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스터리하다. 80억 인구가 매년 옷 800억 벌을 구매한다. 옷장이 미어터지도록 옷을 사고도 입을 옷이 없어서, 싸서, 예뻐서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여전히 옷을 산다.
그런데 한창 꾸미기 좋아할 20대의 절반 동안 옷을 사지 않은 놀라운 자제력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특기’를 살려 직업마저도 중고거래장터 ‘당근’ 콘텐츠 에디터를 택한 이소연(29) 씨다. 그가 새 옷을 사지 않게 된 시기는 지난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인턴십에 선발돼 미국 워싱턴DC에서 생활하던 때다.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하곤 있었지만, 퇴근길 쇼핑센터의 80% 할인 매대를 지나치지 못했던 평범한 20대 이소연 씨는 우연히 발견한 1.5달러짜리 패딩 점퍼에서 의문을 갖게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옷이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어떻게 한국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펴낸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다짐과도 같은 책 제목처럼 이 씨는 5년째 나눔 또는 교환, 중고거래로 옷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엄마의 20여 년 된 블라우스와 30년 된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그날 오전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고 왔다는 그는 “옷을 사지 말라고 하면 전국의 옷 가게 사장님들로부터 ‘그럼 우리는 문을 닫으라는 거냐’는 항의 문자가 오더라”며 “옷을 사는 게 잘못됐단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집었다.
1.5달러짜리 패딩 점퍼가 꽤 충격적이었나 봐요. 어떻게 옷을 안 살 생각을 했죠.
평소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갖고 다니고 비건에도 도전해볼 만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산 수많은 옷이 생태계 파괴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었어요. 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유행과 소비 주기에 맞추려면 가격이 저렴해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 부담이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단 사실을 알고 나니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사 입는 게 별로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재활용 연구를 했고 해양환경 단체 ‘시셰퍼드 코리아’에서 활동도 하고 있는데, 옷을 사지 않으면 환경을 지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패스트패션 시장 규모와 비례해 섬유 쓰레기가 늘고 있어요. 2030년쯤이면 전 세계에 버려지는 직물의 총량이 연간 1억3400만 톤을 넘어설 전망이나 여전히 처리가 문제예요. 현재 우리가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의 95%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고 있어요.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푸란, 납 등 독성물질이 방출됩니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 따르면 합성섬유 옷은 만들 때도 많은 탄소를 배출할뿐더러 자연적으로 분해되기까지 수십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 재활용도 쉽지 않다. 전 세계 의류 소재의 재활용 비율은 12% 정도다. 혼합된 소재를 하나하나 분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패스트패션에 장점도 있다고 봅니다. 자라나 H&M은 사이즈의 폭이 넓고 가격도 저렴하잖아요.
패스트패션 브랜드 덕분에 다른 옷 가격도 덩달아 싸졌죠. 제가 책을 준비하며 인터뷰했던 한 디자이너가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럭셔리 브랜드마다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고를 소각하는 등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있는데 굳이 1만 원짜리 티셔츠 사는 재미를 뺏어야겠느냐”고요. 저도 쇼핑의 재미는 인정하지만 그 옷을 구매해서 우리가 진짜로 행복해졌느냐를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저 역시 옷장은 꽉 찼는데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괜히 초라해지기도 했어요. 옷을 사는 기쁨은 찰나란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쇼핑하지 않아 생긴 시간과 여윳돈으로 다이빙을 해요. 옷은 사는 걸로 끝이지만 다이빙은 할수록 궁금한 게 계속 생겼어요.
그건 사는 사람 입장이고, 거대한 패션산업 아래 생계가 달린 사람들이 있는데요.
맞아요. 제 친구 중에도 옷 가게 사장님이 있어요. 저는 패션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게 아니에요. 지금의 패스트패션 산업 구조에서는 업체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납품할수록 돈을 벌겠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옷 가게 사장님들의 경우 재고를 떠안게 되고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쉼 없이 일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의 구조를 벗어나 폐자원을 활용한 옷을 만든다거나 폐섬유를 이용해 또 다른 섬유를 만드는 등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긴다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일자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죠.
