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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바다’ 제작자 정우성, 금기에 도전해온 29년

글 오홍석 기자

2022. 01. 18

배우 정우성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제작자로 돌아왔다. 한국 사회의 금기에 도전해온 그가 국내 최초 SF 스릴러물 제작에 뛰어든 심정은 어땠을까.

한국 사회는 유달리 연예인에게 엄격하다. 책잡힐 거리가 될 수 있는 정치적 발언은 금기시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우성(49)은 세월호, 난민 등 여러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이에 도전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뒤 29년째, 살아남기만 해도 인정받는 연예계에서 그는 내내 정상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제는 적당히 만족하며 영광을 누릴 만도 한데 제작자로, 연출자로 커리어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정우성이 최근 제작을 맡은 작품은 한국형 SF 스릴러를 표방하는 ‘고요의 바다’.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한 8부작 드라마다. 위기에 빠진 인류의 살길을 찾고자 달로 떠나는 탐사대원들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직후 글로벌 순위 3위에 올랐다.


“좁은 공간에서 스릴 일으키는 한국적 SF”

2021년 12월 22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제작발표회.

2021년 12월 22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제작발표회.

고요의 바다’는 일찍부터 정우성이 제작을 맡고 배두나·공유·김선영 등 쟁쟁한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만큼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글로벌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우성은 이에 대한 질문에 “부담이 컸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동안 TV를 통해 공개된 정우성의 이미지는 장난스러운 쪽에 가까웠다. 그는 인터뷰어가 “잘생겼다”고 하면 “알고 있다. 그런 칭찬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받아치며 좌중을 웃기곤 했다. 하지만 ‘고요의 바다’를 주제로 인터뷰할 때는 사뭇 달랐다. 그는 한없이 진지하고 겸손했다. 매 순간 조심스레 단어를 골라가며 답을 내놓았지만, 어떤 질문에도 막히는 법은 없었다. 정우성이라는 사람이 이 작품에 기울인 노력과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고요의 바다’가 넷플릭스 공개 직후 글로벌 순위 3위를 기록했습니다. 배우일 때와 제작자로서 평가받을 때 기분이 좀 다를 것 같은데요.

배우로 작품에 출연할 때는 ‘내가 캐릭터를 얼마나 잘 구현했을까’ 한 가지만 신경을 썼어요. 제작자는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을 지켜봐야 하더군요.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연말을 정신없이 보냈죠.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평가에 대해 냉정하게 듣고,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 계속 고민 중이에요.

‘고요의 바다’ 원작은 연출자 최항용 감독이 대학 졸업 작품으로 완성한 동명의 단편영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류가 물을 찾아 달로 간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어요. 캐릭터들이 한정된 공간 안에 있고, 그 속에서만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스릴을 일으킬 수 있어 한국적인 SF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6년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을 맡았는데, 그사이 제작자로서 노하우가 좀 쌓였나요.

노하우나 기술이라고 할 건 없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는 여러 후배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로서 협력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고요의 바다’를 제작하면서는 ‘어떻게 다듬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최항용 감독이 연출 의도에 대해 좀 더 고민하도록, 그를 끊임없이 내몰기도 했죠.

한국은 SF 불모지라고 불립니다. ‘고요의 바다’를 만들면서 참고한 작품이나 벤치마킹한 제작자가 있나요.

없어요. 그나마 참고한 게 있다면 1969년 인류가 달에 갔을 때 찍은 영상이에요. 달의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 수준이잖아요. 그 환경에서 사람과 우주선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하려고 관련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저는 영화 ‘보호자’를 연출할 때도 레퍼런스를 보여주겠다는 주위 분들 제안을 다 사양했어요.

“넷플릭스, 도전 정신 이해하고 손 내밀어”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촬영 현장. 비상 착륙하는 우주선 촬영을 위해 세트를 기울여 놓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촬영 현장. 비상 착륙하는 우주선 촬영을 위해 세트를 기울여 놓았다.

‘고요의 바다’에 대해서는 호평과 혹평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나요.

장르물이다 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가장 좋은 말은 “재밌게 봤다”인 것 같습니다. 또 “도전을 응원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제가 관객들에게 제 도전을 응원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도 제 도전을 알아봐 주신 사실에 감사했어요.

