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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코로나19 영웅, 간호사들의 오늘

오홍석 기자

입력 2022.06.21 10:30:01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뒤 2년 넘게 세계를 뒤덮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20년 초부터 강도 높게 진행돼온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는 대부분 해제된 상태.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완화돼 이제는 일상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을 느끼기 힘들다.

하루 신규 확진자 수 또한 3월 17일 62만132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해 6월 중순 기준 1만 명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의 평화를 누리기까지 코로나19 집중치료 병상에서, 중환자실에서, 또 선별진료소에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웠던 ‘전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을 바라보며, 잠시 잊고 지냈던 우리의 영웅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어요”

유수정 간호사가 근무하는 서울의료원 본원 간호사들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유수정 간호사가 근무하는 서울의료원 본원 간호사들이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꽤 오래전 얘기 같네요.”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본원에서 만난 유수정(42) 간호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한 말이다. 유 간호사가 22년째 일하고 있는 서울의료원은 2020년 2월 서울시로부터 코로나19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올 5월 말 지정이 해제되기까지 2년 3개월간 이 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가 8814명에 이른다. 그 길고 끝이 보이지 않던 시간 동안 유 간호사는 이 병원 11층 ‘112병동’에서 일했다.



한때 목숨이 경각에 달린 감염병 환자들이 몸을 의탁했던 이곳은 이제 일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시설 변경을 하고 있다. 음압 격리 병실(공기의 압력 차이를 이용해 병실 내부 공기의 외부 유출을 막는 병실)이었던 방에서 이동식 음압기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음압기에 연결해 병실 내부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데 쓰던 파이프만 남아 치열했던 과거의 흔적을 짐작하게 했다. 새로 칠한 벽에서는 옅은 페인트 냄새가 났다.

팬데믹 기간 유수정 간호사에게 112병동은 전쟁터였다. 주임간호사인 그는 평소 오전 8시 30분 출근해 오후 5시 30분 퇴근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일반 간호사와 같이 3교대 근무를 시작했다. 8시간 근무 중 3시간 동안은 레벨D 방호복에 M95 마스크를 쓰고 PAPR(전동식 호흡장치)까지 착용한 채 환자들을 만났다. 특히 치명률이 높았던 델타 변이 유행 기간에는 중증 환자가 늘어나 방호복을 입은 채 5시간씩 근무하는 날도 허다했다.

유수정 간호사가 2년 3개월 동안 사투를 벌인 음압병동은 일반 환자를 받기 위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유수정 간호사가 2년 3개월 동안 사투를 벌인 음압병동은 일반 환자를 받기 위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병동 근무가 끝나도 일은 계속됐다. 곧바로 샤워를 한 뒤 7층 간호사실로 가 후배 간호사들을 지휘했다. 실시간 모니터를 통해 환자를 관찰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빨리 방호복을 챙겨 입고 병동으로 향하는 날도 많았다.

“(비상 상황이) 하루에 두 번도 생기고 세 번도 생기고 그랬죠.”

유 간호사가 설핏 웃으며 한 얘기다. 인터뷰 시작 전까지만 해도 홀가분해 보였던 그의 얼굴은 기자와 함께 112병동을 찾으면서부터 달라졌다. 지난 2년 3개월이 눈앞에 스쳐 가서인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처음엔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며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서울의료원은 팬데믹 초기부터 서울시의 감염병 대응 전진기지 구실을 했다. 2020년 5월에 터진 ‘이태원발(發) 집단 감염’ 환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됐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는 중환자가 몰려들었다. 지난겨울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가 폭증했을 때는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유 간호사는 “병상이 비는 일이 드물었다. 환자가 퇴원하면 즉시 다른 환자로 베드가 채워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에 바쁜 와중에도 서울의료원은 사회 취약계층 일반 환자 진료까지 봤다. 유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은 공공병원 본연의 업무인 사회 취약계층 진료 또한 멈추지 않았다. 우리 병원이 오갈 데 없는 환자를 치료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인력이 받쳐주는 한도 내에서 환자를 최대한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료원 본원은 없는 인원을 쪼개 강남 분원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까지 운영했다. 코로나19 환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는 홍보과·원무과 직원 등 비의료 인력까지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업무에 투입됐다. 유 간호사는 “그 힘겨운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날마다 혼자 ‘곧 끝날 거야’라고 되뇌며 버텨냈다”고 답했다.