옷 만드는 사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970〜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미싱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일감이 넘어가면서 우리는 옷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게 된 거예요. 지금 제 옷의 이런 마무리 부분을 보면 사람이 손으로 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에요. 그럼 이걸 누가 하느냐, 바로 개발도상국의 여성 노동자나 학교 갈 나이의 아이들이 하고 있어요. 값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공장 붕괴 사건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국가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이다. 나라 전체에 의류 공장이 최소 4500개가 있고 여기 고용된 사람은 최소 360만 명이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외곽의 라나 플라자 건물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사상자 대부분은 망고, 프라이마크, 베네통, 월마트 등에 보낼 옷의 마감 일정을 맞추느라 미싱을 멈추지 못했다.
이소연 씨는 “라나 플라자 사고 즈음 대학교 새내기로 친구들과 툭하면 쇼핑할 때였다. 나중에 사건을 알게 되고 내가 사던 옷들이 또래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니까 이걸 멋이라고 입고 다닌 나한테 화가 나더라”며 “이런 사실을 몰라서 그렇지 제작 및 유통 과정을 알게 된다면 옷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클릭 몇 번으로 전 세계 옷을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 제로 웨이스트 의생활을 실천하려면 번거로운 건 사실이잖아요. 단순히 지구에 대한 사명감만으로는 할 수 없겠는데요.
맞아요! 처음에는 좀 고통스러웠어요. 길에 싸고 예쁜 옷이 많으니까 안 사면 제 손해 같고, ‘사람들은 양손에 가득 사 가는데 나만 혼자 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옷을 사지 않고도 예쁘게 입는 기쁨을 한 번만 느끼면 계속하게 될 거예요. 회사 동료들과도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탕비실에서 각자 옷을 가져와 일종의 아나바다운동을 해보았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교환이나 나눔을 통해 가져온 옷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책임감이 생겨요. 옷에 스토리가 생기는 거죠.
오늘 입고 온 옷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학교 앞에 옷 가게가 있었어요. 엄마가 학교에 올 일이 있어서 그때 입으려고 저와 같이 고른 옷이에요. 엄마가 체형이 바뀌면서 옷장에 고이 모셔둔 옷을 이젠 제가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입어요. 엄마 옷장을 공략해보세요. 레트로 그 자체예요. 요새 유행하는 호보백부터 잘만 스타일링하면 예쁠 아이템이 가득한 보물 창고예요. 이런 스토리가 있는 옷을 입고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과 할 얘기도 더 많아지고 재미있어요.
와 진짜 복고네요. 옷을 안 산다고 하면 옷에 관심이 없거나 옷을 잘 입지 못할 거란 선입견이 있는데, 오히려 잘 매치하려면 패션 센스가 더 필요하겠는걸요.
예전에는 전 세계에 있는 물건이 선택지였으니까 실패해도 또 사면 되잖아요. 그런데 옷장 안에서 조합해 입으려면 퍼스널컬러나 체형, 어떤 재질의 옷이 잘 어울리는지 등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2주 동안 OOTD (Outfit Of The Day)를 찍어보는 방법을 추천해요. 저는 착장 이미지보드를 만들어서 그날그날 마음에 들었던 옷과 별로였던 옷을 체크해요. 체크하다 보면 ‘원래 각각 입으면 예쁠 옷인데 조합을 잘못했구나’ ‘나는 상·하의 색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안 예쁘다고 생각하는구나‘ 등을 알아채게 되는 거죠. 옷을 안 산다는 게 멋을 내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나한테 잘 어울리는 진짜 멋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패션지를 본다거나 패션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나요. 아이쇼핑은요.
불필요한 자극은 좀 멀리하려고 해요. 사실 저도 쇼핑 자체를 싫어하진 않거든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쁘고 멋진 대상을 보고 무감각하진 않아요. 백화점 1층 쇼윈도를 지나가면 화려하게 꾸며놓은 오브제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 같기도 하잖아요. 멋있다 감탄하죠. 하지만 뒤이어 ‘뭘로 만든 걸까?’ ‘시즌이 끝나면 다 버려지나? 재사용이 되려나?’ 이런 생각이 바로 들어요. 물론 친구나 가족들과 종종 쇼핑몰을 구경하기도 해요. 꼭 옷을 사러 간다기보단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문화생활 하러 가는 것에 가까운데 저만 안 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잔소리가 툭툭 튀어나오려 하지만 강요보다는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잘 어울리긴 하는데 말이야. 너 지난번에 이거랑 비슷했던 옷이 정말 예뻤는데?” 하는 식으로 소비 억제 요정 역할을 자처하는 거죠.
