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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부인 송현옥 교수 첫 인터뷰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07.19 11:25:54

상투적인 수식어를 걷어냈을 때 그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있다. ‘정치인 오세훈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익숙한 송현옥 교수는 사실은 20년 넘게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10년 넘게 극단 대표로 연극 연출을 하며 자신의 분야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커리어 우먼이다.
서울시의 수장이 바뀐 4월 7일, 오세훈 당선인의 곁에는 36년간 함께한 동갑내기 아내 송현옥(60) 교수가 있었다. 그녀는 고교 시절 오 시장을 처음 만나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네 살 때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오 시장이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서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함께한 동반자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와 언변으로 변호사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오 시장과 그에 못지않게 세련된 외모, 여유 넘치는 태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온 송 교수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오 시장이 30대 청년 변호사 시절부터 유명했던 터라 송현옥 교수는 ‘오세훈의 아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왔다. 그러나 남편이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활약하던 30여 년간 송 교수 역시 차분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그녀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05년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현재까지 강단에 서고 있다.

후학을 양성하는 중에도 영화와 연극 평론가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연극에 심취해 연출가로 전향했고 직접 고전을 각색해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녀가 2005년 설립해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물결’은 1~2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햄릿, 여자의 아들’(2014) ‘인형의 집’(2016) ‘밑바닥에서’(2018) ‘의자 고치는 여인’(2020) ‘오델로’(2020)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막심 고리키 원작의 ‘밑바닥에서’는 2019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열린 제9회 막심 고리키 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초청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 드 모파상 원작의 ‘의자 고치는 여인’은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인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선정돼 지난해 3월 공연 장면이 영화로도 제작, 상영됐다.


남편 시장 당선 후에도 변함없이 본업에 충실

지난해 3월 공연된 ‘의자 고치는 여인’에서 주연을 맡은 장녀 오주원 씨(가운데)의 공연 모습.

지난해 3월 공연된 ‘의자 고치는 여인’에서 주연을 맡은 장녀 오주원 씨(가운데)의 공연 모습.

송현옥 교수는 지난 4월 다시 서울시장의 아내가 됐지만 변함없이 본업에 충실히 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에서 1학기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WIN문화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그녀를 만나기 위해 6월 중순, 서울 강남의 한 호텔로 향했다. 연단에 선 송현옥 교수는 길고 까만 생머리에 세련된 옷차림, 부드러운 목소리와 여유로운 미소 덕분인지 환갑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고전 속 여성 등장 인물들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자신이 연출한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는 모습에서 평소 강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3시간가량 진행된 포럼이 끝나고 마주한 송 교수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송 교수는 1961년 한국 철조 조각의 1세대 작가로 알려진 송영수 작가와 사공정숙 고려대 명예교수의 맏딸이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 자랐고, 그 덕에 고려대 영문과 재학 당시에는 과외와 번역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생활할 정도로 자립심이 강했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좇아왔어요. 돌아보면 학창 시절 영어 연극반에서 배우로 서보기도 하고,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성극을 제작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드라마에 끌려 영국 드라마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극 평론을 하다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연출에 도전했고요. 놀이로부터 시작해 그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오다 보니 교수와 연출가라는 직업을 갖게 된 셈이죠.”

그녀의 작품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험적 연극이 주를 이룬다. ‘햄릿’ ‘인형의 집’ 등 널리 알려진 고전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단순히 대사와 몸짓만이 아닌 무용과 오페라 등 비언어적 요소를 가미하고, 장면을 이미지적으로 그리는 스타일이어서 “실험적이고 창의적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공연한 ‘의자 고치는 여인’은 관객 참여를 하나의 연극 장치로 집어넣는 새로운 시도로 호평을 받았다.

