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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글&사진 · 남기환 여행작가

2015. 04. 02

모든 것이 새롭게 싹트는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의 감흥이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알 길 없는 봄은 천천히, 그리고 은근한 걸음으로 우리 땅을 채워간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기 힘들다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보길. 파도에 밀려 조금 일찍 상륙한 봄이 바다와 해변, 그리고 사람의 마을을 슬며시 흔들어 깨우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섬 가득 채운 푸근함이 둥글어진 바람을 선사하는 여행

남해


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넉넉하고 푸른 바다를 사방에 둔 섬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봄기운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이다. 봄 내음 차오르는 남해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로 금산을 들 수 있다. 해발 681m에 갖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산세, 그리고 무엇보다 정상에 오르면 발아래로 한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이 일품이다. 이곳 금산에서 등산객과 여행객이 모두 꼭 거쳐 가는 곳은 보리암이다. 이성계가 젊은 시절 백일기도를 드린 후 조선 개국의 대운을 입었다는 전설과 함께 꽤나 영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찰이다. 거친 산자락을 이용한 가람 양식도 이색적이고, 금산 정상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그윽한 눈길을 보내는 해수관음보살상, 탑 주위에 특이한 자장이 형성된다는 3층 석탑 등이 빼어난 풍경에 신비로움까지 더한다. 또한, 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관을 이룬다.

남해의 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숨은 명소는 남해대교 일대다. 붉은색 교각과 주변 바다 풍경이 이루는 조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바로 그곳이어서 역사적인 의미도 깊다. 이 남해대교를 건너면 저만치서 봄이 절정에 이른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대교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벚꽃터널이 시작되는 것. 내륙과 섬을 이은 다리를 건너는 순간도 이색적인데, 여기에 더해 만개한 벚꽃이 환한 웃음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특히 남해대교를 건너 충렬사로 가는 길, 왕지마을 쪽 벚꽃길이 아름답다.

젊은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는 단연 독일마을이다. 파독 광부들의 정착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이제 유럽의 작은 마을을 연상시키는 이채로운 정경 덕분에 여행지로 각광받게 됐으며, 커피와 맥주 등 유럽과 독일을 상징하는 테마를 더해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남해 본섬과 창선도를 잇는 창선대교를 건너 지족마을에 이르면 바다 위에 마치 울타리인 듯 V자 형태로 세워진 대나무 발을 여럿 보게 된다. 물살을 이용해 멸치와 다양한 생선을 갇히게 해 썰물일 때 손쉽게 건져내는 ‘죽방렴’이라는 원시 어업법이 이곳에서 여전히 펼쳐지는데, 이렇게 잡은 멸치는 스트레스에 덜 시달려 신선하고 맛도 으뜸이다. 남해 죽방렴 멸치가 높은 몸값으로 귀하게 대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의 남해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가천마을에 이른다. 이 마을은 다랑이 논을 조성해 작물을 경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다를 향해 난 산사면 비탈마저도 아쉬웠던 옛날, 이 비탈에 일일이 석축을 쌓아 올려가며 소 한 마리 겨우 오갈 수 있는 논을 일궈냈다. 마을 위에서 바다를 향해 서서 이 다랑이논을 보면 물결치듯 비탈을 따라 내려가는 논이 먼바다로 이어지는 기막힌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만일 좁은 논 한 배미(다랑이 논 한 칸을 뜻하는 단위)를 계단 삼아 거닐 수 있는 거인이 있다면 이 다랑이 논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 곧장 바다로 풍덩 하고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우리 땅 끝자락에 이렇듯 아기자기하고 예쁜 다랑이 논이 있었을 줄이야. 이곳 가천 다랑이 논은 산비탈의 굴곡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집을 감싸고 마을을 휘도는 풍경이 가히 멋스럽다. 또 가천마을은 벽화와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속속 더해지면서 꽤나 멋스러운 풍경으로 바뀌었으니 마을길을 천천히 산책하다 차 한잔하는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남해 여행 정보 tour.namha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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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봄 먹거리로 더 풍성한 여행을 기대할 만한 곳이다. 특히 지족마을에서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봄이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뼈가 억세지 않아 통째 회로 먹거나, 재래 된장 풀고 칼칼한 양념에 우거지와 마늘을 넉넉히 넣어 조린 후 멸치쌈으로 먹으면 그만이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바다에서 꺼내면 금방 죽는 데다 기름기가 많은 편이어서 쪄서 말리는 게 보통이라, 회나 쌈으로 즐기는 건 남해 같은 산지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멸치와 더불어 다양한 생선들도 한창 맛이 들 때인데, 생선을 넣고 끓인 미역국을 남해에서 맛보길. 그 가운데서 봄 감성돔을 넣은 활어 미역국은 감성돔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부드러운 미역, 뭉근한 국물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가천마을은 계단식 논뿐만 아니라 유자를 많이 재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유자의 잎을 따 담근 막걸리가 마을의 특산품이다. 마을 산비탈 꼭대기에 위치한 ‘다랑이 맛집’은 유자막걸리와 파전을 즐기기 좋은 곳이며, 마을과 바다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특급 전망’도 덤으로 얹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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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미항에 찾아든 봄