그러면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제 얘기를 들은 친구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소비를 줄이다 보면 결국 예술이나 문화생활도 다 중단해야 하는 거냐. 전시도 쓰레기가 엄청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요. 물론 이 모든 걸 다 중단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고유의 멋이나 소비, 문화생활의 재미 자체는 당연히 인정하되 만드는 과정을 알아가고 또 조금씩 개선해 가보자 얘기를 해보고 싶은 거예요. 예술이나 문화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잖아요. 지금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서는 문화나 예술을 접근하는 방식도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듣다 보니 제로 웨이스트 의생활의 진짜 힘든 점은 따로 있었네요. ‘왜 그렇게 유별나게 사느냐’ ‘그러다 경제 망한다’ 같은 부정적인 시선이요.
실제로 종종 환경운동에 대해 엄청 극단적인 순수주의의 잣대를 들이밀어서 옷도 사지 말고, 미용실도 가지 말고, 화장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 모든 것을 다 지키는 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저는 오히려 압박과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더 지속 가능하게 모두가 조금씩 실천해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환경문제는 혼자서 100을 해내는 것보다 모두가 1씩 바뀔 때 해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벌 살 걸 한 벌 사는 식으로 바꿔나가자는 거죠.
현실적으로 유행 아이템을 안 사는 게 가능할까요.
유행은 누군가가 철저하게 만들어서 계속 공급하는 거고, 그 공급에 따른 소비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전략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알고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미국 색채 연구소 팬톤이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가 사실은 2년 전에 정해졌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처럼 막 따라잡고 싶어질까요. 많은 분이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를 싫어하잖아요. 식재료를 살 때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고 어디서 만드는지 꼼꼼히 정보를 따지면서 우리 피부에 바로 닿고 개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옷은 왜 잘 알아보질 않나요. 단순히 유행으로 생각해 소비하기에는 누군가 그 안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단 점도 한번 생각해주세요.
상의는 상의끼리, 하의는 하의끼리 눈에 잘 띄게 정리해야 이리저리 매치하며 입어보게 된다. 그러려면 옷장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기념품 같은 옷은 과감하게 옷장에서 꺼내 따로 보관한다. 이소연 씨의 경우 이 기념품들을 집에 지인이 놀러 왔을 때 공개해 가져가고 싶은 옷이 있다면 선물한다.
2. 캡슐 옷장 꾸리기
여행 갈 때 최대한 옷을 적게 챙겨서 다양하게 돌려 입듯 평소에도 이런 개념을 옷장에 적용해 ‘캡슐 옷장’을 꾸려본다. 한 달이나 분기, 반년 단위로 꾸려놓고 그 안에서 스타일링을 시도하는 것이다. 적은 선택지 안에서 많은 조합을 끌어내다 보면 캡슐 옷장 안에서도 잘 안 입는 옷이 나온다. 자신의 취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3. 옷을 최대한 오래 입는 게 가장 친환경적
옷의 케어 라벨에 적힌 재질에 따른 세탁법만 따라줘도 좀 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다. 이소연 씨는 “낮은 온도로 짧은 시간 세탁하는 것만으로도 세탁물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 양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장기간 수납장에 넣어둘 때도 꼭 세탁하고 비닐을 씌우지 않은 채 보관하는 게 좋다. 한편 싸게 산 옷이 망가지면 수선하는 데 돈이 더 든단 생각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옷에 난 구멍을 꿰매며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는 게 바느질의 묘미다. 손재주가 없다면 아름다운가게와 다시입다연구소가 2023년 11월부터 10개월간 진행하는 ‘아름다운X수선혁명 워크숍’이나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치앙마이식 자수 수선 클래스 등에 참여해볼 것.