“일곱 살 아들에게 가장 미안했어요”

조일지 간호사(42)는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에 위치한 아주대병원 중증 환자 치료 병상 파트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투입되고 두 달이 지난 뒤부터 최근까지 줄곧 코로나19 중환자를 돌봤다.

코로나19 병원체는 주로 폐를 공격해 체내 산소 공급을 어렵게 만든다. 코로나19 중환자는 에크모(ECMO·환자의 혈액을 몸 밖으로 뽑아 산소를 주입한 뒤 다시 체내로 넣어 심장 및 폐의 기능을 도와주는 장치)나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호흡이 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무거운 장비에 묶이다 보니 거동이 어렵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 위에서 보내게 된다. 이들을 담당하는 간호사는 의료 처치와 투약뿐 아니라 배변, 배식을 챙기는 등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봐야 한다. 조 간호사는 “중환자실에 근무하다 보니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방호복을 입은 채 30분씩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고된 업무에 이탈하는 동료도 많았다. 조 간호사가 코로나19 관련 근무를 시작할 당시엔 간호사 7명이 중환자 14명을 관리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증가함에 따라 중환자는 늘어났지만 간호사는 충원되지 않았다. 간호사 1명이 환자 3~4명 이상을 돌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할 때는 의료진 감염이 속출해 인력 공백이 더욱 컸다고 한다. 그나마 버티던 간호사들마저 가중되는 피로와 업무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일이 반복됐다. 조 간호사는 “어려움이 커질수록 ‘나는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강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다.

“저 때문에 코로나19 병원체가 병원에 들어오면 큰일이잖아요. 그런 일을 막으려고 지난 2년간 휴가 한번 제대로 못 갔어요. 돌아보면 일곱 살, 열네 살 두 아들에게 참 미안해요. 특히 우리 막내는 2년 넘게 집에만 있다 보니 이제는 가족끼리 어디 가는 것 자체를 어색하게 여기더라고요. 말씀드리다 보니 더욱 미안해지네요.”

하광은(42) 간호사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서울특별시동부병원(동부병원)에서 일한다. 팬데믹 이전 그의 보직은 호스피스 간호사였다. 서울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인 동부병원은 팬데믹 초기만 해도 사회 취약계층 대상 진료를 계속하느라 코로나19 환자는 많이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12월 확진자가 폭증하자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는 동부병원도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노숙인을 포함해 동부병원에 입원 중이던 일반 환자 모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퇴원 조치됐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 간호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다른 시설로 옮기는 과정에서 돌아가실까 봐 많이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후 하 간호사가 근무하던 호스피스 병동은 동부병원 코로나19 상황실로 개조됐다. 하 간호사는 이 상황실과 코로나19 병동, 생활치료센터 등을 오가며 일했다. 오랜 시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를 지켜봤음에도, 팬데믹 기간의 죽음은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한다. 그런데 팬데믹 초기 코로나19 환자들은 가족 면회도 못 하고 장례도 못 치르지 않았나”라며 “환자가 사용한 유품, 특히 개인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핸드폰조차 유족이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전유경 간호사가 사용한 검사키트.

전유경 간호사가 사용한 검사키트.

전유경(26) 간호사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방호복을 입고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에 걸쳐 진단검사를 실시했다. 전 간호사는 “나를 포함한 선별진료소 동료들은 매순간 검사받는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위치에 있는 듯 느껴지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검사할 때는 안 아프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아프냐” “나 아프라고 일부러 깊숙이 쑤시는 거냐” 등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이 전 간호사의 마음을 찔렀다.

한겨울에는 핫팩을 붙여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한겨울에는 핫팩을 붙여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겨울에는 한파도 의료진을 고통스럽게 했다. 등에 핫팩을 붙이고 방호복을 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노숙인들이 밤마다 선별진료소 텐트 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는 것도 문제였다. 저녁에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놓고 퇴근해도 이튿날 아침 출근하면 선별진료소 안에 대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 수가 정점에 달한 올 2, 3월은 특히 선별진료소가 가장 바쁜 시기였다. 전 간호사는 “동료 6명이 하루 평균 900명 이상을 검사했다”며 “나 혼자서 하루에 250명을 검사한 날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전유경 간호사.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전유경 간호사.

