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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신상 가방에 눈이 멀까?

우먼동아일보

입력 2015.03.19 17:17:00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발견하면 순간 경제관념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된다. 가방에도 혹시 우리가 미처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가방이란 오브제를 열쇠 삼아 우리 내면의 문을 열어보자.   


우리는 왜 신상 가방에 눈이 멀까?

가방은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 시대 오키라드 부족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있으나, 현재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아시리아 지방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날개 달린 조각신상이다. 기원전 9세기에 제작된 이 조각신상이 사각형 핸드백을 들고 있는 것. 이처럼 가방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깊다. ‘가방’이라는 명칭은 중국어 ‘캬반’ 혹은 네덜란드어 ‘카바스(kabas)’가 어원으로 추측된다. 영어명 ‘백(bag)’은 ‘자루’를 의미하는 스칸디나비아어 바기(baggi)에서 유래됐다.

봉건제도가 팽배한 시절 가방의 크기는 신분을 구분하는 표식이 되기도 했다. 사이즈가 클수록 신분이 높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요한 건 하인이 다 들어주기 때문에 귀족은 큰 가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값비싼 보석만 담은 작은 손가방은 신분 과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서민층은 본인이 직접 생필품을 넣고 다녀야 했기에 당연히 큰 가방을 들었다. ‘오모니엘’이란 가방은 중세 여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작은 주머니를 혁대에 매달고 다니는 룩(look)은 실용성보다 스타일을 중시한 첫 번째 가방으로 회자된다.

해외여행의 필수 아이템, 여행 가방은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됐으며 (역시나!) 루이 비통이 그 선구자였다. 루이 비통이 처음부터 가방을 만든 것은 아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트렁크 짐을 꾸리는 일을 했다. 나폴레옹 3세 주변 궁전 부인들의 옷을 구기지 않고 짐을 꾸리는 솜씨로 점차 유명해지면서 입소문이 났다. 1854년경 시대의 요구(?)에 떠밀려 급기야 파리 중심가에 떡하니 첫 번째 매장을 열기에 이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유럽 여행, 특히 국가 간의 장기 여행은 기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큰 짐가방은 죄다 화물칸에 실어야 했는데, 모양이나 재질이 제각각일 뿐 아니라 내구성도 떨어져 대부분은 여행 이후 다시 쓰기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루이 비통은 위아래가 평평한 트렁크를 개발해 화물칸에 쉽고 안전하게 수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바닥면과 맞닿은 면을 크게 해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도 저항을 최대화했다. 그 결과 심하게 흔들거려도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아 내·외부 손상을 최소화했다. 반면 핸드백은 1900년대 이후가 돼서야 비로소 대중적이 됐다. 실용성과 스타일. 가방은 이 둘 사이의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들의 눈길을 끊임없이 뺐을 것이다.  




우리는 왜 신상 가방에 눈이 멀까?

새로운 삶을 담는 대신 새로운 가방을 산다?
만약 어떤 내담자가 꿈에서 가방을 보았다면, 분석가는 그 가방 안에 주로 무엇을 들고 다녔는지 또는 그 가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탐색해볼 것이다. 그 정도로 가방은 사람의 심리나 성격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그것은 무언가를 담아내는 수용적인 이미지의 상징이다. 우연하게도 가방과 비슷한 구조물은 우리 몸 안에도 존재한다. 남자에겐 없는 그것은 바로 여성의 ‘자궁’이다. 우리들 마음속에 아버지의 남근에 대한 선망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이 맞는다고 가정하면, 그와 상응해 엄마의 자궁에 대한 선망(Womb Envy) 또한 존재할 것이다.  

유달리 가방을 모으길 좋아하고 그것도 명품을 찾는 중이라면, 그건 아마 독보적인 여성성을 확보하기 위한 마음의 필사적인 노력일 수 있다. 그 원동력을 부채질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역시나 그분은 출산의 상징인 각자의 엄마일 것이다. 평소 자신의 엄마에 비해 여성성이 부족해서 열등의식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때로는 거기서 파생된 경쟁심과 패배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방이란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른 이들보다 더 좋은 가방을 메고 다니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부러움을 사게 만듦으로써, 그는 아마 엄마보다 우월해졌다는 느낌을 가짐과 동시에 그동안 부러워했던 엄마에 대한 설욕까지 몽땅 하게 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 가방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매체에 따르면 올해부터 루이비통은 다시 본연(?)의 디자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약간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명품 가방의 아이콘, 루이비통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가방의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특유의 로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궁과 엄마의 상징은 바로 끝없는 ‘사랑’이다. 루이비통 가방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사랑을 뜻하는 단어인 ‘love’의 자음 L과 V이다(원래는 창업자 Louis Vuitton의 이름을 딴 것).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루이비통 짝퉁 가방 중 일부는 ‘O’와 ‘E’까지 집어넣은 것도 있었다(무슨 오륜기마냥 썩 세련돼 보이진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하여튼 이것은 사랑과 엄마를 떠올리기에 매우 용이한 디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가방이 무슨 성적인 의미나 미처 해소되지 못한 엄마와의 경쟁심 혹은 부적절한 여성성만을 뜻하진 않는다. 엄마보다 여성적인 면에서 그리 달리지(?) 않으며 거의 컬렉션 수준으로 좋은 가방들을 구비해놓고도,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면 자신도 모르게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는 이유는 또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벗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들, 즉 옛 습관들과 태도 혹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있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헌 가방을 버린다는 건 마치 성경 구절에 나오는 ‘헌 포대’를 버리는 것과 같다. 과감하게 현재를 탈피하고 소중한 나를 새로이 담아내려는 갈망이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 두려움은 그렇게 하길 꺼리게 만든다. 그래서 우린 새로운 삶을 담는 대신 새로운 가방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쇼핑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가방에 이끌리게 된다면 한 번쯤은 떠올려보자. 이제는 ‘나의 짐을 챙길 때’라는 강력한 지름신의 암시는 아닌지.


우리는 왜 신상 가방에 눈이 멀까?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현실, 소유와 존재를 애써 구분하는 대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증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남들에겐 장바구니에 담아 충동구매를 막으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바로구매’를 클릭하는 헤비 쇼퍼.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세상 안내서 시리즈’ ‘뱀파이어 심리학’등이 있다.



글·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여성동아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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