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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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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FARM TO TABLE

글 · 이한경 기자 | 사진 · 신규철

2015. 12. 11

‘인간이 발견한 제일 오래된 나무열매’로 불리는 호두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지만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호두는 ‘하루 한 줌 견과’ 열풍이 불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만점인 식품.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풍부한 일조량을 갖춰 최적의 호두 생산지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모데스토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1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데스토 휴슨에서 17년째 호두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존 문트 씨. 그는 호두가 자라기에 최적인 환경에서 정성을 다해 키우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호두의 품질이 좋다고 말한다. 2 수확기를 맞아 저절로 땅에 떨어진 호두에서는 풋풋하고 신선한 맛이 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앙부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위치한 모데스토(Modesto)는 토지가 비옥해 대표적인 농업 지역으로 손꼽힌다. 이곳의 특산물은 바로 호두. 현재 캘리포니아에서는 20만 에이커 이상 되는 넓은 지역에서 하틀리·챈들러·프랑킷·페인·유레카·하워드 등 다양한 품종의 호두가 재배되고 있으며, 한 해 생산량이 약 57만 톤으로 미국 내 호두 공급량의 99%, 전 세계 호두 공급량의 ⅔를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방문한 앨파인 퍼시픽 너트사(Alpine Pacific Nut Company)는 6대에 이르는 농업 가족인 존과 캐서린 문트 부부가 17년 전 설립해 운영하는 곳으로, 농장으로 들어서자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호두나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호두는 조건이 맞는 토양에서 3m 이상 뿌리를 내리고 30m 이상 성장하며, 잎사귀가 넓고 두꺼우며 향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B.C. 7천 년경 아시아 서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처음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두는 이후 지중해 연안을 거쳐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전해졌으며, 미국에는 18세기 유럽에서 이주한 스페인 수사들이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상업 경작이 시작된 것은 1867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바라 지역에서 농부 조셉 섹스톤이 호두나무를 심으면서부터. 그 후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풍부한 일조량 등으로 호두가 자라기에 최상의 환경을 갖춘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 전역에서 호두가 재배되고 있다.

첫 수확은 호두나무를 심고 6~8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맛 좋은 호두를 얻기 위해서는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는 등 꾸준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첫 열매가 열린 후에는 거의 1백 년까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주로 8월쯤 초록색 겉껍질 사이로 튼튼한 속껍데기에 둘러싸인 호두열매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품종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 9월부터 11월 말까지 수확이 진행된다.

왜 캘리포니아 호두일까?



10월 중순, 존 문트(John Mundt) 부부의 농장에서도 수확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농장 직원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기계화가 진행돼 5~6명의 직원이 모든 수확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우선 농장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커다란 집게가 달린 셰이커가 호두나무를 흔들어 호두열매가 바닥에 떨어지면 이를 쓸어 담기 쉽도록 한쪽으로 모으는 작업이 이뤄진다. 그 후엔 쌓인 호두열매를 운반 차량이 지나가며 옮겨 담으면 끝. 11월 말 가장 수확 시기가 늦은 챈들러까지 수확을 하고 나면 한 해 호두 농사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존 문트 씨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호두가 인기 있는 것은 호두 생산에 적합한 환경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스레 키워 호두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호두는 너무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 자랄 수 없으며 토질에 매우 민감하고 물이 중요한데 캘리포니아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1 커다란 집게가 달린 셰이커로 호두나무를 흔들면 수백, 수천 개의 호두열매가 비처럼 후두둑 떨어진다. 2 일단 호두열매가 바닥에 떨어지면 차에 옮겨 담기 쉽도록 호두를 한곳에 모아주는 작업이 진행된다. 3 호두열매를 차에 싣는 것으로 수확 작업은 마무리된다.

품종에 따른 수확 시기는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진 호두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농장 이곳저곳에도 땅에 떨어져 있는 호두열매들이 보였는데, 막 주워서 먹어본 호두는 풋풋하고 신선한 맛이 났다. 하지만 이런 상태의 호두는 흙이 묻는 등의 오염과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문 가공업체로 옮겨져 일정 공정을 거친 후에야 상품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자동화로 진행되는 가공 과정에서 미처 걸러내지 못한 불량품을 찾아내는 직원들.

존 문트 씨는 농장과 함께 가공업체도 함께 운영 중인데 앨파인 퍼시픽 너트사에서는 1년 동안 약 1만8000kg의 캘리포니아 호두를 미국 및 해외로 유통한다.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호두 외에 인근 농장들의 호두도 함께 취급하는 것. 그의 공장 부지에 쌓인 박스에는 포장된 호두가 어느 농장에서 온 어떤 품종인지, 이력이 적혀 있었다.

