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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museum

인간이라는 화두 들고, 대중 속으로 들어오다! 리움의 귀환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10.26 11:04:03

리움미술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1년 7개월 만에 손님맞이에 나섰다. 달라진 외관부터 4년 만에 선보인 기획전까지, 곳곳에서 오랜 고민과 성찰의 흔적이 느껴진다. 
리뉴얼을 마친 로비 공간. 안내 데스크는 이배 작가의 작품 ‘불로부터’이다.

리뉴얼을 마친 로비 공간. 안내 데스크는 이배 작가의 작품 ‘불로부터’이다.

2004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존재만으로 큰 의의를 지닌다. 개관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관장을, 여동생 홍라영 씨가 총괄부관장을 맡아 하나부터 열까지 챙긴 리움미술관은 동양화, 도자기 등 각양각색의 국보급 고미술품을 비롯해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 쉽게 볼 수 없었던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2017년 3월을 기점으로 리움미술관의 상황은 급반전됐다.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부관장이 동반 사임하면서 장기간 주요 직책이 공석으로 남았고 ‘미술관의 꽃’이라 할 기획전까지 중단돼 아쉬움이 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2월부터는 아예 전면 휴관에 들어갔던 리움이 10월 8일 다시 문을 열었다.

1년 7개월 만에 돌아온 미술관은 ‘리움 2기’라고 할 만큼 모든 것이 달라졌다. 로비와 내부 전시 공간 곳곳을 개보수한 것은 물론, 미술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MI(Museum Identity)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I를 디자인한 울프 올린스사에 의뢰해 변경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상설전에도 변화가 생겼다. M1 전시실의 ‘한국 고미술 상설전’에서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국보급 유물을 선보인 것. 국보 6점을 비롯해 보물 4점, 현대미술 6점 등 고미술 작품 1백60점이 대중에게 공개됐다. 또 M2 전시실의 ‘현대미술 상설전’에는 전통 수묵화부터 현대 추상화까지 총 76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처음 공개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김성원 부관장의 진두지휘 아래 4년 만에 준비한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Human, 7 questions)’은 앞으로 리움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케 했다. 국내외 유명 작가 51명의 작품 1백30여 점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의미와 급변하는 미래를 성찰하도록 했다.

개관일에 찾은 미술관 입구에는 중첩된 반구 형태의 흰색 MI가 내걸려 있었는데, 기존에 글자로만 돼 있던 MI에서 탈피해 상징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리움미술관의 리뉴얼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듯했다.

입구를 통과하면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비 중앙 천장과 바닥을 지탱하는 육중한 크기의 검은색 기둥들은 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했고, 그 사이 천장의 원형 홀에서 뿜어져 내리는 은은한 자연광은 신비로움을 배가시켰다. 이는 김수자 작가의 작품 ‘호흡’으로, 창문과 천장에 특수필름을 부착해 날씨의 변화에 따라 오로라 빛 스펙트럼이 펼쳐지도록 한 설치미술이었다. 원형 홀 바로 아래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신 앞에 선 듯 경건해지는 기분이었다.

흑백으로 정돈된 로비에는 시선을 끄는 요소들이 많았다. 입장권 발급과 디지털 가이드 대여가 이뤄지는 안내 데스크는 숯을 이용해 다양한 작업을 해온 이배 작가의 작품 ‘불로부터’였다. 2백40여 개의 숯을 벽 쌓듯 14m 길이로 세워 웅장함이 느껴졌다. 바로 옆에는 462인치 크기의 대형 디스플레이 ‘미디어 월’이 설치돼 있었는데,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작품 ‘태고의, 2’ ‘화환’ ‘보이지 않는 눈 6’ 등이 차례로 상영됐다. 디지털 렌더링 기술을 이용해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형상을 섬세하게 연출하는 3D 애니메이션의 선구적 작가 작품답게, 독보적인 영상미가 눈을 즐겁게 해 그 앞에서 한참 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안내 직원이 이번에 미술관 측이 공들여 준비한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기획전을 먼저 둘러볼 것을 권유해 지하 2층 그라운드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울 보기, 펼쳐진 몸, 일그러진 몸, 다치기 쉬운 우리, 모두의 방, 초월 열망, 낯선 공생 등 소주제 아래 1백30여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기획전시실로 내려가는 길목에 사선으로 나란히 세워진 3개의 조각상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첫 번째 작품은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60년에 제작한 청동 조각 ‘거대한 여인 Ⅲ’로,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여인상이다. 어딘지 모르게 처연함을 풍기는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했던 자코메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내려가면 미국의 조각가 조지 시걸이 1983년 제작한 청동 조각 ‘러시아워’가 보인다. 여섯 사람이 같은 방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작품으로 무표정한 얼굴에서 현대인의 무거운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기획전시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은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마스크 Ⅱ’로 잠든 남성의 얼굴이 뉘어 있다.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놓은 작품으로 조각상이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말을 건넬 것 같았다. 이 외 앤디 워홀, 이브 클렝, 루이즈 부르주아 등 이름만으로도 작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고 백남준, 김아타, 이건용, 니키 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도 각각 위용을 드러낸다. 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설치미술가 이불의 ‘사이보그 W1, W2, W4, W6’였다. 커다란 유리 박스 안에 사이보그 형태의 모형을 절개해 표현한 작품인데, 만화적이면서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케 하는 자태가 인상적이다.