취재 과정에서 근무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간호사를 다수 만났다. 이들은 “2015년 메르스 유행 등 여러 감염병 사태를 겪어봤지만 코로나19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사 1명이 관리하는 환자 수, 방호복을 착용한 채 근무하는 시간 등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 극한을 체험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버티지 못하고 일터 떠나는 간호사들

업무 강도에 더해 간호사들을 고통스럽게 한 건 일부 환자들의 무례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서울의료원 유수정 간호사는 “어떤 환자는 간호사에게 ‘나는 매일 아침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야 한다.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며 “간호사를 시중드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환자가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 전유경 간호사는 “술에 취한 채 찾아와 코로나19 검사를 해달라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부터 엉덩이를 툭 치고 가는 사람, ‘간호사들이 싸가지가 없다’며 욕을 하고 국민신문고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고 밝혔다. 동부병원 하광은 간호사는 생활치료센터에서 비대면 업무를 할 때 기억을 떠올렸다. “수화기 너머로 폭언을 쏟아붓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나중에는 몸보다 정신이 먼저 지쳤다”는 것이다.

육체 피로에 감정 노동까지 수반되다 보니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가 적잖았다. 유수정 간호사는 “팬데믹 기간 동안 서울의료원에서만 200명이 넘는 간호사가 사표를 썼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조일지 간호사도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많은 후배가 병원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의 얘기다.

“후배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어떻게든 다독이려고 노력했어요. ‘간호사로 21년간 근무한 나도 지금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다. 너희들이 힘든 건 당연하다. 그래도 우리 역사적인 순간에 간호사로서의 사명을 다하자.’ 제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는 후배들도 있었지만,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들을 붙잡기엔 역부족이었죠.”

일터를 떠난 간호사를 대체하기 위해 신규 간호사를 채용하면, 현장에서 이들을 교육해야 하는 중견급 간호사들 업무는 더욱 가중됐다. 조일지 간호사는 “환자 2명 보기도 벅찬 신규 간호사가 5명, 10명씩 돌보다 보니 또 사표를 제출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간호사 인력 이탈 막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은 팬데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지난해 9월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는 감염 병동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에 제출된 간호사 사직서 674장을 뿌리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병원간호사회가 조사한 ‘최근 5년간 병원 간호사 사직률’에 따르면 2018년 13.9%에서 2020년 14.5%로 높아졌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사직률이 50%에 달한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상당수가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대한간호협회 조사 결과 올해 3월 말 현재 간호사 면허자는 48만1443명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간호사는 50.9%인 24만5021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자와 만난 간호사들은 “지금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 닥쳐올 또 다른 의료 위기 상황에서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일지 간호사가 제안하는 한 가지 해법은 간호사 1명이 전담하는 환자 수를 법률로 정하는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16.3명으로 미국(5.3명), 영국(8.6)에 비해 월등히 높다. 조 간호사는 “이런 환경에서는 간호사가 번아웃에 빠져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수정 간호사는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크게 공헌한 공공병원 간호사들의 처우가 많이 열악한 것도 문제”라는 의견을 냈다. 그의 말대로 공공병원은 코로나19 대응에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정부가 지정한 감염병 전담 병원 87개소 중 62개소(71.3%)가 공공병원이었다. 이들 병원은 코로나19 입원환자의 3분의 2 이상(68.1%)을 치료했다. 유 간호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부분적으로 수당 개편이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공병원 간호사의 처우는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처우 개선 없이는 공공병원을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에 대비하려면 감염병 전담 병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일지 간호사의 의견이다.

“한국의 의료 역량은 매우 우수하지만, 민간 병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감염병 팬데믹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 오미크론 변이 때 주요 의료기관이 사실상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팬데믹이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가 많은 만큼, 더 늦기 전에 중앙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감염병 전담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

#코로나간호사 #음압병동 #중환자실 #선별진료소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오홍석·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전유경



여성동아 2022년 7월 7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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