“‘의자 고치는 여인’의 경우 공연예술 창작산실에 선정된 덕분에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어요. 50년 넘게 한 남자를 짝사랑한 주인공의 삶을 평가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표현하면서, 그에 대해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발언하는 시간을 마련했죠. 또 푸른색과 붉은색 요소를 관객에게 제시해 질문을 던져 선택을 하게도 했고요. ‘인간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성적 목소리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 덕에 매 공연이 기대되고 설레었어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송 교수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연극 연출을 직업 이상으로 여기는 천생 예술가로 보였다. 그러나 작업에 늘 즐거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올해는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내야 했고, 공연에 임박해서는 밤을 새우며 산고의 고통에 버금가는 열정을 쏟아부어야 했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낳고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애 낳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또 아이를 낳잖아요. 작품이 잘되든 못되든 작품 하나하나 자식 같아서 제겐 너무 소중해요. 창작이라는 게 연출가가 가진 사고와 감정, 상상력을 모두 쏟아붓는 작업이니까 하나를 끝내고 나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내게 창작의 샘물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또 다른 장면이 떠오르며 어느새 작품을 구상하는 저를 발견하죠. 그렇게 극단 물결을 16년 동안 이끌어왔네요.”

송 교수의 여러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띈다. 오 시장과 송 교수를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여배우 오주원이 그 주인공. 송 교수 부부의 맏딸인 주원 씨는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딸이라 배우로 기용하고 주연급으로 출연시키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에는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마다 오주원 배우가 주는 아우라가 상당하다. 연출가로서 딸 오주원 배우를 평가해달라고 하자 송 교수는 선뜻 “고마운 배우”라고 답했다.

“제가 꿈꾸는 연극은 이상에 가까워요. 그래서 배우들의 역량이 커야 하죠. 기본적으로 무용수만큼 몸이라는 표현 매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고, 연극배우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대사 전달력과 감정, 지성까지 모두 갖춰야 하거든요. 제자들에게 그런 배우가 되기를 주문하면 ‘교수님 욕심이 많으시다’고 말해요(웃음). 그래서 무용을 전공한 딸을 극단에 데려와서 연기를 가르치고 무대에 서게 했죠. 제 기대치가 높으니까 저희 학교 제자들은 대사를 비롯해 몸의 언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쳤어요. 그 덕에 이제 ‘제2의 오주원’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다시 출발점에 선 남편, 믿음으로 응원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투표를 하는 오세훈·송현옥 부부.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투표를 하는 오세훈·송현옥 부부.

젊어 보이지만 송 교수는 어느덧 올해 1월 환갑을 맞이했다. 오 시장이 1월 4일, 송 교수가 1월 22일로 같은 달에 나란히 환갑을 맞았는데 어떻게 보냈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우리 부부에게는 매년 1월이 특별한 달이지만 올해는 특별히 즐기거나 행사를 하지 못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터라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석 달간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송 교수는 남편을 성심껏 도왔다. 2006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남편을 지켜보던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고. 그 시절 송 교수는 너무도 젊었고, 또 연극에 심취해 있었기에 남편의 정계 입문이 다른 세상의 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당시 남편의 일로 행사에 참여할 때면 “마치 시댁에 가 있는 듯한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그가 가는 길을 지지했고, 그를 향한 믿음을 확고히 가졌다”고 한다.

“남편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본다면 ‘그래. 저 사람 같은 이가 정치를 해야 우리나라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이 없다면 지금껏 남편이 하는 일을 응원할 수는 없었겠죠. 제가 그런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남편이 편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리라고 생각해요.”
오 시장이 서울 시정을 살핀 지 두 달여가 흘렀다. 오랜 시간 비어 있던 시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오 시장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남편은 다시 서울시의 일을 한다는 기쁨이 큰 것 같아요. 10년 전에 진행하다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시장이 되고 확인해보니) 어그러진 일도 있어 안타깝겠죠. 원래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 당시 참 애정을 갖고 일했거든요. 이번에도 선거운동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는데 당선되고 이튿날 바로 나가서 일을 시작했을 정도죠. 무리하는 것 같아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40대 시장이던 시절에는 체력으로 버텼다지만 60대에 들어선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듯했다. 건강을 염려하자 송 교수는 “퇴근 후 매일 밤 한강 뚝섬유원지를 함께 꽤 많이 걷는다. 선거 때도 석 달 동안 빠짐없이 걸었을 정도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다. 우리 부부의 건강을 지키려는 필살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없듯, 사는 곳도 달라지지 않았다. 2006년부터 6년간의 시장 재임 기간에 송 교수는 종로구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지냈다. 후임인 고(故) 박원순 시장은 한양도성 복원사업에 따라 시장 공관을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로 만들고 대신 종로구 가회동 한옥을 임대해 공관으로 사용했다. 오 시장은 공관으로 사용된 가회동 한옥의 전세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현재 광진구 자택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10년 전 머물렀던 공관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송 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년짜리 시장인데 세금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가회동 공관의 전세 기간이 끝나기도 했고요. 그냥 재계약하지 말고 그 돈을 아껴서 시정에 사용하시라 했죠. (가만 생각하다가) 사실 시장 공관이 업무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해요. 하지만 임기가 1년이니 다음 시장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봐요.”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두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도 같은 듯했다. 3년 전 출연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오 시장과 송 교수는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웃는 모습마저 꼭 닮은 두 사람이 그렇게 다정해 보일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비결을 궁금해할 법했다.

