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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olumn

MZ세대가 턴테이블과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열광하는 이유

#Digitalized Analog

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2021. 12. 03

이번 시즌 럭셔리 브랜드의 캠페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셀린의 ‘틴 나이트 포엠(Teen Knight Poem)’ 광고를 선택할 것이다.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포토그래퍼로도 훌륭한 역량을 지닌 셀린의 수장 에디 슬리먼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스트리트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프랑스의 고성(古城)에서, 랩 베이스 음악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잘 융합시키며 독특한 분위기로 표현해냈다.

프랑스의 고성에서 진행된 셀린의 2021 F/W 컬렉션.

프랑스의 고성에서 진행된 셀린의 2021 F/W 컬렉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수없이 많은 캠페인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이번 셀린의 캠페인이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에디 슬리먼의 신선한 접근법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시즌을 위해 촬영한 광고 사진을 프린트해서 광고판에 붙이는 대신, 뉴욕 소호 우스터 스트리트의 건물 벽에 마치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타임랩스(Time-lapse, 저속촬영해 정상 속도보다 빨리 돌려서 보여주는 기법) 영상으로 담아내 브랜드의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SNS에 업로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디지털로 풀어내는 접근법인 것이다.

셀린뿐만이 아니라, 최근 들어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찌는 스페인 출신의 젊은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과 함께 구찌 로고 위에 그녀의 손 글씨를 새긴 컬렉션을 진행해 주목받았다. 특히 구찌의 클래식한 로고 위에 ‘Common Sense Is Not That Common(상식은 그렇게 상식적이지 않다)’라는 손 글씨가 새겨진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2017년, 코코 카피탄 컬렉션이 진행되던 즈음, 그녀의 손 글씨가 베이스가 된 작품이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의 한 건물 외벽과 뉴욕 소호의 라파예트 스트리트 외벽에 그려졌는데, 그 당시에도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디지털화 된 콘텐츠가 난무하는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들 속에서 손 글씨를 전면에 내세운 구찌의 이 아날로그적 행보는 패션 업계에도, 소비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콘텐츠를 다시 한번 디지털적으로 변환해서 즐기는, 즉 디지털라이즈드 아날로그(Digitalized Analog)라는 트렌드는 요즘 세대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에서는 완벽하게 디지털화된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SNS에 올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화된 세상 안이라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직접 손이 가는 아날로그적인 터치를 더한 디지털 콘텐츠에 진심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세상이 디지털화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디지털로 누구나 쉽게 만드는 콘텐츠보다는 뭔가 실제로 만들어서 시간과 수고가 더해진 아날로그적인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키는 작업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아날로그적 터치를 더한 디지털 콘텐츠의 인기

뉴욕 소호 거리 건물 외벽에 붙은 코코 카피탄의 너무나 인간적인 손 글씨.

뉴욕 소호 거리 건물 외벽에 붙은 코코 카피탄의 너무나 인간적인 손 글씨.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새로움은 분명 큰 의미가 있고, 대단한 영향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주요한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는 하늘 아래에서 처음 등장한 새로움만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라 해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신선한 기준으로 판단하며, 참신한 방법으로 해석해낼 수만 있다면 트렌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긴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지금은 MP3조차 오래된 음악 파일로 취급 받으며, DSD나 DFF 혹은 윈도즈 기반의 WAV, 맥 기반의 AIFF 등 소위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 파일이 존재한다. 하지만, MZ세대들은 발전된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기기에서 최상의 음질로 음악을 즐기기보다 그들이 한 번도 접한 적 없었던 이전 시대의 산물인 LP를 턴테이블로 듣는 음악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LP 가게들이 다시금 힙한 장소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전축이나 데크 등 그 시절의 음악 기기는 빈티지로 불리며 상태만 좋으면 없어서 못 살 정도로 인기다. 특히 스피커는 오래된 것일수록 구하기가 힘들어 프리미엄까지 붙으며 부르는 게 값일 경우도 허다하다. 뿐만 아니다. 서울 성수동부터 최근 핫한 플레이스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신용산 일대에는 이름난 DJ가 운영하는 LP 바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그곳에는 이전 시절의 음악이 그리워 들르는 세대보다는 그 시절 노래를 처음 접하지만 그저 신선하고 좋아서 찾는 MZ세대의 비율이 훨씬 높다.

특히 아날로그가 디지털과 만나면서 시너지는 더욱 커지고 있다. 턴테이블을 만들던 회사들이 LP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해 재생하는 기기를 출시하는가 하면, 카세트테이프에 들어 있는 음악을 MP3 파일로 전환해 재생하는 기기도 등장했다. 젊은 세대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패션 셀렉트 숍,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매장에서도 LP와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는 별도 코너가 생기고, 그것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비단 음악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폴라로이드 같은 즉석 카메라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다시금 트렌드의 전면에 부상했고, 과거의 홍보 방식이었던 포스터를 인쇄해 거리에 붙이는 수고로운 작업을 하는 브랜드에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물론 더욱 더 많은 곳에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더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기 위해서는 포스터를 인쇄하는 과정부터 거리에 붙이는 작업까지 디지털화된 영상을 촬영해서 SNS 채널을 통해 홍보를 재생산하는, 디지털화된 아날로그적 움직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글로벌 패션·뷰티 트렌드 최전선의 마케팅 인사이트를 담은 저서 ‘프레시니스 코드’(리더스북)을 펴냈다.



사진제공 셀린 코코카피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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