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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한국 여성의 초상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이랑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할 뿐”

글 오홍석 기자

입력 2022.03.28 10:30:01

사회상을 담은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가수 이랑. 자기 음악이 소비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그를 만났다.
이랑(36)의 음악은 3월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2021년 발매한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가 ‘최우수 포크 음반’과 ‘올해의 음반’으로 뽑혀 2관왕을 차지한 것. 밝은 멜로디에 어두운 가사가 담긴 그의 앨범에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그럼으로써 죽음에 저항하는 음반”이라는 평이 뒤따랐다.

이랑의 음악에는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가난과 우울도 단골 소재다. 1월 서울가요대상에서 남긴 소감, “제가 이런 노래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란다”는 바람과 달리 요즘 그의 음악에 대한 호응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랑은 빛을 보기 힘든 ‘인디 신’에서부터 올라와 평단과 대중에게 모두 인정받고, 3월 19·20일에는 대형 단독 콘서트까지 열었다(인터뷰를 진행한 건 콘서트 개최 전인 3월 14일이었다). 어두운 소재에 대해 노래할지언정 그가 조금은 들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상으로 이뤄진 인터뷰 화면 속 그는 차분해 보였다. 때론 진솔했고 냉소적인 답변에 기자를 적잖이 당황시키기도 했다.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요즘 소식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계세요. 사람들이 왜 이랑님 음악에 매료된다고 보시나요.

제 음악보다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매료되는 게 아닐까요. 권위 있는 사람들이 상을 줬기 때문에.

하하. 하지만 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랑님 음악을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제 주변에도 이랑님 음악을 제게 추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자님 지인 분들은 제 음악의 어떤 면이 좋다고 하던가요.



가사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렇군요. 대선이 끝나고 ‘늑대가 나타났다’나 ‘환란의 세대’를 듣는 분이 크게 늘긴 했더라고요.

요즘 인기가 시대적인 배경과 맞물린 게 아닌가 생각하시는군요.

네. 어떡하죠. 이 노래가 소비되지 않아야 좋은 세상일 텐데. 노래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저희가 살고 있나 봐요.

늑대가 나타났다

3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과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이랑 3집 ‘늑대가 나타났다’.

3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과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이랑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의 3집 앨범 수록곡 ‘늑대가 나타났다’ 가사는 이렇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 마녀가 나타났다 / 부자들이 좋은 빵을 전부 사버린 걸 / 알게 된 사람들이 / 막대기와 갈퀴를 들고 / 성문을 두드린다 / 폭도가 나타났다 / 배고픈 사람들은 / 들판의 콩을 주워다 먹어 치우고 / 부자들의 곡물 창고를 습격했다 / 늑대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기타 선율을 배경으로 읊조리듯 가사를 전달하는 이 노래는 분노한 가난한 사람이 마녀로, 폭도로, 늑대로 내몰리는 살벌한 풍경을 담고 있다. 노래 후반부에는 “남의 가난이 결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분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일까. 기타를 치고 노래해서일까. 이랑은 포크 가수로 분류된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요즘 음악계를 보면 이랑님께서 하는 포크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환경은 아닙니다. 원래 포크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아니요. 저는 제가 하는 음악이 포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음원을 등록할 때 아티스트가 장르를 직접 정해야 해서 매번 어려움을 겪죠. 어떤 분은 저를 ‘펑크 뮤지션’이라고 하세요. 민중가요 가수라고 하는 분도 있고요. 저는 제가 포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포크가 인기 있는 장르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어떤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냥 그때그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영감,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노래로 만들 뿐이에요.