통영


다와 섬들이 보석 같은 풍경을 빚어내고 박경리, 유치진, 윤이상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던 항구도시 통영은 봄 여행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장담하건대, 하루이틀로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내륙을 향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통영항을 시작으로 갖은 해산물이 싱싱하게 부려지는 중앙시장과 다양한 벽화가 마을을 이국적으로 단장한 동피랑 등을 둘러보는 동안 바다에서 불어오는 푸근한 바람에서 새봄의 시작을 감지한다.

임진왜란 후 한산도에 있던 수군통제영을 옮긴 뒤 지은 객사인 세병관과 일제가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한 해저터널, 통영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도천동의 윤이상기념공원(도천테마파크)을 거쳐 유치환·유치진·김상옥·김춘수·전혁림 등 통영에서 나거나 살았던 예술가들이 즐겨 올랐던 남망산에 오르면 저만치 강구안의 매혹적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청마 유치환을 기념하는 청마거리(중앙동 우체국 일대)와 초정 김상옥의 흔적을 담은 초정거리에서도 예술 도시 통영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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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에서 통영대교를 건너 미륵도에 이르면 더 많은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해안을 따라가며 푸른 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해안일주도로와 일몰 명소인 달아공원, 박경리 선생의 묘소와 삶을 담은 박경리문학공원 등이 그것. 우리나라 최장 케이블카로 알려진 미륵도 케이블카에 오르면 바다와 섬, 항구가 만들어내는 장엄하고 절묘한 풍경에 감탄사를 쏟아내게 된다. 통영에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을 붙여준 통영운하의 야경은 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이번 통영 봄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아니 반드시 여객선을 타고 주변의 섬들을 둘러보는 여정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한산도, 비진도, 욕지도, 사량도, 매물도를 비롯해 다도해의 숱한 섬들이 거친 바다 너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경을 간직한 채 맞이해줄 것이다. 이들 섬에는 ‘바다 백리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는데, 이 길에선 내륙 그 어떤 곳에서도 만나기 힘든 매혹적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통영 여행 정보 tour.tongy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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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풍성하기로 소문난 통영은 봄이면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한다. 오미사 꿀빵, 우짜, 졸복국, 시락국, 충무김밥 등이 자꾸만 통영에 더 머물고 싶어지게 할 테지만 봄에는 역시 도다리쑥국을 맛봐야 한다. 도다리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봄도다리는 살이 차오르고 기름져 그 맛이 고소하기까지 하고, 여기에 봄 제철 쑥을 넣어 끓인 국이니 봄 맛 즐기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을 듯하다. 통영의 대표 먹거리들은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을 중심으로 쉽게 즐길 수 있으며, 통영의 독특한 한 상차림 술 문화인 ‘다찌’는 어느 고장에서도 쉬 경험하기 힘든 싱싱한 해산물의 향연을 베풀어준다.

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봄물 오른 편백 숲과 바다가 안긴 신선한 맛이 함께하는 여행

장흥


서울 광화문에서 동으로 선을 그으면 바다와 만나는 곳, 우리에게 익숙한 정동진이다. 그럼 그 선을 남으로 곧게 늘어뜨리면 어디에 이를까? 득량만의 청정한 바다가 부드럽게 와 닿는 전라남도 장흥이 그곳이다.

