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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보디빌더, 인순이! I have a Dream

우먼동아일보

입력 2015.11.20 10:33:00

내년이면 60세가 되는 인순이가 보디빌더에 도전했다. “역시 인순이!”라는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화제의 중심에 선 그녀를 만났다.


59세 보디빌더, 인순이! I have a Dream

지난 9월 20일에 열린, ‘육체미의 향연’이라 불리는 보디빌딩 대회 ‘2015 나바코리아 챔피언십’의 화제는 단연 인순이(59)였다. 여자 스포츠모델과 퍼포먼스 두 부문에 출전한 그녀의 무대는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춤을 추듯 앞으로 걸어 나와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했을 뿐 아니라, 탄탄한 근육과 몸매로 감탄을 자아냈다. 결과는 퍼포먼스 부문 2위. 스포츠모델 부문에서는 순위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그녀의 도전은 그 자체로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인순이는 대회 이후 언론의 관심을 피해 일주일간 숨어 지냈다. 자신의 도전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회 이틀 전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취재진이) 얼마나 오겠어?’ 했는데 당일 여러 팀이 찾아왔더라고요. 겁이 덜컥 났죠.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히 어떤 목적을 가졌다거나, 누가 시켰다면… 제가 할 수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팬티와 브라만 입고 나가는 대회인데, 그런 제안을 누가 했더라면 아마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이 나이에 인기를 얻으면 얼마나 얻고, 올라간다면 어디로 올라가겠어요. 대회에 참가한 건, 단지 나 스스로를 이기고 싶어서였어요.”


59세 보디빌더, 인순이! I have a Dream

3개월의 준비 끝에 나선 도전
인순이가 보디빌딩이라는 새 분야에 도전한 계기는, 다름 아닌 ‘메르스’였다.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였던 지난 6월, 대부분의 행사와 공연, 축제가 취소됐고, 이로 인해 그녀는 의도치 않게 휴식기를 갖게 됐다.



“TV 앞에 넋 놓고 앉아 있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녔는데,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 기분까지 울적해지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도전을 위해서는 목표가 필요했다. 그는 3개월 후에 열리는 ‘나바코리아 챔피언십’ 출전을 목표로 삼고,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집중적으로 근육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주 3회에서 7회,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으로 훈련 강도를 높였다. 식사량은 평소의 60%로 줄이고, 닭 가슴살과 샐러드를 주식으로 삼았다. 덕분에 체지방은 5㎏ 줄어든 반면 근육은 2㎏ 늘었다.

“충실하게, 후회 없이 했어요. 사실 운동보다 식이요법이 더 힘들었어요. 3개월 동안 간을 안 한 음식만 먹었더니 짜고 맵고 기름진 것이 어찌나 당기던지(웃음). 공연이 있는 날은 더 힘들었어요. 속이 든든해야 노래에도 힘이 붙거든요. 어쩔 수 없이 공연 전에만 현미밥을 먹었죠.”

인순이는 3개월 동안 힘들어도 매일 웃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모든 훈련을 마친 마지막 날,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트레이너가 ‘운동은 오늘로 끝’이라고 말했을 때는, ‘우아~’ 하고 환호했어요. 그러곤 돌아서서 샤워실로 갔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정말 엉엉 울었어요. ‘이제 다 왔어, 내일모레면 완주야, 하루만 더 참아!’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59세 보디빌더, 인순이! I have a Dream

“만나는 사람마다 제 몸을 스캔해요”
그녀는 대회에 입고 나갈 의상도 직접 준비했다. 브라는 미국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구입했고, 팬티는 이태원에서 맞춤 제작했다. 대회 당일. 이제 준비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녀는 무대에 수천 번도 더 선 베테랑이다. 대회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떨리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많은 무대에 서봤지만, 이번처럼 노출이 심한 의상은 처음이었거든요. 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인터넷에 어떤 반응이 올라올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제 앞에 5명쯤 남았을 때는 정말 돌아서서 집으로 가고 싶었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나는 지금 잘못하는 게 아니야.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완주야!’라고 되뇌었다. 그러고 나니 대회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모든 두려움을 이겨낸 뒤, 환한 미소와 당당한 포즈로 등장한 그녀는 결과와 상관없이 ‘완주’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

“단순히 근육을 키운 것보다 자신감을 되찾은 게 더 의미 있어요. ‘이 나이에 핫팬츠를 어떻게 입어?’가 아닌, ‘못할 게 뭐 있어? 몸을 만들면 되지!’ 하는 식이죠. 또 하나, 어릴 때부터 제 별명이 ‘오리궁댕이’였어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알고 보니 요즘은 그런 엉덩이를 ‘애플 힙’이라고 부르며 오히려 선망하더라고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죠.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인순이’ 하면 떠올리는 키워드에 이제는 ‘몸매’ ‘근육’ ‘몸짱’ 같은 새로운 단어가 추가됐다. 대회 이후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제 밖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제 몸을 스캔하는 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얼굴만 보고 ‘반가워요’ 그랬는데, 이제는 몸부터 보더군요. 대회 때보다 살이 더 붙은지라 긴장할 수밖에 없죠. 다시 평소의 생활로 돌아왔지만 야식과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일주일에 2~3회 정도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네요.”