1 인간 일곱 개의 질문_전시도입부 전경.

1 인간 일곱 개의 질문_전시도입부 전경.

2 론 뮤익_마스크 Ⅱ.

2 론 뮤익_마스크 Ⅱ.

3 피에르위그_이상(理想)의.

3 피에르위그_이상(理想)의.

4 김옥선_미련과 스테판.

4 김옥선_미련과 스테판.

5 이브 클랭_대격전(ANT103).

5 이브 클랭_대격전(ANT103).

6 이불_사이보그 W1 W2 W4 W6.

6 이불_사이보그 W1 W2 W4 W6.

7 모두의 방_전시 전경.

7 모두의 방_전시 전경.

영롱한 자태에 빠져드는 고미술 상설전

국보급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고미술 상설전은 총 4개 층으로 나뉘어 열리고 있다. ‘푸른빛 문양 한 점’(4층), ‘흰 빛의 여정’(3층), ‘감상의 취향’(2층), ‘권위와 위엄, 화려함의 세계’(1층) 등 4가지 주제 아래 총 1백60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청자와 조선시대 선조들의 흰빛에 대한 애호를 보여주는 분청사기와 백자,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됐던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 지배자의 권위와 신앙의 상징물에서 예술로 승화된 금속공예 등은 보존 상태가 우수하고 가치가 높은 것들이어서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이 가운데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 특히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다. 고려시대 유물이 모여 있는 4층 전시실에선 고려청자 가운데서도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국보), 전면을 상감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청자 상감운학모란국화문 매병’(보물), 사각형의 고려청자 향로인 ‘청자양인각 모란문 방형 향로’ 등이 영롱한 자태를 뽐낸다. 미술관 측은 47점의 청자 소품실을 새롭게 조성해 저마다 만듦새가 다른 비색의 청자들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3층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50점이 전시돼 있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 우리나라에서만 제작된 고유의 자기로, 순백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장식이 돋보이는 ‘분청사기조화 모란문 편병’, 조선 왕실의 위엄을 엿볼 수 있는 ‘백자청화 운룡문 호’ 등이 시선을 끈다. 이외에도 3층에는 현대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는데 박서보의 ‘묘법 No. 14-81’은 분청사기의 장식 방법인 조화기법(분장한 흙을 선으로 긁어내는 기법)으로 그려낸 작품이어서 자연스레 고미술품과 조화를 이룬다.

2층 전시실에는 전통미술 가운데 감상의 목적으로 제작된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가 전시돼 있다. 김홍도의 대표작인 ‘군선도’(국보), 정조의 대규모 행차를 정교하게 묘사한 ‘환어행렬도’ 등 리움미술관을 대표하는 19점의 한국 고서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재개관과 함께 조선 전기 작품인 ‘산수도’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란도 대련’ 등 그동안 전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공개돼 찾아보는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1층 전시실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미술과 정교함이 돋보이는 공예품 43점이 전시돼 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백6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미타여래삼존도’(국보)는 그 존재만으로 관람객의 전율을 일게 한다. 또 통일신라시대 제작돼 우리나라 사경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국보), 이성계가 발원에 참여한 ‘은제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등도 새롭게 공개됐다. 특히 우리나라 공예 기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 공예품 가운데 14〜15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은 작지만 정교한 문양이 화려함을 뽐낸다. 세계적으로 희소한 나전 공예품 중에서도 뚜껑이 있는 팔각 그릇 형태는 유일한 것이어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미술 상설 전시 전경(1층).