4. 옷과 옷을 바꾸는 대안 쇼핑
이소연 씨는 “중고거래나 빈티지 숍을 이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을 중고로 찾거나 해외에서 빈티지 의류를 수입해오는 게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왕이면 “나눠 입고 교환해 입는 재미를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다시입다연구소의 옷 교환 행사인 ‘21프로 파티’나 제로 웨이스트 공간 ‘소우주’의 ‘물건 입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옷장에 잠든 옷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패스트패션 #제로웨이스트 #이소연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이소연
그런데 한창 꾸미기 좋아할 20대의 절반 동안 옷을 사지 않은 놀라운 자제력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특기’를 살려 직업마저도 중고거래장터 ‘당근’ 콘텐츠 에디터를 택한 이소연(29) 씨다. 그가 새 옷을 사지 않게 된 시기는 지난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인턴십에 선발돼 미국 워싱턴DC에서 생활하던 때다.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하곤 있었지만, 퇴근길 쇼핑센터의 80% 할인 매대를 지나치지 못했던 평범한 20대 이소연 씨는 우연히 발견한 1.5달러짜리 패딩 점퍼에서 의문을 갖게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옷이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어떻게 한국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펴낸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다짐과도 같은 책 제목처럼 이 씨는 5년째 나눔 또는 교환, 중고거래로 옷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엄마의 20여 년 된 블라우스와 30년 된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그날 오전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고 왔다는 그는 “옷을 사지 말라고 하면 전국의 옷 가게 사장님들로부터 ‘그럼 우리는 문을 닫으라는 거냐’는 항의 문자가 오더라”며 “옷을 사는 게 잘못됐단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집었다.
“옷을 사는 기쁨은 찰나, 그 옷을 사서 과연 행복해졌을까”
엄마의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옛 사진까지 들춰보게 된다. 가죽 재킷을 입은 엄마와 어린시절 이소연 씨(왼쪽).
평소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갖고 다니고 비건에도 도전해볼 만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산 수많은 옷이 생태계 파괴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었어요. 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유행과 소비 주기에 맞추려면 가격이 저렴해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 부담이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단 사실을 알고 나니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사 입는 게 별로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재활용 연구를 했고 해양환경 단체 ‘시셰퍼드 코리아’에서 활동도 하고 있는데, 옷을 사지 않으면 환경을 지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패스트패션 시장 규모와 비례해 섬유 쓰레기가 늘고 있어요. 2030년쯤이면 전 세계에 버려지는 직물의 총량이 연간 1억3400만 톤을 넘어설 전망이나 여전히 처리가 문제예요. 현재 우리가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의 95%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고 있어요.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푸란, 납 등 독성물질이 방출됩니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 따르면 합성섬유 옷은 만들 때도 많은 탄소를 배출할뿐더러 자연적으로 분해되기까지 수십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 재활용도 쉽지 않다. 전 세계 의류 소재의 재활용 비율은 12% 정도다. 혼합된 소재를 하나하나 분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패스트패션에 장점도 있다고 봅니다. 자라나 H&M은 사이즈의 폭이 넓고 가격도 저렴하잖아요.
패스트패션 브랜드 덕분에 다른 옷 가격도 덩달아 싸졌죠. 제가 책을 준비하며 인터뷰했던 한 디자이너가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럭셔리 브랜드마다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고를 소각하는 등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있는데 굳이 1만 원짜리 티셔츠 사는 재미를 뺏어야겠느냐”고요. 저도 쇼핑의 재미는 인정하지만 그 옷을 구매해서 우리가 진짜로 행복해졌느냐를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저 역시 옷장은 꽉 찼는데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괜히 초라해지기도 했어요. 옷을 사는 기쁨은 찰나란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쇼핑하지 않아 생긴 시간과 여윳돈으로 다이빙을 해요. 옷은 사는 걸로 끝이지만 다이빙은 할수록 궁금한 게 계속 생겼어요.
그건 사는 사람 입장이고, 거대한 패션산업 아래 생계가 달린 사람들이 있는데요.
맞아요. 제 친구 중에도 옷 가게 사장님이 있어요. 저는 패션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게 아니에요. 지금의 패스트패션 산업 구조에서는 업체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납품할수록 돈을 벌겠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옷 가게 사장님들의 경우 재고를 떠안게 되고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쉼 없이 일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의 구조를 벗어나 폐자원을 활용한 옷을 만든다거나 폐섬유를 이용해 또 다른 섬유를 만드는 등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긴다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일자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죠.
