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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power woman

한경애 코오롱FnC 전무 “‘된다’고 생각하니까, 한다”

글 문영훈 기자

2022. 02. 08

코오롱FnC가 ESG 경영을 선언하며 회사에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패션업계 파워 우먼으로 불리는 한경애 전무가 그 자리를 맡았다. 그는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일”이라고 했다. 궁금해졌다.

“CEO가 재무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CSO는 비재무적 성과를 책임져요. 지금까지 매출과 이익 극대화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가치’를 만들어내야죠.”

한경애(60) 코오롱FnC 전무는 2021년 12월부터 CSO 겸 코오롱스포츠 총괄 업무를 맡게 됐다.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는 지속 가능성에 바탕을 둔 브랜드 운영 및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자리로 지난해 12월 코오롱FnC 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됐다. ESG가 경영 전략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 현실이 드러난다.

초대 CSO로 한 전무가 선택된 이유가 있다. 그는 2012년 자사 재고를 활용해 새로운 옷을 만드는 브랜드 ‘래;코드(RE;CODE·래코드)’를 기획해 10년간 운영했다. 론칭 당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을 넘어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이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다. 오히려 싼값에 빠르게 제작하고 소비하는 패스트패션 산업이 대세였다. ‘지속 가능성’이 패션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래코드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BTS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방문 당시 입은 슈트가 래코드의 옷이다.

해체와 재조립의 선순환

1월 10일 코오롱스포츠는 제주특별자치도 탑동에 ‘솟솟 리버스’ 매장을 오픈했다.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 폐기물로 필요한 가구를 만들었다.

1월 10일 코오롱스포츠는 제주특별자치도 탑동에 ‘솟솟 리버스’ 매장을 오픈했다.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 폐기물로 필요한 가구를 만들었다.

1월 11일 서울 용산구 래코드 노들섬 지속가능스튜디오에서 한 전무를 만났다. 옷을 생산하는 공방뿐 아니라 간단히 수선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리폼해주는 ‘박스 아틀리에’, 버려지는 카시트나 에어백 등 다양한 산업 폐자재를 이용해 만든 액세서리 판매 기계 등 다채로운 물건과 업무 공간 사이의 경계가 흐렸다. 해체주의를 표방하는 래코드의 공간다웠다. 한 전무는 스튜디오 이곳저곳에서 래코드 옷을 여러 번 갈아입으며 포즈를 취했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1984년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 입문한 한 전무는 1995년 코오롱상사로 옮긴 뒤 28년간 코오롱FnC 성장을 견인했다. 그의 대표 브랜드는 앞서 설명한 래코드와 2006년 론칭한 ‘시리즈;(series;·시리즈)’다. 한 전문가 브랜드 이름에 즐겨 사용하는 세미콜론 이야기부터 꺼냈다.



세미콜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옷은 보통 원단으로 만들죠. 래코드는 달라요. 제품 형태로 이미 완성된 옷을 해체하고 재조립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해요. 다시(re)와 방식을 의미하는 코드(code) 사이를 세미콜론이 연결하는 거죠. 옷을 새로 만드는 과정 사이에 ‘생각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어떤 생각이죠.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해체와 재조립 과정에는 인력이 필요하죠. 회사 차원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손재주가 좋은 노인분들을 생각해 노인복지회에 방문했어요. 실밥 같은 걸 뜯어야 하는데 눈이 어두운 분이 많아서 곤란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장애인이나 새터민, 미혼모와 협업하기 시작했죠. 샘플사·봉제사·수선사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고 계세요. 저희도 그 분들 도움을 받으면서 경제적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면 수익을 내기 어렵지 않나요.

래코드는 일반 패션 비즈니스와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자와 함께 가는 기여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어요. 래코드 마크는 원 네 개로 이뤄져 있어요. 환(環)의 개념이죠. 우리가 버린 것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그분들이 다시 누군가를 도와주는 선순환도 이뤄질 수 있어요.

