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이주가 마무리되고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POINT 1.
서울부터 1기 신도시 찍고 지방까지 열풍
리모델링 문주 투시도.
현재 리모델링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한바탕 부동산 불장을 겪었고 현재도 진행형인 서울 및 경기권이다. 서울에서는 특히 강남 4구의 청담동 건영, 개포동 대청, 송파구 가락현대6차 등 10여 개 단지가 조합 설립을 마쳤다. 진행 속도도 재건축에 비해 빠르다. 서울 강남권 리모델링 단지 중 입지 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대치2단지는 올 하반기 2차 안전성 검토를 통과한 후 내년에 사업계획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 이주를 시작했거나 곧 예정인 곳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촌 현대아파트는 지난 6월 이주를 시작해 총 7백50가구의 이촌 르엘로 거듭날 예정이다.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 단지인 문정시영아파트와 문정건영아파트는 안전진단을 완료했다. 문정시영은 포스코건설을, 문정건영은 GS건설을 시공사로 낙점하고 2~3년 내 이주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 4월 시공사를 선정한 문정건영의 경우 속도가 나면서 103㎡(31평) 실거래가가 지난해 8월 11억8천만원에서 올해 8월 15억4천만원으로 3억6천만원 뛰었다.
서울에 비해 속도가 느렸던 수도권 1기 신도시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올해 초 경기도청이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사업’을 위한 공모를 내자 모집 정원 2개 단지에 1백11개 단지가 신청했다. 결국 경기도청은 모집 정원을 늘려 고양시 문촌마을 16단지 뉴삼익아파트·안양시 초원부영아파트·김포시 북변산호아파트 등 8개 단지를 선정했다. 특히 준공 25년 내외 아파트가 많은 경기도 용인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현재 용인시에서는 공동주택 10개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시 최초로 안전진단에서 리모델링이 가능한 C등급을 받은 수지구 풍덕천동 초입마을삼익풍림동아(삼풍동)아파트는 오는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건축 심의를 받은 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수지구 풍덕천동 현대아파트도 최근 리모델링 시공사로 대우건설을 선정했다. 용인시 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용인시는 올 8월, 처인·수지·기흥구 일대 18개 택지개발지구 제3종 일반주거지역 아파트에 대해 현재의 리모델링 가능 용적률 170〜210%를 300%까지 상향시키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지방에서도 리모델링 사업에 관심을 갖는 추세다. 지방 최초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대구시 수성구 범어우방청솔맨션은 지난 5월 수성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 통보를 받은 데 이어 현재 시공사를 선정 중이다. 부산시에도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를 시작으로 진구 양정현대, 연제구 거제홈타운 등 대단지 아파트들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 규모도 역대급으로 커진 추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리모델링 시장 규모가 지난해 17조3천억원에서 2025년에는 37조원, 2030년에는 44조원 등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포스코건설과 쌍용건설이 주로 활동하던 리모델링 시장에 GS건설, 삼성물산 등 메이저 브랜드들이 리모델링 전담팀을 꾸리며 뛰어들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개최해 시공사를 선정한 리모델링 사업은 총 18건으로 공사 금액은 5조8천억원 수준이었다.
경쟁이 심화되는 조짐이 보이자 적과의 동침을 택하는 경우도 생겼다. 2000년 업계 최초로 전담팀을 출범시킨 리모델링 강자 쌍용건설은 3월 현대엔지니어링과 컨소시엄을 이뤄 4천6백억원 규모의 경기도 광명시 철산한신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했다. 시공 능력 1위 삼성물산과 2위 현대건설도 손을 잡았다. 1천7백7가구에서 1천9백63가구로 바뀌는 서울 성동구 금호벽산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에 컨소시엄을 이뤄 참가해 최종 선정됐다.
POINT2.
준공 후 15~30년에 용적률 200~300% 단지들,
재건축보다 이익
사실 2000년대 중반에도 한바탕 리모델링 붐이 인 적이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우성2차아파트를 리모델링한 래미안대치하이스턴(2014년 준공) 이후 5년 동안 리모델링 사례가 없다가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강남구 개포우성9차아파트가 오는 11월, 완공 후 입주를 앞두고 있다. 잠잠했던 리모델링 시장이 최근 1~2년 사이 다시 들썩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재건축은 문턱이 높다. 재건축을 하려면 준공 후 최소 30년이 지나고, 안전진단에서 D등급(조건부 재건축) 혹은 E등급(재건축)을 받아야 가능하다. 반면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차부터 안전진단 B등급 이상이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용적률에 있어서도 재건축은 법적 용적률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은 법적 용적률 초과를 허용한다. 재건축의 경우 강남권 아파트를 제외하곤 대체로 기존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조합 설립을 위해 필요한 조합원 동의율 기준도 재건축은 75%, 리모델링은 66.7%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재건축 사업의 평균 소요 기간이 약 10년이라면 리모델링 사업은 6년 정도로 짧다. 리모델링은 기본계획 수립→추진위원회 설립→조합설립인가→시공사 선정→1차 안전진단→도시계획 및 건축 심의→이주→철거→착공 단계를 거친다. 종합해보면 준공된 지 15~30년 사이, 용적률 200~300% 단지는 소요되는 시간이나 수익성 면에서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더 유리한 셈이다.