옷 만드는 사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970〜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미싱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일감이 넘어가면서 우리는 옷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게 된 거예요. 지금 제 옷의 이런 마무리 부분을 보면 사람이 손으로 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에요. 그럼 이걸 누가 하느냐, 바로 개발도상국의 여성 노동자나 학교 갈 나이의 아이들이 하고 있어요. 값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공장 붕괴 사건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국가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이다. 나라 전체에 의류 공장이 최소 4500개가 있고 여기 고용된 사람은 최소 360만 명이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외곽의 라나 플라자 건물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사상자 대부분은 망고, 프라이마크, 베네통, 월마트 등에 보낼 옷의 마감 일정을 맞추느라 미싱을 멈추지 못했다.
이소연 씨는 “라나 플라자 사고 즈음 대학교 새내기로 친구들과 툭하면 쇼핑할 때였다. 나중에 사건을 알게 되고 내가 사던 옷들이 또래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니까 이걸 멋이라고 입고 다닌 나한테 화가 나더라”며 “이런 사실을 몰라서 그렇지 제작 및 유통 과정을 알게 된다면 옷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옷을 안 살수록 스타일이 좋아지는 이유
2주 동안 기록한 OOTD를 SNS에 올려 잘 어울리는 옷 투표를 받아본 적도 있다.
맞아요! 처음에는 좀 고통스러웠어요. 길에 싸고 예쁜 옷이 많으니까 안 사면 제 손해 같고, ‘사람들은 양손에 가득 사 가는데 나만 혼자 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옷을 사지 않고도 예쁘게 입는 기쁨을 한 번만 느끼면 계속하게 될 거예요. 회사 동료들과도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탕비실에서 각자 옷을 가져와 일종의 아나바다운동을 해보았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교환이나 나눔을 통해 가져온 옷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책임감이 생겨요. 옷에 스토리가 생기는 거죠.
오늘 입고 온 옷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학교 앞에 옷 가게가 있었어요. 엄마가 학교에 올 일이 있어서 그때 입으려고 저와 같이 고른 옷이에요. 엄마가 체형이 바뀌면서 옷장에 고이 모셔둔 옷을 이젠 제가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입어요. 엄마 옷장을 공략해보세요. 레트로 그 자체예요. 요새 유행하는 호보백부터 잘만 스타일링하면 예쁠 아이템이 가득한 보물 창고예요. 이런 스토리가 있는 옷을 입고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과 할 얘기도 더 많아지고 재미있어요.
와 진짜 복고네요. 옷을 안 산다고 하면 옷에 관심이 없거나 옷을 잘 입지 못할 거란 선입견이 있는데, 오히려 잘 매치하려면 패션 센스가 더 필요하겠는걸요.
예전에는 전 세계에 있는 물건이 선택지였으니까 실패해도 또 사면 되잖아요. 그런데 옷장 안에서 조합해 입으려면 퍼스널컬러나 체형, 어떤 재질의 옷이 잘 어울리는지 등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2주 동안 OOTD (Outfit Of The Day)를 찍어보는 방법을 추천해요. 저는 착장 이미지보드를 만들어서 그날그날 마음에 들었던 옷과 별로였던 옷을 체크해요. 체크하다 보면 ‘원래 각각 입으면 예쁠 옷인데 조합을 잘못했구나’ ‘나는 상·하의 색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안 예쁘다고 생각하는구나‘ 등을 알아채게 되는 거죠. 옷을 안 산다는 게 멋을 내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나한테 잘 어울리는 진짜 멋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패션지를 본다거나 패션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나요. 아이쇼핑은요.
불필요한 자극은 좀 멀리하려고 해요. 사실 저도 쇼핑 자체를 싫어하진 않거든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쁘고 멋진 대상을 보고 무감각하진 않아요. 백화점 1층 쇼윈도를 지나가면 화려하게 꾸며놓은 오브제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 같기도 하잖아요. 멋있다 감탄하죠. 하지만 뒤이어 ‘뭘로 만든 걸까?’ ‘시즌이 끝나면 다 버려지나? 재사용이 되려나?’ 이런 생각이 바로 들어요. 물론 친구나 가족들과 종종 쇼핑몰을 구경하기도 해요. 꼭 옷을 사러 간다기보단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문화생활 하러 가는 것에 가까운데 저만 안 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잔소리가 툭툭 튀어나오려 하지만 강요보다는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잘 어울리긴 하는데 말이야. 너 지난번에 이거랑 비슷했던 옷이 정말 예뻤는데?” 하는 식으로 소비 억제 요정 역할을 자처하는 거죠.