일단 공장으로 옮겨진 호두는 가장 먼저 물로 씻어내는 작업을 거친다. 이 단계에서는 수확 과정에서 섞인 호두나무의 잔가지나 나뭇잎, 흙, 돌멩이 등의 불순물이 걸러진다. 그다음에는 껍질 까는 기계가 겉껍질을 벗겨내고 흡인기가 호두열매에서 떨어져 나온 겉껍질을 빨아들인다. 피호두의 경우에는 여기서 1차 공정이 완료되고 호두가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조 기계에 넣고 수분이 8%만 남도록 건조시키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깐호두는 겉껍질을 벗긴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세정한 후 딱딱한 껍데기를 기계로 제거한 다음 열풍 건조하고 포장 작업을 진행한다.

농장과 마찬가지로 가공 공장 또한 대부분의 작업이 자동화돼 있었다.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공간 안에서 직원들의 역할은 기계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불량품을 찾거나 포장 단계에서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 정도였다. 깐호두를 포장하는 작업과 피호두를 말리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는데, 건조 작업을 위해 공장 한쪽에 산처럼 쌓아둔 피호두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캘리포니아 호두의 재배, 수확 및 가공 과정은 주 연방 식품 안전 기준과 미국 농무부(USDA) 기준에 따라 엄격히 관리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1 가공업체로 옮겨진 호두는 가장 먼저 수확 과정에서 섞인 다양한 불순물을 씻어내는 작업부터 거친다. 2 깐호두는 딱딱한 껍데기를 기계로 제거하고 열풍 건조 후 상자에 담긴다. 3 피호두는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분이 8%만 남도록 건조시킨다.

캘리포니아 호두의 효능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양의 호두가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호두가 갖고 있는 영양학적 가치 때문이다. 칼슘, 아연, 철, 단백질 등의 다양한 영양소를 듬뿍 함유한 호두는 2002년 미국 ‘타임’지가 세계 10대 슈퍼 푸드로 선정하면서 대표적인 건강식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견과류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필수지방산,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ALA)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우선 호두는 몸에 해로운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이로운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유지시켜 심장 건강의 증진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호두가 심혈관 건강을 뒷받침한다는 증거의 타당성을 받아들여 2004년 자연식품 호두의 여러 효능 중 하나로 인정한 바 있다.

미국 마셜대 의과대학 생화학 조교수 W. 일레인 하드먼 박사는 2014년 알파리놀렌산(오메가3 지방산), 항산화 물질 및 식물성 스테롤 등 호두에 함유된 성분이 항암 상승 작용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지난 3월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김유리 교수팀은 호두 속 페놀염 추출 성분이 대장암 줄기세포 및 대장암 줄기세포능의 생성 속도를 늦춘다고 발표했다.

호두는 모양이 사람의 뇌를 닮아 뇌 기능을 개선시키고 지적 기능 저하를 방지하는 식품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실제로도 그와 같은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영국에서 실시한 한 동물실험 연구에 따르면 호두 내 항산화 물질, 폴리페놀,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과 같은 신경 보호 물질이 뇌 기능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연구진은 식단에 호두를 포함할 경우 치매와 같은 뇌 기능과 관련된 질환의 발병 시점을 늦춰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두에 다량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은 당뇨 환자들의 체중 관리 및 인슐린 수치 조절에, 알파리놀렌산은 뼈 건강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캘리포니아 호두협회 공인 영양사이자 컨설턴트 케롤 베르그 슬로안 씨는 “호두를 섭취한 남성의 정자가 그렇지 않은 남성의 정자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현재 호두가 소화를 돕고 염증을 완화하는 효능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미국 농무부에서 권장하는 호두 하루 섭취량은 28g. 성인 여성의 손으로 한 줌, 또는 호두 ½개 기준으로 12~14개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호두는 간식으로도 좋지만 여러 가지 요리에 활용하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을 가다

1 10월 말 핼러윈데이를 맞아 존 문트 씨 가족은 저택의 한 곳을 펌프킨 모양의 조명과 함께 호두열매, 피호두, 깐호두를 이용해 장식했다. 2 존 문트 씨 가족만의 베스트 레시피로 만든 호두시금치샐러드. 3 호두치미추리소스로 맛을 낸 그릴치킨. 4 호두와 휘핑크림으로 장식한 브라우니. 초콜릿의 달콤함과 어우러진 호두의 고소함이 일품이었다.

샐러드로, 디저트로~ 호두의 화려한 변신

호두는 단독으로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식재료로 활용되며 그 쓰임새를 넓혀왔다. 17세기 요리책 저자들은 호두의 의학적 효능을 넘어 요리 재료로서의 활용으로 관심사를 옮겨갔으며 그 결과 오늘날 호두를 활용한 레시피는 수천 가지에 이르게 됐다.

존 문트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한 날 점심 식사 또한 호두를 활용한 요리들로 제공됐다. 호두와 무화과, 염소치즈가 곁들여진 플랫 브레드를 시작으로 문트 씨 가족 고유의 베스트 레시피로 만들어진 호두시금치샐러드, 호두치미추리소스가 올라간 그릴치킨, 호두와 휘핑크림을 얹은 브라우니로 이어졌다.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로, 메인 디시로, 디저트로, 간식으로 무한 변신이 가능한 호두의 매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디자인 · 유내경

취재협조 · 캘리포니아 호두협회(www.walnu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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