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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

‘주문을 잊은 음식점’ 김명숙 PD “‘치매’로 뭉뚱그려진 삶 되찾아주려 했다”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입력 2022.08.29 16:14:35

동파육을 주문했더니 팔보채가 나왔다? 메뉴를 골라도 서빙 된 음식은 랜덤인 이곳,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다. 종업원이 손님의 주문을 잊는다니. 이상하지만 여기서만큼은 ‘오케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음식점 KBS1 ‘주문을 잊은 음식점2’를 연출한 김명숙 PD를 만났다.
8월 16일 여성동아 스튜디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명숙 PD.

8월 16일 여성동아 스튜디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명숙 PD.

6월 30일 제주 서귀포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이연복 셰프의 비법이 담긴 중화요리 맛도 특별했지만 이 식당만의 매력은 다른 데 있었다. 주문을 잊어버리는 종업원, 경증 치매인 ‘깜빡 4인방(장한수, 최덕철, 백옥자, 김승만)’이다. 수저가 나오지 않아도 주문을 잊어버려도 껄껄 웃음 한 방이면 ‘만사 오케이’다.

2018년 방영된 시즌1에 이어 확장 개업한 KBS ‘주문을 잊은 음식점2’는 7월 30일 총 6회로 성황리에 영업을 마쳤다. SNS에선 “수신료의 가치”, “웃음·눈물·침 모두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경증 치매인과 이를 기다리는 손님 사이의 따스한 교감이 전 세대에 걸친 시청자의 마음을 울린 것. ‘주문을 잊은 음식점2’는 8월 18일 269회 이달의PD상 TV 시사다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명숙 PD를 만나 치매인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소감에 대해 물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2’가 많은 사랑과 함께 문을 닫았어요.

시사교양 방송을 6회로 편성하는 것 자체가 큰 시도였어요. 방송이 거듭될수록 시청자가 출연자들을 알아가고 지지하면서 일종의 ‘팬심’이 생긴 것 같아요. 주 시청자가 60대 남성인 시간대에 방영됐는데 젊은 층 반응도 좋아 기뻤어요.

출연자분들은 잘 계신가요.

얼마 전 한 분씩 찾아뵀어요. 촬영 전과 (비교해) 에너지가 굉장히 달라지셨어요. 처음 만나 뵐 땐 눈도 못 마주치시고 말도 잘 못하실 만큼 자신이 없어보였는데 지금은 사람을 대할 때 당당한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가끔 주문을 잊어버리긴 해도 분명 음식점이다. 셰프는 세 명, 테이블도 여러 개다. 손님도 예약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받는다. 바삐 돌아가는 식당에서 ‘깜빡 4인방’은 서로 부딪히기도 화해하기도 한다.



출연자들의 일터로 음식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낯선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뭔가를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는 곳으로 음식점이 좋겠다 싶었어요. 장소가 어디인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매출이나 음식 맛이 훨씬 중요한 식당 예능도 많잖아요. 저희는 주문을 잊은 세차장이나 주문을 잊은 양장점이 될 수도 있었어요(웃음).

일본 방송에 영향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이건 꼭 정정하고 싶었어요.방송이 아니라 일본의 한 데이케어센터 행사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센터 소속 치매 노인들이 예약제 음식점을 운영하는 단기행사인데, NHK(일본 방송국) PD에게 이걸 국제 공동제작으로 프로그램화 하자고 제안했죠. 하지만 “리얼리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허무한 대답이 돌아왔고, 그 덕에 오히려 도전 의식이 생겼어요. 그 때부터 치매 임상경험이 많은 의료진에게 자문을 구하러 다녔어요.

치매는 처음이라…

KBS1 ‘주문을 잊은 음식점2’ 공식 포스터.

KBS1 ‘주문을 잊은 음식점2’ 공식 포스터.

주문을 잊은 식당’에선 크고 작은 돌발사고가 일어난다. 보통의 음식점과 다른 점이다. 테이블 세팅을 놓치거나 방금 받은 주문을 잊어버리는 건 예삿일. 종업원이 서빙을 하다 “집사람이 걱정 한다”며 식당을 이탈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 식당이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도 깜빡한다.

음식점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해요.

프로그램 자체가 해프닝으로 구성됐죠(웃음). 출연자끼리 처음 만난 자리부터 어려웠어요. 한 어르신이 ‘폭탄발언’을 하셨거든요. 사전에 출연 동의를 다 받았는데, 갑자기 “한라산을 가는 줄 알고 왔다”면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엔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신 거예요. 다른 출연자분들의 회유로 다시 마음을 돌리긴 하셨지만요.

정말 출연 여부를 잊어버리신 건가요.


그 분은 촬영 중간에도 한라산에 갈 거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그램 촬영을 까먹은 게 아니라 치매로 인해 앞치마를 매고 치매인의 음식점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시기 어려웠던 듯해요. 그 분은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전 세계 산을 찾아다니신 등산 마니아셨어요.

치매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경증 치매인은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스스로 겪는 혼란이 더 크다. 치매 진단을 받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남은 삶을 두려워해서다. 안타깝게도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치매유병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0세 이상 치매환자는 약 91만 명이고 이중 60% 정도가 최경도·경도에 해당한다. 경증 치매인은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상의 불편을 겪으면서 혼자 지낼 수 있는 수준이다.

경증 치매인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네요.

이 방송을 기획한 이유기도 해요. 경증 치매인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치매 판정 이후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김명숙 PD는 14년째 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추적60분’, ‘걸어서 세계 속으로’, ‘소비자고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쳤다. 그 중에서도 KBS파노라마 ‘한국인의 고독사’를 제작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수성,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김 PD는 “치매인도 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도 언젠가 약자가 된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의 종업원들. 왼쪽부터 김승만, 최덕철, 백옥자, 장한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의 종업원들. 왼쪽부터 김승만, 최덕철, 백옥자, 장한수.

‘주문을 잊은 식당’에서 실수를 하는 건 ‘깜박 4인방’뿐이 아니다. 셰프, 매니저도 사실 완벽하지 않다. 셰프들의 잦은 오더 실수에 이연복 메인 셰프가 ‘주문을 잊은 셰프’라는 새 제목을 제안할 정도. 이에 ‘깜박 4인방’은 말한다. “그럴 수 있어. 나는 이해해.”

‘주문을 잊은 음식점’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뭐였나요.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관용과 포용이요. 사실 이 음식점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 굉장히 효율이 떨어지는 공간이잖아요. 원래 음식점은 주문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요(웃음). 하지만 실수라는 건 어떤 우연을 주기도 하고 우리도 언젠가 한 번은 실수가 잦은 사회적 약자가 돼요. 이들은 지금도 많고 또 늘어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도 함께 어울려 사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쇼이긴 하지만 치매로 인해 역할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려운 일을 겪고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 분들이 이 방송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영업이 끝나고 김 PD는 한라산 얘기를 자주했던 출연자에게 말했다. “이제 한라산 가셔야죠.” 그에게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이제 한라산 안 가도 돼. 이곳에서 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치매인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는 것, 김 PD의 바람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주문을잊은음식점 #김명숙PD #치매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KBS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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