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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으로 진화하는 정/우/성

우먼동아일보

입력 2014.01.13 19:25:00

배우에게는 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정우성은 그냥 ‘정우성’이라고만 해도 된다. 그의 이름은 대체를 불허할 희소성을 가진 한국 영화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정우성으로 진화하는 정/우/성

일급비밀도 아니지만 말하지 못해 입이 간지러워 꼭 털어놓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정우성(41)은 정말 잘생겼다. 요즘 인터넷상에 떠도는 유머처럼, 신이 정우성을 만들 때 연기력과 집중력, 카리스마, 강렬한 눈빛 등을 한 컵씩 넣다가 재능을 너무 많이 주었으니 잘생김은 조금만 주려다 앗, 손이 미끄러져 왈칵 쏟았나 보다. 세월은 연륜이라는 상의 대가로 젊음의 아름다움을 앗아가지만, 마흔 줄에 접어든 정우성은 젊고 싱그러운 신인들과의 외모 경쟁력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고백하는 이유는, 정우성이라는 완벽한 피사체에 대한 일종의 예의 같은 거다. 20년 동안 대한민국 영화배우로 살며 그 아름다운 모습을 스크린에 봉인시켜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 직접 만난 정우성은 생각보다 더 근사했고, 더 빛이 났으며 또한 완벽했다.
배우 정우성의 모습이 봉인된 영화를 볼 수 있는 정우성 특별전, ‘청춘, 가슴 뛰게 하는 이름: 정우성’이 2013년 12월 1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열렸다.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구미호’ ‘본 투 킬’ ‘비트’ ‘태양은 없다’ ‘새드 무비’ 등 총 15편이 상영됐으며, 특별전의 주인공인 정우성은 12월 14일과 15일 양일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언론에 공개된 15일의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보니 지척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음에, 더욱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던 팬들의 두근거림까지 모두 느껴지는 듯했다.  


정우성으로 진화하는 정/우/성

영화 ‘비트’ 속에 봉인된 불멸의 청춘
무의식중에 “온다, 온다, 온다” 하는 아이유식 3단 고음이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팬이 건네준 꽃다발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 관객석 한가운데에 앉는다. 16년 전 상영됐던 오리지널 필름으로 ‘비트’를, 그것도 팬들과 함께 볼 수 있음이 영광스럽다던 이 남자는 영화가 시작되자 환규(임창정)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한발 앞서 웃음을 터트리고 이제는 다른 남자의 여자가 돼버린 로미(고소영)와의 키스 신이 나올 때면 마른 침을 삼키다 커피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스크린의 불빛에 아른거리던 그의 실루엣과 반짝거리던 눈빛.
영화 상영이 끝나자 ‘비트’의 김성수 감독은 자신이 정우성의 젊은 날 그 아름다운 육체를 불멸의 스크린 속에 각인해놓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정우성은 영화의 감상평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무대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주상철 ‘씨네21’ 기자의 사회로 16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 추억 돋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시 흥행·인기·작품성 삼박자가 맞물렸던 영화는 별로 없었다. 청춘스타도 드물었고. 그런 점에서 ‘비트’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도 완벽한 젊은 남자 배우를 대형 스크린에서 원 없이 보여주었던 최초의 영화다.
김성수 내가 정우성을 처음 본 것은 잡지를 통해서였다.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 얼굴이 아니더라. 보는 사람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눈빛. ‘비트’를 찍으면서 난 정우성에게 감전됐던 것 같다. ‘정우성이 나온다면 이렇게 멋있어야 해’ 하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이 때문에 ‘태양은 없다’를 찍을 때 오히려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우성이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내가 그를 멋 부리는 사람으로 봐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은 멋스럽게 연기하는 게 아닌데, 보는 사람이 멋있게 봤던 거였다.

