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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약 아닌 여성 공약?” 대선 후보 4인 공약 톺아보기

대선 후보 4인 여성 공약 톺아보기

글 문영훈 기자

2022. 01. 31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정쟁 속에 ‘공약이 보이지 않는’ 대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를 ‘손절’하고 싶은 독자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투표는 여전히 민주주의 꽃이다. 3월 9일 현명한 한 표 행사를 돕고자 여성 관련 공약을 정리했다.

20대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 국면이 치열해지고 있다. 예상을 뒤엎는 혼전 속에서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이도 많다. 특히 여성 표심이 유동적이다. 1월 10~13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견 유보’를 택한 여성(13%)이 남성(8%)보다 많았다. 지난해 4·7 재보선 이후 ‘이대남(20대 남자)’ 표심의 향방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지만, 같은 조사에서 부동층 비율이 20%에 달하는 20대 절반은 여성이다. (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3월 9일 현명한 선택을 돕고자 주요 대선 후보의 여성 관련 정책 공약을 정리했다. 1월 19일 기준 각 후보 공식 홈페이지 및 SNS 발언을 바탕으로 했다.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소속 당의 국회의원 비율 순서) 후보의 관련 공약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여성 안전 △경력단절 해소 및 보육 △여성 건강이다.


이재명
박스권 벗어나려 여성 유권자 공략
“왜 저에게 친여성적이지 않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월 19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이 후보는 여성 경력단절 해소 및 보육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공공 부문에서 먼저 직급·직종 등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상세히 공개하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를 시행하고 민간 영역으로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 △육아휴직 부모 쿼터제 △자동 육아휴직 등록제 등을 제시했다. 국민의힘이 ‘세대포위론’을 내세우며 이대남 공략에 나서자 여성 표심을 잡아 30% 지지율 박스권을 탈피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젠더 폭력 근절도 이 후보가 내세우는 여성 공약이다.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지난해 데이트 폭력·스토킹 살인 등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 눈에 띄는 공약으로는 △디지털 성범죄 전담수사대 및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설치 △국제공조 담당 전문 인력 확충 △플랫폼 사업자 책임 강화 등이 있다. 이 후보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를 세우는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도 약속했다. 데이트 폭력에 한해 형법의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할 수 없음)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여성 건강 관련 내용은 ‘소확행’ 공약 시리즈에 포함됐다. △산부인과 명칭을 여성건강의학과로 바꿔 미혼 여성의 접근성을 높이고 △공공 산후조리원을 확충해 산모와 신생아가 합리적인 가격에 적절한 산후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윤석열
돌봄, 범죄 피해자에 집중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월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내용이다. 충분한 설명 없이 게시한 단 7글자는 곧 여성가족부 존폐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대남을 등에 업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월 12일 ‘주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여성들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자평했다. 윤석열 캠프는 2030과 60대 이상 지지율을 결합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세대포위론’을 앞세우며 4·7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야당을 지지한 이대남 공략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윤 후보가 여성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일부 남성 유권자들을 의식한 듯 ‘돌봄’ ‘범죄 피해자’ 등의 키워드로 감쌌다.

윤석열 캠프에서 가장 먼저 꺼내놓은 여성 관련 키워드는 돌봄이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경선 후보 시절 윤 후보는 ‘영유아 보육·초등 돌봄 육아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0~2세 아동에 대한 육아수당을 월 30만원씩 지급하고 △육아휴직을 확대하며 △근로시간 단축청구권 사용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1월 18일 윤 후보는 ‘서울신문’과 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성평등 공약을 새롭게 제시했다. 각 기업이 채용 시 지원자 및 단계별 합격자 등의 성별 비율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직원에 대해서도 부서별 성비와 승진자 성비, 성별 임금 격차 등을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성별근로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 후보가 공약한 ‘고용평등임금공시제’와 유사하다.

건강 측면에서 여성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놓은 것 또한 이 후보와 비슷하다. 윤 후보는 △난임 지원에 대한 소득 기준 폐지 △임신·출산 전 건강검진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 등의 방안을 통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젠더 폭력과 관련해서는 이수정 전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제도’ 공약이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통합 전담 기관 신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삭제 지원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이 골자다. 당시 이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에게 “‘여성’이 아니라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고 했지만 성범죄 피해자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여성 안전 관련 공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이 전 선대위원장이 선대위를 떠났지만 그와 관계없이 피해자 보호 공약은 유효한 것”이라며 “앞으로 내놓을 더 많은 여성 공약이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여성 목소리 울려 퍼지게
“녹색과 여성과 노동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유력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 발언이다. 지지율 저조 등의 문제로 1월 12일 돌연 모든 일정을 중단했던 심 후보는 닷새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저와 정의당의 재신임을 구하겠다”며 복귀했다. 이날 심 후보는 “노동이 사라지고, 여성이 공격받고, 기후위기가 외면당하고 있는 대선”이라고 덧붙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는 당의 색깔을 더 도드라지게 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여성 비율이 40%를 초과하는 ‘성평등 내각’이 구성될 전망이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시한 30%보다 10%p 높은 수준이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취지로 내놓은 △육아휴직 아빠 할당제는 이 후보의 ‘육아휴직 부모 쿼터제’와 동일한 내용이다. 심 후보는 여성 공약에 정의당의 ‘장기’인 노동 분야 전문성도 추가했다. △전 국민 육아휴직제로 플랫폼·특수고용·자영업자 역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심 후보의 약속이다. 이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심 후보는 미혼모와 한부모가정을 위한 공약을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미혼모를 대상으로 지역사회 맞춤형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고 △시민동반자법을 제정해 가족의 범위를 확장시키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현재 법적 보호에서 소외된 이들이 제도적 혜택을 보도록 만들겠다는 취지다.