장흥은 분명 바다를 앞에 두른 매력적인 해양 여행지이면서, 내륙 깊숙한 곳에 뒤지지 않는 산과 숲의 정취도 더불어 자랑하는 고장이다. 그래서 잠시 바다로의 여정을 뒤로 미루고 먼저 장흥이 자랑하는 산과 숲을 찾아 땅에서 올라오는 봄기운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그 여정의 첫 목적지는 당연히 장흥의 뒷배를 든든히 봐주는 천관산이다. 해발 723m로 아주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상에 섰을 때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저 멀리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산세가 뛰어나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불린다. 빼곡한 숲과 계곡, 그리고 머리에 아름다운 장식을 단 보관(寶冠)을 얹은 듯하다는 산의 이름을 증명하듯 신비로운 암석이 숱하게 솟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보니 산악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바다의 풍경이 가까이 드리우는 듯한 능선을 지나 정상인 연대봉에 서면, 겹겹이 늘어선 섬들이 마치 바다에서 솟아 굽이치듯 넘실대며 넘어 오고 있는 듯한 장관을 연출해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천관산을 등산하려면 보통 4개 정도의 코스를 따라가야 하는데, 장천재→체육공원→금강굴→환희대→연대봉(3.6km/2시간), 장천재→체육공원→금수굴→억새평원→연대봉(2.6km/2시간), 장천재→양근암→정원석→연대봉(2.5km/1시간 40분), 천관사→환희대→억새평원→연대봉(3.3km/2시간) 등이다. 이 가운데 천관산 중턱에 맑은 물을 사철 흘려보내며 갖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숲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일품인 장천재 계곡을 거쳐 가는 코스를 선택하면 산행하는 이의 눈이 더욱 호사를 누릴 것이다.

장흥이 자랑하는 내륙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두 번째 여행지는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다. 이곳에 들어서면 코끝이 알싸해지는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숲 전체에서 뿜어져 나와 온몸이 맑게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편백나무에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이면 이 숲의 진가가 더 강렬하게 오감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이곳은 편백나무 특유의 강한 피톤치드 덕분에 마음의 안정과 피부 진정(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잘 알려졌다) 등 그야말로 심신에 고루 도움이 될 만한 힐링 여행지. 숲 치유 체험장과 함께 편백 노천탕, 편백 소금집, 편백 톱밥 찜질방, 편백 톱밥 산책로, 목재문화 체험관, 자연 자원을 활용한 한옥, 목공예품을 만들고 생태주택 건축 기법을 익힐 수 있는 목공건축체험장 등 숲이 사람에게 주는 풍성한 혜택을 경험할 수 있는 시설을 두루 갖추었다.

이제 여행은 장흥이 자랑하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바다로 향한다. 장흥의 바다는 득량만을 중심으로 여러 항구와 해안,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이들 가운데 조용한 해변을 즐기기 좋고 주변 풍경이 안온해 인기 있는 곳이 수문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 이르는 길 좌우에 심어진 종려나무가 멋스럽고, 완만하고 너른 해안이 산책을 즐기기에 좋아 사철 많은 이들이 찾는다. 바지락과 키조개 등이 많이 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문리 일대에서 바지락 회무침을 내놓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제철을 맞아 한창 맛이 든 바지락을 싱싱한 회로 즐기는 시간은 수문해수욕장 여행의 추억을 진하게 완성할 것이다.

장흥의 바다를 만나는 꽤 독특한 방법이 또 있는데,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 위에 인공 섬을 조성한 정남진 해양낚시공원을 둘러보는 것이다. 멀리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고, 여기에 더해 바다 한가운데 둥실 떠 있는 이글루형 펜션에서는 약간의 스릴감도 맛볼 수 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하거나 파도가 높아지면 아예 출입이 안 될 수 있으니 사전에 출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장흥 여행 정보 travel.janghe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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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한우와 키조개, 표고버섯 등이 최고의 특산물로 손꼽힌다. 이 가운데 ‘장흥 인구보다 한우 두수가 더 많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장흥은 전국 최고의 한우 산지로 통하는데, 장흥 한우를 맛보거나 구입하려면 5일장(2·7장)과 상설장이 함께 서는 정남진장흥토요시장이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만족스럽다. 그런데 장흥 한우와 더불어 앞서의 특산물을 한자리에서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장흥의 독특한 음식이 있으니, 이름하여 ‘장흥삼합’. 1등급 정도의 한우를 부담 없는 가격에 사서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등과 함께 돌판에 구운 뒤 한 번에 감싸 입안 가득 이 셋이 어우러진 식감을 즐긴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봄철 입맛 돋우는 바지락 요리도 장흥 여행을 더욱 맛깔스럽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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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삶의 위대한 시간을 만나는 여행

순천


순천은 세계적인 자연 습지이자 광활한 갯벌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풍경을 지닌 순천만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로 유명한 순천만 정원, 그리고 옛 읍성의 구조와 생활상이 생생하게 재현된 낙안읍성 등 이색적인 자연과 문화를 고루 체험하는 봄 여행을 약속한다.

