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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식으로 표현한 새로운 일본 요리 지향” 국내 최초 미쉐린 스타 여성 일식 셰프 김보미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 2023.01.09 10:00:01

미식(美食)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불완전함’을 겸허히 수용하고 쉼 없이 정진하는 김보미 셰프를 만났다. 오홍석 기자
2021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스타를 받은 ‘미토우’의 김보미 셰프.

2021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스타를 받은 ‘미토우’의 김보미 셰프.

일본 교토의 사찰 ‘료안지’ 정원에는 우주를 표현한 15개의 바위가 놓여 있다. 절묘한 배치로 어느 위치에서 바라봐도 모든 바위를 한눈에 담을 수 없다. 관찰자로 하여금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각자 관점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설계 의도가 숨어 있다. 료안지의 가르침을 연상케 하는 요리사, 김보미 셰프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이름은 ‘미토우(未到)’, ‘도달하지 않은 상태, 불완전함’을 뜻한다.

미토우는 2021년, 세계적인 식당 및 미식을 선정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를 받았다. ‘미쉐린 가이드’는 매년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한 직원이 식당을 찾아가 음식 맛을 보고 스타를 부여한다. 미토우는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2023년 3회 연속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에 등극했다. 다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건 지난 10월. 당시 김보미 셰프와의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만남이 겨울로 미뤄졌다.

김보미 셰프는 세간의 인정에도 겸손했다. 그는 바위와 자갈로 꾸며진 일본식 정원을 연상케 하는 사람이었다. 정적이고 침착하며 조용하다. 그는 일식의 매력조차 “‘정적’인 데 있다”고 말한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미완성의 아름다움’이 일식의 매력

병원에 입원한 건 과로 때문이었나요.

네. 3년 전쯤부터 가게가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쉼 없이 강행군하다 보니 탈이 나더라고요. 2주 전쯤 퇴원했고, 이제 서서히 회복하는 중이에요.

다행이네요. 셰프님은 일식을 어떻게 처음 접했나요.

요리학교에 다닐 당시 1학년 여름방학 때 일본 지바현에 3개월 인텁십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일본 요리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죠. 그때는 언어소통도 원활하지 않았고, 많이 헤맸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식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죠. 일식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어려웠고 무시도 많이 받았거든요. 이후 ‘내가 열심히 해서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연구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 일본 유학까지 가게 된 거군요.

네. 처음에는 료칸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일을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일하고 비자가 연장됐죠. 그때 도쿄로 갔어요. 미식의 격전지라 할 수 있는 곳을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여러 곳에 면접을 본 후 도쿄에서 일하게 됐죠.

나이 어린 외국인 여성인데도 잘 가르쳐줬나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언어나 부족한 실력 때문에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어린 학생처럼 배우려고 하니 오히려 더 세심하게 가르쳐주셨어요. 편견 때문에 장벽에 가로막힌 적은 없었어요.

문득 궁금한데요. 미쉐린 레스토랑의 셰프는 평소에 뭘 먹나요.

많이들 물어보세요(웃음). 일단 저희는 재료 손질부터 청소까지 직접 다 하기 때문에 식당에 있는 시간이 길어요. 하루 평균 13시간 정도…. 그래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많이 해 먹어요. 규동이나 덮밥, 우동 같은.

외식은 잘 안 하시나요. 특히 일식이요.

일식은 밖에서 잘 안 먹어요(웃음). 특히 선배들 업장에 가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죠. 밖에서는 한식이나 중식을 자주 먹습니다.

일본에서 4년간 수학한 김보미 셰프는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일식 레스토랑 2곳에서 각각 2년씩 일하다 2018년 자신의 가게를 열기로 결심한다. 그의 새로운 시작에는 “파트너이자 동업자이자 연인”인 권영운 셰프가 큰 힘이 됐다. 원래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일본에 있던 기간이 겹쳤다. 권 셰프는 한국 호텔 일식당에서 일하다 본토의 요리를 경험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 있을 당시 자신이 방문한 식당의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김보미 셰프가 그걸 보고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 그의 추천 목록을 따라 식당을 방문한 후 큰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은 요리를 매개로 교류하며 가까워졌고, 이후 파트너이자 동업자이자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이 창업을 결심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지금의 ‘오마카세 열풍’도 없었고 갓포 요릿집도 흔하지 않았다. 일식에서는 이자카야가 유행의 정점에 있었다. 둘은 여러 선택지 중 고민하다 가이세키 요리를 주력으로 하는 미토우를 열기로 한다. 그 배경에는 “돈을 못 벌어도 하고 싶은 걸 하자”는 합의가 있었다. 가이세키 요리는 무엇이며 김보미 셰프가 고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가이세키’가 어떤 요리인지 설명해주세요.

많은 분이 식당에 오면 여쭤보세요. 가이세키는 격식을 갖춘 일본의 연회 요리입니다. 단순히 코스 요리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일본 요리는 ‘계절감’이 굉장히 강조됩니다. 그래서 재료와 더불어 식당의 꽃이나 그림 같은 오브제들도 계절에 따라 바뀌죠. 가이세키는 갓포 요리보다 좀 더 재료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사용해요. 저희도 형태에 얽매이기보다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미토우만의 요리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한국에서의 일본 요리’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본 요리’는 ‘일본에서의 일본 요리’와 무엇이 다른 건가요.

일본과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잖아요. 물이나 땅, 문화 등 다른 게 많죠. 이곳은 한국이고, 대부분의 손님이 한국인이며 저 역시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일본에서 배운 데로만 할 수는 없어요. 식재료도 많이 다르고 선호하는 맛도 차이가 있거든요. 한국에서의 일본 요리는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요.