그러면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제 얘기를 들은 친구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소비를 줄이다 보면 결국 예술이나 문화생활도 다 중단해야 하는 거냐. 전시도 쓰레기가 엄청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요. 물론 이 모든 걸 다 중단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고유의 멋이나 소비, 문화생활의 재미 자체는 당연히 인정하되 만드는 과정을 알아가고 또 조금씩 개선해 가보자 얘기를 해보고 싶은 거예요. 예술이나 문화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잖아요. 지금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서는 문화나 예술을 접근하는 방식도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듣다 보니 제로 웨이스트 의생활의 진짜 힘든 점은 따로 있었네요. ‘왜 그렇게 유별나게 사느냐’ ‘그러다 경제 망한다’ 같은 부정적인 시선이요.
실제로 종종 환경운동에 대해 엄청 극단적인 순수주의의 잣대를 들이밀어서 옷도 사지 말고, 미용실도 가지 말고, 화장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 모든 것을 다 지키는 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저는 오히려 압박과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더 지속 가능하게 모두가 조금씩 실천해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환경문제는 혼자서 100을 해내는 것보다 모두가 1씩 바뀔 때 해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벌 살 걸 한 벌 사는 식으로 바꿔나가자는 거죠.
현실적으로 유행 아이템을 안 사는 게 가능할까요.
유행은 누군가가 철저하게 만들어서 계속 공급하는 거고, 그 공급에 따른 소비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전략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알고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미국 색채 연구소 팬톤이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가 사실은 2년 전에 정해졌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처럼 막 따라잡고 싶어질까요. 많은 분이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를 싫어하잖아요. 식재료를 살 때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고 어디서 만드는지 꼼꼼히 정보를 따지면서 우리 피부에 바로 닿고 개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옷은 왜 잘 알아보질 않나요. 단순히 유행으로 생각해 소비하기에는 누군가 그 안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단 점도 한번 생각해주세요.
스타일과 환경 2마리 토끼 잡는 생활 팁
1. 옷장 정리는 한눈에 보이게상의는 상의끼리, 하의는 하의끼리 눈에 잘 띄게 정리해야 이리저리 매치하며 입어보게 된다. 그러려면 옷장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기념품 같은 옷은 과감하게 옷장에서 꺼내 따로 보관한다. 이소연 씨의 경우 이 기념품들을 집에 지인이 놀러 왔을 때 공개해 가져가고 싶은 옷이 있다면 선물한다.
2. 캡슐 옷장 꾸리기
여행 갈 때 최대한 옷을 적게 챙겨서 다양하게 돌려 입듯 평소에도 이런 개념을 옷장에 적용해 ‘캡슐 옷장’을 꾸려본다. 한 달이나 분기, 반년 단위로 꾸려놓고 그 안에서 스타일링을 시도하는 것이다. 적은 선택지 안에서 많은 조합을 끌어내다 보면 캡슐 옷장 안에서도 잘 안 입는 옷이 나온다. 자신의 취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3. 옷을 최대한 오래 입는 게 가장 친환경적
옷의 케어 라벨에 적힌 재질에 따른 세탁법만 따라줘도 좀 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다. 이소연 씨는 “낮은 온도로 짧은 시간 세탁하는 것만으로도 세탁물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 양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장기간 수납장에 넣어둘 때도 꼭 세탁하고 비닐을 씌우지 않은 채 보관하는 게 좋다. 한편 싸게 산 옷이 망가지면 수선하는 데 돈이 더 든단 생각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옷에 난 구멍을 꿰매며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는 게 바느질의 묘미다. 손재주가 없다면 아름다운가게와 다시입다연구소가 2023년 11월부터 10개월간 진행하는 ‘아름다운X수선혁명 워크숍’이나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치앙마이식 자수 수선 클래스 등에 참여해볼 것.
4. 옷과 옷을 바꾸는 대안 쇼핑
이소연 씨는 “중고거래나 빈티지 숍을 이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을 중고로 찾거나 해외에서 빈티지 의류를 수입해오는 게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왕이면 “나눠 입고 교환해 입는 재미를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다시입다연구소의 옷 교환 행사인 ‘21프로 파티’나 제로 웨이스트 공간 ‘소우주’의 ‘물건 입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옷장에 잠든 옷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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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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