지금 보니 액션 장면도 엄청 많이 나오더라. 보통의 액션 영화에서 6~7개 액션 장면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 당시의 촬영 여건을 생각했을  때 엄청난 분량이다.
김성수 정두홍 감독이 무술감독을 맡았다. 사실대로 찍자고 해서, 약속된 장면 외에도 상황에 맞게 흘러가듯 액션 신을 찍은 것도 많아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장면을 정우성이 다 소화했다. 아마 엄청 힘들었을 거다.
정우성 마지막 액션 장면인 지하 주차장 신을 찍을 때 허리 디스크가 악화된 상황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다리를 들 수 없어서 바지를 못 갈아입을 정도였다. 촬영 전부터 좋지 않았는데, 액션 장면을 찍으면서 더 악화됐다. 요즘처럼 영화 찍기 전에 훈련을 받고 연습도 했더라면 더 좋은 장면이 나왔을 텐데, (당시는) 훈련이나 연습 없이 현장에서 익히고 합을 맞춰 촬영했던 거라 많이 아쉽다. 지금 보니 너무 엉성하다. 그때는 그게 액션의 전부인 줄 알았다(웃음). 내 몸 하나 불사르면 액션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촬영은 힘들었지만 나는 언제나 현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배우다.
김성수 당구장 액션 장면을 찍을 때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 원래 이틀 동안 찍을 요량으로 대관료를 냈는데, 당구장 사장이 이러다 가게가 다 부서지겠다며 하루만 찍고 나가라고 하더라. 이틀 분량을 하루 만에 다 찍어야 해서 쉬지 못하고 촬영했다. 잠깐 짬이 났을 때 정우성이 담배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뒤따라 나갔더니 당구장 올라가는 좁은 계단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더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어 가슴이 많이 아팠다.   



김성수 감독에게 들킨 것이 한 번이지, 들키지 않게 여러 번 울었을 것 같다.
정우성 촬영이 모두 끝나 쫑파티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가슴이 먹먹하더라. 민이는 왜 죽어야 하지? 영화 속 민이는 죽었지만 나는 절대 죽이지 말자. 내 안에 잘 담아서 잘 성장 시키자는 생각이 들었다. 민이는 청소년기 불안함의 상징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니까 내가 잘 성장시켜야겠다는 의무감이 들더라. 내가 성장하면서 민이도 함께 성장했다. 내 마음속에서 민이를 단 한 번도 죽인 적이 없다. 결국 내 안에 담아두었던 민이가 나를 더 성장시켰다.
 
정우성이 생각하는 청춘의 모습은 어떤가? 지금의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정우성 청춘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청춘이다. 그게 인생을 허비할 만큼 비현실적인 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확신이 있는 도전이라면 해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내 마음에서 확신이 선다면 겁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핸들을 놓고 두 팔을 벌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명장면이다.  설정뿐 아니라 청춘의 감성도 깊게 묻어난다.
정우성 감성적으로 청춘의 방황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김성수 그 장면을 촬영했던 도로가 지금의 경기도 분당 정자동인데, 개발되기 전이라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에 도로만 뚫려 있었다. 오토바이 촬영에 도움을 주던 분이 불가능한 장면이라며 찍지 말라고 했다. 촬영에 쓰인 오토바이 모델의 경우 액셀러레이터를 놓으면 속도가 곧바로 줄어든다고 하더라. 그래도 누가 알겠나 싶어서 그냥 찍었다. 정우성 사실 그 장면 찍으러 가면서 많이 웃었다. 그때 차를 타고 가면서 ‘정자동’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여기가 정자, 정자동이래” 하며 웃었다(웃음).

두 분이 ‘비트’와 ‘태양은 없다’ ‘무사’ 세 작품을 함께했다. 다시 촬영할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정우성 ‘무사’다. ‘무사’는 속편도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재개봉하고 싶은 영화기도 하다. 개봉 일주일 만에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대국민적으로 공공시설에 가지 말자는 분위기가 돌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200만 관객이 들었다. 일전에 안성기 선배도 자신의 영화 중 다시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무사’를 꼽더라.   


