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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우같이 영리한 전도연

EDITOR 두경아

2020. 03. 01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주인공인 전도연은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른하게 등장한다. 관객의 허를 찌르며 영리하게 연기하는 그는 진정 ‘여우 같은’ 배우다.

“배우 전도연을 대중들은 규정지어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제가 무언가를 해서 얻은 것이고 그걸 깨야 하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노력하면서 의미를 찾아가고 싶어요.” 

전도연(47)이 지난해 영화 토크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영화 ‘밀양’으로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후 그는 여러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틀을 깨고자 노력해왔다. ‘하녀’ ‘무뢰한’ ‘남과 여’ ‘생일’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로 늘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준 그가 이번에는 정말 ‘쎈캐(센 캐릭터)’로 돌아왔다. 

전도연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새 인생을 살기 위해 한탕을 계획하는 연희 역을 맡았다. 일본 추리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될 거액의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를 그렸다.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등 핫한 스타들의 대거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미 ‘무뢰한’에서 화류계 여자를 연기한 바 있지만, 연희는 그와 결이 아주 많이 다르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맏언니처럼 행동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잔인하게 돌변한다. 이 영화는 개봉 전인 지난 1월 31일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Special Jury Award)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3월 20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34회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도 초청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센 캐릭터, 오히려 힘 빼고 연기

전도연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작되고 무려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온다. 느닷없이 등장한 그는 술집에서 폭력을 쓰는 진상 손님을 향해 “네가 먼저 그랬다”며 맥주병으로 머리를 가격한다. 그것도 너무나 귀찮다는 듯한 말투와 몸짓으로. 이 강렬한 신을 시작으로 그는 영화 내내 극 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의 혼까지 쏙 빼놓는다. 



“연희가 센 캐릭터라 힘을 줘서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힘을 뺐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죠. 걸크러시로 봐주셨다면 감사하고요(웃음).” 

연희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동안 안 해봤던 역할, 너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다고. 

“연희는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예요. 대본이 재미있었어요. 여러 인물의 등장이 새로웠고, 뻔하지 않은 범죄물이라서 신선했죠.” 

전도연은 이 작품을 통해 정우성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정우성은 “전도연과의 작업을 늘 기다렸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보며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른 작품에서 언제나 만나고 싶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전도연 역시 “정우성과 한 화면에 담기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정우성 씨와의 호흡은 만족스러웠어요. 처음 연기하는 사이라 현장에서는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요. 극 중에서는 연인이라 친근하게 관계 설정이 돼야 했어요. 두 캐릭터가 어우러지고 이해되고 즐거워질 때쯤 촬영이 끝나서 찍다 만 느낌이 들고 아쉬웠어요. 또 한 번 다른 작품에서 만났으면 해요.” 

그는 강한 장면들을 연기하기 위해 김용훈 감독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다. 

“힘든 장면들은 감독님의 연출을 믿고 연기했어요. 그동안 많은 신인 감독님들과 일을 했지만, 처음에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수많은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됐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감독님이 고생 많으셨고, 영화도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를 준비하기 위해 무대에 오를 때 전도연은 함께 출연한 윤여정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여정의 출연은 전도연의 권유로 이뤄졌다고. 전도연은 영화 제작보고회 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치매 노인 ‘순자’는 정말 윤 선생님 아니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반전이 있는 인물이에요. 특히 극 중에서 집이 불타는 장면을 보며 순자가 말하는 신이 명장면이에요. ‘살아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6·25 사변 때는 모든 집이 이렇게 불탔다’는 대사도 좋았고요.” 

윤여정은 다소 난감한 치매 연기에 대해 전도연의 조언을 받았다며 스토리를 공개했다. “도연이에게 치매 연기에 대해 물으니 ‘선생님, 평소에도 느닷없는 이야기 잘하잖아. 그렇게 해”라고 하더라고요. 도연이가 지도해준 대로 연기했어요.” 

신인 감독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켜준 이도 바로 전도연이었다고. 

“저는 오래된 배우인데, 신인 감독과 작업하는 게 무섭기도 해요. 그런데 먼저 촬영하고 있던 도연이가 ‘감독님이 정말 안정되게 진행하셔서, 편안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말해 안심이 됐죠.” 

두 사람의 인연은 2010년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사람은 재벌가 집사와 하녀로 등장해 대립각을 세웠다. 전도연이 윤여정의 따귀를 때리거나, 윤여정이 전도연의 머리채를 잡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이번 작품에서는 전도연이 윤여정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그야말로 과격한 우정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묻자 윤여정은 “우린 서로 흉만 보는 사이야!”라고 했으나, 전도연은 “윤 선생님은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응원군이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은 진짜 친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에서만 나오는 행동일 터. 두 배우의 말 속에 녹아 있는 애정과 존경이 자못 따뜻했다.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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