정우성은 인터뷰 내내 ‘도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 장르를 처음 시도한 것, 단편영화였던 원작을 장편에 해당하는 8편 분량으로 늘린 것 모두가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도전을 가능케 한 배경에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요의 바다’ 제작을 염두에 두고 국내 배급사와도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그런데 작품에 ‘흥행을 위한 안전장치’를 넣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고요의 바다’의 생명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인데 그것이 훼손된 상태에서 이 작품의 세계관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 ‘해외 배급사들은 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마침 넷플릭스가 손을 내밀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OTT의 부상으로 대중문화의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작자로서 현장에서 체감하는 부분이 있나요.
코로나19가 변화를 앞당긴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없었어도 OTT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건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OTT가 한류 콘텐츠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인으로서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한국 영화에 관심을 보인 한 나라에서 DVD가 출시되면 입소문을 타고 옆 나라에 전파되는 식이었죠. 인기를 끌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지만, 작품 완성도 면에서 훌륭했기에 OTT가 대세가 되기 전에도 한류에 대한 확신은 있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죠. 전 세계인이 동시에 한국 작품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즐겁고 벅찬 환경입니다.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제는 작품을 만들 때 세계 관객들이 우리 콘텐츠를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에 대해서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코로나19가 끝나도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젠가 우리는 코로나19를 극복하겠죠. 코로나19 종식 이후 관객들이 다시 극장으로 오셔서 OTT와 극장 문화가 양립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배우들 집중 흐트러질까 카메오 출연도 고사

정우성은 “‘오징어 게임’ 신드롬 이후 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의 흥행 기준이 ‘오징어 게임’에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을 받고, 기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웃음을 터뜨리며 “가혹하다”고 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은 단순히 흥행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진 작품”이라며 “이런 사례는 할리우드에도 몇 번 없다. 각각의 작품에 다른 기준을 갖고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고요의 바다’를 제작하며 배두나, 공유 두 배우와 함께 작업을 하셨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이 있나요.

배두나 배우는 캐릭터(송지안 박사)가 갖고 있는 감정을 현장에 짊어지고 오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연민, 그리움 같은 것들요.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 걱정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쾌활한 장면을 촬영하는 날에는 또 밝은 모습으로 와요. 무게 추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느꼈습니다. 공유 배우는 자기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을 텐데 항상 송지안 반 발자국 뒤에서 연기했어요. ‘고요의 바다’를 제작하면서 두 사람을 알게 된 건 작품 외적으로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두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은데요.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어요. 배우로서 제가 선배인 데다 제작자이기도 하니 후배들과 의견 교환이 단순한 교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한마디를 해도 배우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습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있어야 배우들에게 부담을 덜 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카메오 출연을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카메오 출연이요(웃음). 잠깐 얘기가 나오긴 했는데 배우들 시선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아 안 한다고 했어요. 마지막에 소심하게 목소리로만 출연했습니다.

정우성은 이렇게 매 순간 고민을 거듭하며 현장을 지켰다. 공유는 제작발표회에서 “정우성 선배님이 하루도 안 빠지고 촬영장에 나오셨다”며 “배우여서 그런지 어떻게 해야 배우가 편안한지 잘 알고 세심하게 케어해주셨다”고 미담을 풀어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우성은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 촬영 현장에 간식 테이블도 설치했다.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면 달 표면에 남은 지구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직접 빗자루를 들고 세트장 바닥을 쓸기도 했다고 한다.

‘고요의 바다’ 제작이 배우로서 정우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나요.

네. 젊은 시절의 정우성을 돌아보게 됐죠. 또 작품이 추구하는 세계관, 작품을 떠나 앞으로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 배우 정우성, 그리고 제작과 연출을 꿈꾸는 정우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부쩍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 배우, 제작자 이외의 도전도 생각하고 있나요.

아니요. (손사래를 치며) 지금 하고 있는 것부터 잘해야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앞으로의 과제예요. 이번 작품을 제작했다고 해서 다음 작품이 더 쉬워질 것 같지는 않네요.

‘고요의 바다’가 시즌 2에 대한 여지를 남긴 상태에서 마무리됐는데요.

작업을 마치고 ‘과연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요청이 오면 잘해내야죠(웃음). 잘해내기 위해 어떤 요소를 보완해야 할까 고민하고는 있어요.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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