글도 쓰고 종종 행위예술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하잖아요. 가수라는 타이틀이 이랑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타이틀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그저 저로 살아갈 뿐인데 사회에서 알아서 장르, 이름, 직업을 붙이는 거죠.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그저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판단하는 척도 정도로 삼는 거죠. 저는 “뭐 알아서들 부르세요(웃음)” 이런 스탠스예요.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

이랑이 음악을 접한 건 2006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성인이 되고 처음 기타를 쳐본 그는 여전히 악보를 볼 줄 모른다.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기타 코드에 얹어 곡을 만든다. 최근에는 피아노로 작곡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밥벌이’를 위해서다. 그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누군가 돈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돈을 벌려고 홍대 지역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는데, 클럽 대부분이 관객한테는 입장료를 받으면서 제겐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주는 클럽만 골라 공연했죠.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자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시작한 사람답게 이랑은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에 대해 자주 노래한다. 그에 따르면 2집 ‘신의 놀이’의 주된 정서는 사회인이 된 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느낀 당황스러움이다. 그래서인지 이랑은 2017년 한대음에서 이 앨범으로 ‘최우수 포크 음악상’을 수상하자 “월세를 내야 해 돈이 필요하다”며 즉석에서 트로피를 50만원에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올해 1월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한 이후 이어진 공연에서는 합창단 40명이 무대에 올라 수화로 “차별금지법, 지금”이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이러한 이랑의 음악과 퍼포먼스에는 응당 “정치적”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해외의 경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뮤지션에게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것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뮤지션의 메시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회가 그에게 가하는 반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랑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먹고사는 고달픔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시죠.

제가 저를 먹여 살리려면 일을 해야 해요. 아주 많이요. 저는 10대부터 일을 했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잡지사에서 만화를 그렸죠. 이후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제 너무 지치고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요.

일을 적당히 하고 싶은 건가요. 아예 하지 않고 싶으신 건가요.

음…. 안 하고 싶어요.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제게 판타지예요. 천국의 존재를 믿으시는지 모르겠지만 천국에 가겠다는 말같이 공허하죠(웃음).

창작도 일 아닌가요. 창작을 위해 자신을 자주 쥐어짜는 편인가 보네요.

돈을 받고 창작을 하는 건 일이죠. 지금은 ‘1인 공장’처럼 영감이 떠오르면 그걸 기록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해요. 상품으로 내다 팔기 위한 과정인 거죠. 제가 누구에게 보이려고 창작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혼자 즐기려고 하면 놀면서 하겠죠. 다만 제 자신을 쥐어짜지는 않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세상에 대한 의문도 많으니까요. 요즘은 너무 바빠서 책도 못 읽고 오히려 입력되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수준에까지 와 있어요.

이랑님의 창작물이 던지는 메시지가 정치적이라는 의견도 있어요.

저는 사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고로 예술을 정치와 사회로부터 분리할 수 없죠. 예를 들어 열두 달이 지나면 한 살을 더 먹는 건 제가 좋아서 정한 게 아니라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잖아요. 제 의지와 달리 그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나는 이거 불편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말하고, 작품이나 퍼포먼스로 만들기도 하는 거죠. 저는 이렇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누구나 편하게 손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어디서나 좀 그래 가지고(웃음). 그래도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있다 보니 남들보다 따가운 시선을 덜 받는 편이에요. 저는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사회가 규정한 정체성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면 소통을 해야겠죠. 불만을 공유하고 연대해 목소리를 내야 법과 질서가 바뀌지 않겠어요. 저는 이게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해요.

이랑님이 말해야겠다고 느낀 불편함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어릴 때부터 쭉 이어졌어요. 저는 의문을 품는 것, 질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아기 때부터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하잖아요. “이건 뭐야?”에서부터 시작해 온갖 “왜”라는 질문을 부모님께 던지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람을 어른으로 길러내면서 이런 본능을 깎아낸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되게 무례하거나 삐딱한 것처럼 느껴지게까지 됐죠. 저는 제 본능을 잘 지켜내 이 직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직업에 만족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 본능을 잃지 않고 여태 가져온 건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중학교 졸업할 때 알고 바로 자퇴를 선택했죠. 학교를 그만둘 때 어른들이 너무 많이 반대했고 많이 때렸어요. 당황스러웠죠. 왜 다른 길이 있는데 이 길만 가라고 할까. 저는 다른 길이 보이면 어떻게든 가고자 했고 때려도 굽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본능을 계속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페미니즘과의 만남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랑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서인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 이랑은 페미니즘과의 만남이 “아니, 학교를 안 가도 되잖아!”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남자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모두 남성이었으니까요. 20대 후반까지 그랬어요. 어릴 때부터 남자 옷을 입었고 남자 친구들과만 어울렸어요. 늘 무리에서 유일한 여성이었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혼자 욕도 연습하고 야한 얘기가 나오면 일부러 더 세게 받아치고 그랬어요.”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군요.