그녀의 도전에 가장 큰 응원을 보내준 이들은 역시 가족. 그중에서도 딸 박세인 양이 많은 힘이 됐다.

“딸에게 ‘엄마 헬스 대회 나가’ 했더니, ‘와~ 엄마, 진짜?’ 하고 놀라더군요. 대회가 끝나고 나서 ‘세인아, 엄마 10위권에도 못 들었어’ 했을 때는, ‘엄마, 내가 주는 점수는 특등입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딸 친구들도 ‘너희 엄마 멋지다’고 했다고 해요. 남편이나 집안 어른들은 운동을 한다고 하면, ‘힘들게 그걸 왜 해?’, ‘이제는 몸조심할 나이야. 다치면 큰일 나’ 하거든요. 그래도 대회가 끝나고 나니, 남편이 ‘열심히 했네’라며 웃더라고요.”

딸 세인 양은 알려졌다시피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엄친딸’이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명문대인 스탠퍼드에 입학해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는 졸업도 하기 전에 미국 IT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미국 본사에 취직이 됐는데, 한국에도 지사가 있어서 미국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들어올 것 같아요. 기특한 정도가 아니라 고맙죠. 미안하게도, 저는 딸이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못 봤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공부하라는 잔소리요? 당연히 해본 적 없죠. 오히려 ‘쉬엄쉬엄하라’고 말리는 입장이었어요. 유학 생활 중에도 ‘못하겠으면 들어오라’고 했고요.”

엄마를 꼭 닮은 세인 양은 어린 시절 가수를 꿈꾸기도 했다. 포기한 이유는 다름 아닌, ‘엄마를 뛰어넘을 수 없어서’란다.

“지금은 우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겠지만 나중에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싶어하더군요.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59세 보디빌더, 인순이! I have a Dream

다음 목표는 별을 좇아 백두대간에 가는 것
“최근 내년에 제가 예순 살이 된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어요. 이제껏 나이를 밑에서 올라가면서 세어봤지, ‘내년엔 몇 살?’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세어보지는 않았거든요. 데뷔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인순이는 1978년 ‘희자매’로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트렌디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엄격하게 적용되는 ‘나이’라는 잣대는 그녀에게만은 예외다. 이번 보디빌딩 도전도 ‘인순이가 했어? 그래 인순이니까 했지! ’ 하는 식이다.

“그렇게 봐주시는 것도, 이 나이에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죠. 그게 다 빚이에요. 저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되고 또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 그래서 늘 돌려드려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갖고 있어요.”

팬들에게 받은 사랑, 그 빚을 갚기 위해 인순이가 시작한 건 바로 다문화 대안 학교 ‘해밀학교’를 통한 교육 지원사업. 2013년 강원 홍천군 남면 명동리에 개교한 해밀학교는 인순이가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 ‘인순이와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 과정 15명이 재학 중이다.

“좀 더 일찍 그런 일들을 했어야 했는데, 제가 ‘다문화’의 상징처럼 보이는게 부담스러워서 망설이는 바람에 늦어졌어요. 그 생각을 스스로 벗어던지면서 자유로울 수 있었죠. 현재 후원으로 운영 중인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어렵죠. 지금은 건물을 빌려 쓰고 있고, 학교는 건축 중에 있어요. 그래도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보람됩니다.”

그녀에게는 꿈이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주한 미군인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뒤, 어머니 혼자 11명의 식구를 부양했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과 다른 외모도 그녀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 상황을 극복해 지금의 인순이가 되었기에, 그녀는 오랫동안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대중이 나를 과대평가해주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제가 시원시원하고 화통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한 편이죠. 대중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통해 희망을 드릴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인순이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뜻밖에도 ‘백두대간’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오래전부터 백두대간에 가고 싶었어요. 지난해 기회가 있었는데, 발가락 부상을 입어서 무산됐죠. 그곳에서 보는 별은 어떨까 궁금해요. 별은 혼자서 빛나지 않아요. 누군가 비춰줘야 빛이 나죠. 저 역시 팬들의 응원이 있기에 지금의 인순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별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글 · 두경아 자유기고가|사진 · 홍태식 뉴시스 | 장소협조 · 카페 바치오(02-518-6661)

여성동아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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