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쯤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출판 영업의 달인이거나, 마케팅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그럴듯한 한마디를 해줄 정도의 직장인은 될 줄 알았죠. 아 그래도 “상황에 따라 다르고, 요즘은 또 많이 바뀌어서…” 정도로 능청스럽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능청이라니. 저는 제가 가진 ‘능청’ 혹은 ‘말발’이라는 스킬을 시전하고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돌아서서 늘 후회하는 쪽이었어요. ‘역시 말을 좀 줄여야 해’ ‘나 혼자 또 너무 떠들었나? 사실 알맹이는 없는 거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데 올해는 생각을 좀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요즘은 그 말발로 일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시작한 것치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아란 차장’의 줄임말인 ‘아차’라는 고유 별명이 생겼고 200~300개가 넘는 선플이 달리기도 하는 걸 보면서 1년을 보내다 보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조금 들더라고요. 인기(?) 때문이라기보다 제가 그간 했던 일들, 직장 생활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눴을 뿐인데 좋게 봐주셔서 그간의 자기 의심이나 조바심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저의 가장 큰 회사 아이덴티티는 ‘마케터’였는데 단 1년 사이에 어쩌다 곁들인 ‘유튜버’가 더 커져버린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일을 하다 보면 ‘와, 내가 이런 것도 해야 해?’ 하는 순간들이 있죠. 전 그런 순간 대부분 ‘이런 것도 하자’라고 마음먹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케터, 기획자, 영업자, 유튜버 이렇게 많은 나의 이명이 있을수록 더 (짱) 센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요. 가끔 넘어져도 또 다른 내가 일으켜줄 거라고 믿으면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 같은 두려움은 잠시 잊고 다음엔 또 뭐가 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용감한 직장인이 되자고 다짐해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브랜딩도, 기획도, 마케팅도 뭐 하나 쉬운 건 없어요. 브랜드를 알리자는 목표는 한결같지만 그 방법은 계속 달라지고요. 하나를 이제 좀 할 줄 안다 싶으면 또 새로운 걸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마케터분이 ‘내가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길은, 장인이 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모든 것이 되는 것일지 모르겠어요. 늘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나다운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다시 초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기보단 물처럼 흐르는 사람이 되는 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콘텐츠에 달린 댓글 중 일부
S***님의 댓글 : 아란차장님은…인간 콘텐츠 그 자체인가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알차고 재밌는지.
L**님의 댓글 : 진짜 지독히 얽히고 싶은 아란차장님
필자소개
조아란 민음사 콘텐츠 기획팀장은 12년 경력의 출판사 마케터다.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구독자 8만 명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제작자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입덕’ 영상으로는 그의 일상과 일터를 구경할 수 있는 ‘마케터의 갓생살기’ 시리즈, 문화생활 언박싱을 빙자한 본격 소비 시리즈 ‘문박싱’이 있다.
사진제공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능청이라니. 저는 제가 가진 ‘능청’ 혹은 ‘말발’이라는 스킬을 시전하고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돌아서서 늘 후회하는 쪽이었어요. ‘역시 말을 좀 줄여야 해’ ‘나 혼자 또 너무 떠들었나? 사실 알맹이는 없는 거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데 올해는 생각을 좀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요즘은 그 말발로 일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으니까요.
마케터의 ‘갓생’ 살기
지난해부터 유튜브 ‘민음사TV’ 채널에 ‘12년 차 직장인의 갓생 살기’라는 제 코너가 생겼습니다(‘갓생’은 ‘god’과 ‘生’을 합친 말로 부지런한 삶을 의미합니다). 제작자이자 기획자로 채널을 운영하고 간헐적으로 출연을 하기도 했지만 메인 코너를 맡는 건 처음이었어요. 부담스럽고 무섭기도 했지만 안 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출연하기 싫은 채널이라면 제가 누군가를 섭외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기왕 유튜브를 하게 된 거 출연도 한번 ‘찐’하게 해보자 했죠.그런데 어쩌다 시작한 것치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아란 차장’의 줄임말인 ‘아차’라는 고유 별명이 생겼고 200~300개가 넘는 선플이 달리기도 하는 걸 보면서 1년을 보내다 보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조금 들더라고요. 인기(?) 때문이라기보다 제가 그간 했던 일들, 직장 생활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눴을 뿐인데 좋게 봐주셔서 그간의 자기 의심이나 조바심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저의 가장 큰 회사 아이덴티티는 ‘마케터’였는데 단 1년 사이에 어쩌다 곁들인 ‘유튜버’가 더 커져버린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뭐 하나 쉬운 게 없네… 일단 하자!”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 카운터에 앉아 있는 제게 어떤 독자분이 “악! 오늘 엄마한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 보러 간다고 했는데 너무 좋아요!”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누군가의 눈엔 나는 그냥 직장인이 아니라 유튜버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유튜브에 올리는 콘텐츠마다 오프닝 인사말로 늘 “안녕하세요? 민음사 마케팅부 조아란입니다”라고 하긴 했지만, 마케터로 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또 영상에서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쇼핑몰 장바구니 털기’를 한다거나, ‘왓츠 온 마이 데스크(What’s on My Desk)’ 같은 온갖 딴짓을 하는 것으로 더 유명해져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죠(그 딴짓이 실은 마케팅의 일환이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면 성공이네요).일을 하다 보면 ‘와, 내가 이런 것도 해야 해?’ 하는 순간들이 있죠. 전 그런 순간 대부분 ‘이런 것도 하자’라고 마음먹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케터, 기획자, 영업자, 유튜버 이렇게 많은 나의 이명이 있을수록 더 (짱) 센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요. 가끔 넘어져도 또 다른 내가 일으켜줄 거라고 믿으면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 같은 두려움은 잠시 잊고 다음엔 또 뭐가 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용감한 직장인이 되자고 다짐해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브랜딩도, 기획도, 마케팅도 뭐 하나 쉬운 건 없어요. 브랜드를 알리자는 목표는 한결같지만 그 방법은 계속 달라지고요. 하나를 이제 좀 할 줄 안다 싶으면 또 새로운 걸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마케터분이 ‘내가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길은, 장인이 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모든 것이 되는 것일지 모르겠어요. 늘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나다운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다시 초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기보단 물처럼 흐르는 사람이 되는 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콘텐츠에 달린 댓글 중 일부
S***님의 댓글 : 아란차장님은…인간 콘텐츠 그 자체인가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알차고 재밌는지.
L**님의 댓글 : 진짜 지독히 얽히고 싶은 아란차장님
필자소개
조아란 민음사 콘텐츠 기획팀장은 12년 경력의 출판사 마케터다.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구독자 8만 명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제작자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입덕’ 영상으로는 그의 일상과 일터를 구경할 수 있는 ‘마케터의 갓생살기’ 시리즈, 문화생활 언박싱을 빙자한 본격 소비 시리즈 ‘문박싱’이 있다.
사진제공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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