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2천1백48개 상장 법인에 소속된 여성 임원의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해 2월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 기업은 이사회를 단일 성(性)으로 구성할 수 없다’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소폭 상승한 수치다. 이런 현실에 우미영(55) 어도비 코리아 대표는 스타트업 사원에서 다국적 IT기업의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1992년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시트릭스 한국 지사장(2004~2010년), 퀘스트 소프트웨어 대표이사(2010~2013), 델소프트웨어 남아시아 및 한국 총괄(2013~2016),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2016~2019)을 거쳐 현재 어도비 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우 대표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해왔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지내는 사이 20대가 된 두 아들은 모두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엄마처럼 IT업계에 몸담고 있다. 최근 그녀는 후배 멘토링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의 경험을 엮어 일하기 철학에 관해 소개한 ‘나를 믿고 일한다는 것’(퍼블리온)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 ‘어른친구’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중간 관리자 직급에 있는 여성들이 임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여성 리더들의 모임 ‘위민인이노베이션(WIN·Women in INnovation)’에도 몸담고 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셨고, 그 가운데 상당 기간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셨어요. 대표님이 자녀들을 키울 땐 워킹맘으로 살기가 더 어려웠을 듯합니다.
친정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다 제가 취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아이들을 돌봐주셨어요. 부모님의 큰 도움을 받아 오롯이 일과 육아를 혼자 해내는 워킹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 역시 쉽지만은 않았어요. 첫 직장은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회사였어요. 시골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가족을 모두 부양해야 했는데, 월급을 못 받은 달에는 과외를 하기도 했죠. 여섯 식구가 33㎡(10평) 남짓한 반지하방에 살며 고생했어요. 돌아보면 이런 상황이 더 치열하게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네요.
워킹맘은 집과 직장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잖아요. 둘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하셨나요.
인생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는데, 그때마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항상 가정이 80이고 직장은 20이야’ ‘나는 항상 반반이야’라는 사고방식으로는 둘 다 잘해내기 힘들어요.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때로는 가족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 밸런스를 유동적으로 옮기면서 사는 게 중요하죠. 항상 정답인 황금 비율은 없지 않을까요.
여러 번 회사를 옮기셨는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 조급함이나 막막함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특히나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어요. 당시 월급을 열심히 모아 반지하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어려움을 겪으면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탄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삶이 굉장히 막막했지만 ‘삐약삐약’ 자라는 두 아들과 부모님을 봉양해야 했기에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 험하다는 영업에 뛰어들 용기를 갖게 됐죠.
영업은 저녁 미팅이 많아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쉽지 않은 만큼, 주로 남성들의 영역으로 생각돼왔어요.
제가 영업에 뛰어든 이유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첫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옮기려 할 때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저는 남성 중심적인 영업 업계에서 차별화를 위해 인터넷 프로그래밍 전문 서적인 ‘엔터프라이즈 자바 빈(Enterprise Java Beans)’이란 책을 번역했어요. 당시 다니던 회사는 인터넷 상거래 구현에 필요한 솔루션을 판매했어요. 고객사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쉽게 풀어 써 이해를 돕는다면 실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죠. 8개월 동안 평일 저녁과 주말을 반납하며 열심히 했고, 책을 낸 뒤 미팅이 끝날 때마다 고객들에게 나눠주며 절 기억시켰어요. 그렇게 3년간 2천8백 명의 고객들을 만나니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생기더군요. 당시엔 술자리도 많았고, 특히나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볼 만큼 힘들었어요.
일이 바쁜 와중에도 두 아들이 모두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고 훌륭하게 성장했어요.
아이 교육에는 적당한 무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들은 흔히 ‘내가 고생했으니 아이들에게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경험해보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실패에 약하고 좌절하면 다시 못 일어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패를 겪고 좌절해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찾아낸 아이들이 역경에 부딪혀도 다시 일어나더군요. 부모들이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지나치게 보듬거나 간섭하기보단, 지켜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아들은 여전히 저를 ‘쿨(Cool)한 엄마’로 알고 있을 거예요(웃음). 물론 지켜보는 일도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긴 해요.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회사는 이사회에 최소 1인 이상의 여성을 포함해야 해요. 여성 임원이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최근에 경험했던 일이에요. 팀에 자리가 났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여직원이 지원했어요. 저는 능력과 태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그 직원을 뽑았지요. 제가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의 어려움을 경험해봤기에 내릴 수 있었던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에서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휴직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회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본사에서도 이런 지침이 계속 내려오고 있기도 하고요. 외국계인 저희 회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변화를 거스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개인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지원하는 자리에 얼마나 적합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임원까지 올라가셨는데 비결은요.
모든 업계가 디지털 변혁을 맞이하면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는 ‘가자!’라고 외치며 일사분란하게 이끄는 리더가 있는 조직이 성과를 내기에 가장 효율적이었지요.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점점 리더가 명확한 답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 됐어요. 이제 세상은 정답을 갖고 이끄는 리더보다 조직원들과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는 리더를 더 필요로 해요.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특히 여성들은 공감하고 경청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뛰어나잖아요. 이런 면에서 여성들이 충분이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능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굳이 법 개정까지 해서 여성 임원을 늘려야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어요.
국가에서 개입하지 않았을 때도 여성 고위직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었어요. 다만 속도가 너무 느렸죠. 단체를 설립하며 임원이 된 여성들끼리 만나보니 대부분 개인기가 뛰어났거나 운이 좋아 임원까지 올랐더군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 여전히 여성이 공정하게 경쟁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 힘든 구조예요. 주변에선 1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표님 말씀대로 우리나라 회사 조직에서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해요. 날마다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3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힘들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점들이 천천히 개선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마세요. 일단 자신의 자리에서 능력을 증명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때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거든요. 세 번째는 좋은 멘토를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멘토는 회사 내에 있는 상사일 수도, 외부 사람일 수도 있겠죠. 앞서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의 조언은 큰 힘이 됩니다.