독자들이 일상 속에서 친환경 패션을 시도할 방법도 있을까요.

요즘엔 수선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보통 옷에 구멍이 나면 버리잖아요.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 다른 나라로 수출돼 누군가 입을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은 버려져요. 버리는 대신 와펜을 붙여 옷을 다시 살리는 거죠. 예전에는 그게 가난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요. 옷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거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수선은 새로운 디자인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래코드에서는 옷을 복원하는 작업도 하고 있죠. 고객들이 자신에게 의미가 큰 옷을 갖고 오세요. 돌아가신 아버지 옷을 다시 입고 싶다는 식이죠. 요즘엔 소재가 좋아서 오래된 옷도 옷감이 상하거나 썩는 일은 없어요. 그걸 되살려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수선은 그가 2006년 론칭한 남성 편집 숍 브랜드 ‘시리즈’에서 지난해 3월 발간한 29호 매거진의 주제이기도 하다. 브랜드 출범과 동시에 매년 봄가을 각 한 권씩 출간해온 ‘시리즈 매거진’의 주제는 브랜드 총괄을 맡아온 그의 관심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브랜드를 만들며 그 정체성을 나타내는 매거진을 함께 발간한 이유를 묻자 “옷과 함께 ‘생각’을 남성 고객들에게 전달해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경험과 잡지로 채운 머릿속 라이브러리

그간 어떤 주제를 다뤘나요.

2007년 다룬 첫 주제가 환경문제였어요. 너무 빨랐죠(웃음). 독자를 남성에만 국한한 건 아니고 보통 사람이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지려고 했어요. 그 외 다뤘던 주제로 ‘동네’ ‘음식’ ‘전통’ 등이 기억나네요.

지금 ‘힙하다’고 분류되는 걸 다 이전에 다뤘군요.

그런 셈이죠(웃음). 제가 트렌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트렌디한 건 디자인이 강한 걸 의미하죠. 저는 브랜드의 철학에 집중했어요. 새로운 접근을 한 거죠. 수치로 빨리 드러나지 않는 방식이라 위기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윗사람들을 설득해가며 그 길을 갔어요. 이제는 오히려 장점이 됐죠.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는 편입니다. 새롭게 생기는 공간에도 자주 가봐요. 집에서는 책이나 콘텐츠를 자주 보죠. 특히 잡지를 많이 봅니다. 패션뿐 아니라 리빙, 라이프 관련 잡지를 닥치는 대로 보면 그게 머릿속에 남아요. 각각의 정보가 연결되기도 하고요. 나중에 필요할 때 그 라이브러리 속에서 꺼내오는 거죠.

그래서인지 2016년 론칭한 시리즈의 세컨드 브랜드 ‘에피그램(epigram)’을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시리즈 매거진’ 주제로 의식주 가운데 ‘주(住)’를 다루면서 앞으로 리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겠구나 생각했어요. 래코드가 환경을 고려하면서 사회적 약자와의 협업에 초점을 둔다면 에피그램은 ‘로컬’을 지원하는 의미가 있어요. 지역 특산물을 매장에서 판다거나 에피그램 이름으로 오래된 한옥 숙소를 리노베이션하는 방식이죠. 그 전에는 젊은이나 외국인이 한옥 숙소를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저희가 로컬과 전통을 재해석해 전달력을 높이려 합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브랜드가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방식이 아니라 쉽게 풀어보자는 마음입니다. 아주 작은 계몽 운동으로 볼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는 회사가 고객들에게 옷을 팔아 이익을 취했죠. 그 이익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해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사회에서 충분한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생각합니다.

한 전무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게 아니죠. 최근 제주에 ‘솟솟 리버스’라는 이름의 코오롱스포츠 매장을 열었어요.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폐기물로 필요한 가구를 만들었어요. 패션업계에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브랜드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저도 아직은 어떻게 이익을 낼지 솔루션을 명확하게 마련하지 못했지만 결국 산업은 이익을 창출해야 지속 가능하죠. 다행히 사회나 환경 영향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어요.”

