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이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 ‘미래의 범죄들’.
영화 ‘티탄’을 본 뒤 남긴 배우 강동원의 한 줄 평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동차에 성적 쾌감을 느끼고 결국 기계를 잉태하는 설정의 이 영화에 칸영화제는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하지만 영화에서 몸과 기계와의 접합은 아주 새로운 영역은 아니다.
‘미래의 범죄들’을 만든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이단아 소리를 듣는다. 그가 만든 작품에 대한 논쟁이 정점에 달한 것은 영화 ‘크래쉬’가 발표된 세기 말. 전위적인 영화를 사랑하는 칸영화제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자동차에 희열을 느끼고 교통사고에 흥분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룬 이 영화는 한국에서 2차례 수입 불가 판정을 받아 개봉이 미뤄졌고 결국 몇 장면이 삭제된 채 극장에 걸렸다. 지금은 사라진 한국공연윤리위원회는 “인간의 이상심리와 잔혹성을 묘사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잔인한 영상에 중독돼 몸과 매체가 하나가 되는 ‘비디오드롬’(1983), 파리 유전자가 이식돼 점차 몸이 변형되는 소재를 다룬 ‘플라이’(1986) 등 크로넨버그는 다양한 몸 해체 쇼를 진행해왔다. 이들 영화는 공포의 하위 장르인 ‘보디 호러(body horror)’로 묶인다. 신체를 기괴하게 변형해 공포를 주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2005)와 ‘이스턴 프라미스’(2007)‘ ’코스모폴리스‘(2012) 등 보디 호러에서는 벗어났지만 주제 의식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23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미래의 범죄들‘(2022)로 보디 호러 장르의 진수를 선물한다.
고통이 사라진 미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장기는 인체를 재조합하는 바디 호러다.
흥미로운 설정은 진화 혹은 퇴화로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방어 기제인 고통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쾌락을 느끼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서로의 육체를 찌르는 것으로 쾌락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울과 카프리스의 퍼포먼스도 예술적 목적과 함께 일종의 쾌락이 동반되는 셈이다. NVU 소속 팀린은 사울의 퍼포먼스를 보고 “수술은 새로운 섹스”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변이가 적어도 유기체 단계에서 그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합성 물질인 플라스틱을 체내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랭을 중심으로 규합하기 시작해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노회한 사울은 자신의 수술 퍼포먼스를 이용하기를 원하는 이 세력의 제안을 두고 갈등한다.
앞서 경고했던 대로 ‘미래의 범죄들’은 시각적 충격을 동반한다. 배가 갈라지고 장기가 튀어나온다. 고통 없이 신체 접합이 가능한 세계에서 장기는 이곳저곳에 접합하며 배에 지퍼가 달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시각을 넘어 윤리적으로도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영화 초반부부터 아동 살해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그 아이의 몸은 결국 해체된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만한 소재를 다루지만, 크로넨버그가 그저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감독으로만 불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끔찍함만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쪽에 가깝다. 앞서 소개한 ‘비디오드롬’에서 몸에 비디오가 들어가고 TV를 가르면 장기가 튀어나오는 가학성은 스너프 필름이나 포르노같이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된 인간의 모습을 다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20년 뒤가 이런 세상일까
‘미래의 범죄들’에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 비고 모텐슨
스스로를 예술가로 정의하는 사울은 일상생활 전반에서 고통을 느낀다. 음식물을 씹고 소화시키는 자연스러운 일에도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암 덩어리나 다름없다. 꺼내진 장기가 예술 작품이라면 자기 내면의 고통을 창작물로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이미지가 곧장 떠오른다.
예술의 발전 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원하는 ‘합성 물질 인간’들은 사울을 비롯한 인물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새로운 존재를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했다.
잔인한 신체 해부가 예술에 대한 비유라면, 예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온 다수의 영화가 “시대를 앞서 나온 작품”이라는 평이 뒤따른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영상 중독에 대해 다뤘던 ‘비디오드롬’은 손에 하나씩 스크린이 쥐어진 20년 뒤 더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도래하자 2011년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컨테이젼’이 ‘끌올’ 됐듯 ‘미래의 범죄들’ 역시 미래의 한 시점에 소환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여나 ‘미래의 범죄들’을 보고 크로넨버그의 취향을 감당할 수 있다면, 혹은 그의 취향이 더 궁금해졌다면 추천하고 싶은 글이 있다. 영국영화협회(BFI)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영화에 다가가고자 하는 비정상적(?)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해 ‘크로넨버그 영화에 입문하는 법’이라는 친절한 글을 작성해뒀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크로넨버그를 시작하기 좋은 작품으로는 ‘플라이’가, 시작하지 말아야 할 영화로는 ‘비디오드롬’이 꼽혔다.
잔인하면서 젠체까지 하는 영화에 대해 두드러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해석이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캐나다 국영방송국 CBC 기자는 크로넨버그에게 “관객들이 당신의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하길 바라냐? 솔직히 ‘미래의 범죄들’을 보며 내가 느끼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크로넨버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정확한 반응”이라며 “나는 내 생각과 이미지를 서사를 통해 보여주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뿐”이라고 답했다. 어떤 반응도 괜찮으니, 못 보던 걸 보고 싶다면 도전해보자.
‘미래의 범죄들’ 포스터.
사진제공 누리픽쳐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