순천 여행의 첫 여정은 무성한 갈대밭과 바다와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 아스라이 펼쳐지는 갯벌이 어우러진 순천만이다. 보통 여행자들은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을 중심으로 이 순천만을 경험하게 되는데, 순천만의 모든 면면을 다 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 들르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만든 위대한 생명의 보고와 마주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생태공원에 들어선 뒤 나무로 짠 데크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풍성한 갈대숲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순천만 갈대습지의 진가를 드러낸다. 막 깨어나는 봄 습지의 생기와 마주하며 그 속으로 천천히 거닐어보길. 간혹 갈대숲 바닥에서 작은 습지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그리고 갈대 너머 바다에서 불어오는 뭉근한 봄바람이 이 산책에 함께한다.

용산전망대에서는 순천만을 상징하는, 신비로움이 두 눈 가득 펼쳐지는 장관을 만난다. 갯벌 사이를 유려하게 흐르는 좁은 해로가 S라인을 그려내며 그 사이 작은 원형의 갈대섬이 점점 떠 있는 전망 앞에 서면 현실이 아닌 외계의 어느 공간에 온 것이 아닐까 싶은,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맛볼 것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바닷길을 따라 순천만을 속속들이 둘러보는 생태체험선에 올라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순천만과 세계의 아름다운 정원을 한데 모아놓은 순천만 정원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더 이채로운 봄 풍경과 만나는 시간도 가져보자.

순천만을 벗어나면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이 기다린다. 성곽 안에 온전한 도시를 형성했고, 그 모습이 지금껏 남아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하는 낙안읍성이다. 실제 사람이 거주하거나 식당, 체험 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초가집들은 순번을 정해 매년 지붕을 볏짚으로 이으며 옛 삶을 이어나가고, 동헌과 양반가를 비롯한 많은 고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자리해 수백 년 전의 시간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옛 장터에서 국밥을 들거나 전통 공예와 놀이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가족 모두와 함께하면 좋을 듯. 성곽 위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읍성의 푸근한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도 가져보자.

낙안읍성에서 조선시대의 삶을 엿봤다면,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거리와 일상을 재현해놓은 순천오픈세트장에서는 근현대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지금도 방앗간에서는 떡을 만들어내고, 양장점에서는 분주히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새어나올 듯하며, 조악한 전구 장식의 다방에서는 동네 한량들이 갖은 폼을 잡으며 게으른 오후를 보내고 있을 듯하다. 또한 촬영 세트장으로서는 드물게 실제 산비탈에 달동네 전체를 재현해놓아 더욱 이채롭다. 영화 ‘강남 1970’과 ‘허삼관’ ‘늑대소년’ ‘님은 먼 곳에’, 드라마 ‘사랑과 야망’ ‘서울 1945’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 등 풍부한 작품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어 눈썰미 좋은 여행자라면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된 거리와 건물을 맞춰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순천 여행 정보 tour.su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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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바다에서 불어온 푸근한 바람을 맞으러 간 길 남도 여행
바다에서 나는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바지락정식과 꼬막정식, 짱뚱어탕 등이 여행자들의 입맛을 돋운다. 봄이 제철인 바지락을 재료로 한 무침과 부침개, 구이, 국 등이 푸짐하게 나오는 바지락정식은 입맛을 개운하게 하는 별미. 무침과 숙회, 부침개 등을 고루 즐길 수 있는 꼬막정식도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순천에서는 갯벌에서 잡히는 짱뚱어를 주로 탕으로 맛보게 되는데, 삶아낸 짱뚱어를 곱게 갈아 마치 추어탕처럼 끓여 내온다. 그러나 고소하고 얼큰한 특유의 국물 맛은 추어탕과의 비교를 감히 허락하지 않으며, 속이 시원하고 든든해 봄철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특히 겨울잠을 자고 난 짱뚱어의 살이 기름지게 오르고 맛이 가장 좋은 계절이 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망설임 없이 짱뚱어탕 한 그릇을 주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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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여행작가

월간지 ‘Travel&Culture’ ‘CASA Bistro’ 등을 거쳐 여행 전문지 ‘The Beetle Map’ ‘across’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편집 디자인 업체 ‘아쉬’의 대표이자 미국계 유통업체 ‘코스트코’가 발행하는 멤버십 매거진 ‘The Costco Connection’ 한국판의 편집인이다.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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