“주변에서 ‘교수님은 어떻게 오랜 기간 같이 사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체념하면 된다’고 말해줘요(웃음). 살아보니 상대방을 나한테 맞춰서 바꾸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저 사람은 저렇게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타협점을 찾아 맞춰가면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사실 저희도 서로에게 아주 좋은 배우자는 아니에요. 정치인에게 연극 연출하느라 밤낮 매달려 있는 아내가 좋을 리 없잖아요. 또 반대로 정치하는 남편을 갖고 싶어 하는 아내도 없을 테고요.”

이른 나이에 결혼한 덕에 송 교수는 50대에 손주를 보고 할머니가 됐다. 딸이 배우로서 바쁘게 일하는 터라 가정을 꾸린 후에도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특별히 손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막상 손자를 품에 안으니 세상이 달리 보일 정도라고 한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생명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경이롭고 사랑스럽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걸 매번 느껴요. 자식에게는 갖지 못한 감정이더라고요. 누군가 ‘자식이 남편 같다면 손자는 애인 같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좋은 면, 싫은 면을 다 보며 책임감을 갖고 같이 살아야 하는 반면 애인은 사랑스러울 때만 보니까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됐죠. 요즘엔 친구들끼리 서로 손주 자랑하느라 ‘돈 내고 자랑해야 한다’고 할 정도예요.”

환갑 되니 모든 게 감사할 따름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듯 송 교수는 환갑에 이르러 인생의 절정을 맞이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교수와 연출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며 20년 넘게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기 길을 개척해온 것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비결을 궁금해하자 그녀는 “이 세상에 슈퍼맘은 없다. 슈퍼패밀리가 있을 뿐”이라며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준 남편과 자녀들에게 공을 돌렸다.

정치인의 아내 가운데 자기 직업을 가진 여성은 많지 않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그의 아내 질 바이든 여사가 ‘직업을 가진 최초의 퍼스트레이디’로 화제가 된 걸 보면 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송 교수가 달라 보이기도 했는데, 정치인 남편을 내조하는 것과 별개로 직업적 커리어도 끝까지 유지하려는 소신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송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남편은 가부장적이지 않다. 내가 남편의 일을 존중하고 지지하듯, 내 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나보다 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송 교수지만, 왠지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더 이루고픈 목표나 꿈은 없다”고 말했다.

“제자들에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종종 말해요. 이제 저는 어떤 욕망을 가질 때가 아니라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여생을 어떻게 하면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많은 것을 욕망했고, 좌절되면 섭섭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감사해요.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시대를 살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강의실에서 직접 만나지 못하는 제자들,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한 줄로만 아는 손주를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에 비하면 저는 정말 행복한 시대를 살았구나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진 사진 촬영에서 그녀는 능숙하게 포즈를 취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 의식하지 않고, 사진기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머릿속에 그녀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들이 한꺼번에 스쳐갔다. “이제 전 코로나 백신 맞으러 가요”라며 인사를 건네는 송 교수의 목소리와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왠지 그녀는 10년, 20년 뒤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리란 예감이 들었다.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DB 뉴스1 
사진제공 극단 물결



여성동아 2021년 7월 6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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