리한 방에 현관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문을 냈다. 이러한 변화로 가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으면서 동시에 별도의 공간을 갖추게 됐다.
벽돌 색상의 젤 타일을 사용해 빈티지한 무드를 만들어낸 욕실.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주방에서 찾을 수 있다. 페트(PET) 필름으로 마감한 하부 장 디테일이 그것. 단순한 디테일 장식만을 더했을 뿐인데 자칫 밋밋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우드 아이템들 사이에 중간중간 양념처럼 활용한 스테인리스 선반도 신의 한 수!
곽경주·정유선 부부는 자신들의 취향대로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유행하는 스타일과 상관없이 가장 그들다운 모습을 지닌 집을 완성했다. 다섯 살 아이의 취향까지 헤아려 가족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배려한 부부의 집은 구성원 모두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 더 멋스럽다.
벽돌색 타일과 블랙 중문의 디테일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관과 중문(왼쪽). 구조 변경을 통해 집 안을 통과하지 않고도 출입할 수 있게 한 클래스 룸. 홈 클래스를 운영한다면 참고할 만한 좋은 리모델링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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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은초롱 기자사진제공 아삼육프로젝트(A36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