정우성으로 진화하는 정/우/성

진화하는 배우, 정우성
정우성은 1994년 ‘구미호’로 데뷔해 1996년 ‘본 투 킬’, 1997년 ‘비트’를 찍었다. 데뷔 당시 그저 잘생긴 청춘스타에 불과했던 정우성에게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준 영화가 바로 ‘비트’다. 불안한 청춘의 아이콘, 반항의 눈빛을 가진 배우의 대명사로 곧 ‘정우성’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비트’를 상영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태양은 없다’는 흥행과는 별개로, ‘유령’ ‘무사’ ‘데이지’ ‘중천’ ‘러브’는 배우의 능력과는 별개로 ‘비트’의 ‘정우성’을 뛰어넘지 못한 채 그저 ‘정우성’이란 대명사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일본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고 정우성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또한 정우성의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큰 변화를 시도한 것은 2003년 ‘똥개’에서였다. 정우성이 보여준 파격에 가까운 변화는 눈물겨운 그의 노력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특출한 외모와는 상관없이 그가 선택한 망가짐이 너무 가혹해 보였기 때문이다. 스타이자 배우 정우성은 최정상의 자리에서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며 자신이 쌓아놓은 ‘정우성’이란 대명사와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아성을 넘어뜨린 작품은 단연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비트’의 민이가 오토바이에서 말로 바꿔 타고, 성숙하고 유능하며 진중한 어른이 돼 나타난 것이었다. 신개념의 ‘정우성’은 최근작 ‘감시자들’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필모그래피 최초로 악역을 맡았지만 기존 정우성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도 냉담하고 잔혹한 또 하나의 정우성을 만들었다. 이제 정우성은, 자신이 지켜야 할 이미지와 배우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낸 것 같다.
 
지금 촬영 중이거나 기획 단계의 영화가 두 편이다.
정우성 지금 ‘신의 한 수’를 촬영 중이다. 아무래도 2014년 1월은 넘어야 완성될 것 같다. ‘마담뺑덕’은 ‘심청전’을 현대극으로 바꾼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치명적인 멜로를…(웃음). 그리고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제작과 출연으로 참여하게 됐다.

배우 정우성의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김성수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연기를 강렬하게 하고 표현을 많이 하면 연기파 배우라고 한다. 그런데 잘생긴 배우가 강렬한 연기를 하면 “과장되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멋지다는 게 오히려 덫이 된다. 그건 정우성에게 빛이자 곧 그늘이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정우성’이라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진. 정우성은 때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도 했고, 때론 정우성이 가진 전형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나는 정우성에게 각인된 그 근사한 이미지를 앞으로도 20년 동안은 더 보고 싶다. 그 안에서의 작은 변주와 함께.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중년 남자를 향해 가는 멋스러움이 어우러지는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완벽한 외모가 더 이상은 그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디션에서 낙방한 연기자 지망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면.
정우성 원래 유명 스타들에게는 모두 오디션에서 무수히 떨어진 경험이 있다. 나도 방송국 공채에서 죄다 떨어졌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그 거친 과정이 있어서 더 강한 내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남의 것을 흉내 내려던 거더라. 나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결국엔 그것이 내 모습이더라.

그간 많은 여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상대역은 누구인가.
정우성 연기를 할 때는 그 배역에 녹아드는 것이기에 상대 배우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많은 여배우들과 많은 멜로를 해보고 싶다(웃음).

당신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인가.
정우성 예전에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확장시키려는 욕심이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눈에 힘만 주냐?”고들 하더라.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사실 그게 내 장점인 줄 그때는 몰랐다. 그걸 외면하려고만 했고, 다른 것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더라. 요즘 현실적인 모습, 인간 냄새가 나는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런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도 필요하지만 비현실적인, ‘아, 저건 영화지’ 싶은 작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내가 포함되는 것 같다.



글·진혜린|사진·문형일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여성동아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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