브랜드 철학이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만으로 누구나 전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업무 역량이 드러나는 사례가 있다. 한 전무는 2019년 코오롱스포츠 총괄로 선임됐다. 그가 수장을 맡은 뒤 코오롱스포츠는 다양한 리브랜딩 전략으로 2021년, 전년 대비 18%의 성장을 기록했다.

시키는 것만 하지 마라

요샛말로 ‘일잘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나요.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았어요. 제가 디자인만 잘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웃음). 디자이너로 일할 때 옷 만드는 것뿐 아니라 영업·디스플레이·마케팅·광고 등 옷과 관련된 모든 일에 관심을 열어뒀어요. 디자이너 시절 매장에 가서 제가 만든 옷을 직접 마네킹에 입히기도 했죠. 그래야 하나라도 더 팔리거든요.

사회 초년생에게 하는 조언으로 바꾼다면 “시키는 것만 하지 마라”가 되겠네요.

직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하나의 일에 ‘올인’하기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지라고. 물론 주어진 일은 잘해야 해요. 하지만 능력을 더 키워나가려면 가능성의 가지를 뻗어야 하죠.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어야 하고요. 장인이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은 사실 다 연결돼 있거든요. 또 강조하는 건 실패의 경험입니다. 직원을 선발할 때 저는 잘나가는 브랜드에 있던 친구는 안 뽑아요. 거기선 가만히 있어도 고객들이 옷을 사러 오죠. 실패를 해봐야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능력을 배웁니다.

전무님은 실패한 경험이 있나요.

많이 성장했지만 래코드는 아직 제게 아픈 손가락입니다(웃음). 그래서 오늘 인터뷰 후에도 관련 회의를 해요. 지금까지 프로젝트에 대한 리뷰를 하고 앞으로 더 업그레이드시키려는 거죠. 된다고 생각하니까 과정은 고단하지만 계속합니다.

3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오셨습니다.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동기부여는 어디서 받으시나요.

즐거움이죠.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그 브랜드가 성장해 어떤 분기점을 지나고, 더 나아가 시장에 반향을 만들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움을 줍니다.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지시나요.

요즘에는 정원을 가꿉니다. 운동은 꾸준히 해왔어요. 등산이나 수영, 사이클 등이죠. 운동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휴식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일한 만큼 내 몸과 정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거죠. 너무 일에만 몰입하다 밸런스가 깨져 문제를 겪는 사례를 많이 봤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걸 잘 아는 것 같아요.

한 전무에게 “여성 임원으로서 후배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고 하자 한 전무는 멋쩍은 듯 답하길 저어했다. 한 전무와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래코드 브랜드 매니저가 그를 대신해 답했다.

“코오롱FnC에서 전무 직급은 두 분이에요. 그중 한 사람이 여성인 거죠. 여성이 전무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계신 거예요.”

한 전무는 “(전무 되는 거) 어려웠는데?”라고 반문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했죠. 네, 제가 임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도 했고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건 개인적인 성향인가요. 아니면 여성으로서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나요.

목표가 애초부터 승진이었으면 다른 방법을 찾았겠죠.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목표를 미리 정하고 나아가는 것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목표를 정해나가는 것. 물론 후자의 경우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긴 합니다(웃음).

여성으로서의 장점은 뭘까요.

제 경우로 보면 디테일이죠. 특히 패션 업무는 디테일이 생명입니다. 공감 능력도 있어요. 물론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웃음).

한경애’s Book

사막별 여행자 | 무사 앗사리드
사하라 사막에 사는 한 유목민 소년이 야영지 주변을 걷던 기자에게 책 ‘어린 왕자’를 선물 받은 후 펼쳐지는 마법 같은 이야기.

“제가 잘하는 분야가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헤르만 헤세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솜씨 좋은 원예가이기도 했다. 그가 31~77세 사이에 자연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

“요즘은 정원 가꾸기에 빠져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연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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