그렇죠. 제가 남성 커뮤니티의 유일한 여성이다 보니 겪고 싶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어요. 성폭력 같은 문제를 포함해서요. 그러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고 제 경험을 대입하면서 바로 공감할 수 있었어요. 또 알게 됐죠. 전 절대 남자 사회에 들어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요.

이후 삶이 많이 달라졌나요.

쉽지는 않았어요. 반성할 게 많았고 제가 그간 살아온 삶을 부정해야 했으니까요. 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성 동료 찾는 법을 익혀야 했어요. 20대 후반까지의 제 삶은 남성들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었고, 여전히 저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종종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 많은 사람은 아직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희 언니가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자살 유족 지원 프로그램 지원을 받고 있어서 사회복지사분이랑 종종 상담을 해요. 한국에서 2030 여성 자살률이 굉장히 높잖아요. 자살예방센터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잘 파악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잘 이해가 안 돼요. 한국은 젊은 여성이 살기 너무 힘든 사회거든요.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말하면 저는 젊은 여성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좀 더 살기 편해요. 과거에 저는 남성 사회에 끼어들고자 무던히 애썼지만 줄곧 대상화됐고 젊은 여성으로만 소비됐어요.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이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보지 않고 그냥 “너랑 자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저한테만 생기는 줄 알았죠. 그래서 ‘내가 너무 싸 보이나? 내가 쉬워 보이나?’ 이런 생각을 오랜 시간 많이 했어요.

서글픈 현실이군요.

흔히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나이 들면 안 팔린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해방감을 느껴요.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사람들이 이제 저를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봐준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이랑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뒤 해당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쳤다. 트로피는 1분이 채 안 돼 50만원에 팔렸다.

이랑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뒤 해당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쳤다. 트로피는 1분이 채 안 돼 50만원에 팔렸다.

서울가요대상에서 상을 받은 뒤 “차별과 혐오가 사라져 이런 음악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고 있다”는 소감을 남겼어요. 이런 주장에 반발하는 사람도 적잖을 텐데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뭔가요.

제 작업물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것들이고, 반발은 그에 대한 피드백이겠죠. 제가 부자이거나나 권력이 셌으면 안전장치를 마련하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무섭기도 해요.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면서 ‘내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거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슬픈 일이죠.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리 없는 / 귀한 내 친구들아 /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 먼저 선수 쳐버리자 / 내 시간이 지나가네 / 그 시간이 가는 것처럼 / 이 세대도 지나가네 / 모든 것이 지난 후에 / 그제서야 넌 화를 내겠니”

이랑의 ‘환란의 세대’ 노랫말이다. 자살 조장곡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지만 이랑은 이 노래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모두 죽지 말자”는 뜻을 반어법을 이용해 표현했다는 의미다.

이랑이 이런 노래를 만드는 이유는 최근 그의 가장 큰 관심사가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가 평소 즐겨 사용하던 인사말은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였다.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것마저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이랑은 “젊은 여성으로 살아온 삶이 무척 힘들었고 지금도 살아 있는 게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나는 잘 살아가겠다’라고 약속을 하기 어려워요”라고 답했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그는 “음악으로 기억되기보단 그저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위태로운 이가 이토록 힘들게 만든 음악에 대중은 왜 열광할까. 그 답을 찾아야 이랑의 음악이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랑 #늑대가나타났다 #환란의세대 #여성동아

사진제공 유어썸머 사진출처 유튜브 캡처



여성동아 2022년 4월 7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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