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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하게 나열된 취향 클러터코어의 시대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입력 2022.10.12 10:00:01

다다익선이 인테리어 키워드로 떠올랐다. 미니멀리즘이 장기 집권을 끝내고, 정반대의 ‘클러터코어’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미 틱톡에서는 #cluttercore라는 주제로 업로드된 여러 영상 중 인기 있는 것은 조회수 200만에서 300만을 넘나든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업로드된 게시물이 2만8000여 개를 훌쩍 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잘 전시한 거랍니다

클러터코어(cluttercore)란 영어 클러터(clutter·잡동사니)와 코어(core·중심부, 핵심)를 조합한 말로 ‘공간을 잡동사니로 어수선하게 꾸미는 스타일’이라 정의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의 대척점에 있고, 맥시멀리즘의 사촌쯤 되는 개념인 셈.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나 액자,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책과 잡지, 서랍장에 촘촘히 들어선 장식용 오브제, 화려한 패턴의 벽지나 식탁보 · 러그 · 쿠션 같은 패브릭까지. 아이템 개수가 엄청나게 많거나 컬러와 패턴처럼 아이템을 구성하는 요소가 현란하게 많을 때 클러터코어라 부를 수 있다.

다만 클러터코어에 도전하기 앞서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것이 바로 취향이다. 그저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데 집중하는 맥시멀리스트나, 심지어 쓰레기 같은 물건조차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는 호더와는 다르다. 자신만의 원칙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진열해 공간을 꾸민다는 점에서 클러터코어 예찬론자는 박물관 큐레이터와 같다.

국내에 가장 먼저 클러터코어 개념을 소개한 이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좋아하는 물건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 방식으로 삶의 태도가 변화했다”고 밝히며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태도가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남윤희 @onsaeromy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클러터코어

SNS를 통해 인테리어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남윤희(@onsaeromy) 씨는 방을 꾸미는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기자기한 소품과 컬러풀한 원색을 좋아했어요. 물건은 넘칠 만큼 많았고요. 제 취향대로 꾸민 방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보신 분들이 ‘마치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공간 같다’는 말씀을 해주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제가 뭘 좋아하는지를 좀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됐죠.”





실제로 클러터코어 인테리어에 빠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시도해봤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물건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소유욕이 강하며, 취미나 관심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물건마다 담겨 있는 이야기에 몰입해, 오래돼도 버리지 못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가득 찬 소품이 무작정 쌓은 게으름의 결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클러터코어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는 인테리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이템을 꼼꼼히 사 모아야 하고, 수많은 아이템이 통일성 있게 보이도록 잘 배치해야 한다.



또한 각 아이템이 연속성 있어 보이게 하려면 물건의 공통점을 잘 이해하고 연결해야 한다. 남윤희 씨는 “다양한 소품을 조화롭고 정돈된 모습으로 연출하고 싶다면 색상표에서 힌트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베이스가 될 컬러와 포인트가 될 컬러를 정해두고, 그 색상 범위 안에 있는 아이템을 모으는 것.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을 때는 공간감을 잘 이해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여러 개의 물건 중 납작한 것은 납작한 것끼리, 길쭉한 물건은 길쭉한 것끼리 모아두면 좀 더 정리된 느낌을 낼 수 있다. 좁은 공간이 한계처럼 여겨진다면, 높이를 달리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다. 남 씨는 “작은 방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한 저만의 히든카드는 벙커 침대예요. 침대 아래 공간에 소파와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작은 영화관을 만들었죠. 또 조명을 좋아해서 방에 10개 정도를 설치했는데, 빛의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각기 다르게 보여 정말 만족스러워요.”

천은희 @eunhee_home

방을 갤러리 삼아, 큐레이터가 되다

6년간의 독립생활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온 천은희(@eunhee_home) 씨는 ‘가장 나다운 공간으로’라는 모토를 가지고 8.3㎡ 남짓의 작은 방에 빈티지한 취향을 녹여내는 중이다. 클러터코어의 매력은 ‘스스로에 대해 더 깊게 탐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는 천 씨. 그는 물건을 모으다 보면 특징적으로 비슷한 아이템이 늘어나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또 좋아하는 분위기나 색감 등을 비교하다 보면 그동안 확실치 않던 자신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도 정확히 알게 된다고.

“공간 안에 나를 규정하는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나와 있는 수도 없이 많은 책, 식물, 사진, 음악 중에서 제가 선택한 것으로 꾸민 공간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천은희라는 사람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죠. 만약 저의 공간이 전시된다면, 그 전시의 제목은 ‘한 여자의 고유한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천 씨가 가장 아끼는 창가 공간은 큐레이션을 넘어 직접 작업에 참여한, 마치 하나의 설치 작품 같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지 못하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만들기를 한 덕분이다. 끝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 그가 직접 만든 벽 선반과 조명 갓이 메인 피스다. 특히 원예용 철사를 사다가 구부려 형태를 만들고 지점토를 씌워 직접 색칠한 갓에 전구를 연결한 조명은 가장 그다운 물건이라 의미가 크다. 벽을 빼곡하게 메운 포스터와 엽서 중에도 직접 찍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이 확고해지면, 공간 밖의 다른 분야에서도 취향에 따라 즐거움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되겠죠.”

김은지 @dreaming_roomroom

클러터코어는 언제나 현재진행형

나만의 취향을 쌓아 올려 만드는 클러터코어 인테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층위가 더 높아진다는 매력을 지녔다. 취미가 단연 ‘집 꾸미기’인 김은지(@dreaming_roomroom) 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아날로그 취향이 지금의 공간을 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만년필이나 손 글씨, 필름 카메라 같은 아날로그 아이템에 관심이 많았어요. 다락방이나 오두막 같은 아늑한 무드를 좋아했고요. 특히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하울의 성이나 소피의 모자 가게, ‘이웃집 토토로’ 속 아버지의 서재 같은 자유로운 공간을 보면서 취향을 기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취미 부자의 맥시멀 빈티지 인테리어 기운이 느껴졌어요(웃음).”

그가 직접 찍어 올리는 SNS 사진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공간과 꼭 닮았다. 물론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김 씨 역시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인테리어 감각을 지니게 됐다.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있어야만 클러터코어 인테리어가 완성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사 초반에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 전체 가구 배치를 바꿀 만큼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배치와 조합에 따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물건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빈티지 소품을 좋아해 온라인 숍이나 오프라인 매장을 자주 살펴보는데, 빈티지 특성상 좋은 가격대의 아이템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는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먼저 사기부터 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 충동구매가 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경험도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김 씨의 인테리어 꿀팁은 벽면마다 테마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의 방을 예로 들면 한쪽 벽은 빈티지를 테마로 패턴이 있는 커튼이나 오래된 소품을 주로 배치하고, 한 면은 화이트 컬러를 배경으로 컬러풀한 아이템을 매치해 미드센추리 빈티지 느낌을 냈다. 또 다른 한 면은 식물을 주로 배치한 ‘식물 존’. 마지막 벽은 시원하게 비우는 방법으로 숨통을 틔우는 대신, 빔프로젝트를 적절히 활용해 빔테리어의 무대로 삼았다. 매일 또는 시기별로 잘 어울리는 이미지나 영화를 띄우면 방의 분위기를 손쉽게 전환할 수 있다.

#클러터코어 #인테리어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unsplash



여성동아 2022년 10월 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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