고미술 상설 전시 전경(1층).

청자 소품실 전경.

청자 소품실 전경.

요시오카 도쿠진_워터 블록.

요시오카 도쿠진_워터 블록.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청자상감 국화모란문 호.

청자상감 국화모란문 호.

백자청화 운룡문호.

백자청화 운룡문호.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김홍도_군선도.

김홍도_군선도.

무한한 예술의 세계로 이끄는 현대미술 상설전

현대미술 상설전은 ‘검은 공백’(2층), ‘중력의 역방향’(1층), ‘이상한 행성’(지하 1층) 등 3개 주제 아래 펼쳐지고 있다. 먼저 ‘검은 공백’ 전시실에서는 전통 수묵화에서 현대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최만린의 ‘현(玄)’은 한자 ‘현’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는 검은빛의 오묘함과 심오함을 통해 우주의 깊이와 무한성을 표현했다. 폴 매카시의 ‘설백 난쟁이’는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풍자한 작품으로 순진무구해 보이는 대중문화 캐릭터들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력의 역방향’ 전시실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 위치한 나와 코헤이의 ‘에어셀-A_37mmp’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2개의 육면체 작품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무한히 분열하는 세포를 모티프로 했다. 작품을 뚫어지게 보노라면 벽과 바닥의 구분이 없는 흰빛으로 가득한 방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또 댄 그레이엄의 대표작 ‘슬라이스’는 강철과 유리 등으로 사람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았는데, 작가는 그 안에서 사람들 사이 어떤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는지 생각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행성’ 전시실은 관람객을 기이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최우람의 ‘쿠스토스 카붐’은 모래 위에 누워 있는 해골 위에 하늘거리는 홀씨를 가진 기계 생명체를 형상화한 작품. 작가는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가상의 기계 생명체를 창조해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모색하고자 했다. 겉에서 보면 마치 기도실처럼 보이는 작품인 볼프강 라이프의 ‘장소도 시간도 실체도 없는’은 내부에 꿀 내음의 천연 밀랍을 덧칠해 후각을 자극한다. 건너편 천장에 걸린 노란 고치 형태의 작품은 아니카 이의 ‘완두수염진딧물’ ‘점박이 도롱뇽’ ‘푸른 민달팽이’다.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안쪽에 로봇 곤충이 날아다니도록 만들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유기체와 인공물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을 통해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생각하게끔 했다.


현대미술 상설전 지하 1층 ‘이상한 행성’ 전경.

현대미술 상설전 지하 1층 ‘이상한 행성’ 전경.

아니카 이_완두수염진딧물, 점박이 도롱뇽, 푸른 민달팽이.

아니카 이_완두수염진딧물, 점박이 도롱뇽, 푸른 민달팽이.

최우람_쿠스토스 카붐.

최우람_쿠스토스 카붐.

줄리 머레투_석비 2(부두교).

줄리 머레투_석비 2(부두교).

이승조 핵 86-74.

이승조 핵 86-74.

아니시 카푸어_이중 현기증.

아니시 카푸어_이중 현기증.

최욱경_레다와 백조.

최욱경_레다와 백조.

전시를 마치고 지하 1층 로비 공간으로 나오면 리움 스토어와 캠프 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 카페가 있던 위치에 새 단장을 마친 리움 스토어는 나무와 한지를 사용해 우리 전통 건축 기술인 짜임과 격자 형태 구조물로 꾸며 세련미를 한껏 풍긴다. 이곳에선 공예 작가 6인이 제작한 미니어처 가구 시리즈를 비롯해 공예 분야 작가 29인이 만든 도자기, 금속공예품 등을 전시 및 판매한다. 바로 옆, 원래 안내 데스크가 있던 자리에는 이태원의 인기 카페인 챔프 커피가 위치한다. 다양한 메뉴 가운데 특별히 ‘리움 커피’를 개발해 판매하는데, 좌석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전시를 마친 후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야외를 둘러보며 여유를 즐기기 좋다. 리움미술관 전시는 연말까지 무료로 진행되며, 매시간 75명씩 하루 6백 명만 사전 예약제로 입장할 수 있다.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리움



여성동아 2021년 11월 6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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