사진제공 우미영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우 대표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해왔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지내는 사이 20대가 된 두 아들은 모두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엄마처럼 IT업계에 몸담고 있다. 최근 그녀는 후배 멘토링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의 경험을 엮어 일하기 철학에 관해 소개한 ‘나를 믿고 일한다는 것’(퍼블리온)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 ‘어른친구’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중간 관리자 직급에 있는 여성들이 임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여성 리더들의 모임 ‘위민인이노베이션(WIN·Women in INnovation)’에도 몸담고 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셨고, 그 가운데 상당 기간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셨어요. 대표님이 자녀들을 키울 땐 워킹맘으로 살기가 더 어려웠을 듯합니다.
친정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다 제가 취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아이들을 돌봐주셨어요. 부모님의 큰 도움을 받아 오롯이 일과 육아를 혼자 해내는 워킹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 역시 쉽지만은 않았어요. 첫 직장은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회사였어요. 시골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가족을 모두 부양해야 했는데, 월급을 못 받은 달에는 과외를 하기도 했죠. 여섯 식구가 33㎡(10평) 남짓한 반지하방에 살며 고생했어요. 돌아보면 이런 상황이 더 치열하게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네요.
워킹맘은 집과 직장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잖아요. 둘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하셨나요.
인생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는데, 그때마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항상 가정이 80이고 직장은 20이야’ ‘나는 항상 반반이야’라는 사고방식으로는 둘 다 잘해내기 힘들어요.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때로는 가족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 밸런스를 유동적으로 옮기면서 사는 게 중요하죠. 항상 정답인 황금 비율은 없지 않을까요.
여러 번 회사를 옮기셨는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 조급함이나 막막함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특히나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어요. 당시 월급을 열심히 모아 반지하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어려움을 겪으면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탄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삶이 굉장히 막막했지만 ‘삐약삐약’ 자라는 두 아들과 부모님을 봉양해야 했기에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 험하다는 영업에 뛰어들 용기를 갖게 됐죠.
영업은 저녁 미팅이 많아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쉽지 않은 만큼, 주로 남성들의 영역으로 생각돼왔어요.
제가 영업에 뛰어든 이유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첫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옮기려 할 때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저는 남성 중심적인 영업 업계에서 차별화를 위해 인터넷 프로그래밍 전문 서적인 ‘엔터프라이즈 자바 빈(Enterprise Java Beans)’이란 책을 번역했어요. 당시 다니던 회사는 인터넷 상거래 구현에 필요한 솔루션을 판매했어요. 고객사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쉽게 풀어 써 이해를 돕는다면 실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죠. 8개월 동안 평일 저녁과 주말을 반납하며 열심히 했고, 책을 낸 뒤 미팅이 끝날 때마다 고객들에게 나눠주며 절 기억시켰어요. 그렇게 3년간 2천8백 명의 고객들을 만나니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생기더군요. 당시엔 술자리도 많았고, 특히나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볼 만큼 힘들었어요.
일이 바쁜 와중에도 두 아들이 모두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고 훌륭하게 성장했어요.
아이 교육에는 적당한 무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들은 흔히 ‘내가 고생했으니 아이들에게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경험해보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실패에 약하고 좌절하면 다시 못 일어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패를 겪고 좌절해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찾아낸 아이들이 역경에 부딪혀도 다시 일어나더군요. 부모들이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지나치게 보듬거나 간섭하기보단, 지켜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아들은 여전히 저를 ‘쿨(Cool)한 엄마’로 알고 있을 거예요(웃음). 물론 지켜보는 일도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긴 해요.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회사는 이사회에 최소 1인 이상의 여성을 포함해야 해요. 여성 임원이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최근에 경험했던 일이에요. 팀에 자리가 났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여직원이 지원했어요. 저는 능력과 태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그 직원을 뽑았지요. 제가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의 어려움을 경험해봤기에 내릴 수 있었던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에서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휴직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회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본사에서도 이런 지침이 계속 내려오고 있기도 하고요. 외국계인 저희 회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변화를 거스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개인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지원하는 자리에 얼마나 적합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임원까지 올라가셨는데 비결은요.
모든 업계가 디지털 변혁을 맞이하면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는 ‘가자!’라고 외치며 일사분란하게 이끄는 리더가 있는 조직이 성과를 내기에 가장 효율적이었지요.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점점 리더가 명확한 답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 됐어요. 이제 세상은 정답을 갖고 이끄는 리더보다 조직원들과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는 리더를 더 필요로 해요.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특히 여성들은 공감하고 경청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뛰어나잖아요. 이런 면에서 여성들이 충분이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능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굳이 법 개정까지 해서 여성 임원을 늘려야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어요.
국가에서 개입하지 않았을 때도 여성 고위직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었어요. 다만 속도가 너무 느렸죠. 단체를 설립하며 임원이 된 여성들끼리 만나보니 대부분 개인기가 뛰어났거나 운이 좋아 임원까지 올랐더군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 여전히 여성이 공정하게 경쟁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 힘든 구조예요. 주변에선 1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표님 말씀대로 우리나라 회사 조직에서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해요. 날마다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3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힘들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점들이 천천히 개선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마세요. 일단 자신의 자리에서 능력을 증명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때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거든요. 세 번째는 좋은 멘토를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멘토는 회사 내에 있는 상사일 수도, 외부 사람일 수도 있겠죠. 앞서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의 조언은 큰 힘이 됩니다.
사진제공 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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