리모델링 사업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와 초과이익환수제(조합원이 재건축을 통해 얻은 이익이 3천만원 초과 시 10~50% 환수), 기부채납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인기 요인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통상 분양 가격은 주변 시세의 70~80%로 책정된다. 일반분양가를 높이지 못하면 조합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18년 주민 이주까지 마치고 시공사 선정도 한 둔촌주공의 경우 최근 다시 분양가 산정 대행업체를 선정하는 대의원총회를 열고 분양예정 가격을 조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재건축과 리모델링 간 수익성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리모델링은 초과이익환수제, 기부채납까지 피할 수 있어 최근 리모델링으로 선회한 단지가 늘어났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와 더불어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2014년 리모델링 관련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이를 통해 세대수를 증가시킬 수 있고, 수직 증축도 가능해졌다. 이후 리모델링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는데 특히 집주인들의 인식 변화가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를 보면 3040세대 젊은 집주인을 중심으로 한 곳이 많다”며 “오래된 아파트의 불편함을 참으면서까지 재건축을 기다리기보다는 리모델링을 추진해 조금이라도 빨리 편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POINT 3.
3040세대 젊은 집주인들의 속도전
서울 송파구 문정건영아파트 리모델링사업 투시도.
현재 온라인상에서 리모델링 속도를 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나홀로아파트들이 뭉치거나 인근 비슷한 연식의 소규모 단지들이 함께 진행하는 등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면 각종 커뮤니티 시설을 늘릴 수 있고, 공사비부터 입주자들이 분담·납부해야 하는 공용 관리비 절감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1군 건설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 이점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는 1993년식 ‘우극신’이 모였다. 우성2·3단지, 극동, 신동아4차 등 총 4천3백97가구가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해 5천56가구 규모의 단일 브랜드 단지로 태어난다. 우극신 통합 리모델링 조합설립 추진위원회는 9월 5일 기준 조합 설립 동의율이 63%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속도전을 위해 정부를 참여시킨 경우도 있다. 서울 마포구 마포태영아파트의 경우 서울시를 조합원으로 ‘초대’했다. 총 16개동 1천9백92가구 가운데 2개동 5백68가구가 서울시 소유 임대아파트다. 9월 6일부터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동의서를 받기 시작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참여로 이미 찬성표 28.5%는 확보한 셈이다. 그간 분양·임대 주택 혼합 단지 리모델링 사업에서 단지 내 임대동이 제외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곤 했는데 이번 민관 협력이 향후 혼합 단지의 리모델링 진행 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기 용인 수지현대아파트 리모델링조합은 시공자로 대우건설을 선정했다.
POINT 4.
수직 증축 & 내력벽 철거 가능한지 따져야
1974년 건설된 용산구 이촌동 점보아파트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리모델링 건축 방식을 둘러싼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반분양 물량을 확보해 조합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대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때 층수를 더 올리는 형태의 수직 증축은 필수다. 그런데 기존 위치 그대로 층수만 높아지면 저층 세대는 일조권을 침해당하기 마련. 리모델링 시 현주소지를 그대로 배정받기 때문에 수직 증축 계획을 반대하는 저층 조합원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수직 증축을 못 하면 수평 증축이나 단지 내 여유 공간에 별동을 세우는 방식을 고려해야 하는데, 대지 지분이 적고 동 간격이 좁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별동 증축 역시 조망권을 간섭할 가능성이 높다.
또 수직 증축에 따른 조합원 분담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리모델링 사업의 핵심 이슈다. 전문가들은 증축을 통한 일반분양 물량이 15% 정도 될 때, 조합원 분담금이 보수적으로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줄어든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전용 84㎡ 리모델링 분담금이 3억원 정도라고 할 때 증축이 불가능하면 몸테크+3억원+α로 얻는 효과가 주거 개선밖에 없는 셈”이라며 “지금은 정부 규제로 수직 증축이 불가능하다 보니 일반분양 물량 15%를 채우는 게 쉽진 않다.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곳 중에는 어느 정도 타협해 최소 10% 이상 되면 진행하는 단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및 경기권에서 수직 증축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는 서울 강남구 대치현대1차와 대치2단지, 송파구 삼전현대 등 몇 군데밖에 없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리모델링 이슈가 집값 상승의 호재임은 확실하다. 일부러 리모델링 이슈가 있는 아파트를 찾는 투자자도 많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리모델링 이슈가 있는 단지 매수를 고려할 때는 연식보단 입지를 살펴야 한다”며 “서울 접근성이 좋은 1기 신도시 또는 자금 여력이 있다면 교통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강남권이나 용산 쪽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언제든지 엎어질 수 있는, 100% 확실하지 않은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수익성을 노린 투자의 개념보단 새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내력벽(하중을 담당하는 벽) 철거를 하지 못하면 최근 인기 있는 아파트 스타일로 구조를 내기 어려운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할 때 내력벽 철거 역시 수직 증축과 함께 특히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벽면 일부를 철거하지 않고 수직 증축을 한다면, 설계 변경이 자유롭지 못해 실내 공간이 앞뒤로만 긴 일명 ‘동굴형’ 구조가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016년 1월 아파트 리모델링 시 안전진단 B등급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도록 한 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다시 검토에 들어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수직 증축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수직 증축 허가가 난 곳은 암반 위에 지어진 송파구 성지아파트뿐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축이 아닌 노후 아파트만 증가할 뿐이라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 결론이 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동훈 위원장은 “안전 확보를 위해 엄격한 검증은 당연하지만 현재 전문 기관의 검증은 유연성이 더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통계상 전국에 20년 이상 된 아파트가 65%, 세대로는 5백50만 정도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이 5백50만 세대가 잠재적인 시장이 될 것이다. 커지는 리모델링 시장 규모에 맞춰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1백 년 쓸 수 있는 구조물을 20~30년 만에 헐고 조기 재건축을 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고 강조했다.
사진 박해윤 기자 동아DB 뉴스1
사진제공 롯데건설 대우건설 GS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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