일본에서는 가을, 겨울에 ‘순무’를 많이 먹어요. 눈이 올 때쯤에는 ‘미조레 오완’(무를 갈아서 맛국물에 넣은 요리)을 먹는데, 일본인들은 미조레 오완을 맛보며 ‘겨울이 오고 있구나’를 체감하죠. 반면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나는 순무는 맛과 향이 일본의 순무와 달라요. 매운맛과 알싸한 느낌이 있고 식감은 더 아삭하죠. 본토의 레시피로 풀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굳이 순무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재료를 찾아 손님들에게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표현해요. 미토우는 우리나라에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일본 요리를 지향합니다.

계절의 영향을 받으면 코스 구성도 자주 바뀌겠네요.

매달 코스 구성을 바꾸고 있어요. 아무래도 일식이다 보니 일본보다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아서요. 우선 시장에 가서 제철 재료를 살펴보고 권영운 셰프가 밑그림을 그리면 제가 디테일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어요.

셰프님이 생각하는 일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식의 매력은 정적인 느낌인 것 같아요. 양식과 다르게 재료 고유의 색을 끌어내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일본 문화 중에 ‘와비사비(侘寂·わびさび)’라는 말을 저는 굉장히 좋아해요. 전국시대 다도인(茶道人)의 사상을 뜻하는데,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 또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으로 풀이해요. 와비사비는 일본인들의 일상에 깃들어 있고, 요리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아요.

‘미쉐린 가이드’는 2016년 11월 한국에서도 발간하기 시작했다. 한식과 양식을 중심으로 레스토랑을 선정하다 일식 카테고리를 만들어 스타를 부여하기 시작한 건 2021년부터다.

“미쉐린의 스타 셰프는 ‘스타워즈’로 치면 루크 스카이워커(후반부 주인공)야.”

영화 ‘더 셰프’에 나오는 미쉐린 스타 셰프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대사다. 하지만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통계청의 ‘외식산업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외식업체 수는 약 80여만 개, 그중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35개에 불과하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들은 그만큼 미식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셰프도 미쉐린 스타 선정 기간이 다가오면 지나친 긴장감 때문에 불안증에 걸리곤 한다. 김보미 셰프는 해마다 다가오는 선정 기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완벽으로의 길

김보미 셰프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일식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셰프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일식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미쉐린 스타 선정 기간이 돌아오는데, 이번에도 선정될지 예상하셨나요. 실제 긴장이 많이 되나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 중에 이렇게 인정받으면 감사하고 좋긴 한데, 미쉐린 스타가 가게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긴장은 됐지만 선정 여부를 고민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어요. 대신 한 해 동안 우리가 후회 없이 손님을 맞이했는지, 음식은 어땠는지 더 많이 고민했죠.

처음 미쉐린 스타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네요.

솔직히 ‘우리가? 왜…?’라고 생각했어요(웃음). 3년 전에도, 지금도 미쉐린 스타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미토우는 자리가 12석밖에 안 되고, 저녁에 손님을 한 타임만 받다 보니 예약이 어렵기로 유명한데요.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식당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으신지요.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가게 규모를 확장할 생각은 없어요. 규모를 키우면 손님들에게 저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도 저희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욱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요. 저희의 지향점이 낮아지는 일이라면 안 할 것 같아요.

손님들과 소통도 자주 하던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는 않나요.

숫자로 매겨질 수 없는 손님들과의 교감이 저희에겐 중요해요. 저희는 손님들이 미토우를 방문해서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지친 분들께는 위안을, 좋은 날에는 더욱 축하드리고 싶거든요. 더군다나 손님들은 저희 둘이 만든 요리를 먹으러 어렵게 찾아주셨기에 직접 맞이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김보미 셰프와 권영운 셰프.

김보미 셰프와 권영운 셰프.

“여자는 체온이 높아 날생선을 만지는 데 적합하지 않다.”

지독하고 오래된 여성 일식 요리사에 대한 편견이다. 과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은 이 편견을 고착화한 유명한 사례가 있다. 75년간 도쿄의 작은 가게에서 초밥을 쥔 오노 지로는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으로 불린다. 그는 작은 가게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키웠다. 어느 날 오노 지로의 큰아들에게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당신 가게에는 여자 직원이 왜 한 명도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들은 그 질문에 “여성이 생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배란주기에 따라 미각이 불균형하기 때문에 여성은 초밥 요리사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유명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국내 여성 일식 셰프들도 “여자가 쥔 초밥은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손님을 한 번쯤은 맞닥뜨린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김보미 셰프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여성은 일식에 부적합하다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여성 셰프이긴 하지만 ‘내가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일본에서도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은 들은 적 없습니다. 다만 제가 준비되지 않아 더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죠. 장애물을 하나씩 넘다 보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뿐, 여성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된 적은 없어요.

일본에서도 여성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인가요.

네. 일본도 많이 바뀌었어요. 몇몇 분이 앞장서나가면서 주목받고 있죠. 그분들이 여성 셰프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일식 셰프를 차별하는 손님을 만나본 적 없나요.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요. 한 손님이 식당 후기에 댓글로 “아직 여자가 하는 일식은 신뢰가 안 간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런 댓글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 쓰느니 매일 저희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더 신경 쓰는 게 낫죠.

후진 양성 계획은 없으신가요.

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제일 못하는 일이에요(웃음). 앞으로 직원을 늘려나갈 계획을 갖고 있긴 합니다. 저희가 가게를 비우려는 건 아니고 고객들에게 조금 더 나은 퀄리티의 요리와 접객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후진 양성까진 아니지만, 앞으로 스태프를 늘려서 저희가 다른 분야에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앞으로 완벽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목표는 무엇인가요.

먼 미래보다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더 나은 미래로 연결될 거라 믿고요. 쉽지는 않겠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보내는 것, 그게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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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미토우



여성동아 2023년 1월 7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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