젠더 폭력과 관련해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지원 체계 강화 △디지털 성폭력 삭제 전담반 인력 및 예산 강화 등의 공약은 양강 후보와 비슷하다. 다만 △불법 촬영물 유통 앱에 대한 마켓 등록 일시 중단 및 차단 △권력형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등의 정책은 심 후보만 제시했다.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비동의 강간죄 제도화도 주목할 만하다.


안철수
이번 리세션은 쉬세션
“이번 리세션(Recession)은 쉬세션(She-cession)”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17일 대전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에서 여성 과학자들을 만나 꺼낸 말이다. ‘쉬세션’은 경기 불황으로 인한 여성의 대량 실업 사태를 의미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해 3월 ‘우머노믹스(Womanomics·여성 경제)’ 포럼에서 이 단어를 언급한 일이 있다.

대선 주자로 가장 늦게 합류한 안 후보의 여성 공약 개수는 타 후보에 비해 적은 편이다. 개수가 적은 대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해소와 젠더 폭력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 안 후보는 여성 과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형 전일제 학교 교육 시스템을 언급했다. 현행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늘려 방과 후 오후 7시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부처에 나뉘어 있는 돌봄 프로그램 정책 일원화 △공공보육시설 이용율 70% 달성 등을 공약으로 걸었다.

젠더 폭력과 관련해서는 심 후보와 요지가 비슷하다. △형법을 개정해 비동의강간죄를 만들고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모든 후보가 언급한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도 여성 안전 공약에 포함했다.


‘액션’이 중요하다

네 후보의 여성 공약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엇을 약속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공약을 잘 실천할지 여부”라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나 피해자 보호 관련 공약에 대한 ‘추적단 불꽃’의 평가를 들어봤다. 이들은 2020년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최초 보도한 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취재를 이어가는 청년 집단이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전문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추적단 불꽃 측은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자 대선 후보들이 관련 공약을 내긴 했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들의 말이다.

“이재명 후보나 심상정 후보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비교적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심 후보의 ‘앱 마켓 사업자 등록 일시 중단 및 차단’ 공약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SNS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으로 보인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의 사이버 범죄조약 가입도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각 후보가 제시한 모든 공약이 이행됐으면 한다.”

추적단 불꽃은 추가로 필요한 공약으로 △디지털 성범죄 수사 및 성착취 영상 삭제 인력 확충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양형 감경 사유에 대한 재검토 등을 제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청년 여성의 정신 건강과 노년 여성의 빈곤 문제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해결할 공약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 건강이나 빈곤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여성에게 관련 문제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젊은 여성들의 정신 건강 문제는 사회 진출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가족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야?

이번 대선 정국에서 각 후보의 여성 공약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여성가족부 존폐 및 개편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윤 후보가 1월 7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는 대선 판을 흔들어놓았다. 다음 날 윤 후보는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방침은 그러하고 조금 더는 생각해보겠다”고 짧게 코멘트했다. 1월 19일 윤 캠프 측은 여성동아에 “여가부의 중요한 기능을 살린 채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을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여가부에서 수행하던 업무의 경우 근거법이 있기 때문에 정부 조직을 개편해서라도 차질 없이 수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후보를 제외한 세 후보는 여성가족부 개편 의견을 내고 있다. 이 후보는 여가부의 이름을 (성)평등가족부로, 안 후보는 성평등인권부로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심 후보는 성평등부로 격상하고 ‘아동청소년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잘못된 정책은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여가부가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인권 개념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와 실현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정부 부처”라며 “특히 가정이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성추행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가 어떤 명칭으로 어떻게 변하든지, 이 부처가 추구해 온 가치와 활동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그간 여성과 가족이 합쳐진 여성가족부 명칭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바 있다”며 “사실 성평등은 모든 정부부처를 비롯한 공공기관, 민간에 적용돼야 할 철학이다. 그간 여가부가 해온 일이 제대로 제도화만 된다면 따로 부처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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