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아들 헌이와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헌이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학기 시작 전에 꼭 보고 싶다며 나를 설득했다. 당일치기로 다녀와서 그런지 다음 날 온몸이 쑤시고 몸살 기운이 있는 등 후유증이 남았다. 하지만 헌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것이 오랜만이어서 매 순간 신이 났다. 헌이도 바쁜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한 방에 날리느라 분주했다.
사실 요즘 헌이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퇴근하면 달려와서 뽀뽀도 해주던 녀석이 열 살이 되어서인지 이젠 슬슬 나를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게 보였다. 품에 안겨만 있던 아들이 ‘자아가 생기는 것인가’ 싶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잘못을 꾸짖을 때 가만히 수긍하지 않는 헌이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벌칙을 주며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약발(?)이 떨어진 듯하다.
고민 끝에 심리 상담 전문가인 지인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는 “헌이도 이제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상태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나아가 부모의 이야기 속에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해 무조건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전문가로서 아빠인 나의 마음가짐에 문제 제기를 했다. “그동안 헌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충고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자녀란 반드시 ‘가르쳐야만 하는 대상’이라 생각한 것부터 나의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헌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각 가정의 교육 방식을 비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양육의 관점을 넘어 헌이와 대화를 통해 부자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이 시점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잘못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체벌로 훈육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열 살 아이를 둔 부모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체벌 없이 훈육하기 어려워 매번 아이에게 끌려다니느라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이해시키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전문가인 지인은 “아이와 대화를 통한 관계 형성, 약속 이행을 통한 교육이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싫어하는 것을 하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이행하며 결과에 따른 책임을 부여함과 동시에 잘못에 대한 훈육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부모로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그것이 헌이와 나의 새로운 부자 관계 정립의 출발점이리라. 우선 헌이와 자주 시간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경주 여행은 아빠로서 헌이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된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서로 돌보는 관계’라는 마음이 들었다. 신경주역에 도착해 차량 공유 앱으로 차를 빌려서 함께 타고 가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서 입에 김밥을 넣어주는 헌이를 보니 이제 헌이는 단순히 아들이 아닌 가까운 친구가 된 듯했다.
헌이 : 아빠! 김밥 드시고 싶으면 김! 초콜릿 드시고 싶으면 초! 하세요~
나 : 오케이! 브라더! 김초김초! ㅋㅋ
헌이 : 아이 참! 장난치지 마시고요! 그리고~ 브라더 아니야 썬(Son)이에요~ㅎㅎ
서울로 KTX를 타고 올라오면서 옆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는 헌이를 바라보니 ‘영락없는 내 아들이다’ 싶었다. 예전 같으면 “눈 나빠지지 않게 똑바로 앉아서 봐라” 라며 꾸짖었을 텐데, 관점을 바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하니 헌이가 영상을 보며 불편한 점은 없는지부터 살피게 됐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8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사실 요즘 헌이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퇴근하면 달려와서 뽀뽀도 해주던 녀석이 열 살이 되어서인지 이젠 슬슬 나를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게 보였다. 품에 안겨만 있던 아들이 ‘자아가 생기는 것인가’ 싶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잘못을 꾸짖을 때 가만히 수긍하지 않는 헌이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벌칙을 주며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약발(?)이 떨어진 듯하다.
고민 끝에 심리 상담 전문가인 지인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는 “헌이도 이제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상태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나아가 부모의 이야기 속에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해 무조건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전문가로서 아빠인 나의 마음가짐에 문제 제기를 했다. “그동안 헌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충고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자녀란 반드시 ‘가르쳐야만 하는 대상’이라 생각한 것부터 나의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헌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각 가정의 교육 방식을 비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양육의 관점을 넘어 헌이와 대화를 통해 부자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이 시점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잘못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체벌로 훈육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열 살 아이를 둔 부모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체벌 없이 훈육하기 어려워 매번 아이에게 끌려다니느라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이해시키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전문가인 지인은 “아이와 대화를 통한 관계 형성, 약속 이행을 통한 교육이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싫어하는 것을 하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이행하며 결과에 따른 책임을 부여함과 동시에 잘못에 대한 훈육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부모로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그것이 헌이와 나의 새로운 부자 관계 정립의 출발점이리라. 우선 헌이와 자주 시간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경주 여행은 아빠로서 헌이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된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서로 돌보는 관계’라는 마음이 들었다. 신경주역에 도착해 차량 공유 앱으로 차를 빌려서 함께 타고 가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서 입에 김밥을 넣어주는 헌이를 보니 이제 헌이는 단순히 아들이 아닌 가까운 친구가 된 듯했다.
헌이 : 아빠! 김밥 드시고 싶으면 김! 초콜릿 드시고 싶으면 초! 하세요~
나 : 오케이! 브라더! 김초김초! ㅋㅋ
헌이 : 아이 참! 장난치지 마시고요! 그리고~ 브라더 아니야 썬(Son)이에요~ㅎㅎ
서울로 KTX를 타고 올라오면서 옆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는 헌이를 바라보니 ‘영락없는 내 아들이다’ 싶었다. 예전 같으면 “눈 나빠지지 않게 똑바로 앉아서 봐라” 라며 꾸짖었을 텐데, 관점을 바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하니 헌이가 영상을 보며 불편한 점은 없는지부터 살피게 됐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8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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