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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퍼 이용선 손글씨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김도균

입력 2015.04.01 11:16:00

학창 시절 반에 꼭 한 명은 악필인 친구를 대신해 예쁜 손글씨로 연애편지를 써주는 친구가 있었다.
가수 윤하와 니엘의 앨범 재킷 타이틀 작업을 하며 유명세를 얻은 이용선 작가를 만나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활자를 넘어 기쁨과 슬픔, 희망 등을 글씨로 표현하는 캘리그래피의 세계에 대해 알아봤다.
캘리그래퍼 이용선 손글씨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컴퓨터로 원하는 글씨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손글씨가 지닌 따뜻한 감성만큼은 그 어떤 것으로도 흉내 낼 수 없다. 미(美)를 뜻하는 캘리(Calli)와 화풍, 서풍의 의미를 지닌 그래피(Graphy)가 합쳐진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글씨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동시에 감정을 표현해내는 작업을 말한다. 예전에는 상품 이름이나 영화 포스터, 앨범 재킷, 광고 문구 등에 주로 활용됐는데 최근 들어서는 행사 답례품, 다이어리 등의 문구류, 소규모 가게의 간판, 심지어 과자 봉지에서도 캘리그래피를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배우는 과정도 그리 어렵지 않아 취미 생활로 시작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가수 윤하의 ‘내 마음이 뭐가 돼’와 니엘의 ‘못된 여자’ 앨범 재킷 타이틀 작업을 한 캘리그래퍼 이용선(33) 씨 역시 취미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이씨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악필 중의 악필이었다고 한다. 시력이 나쁘지만 키가 크다는 이유로 교실 맨 뒷자리에 앉게 된 그는 짝꿍의 노트를 보면서 필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 친구 글씨가 여자 글씨처럼 예뻐서 따라 하다 보니 1년이 지난 뒤에는 이씨 역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글씨체를 갖게 됐다고. 그때부터 글씨 쓰기와 필기구 모으기 취미를 갖게 됐고 대학 졸업 후 영어학원을 운영하다 그만두고 5년 전부터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이산글씨학교 청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산글씨학교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을 쓴 유명 캘리그래퍼 이산이 운영하는 아카데미로 이씨 역시 이곳 출신이다. 현재 이용선 씨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캘리그래피 강의를 하고 있으며, ‘훈훈한 외모’로 기업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에게 기념문구를 써주는 작업도 자주 한다.

“캘리그래피는 어디에나 활용할 수 있어요. 요즘 업체 행사장에 가면 에코 백에 글씨를 써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가방이 아니어도 다이어리나 휴대전화 케이스, 옷, 신발 어디든 필기구 종류만 달리하면 캘리그래피를 완성할 수 있어요. 재료에도 제약이 없어서 붓 대신 나무젓가락, 마스카라 솔, 칫솔 등으로 터치감을 강조하기도 하죠.”

12주 코스로 기초반 마스터, 악필도 도전 가능

캘리그래퍼 이용선 손글씨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이용선 씨는 작업 전 연습용으로 ‘캘리로 힐링하자’는 문구를 자주 쓴다.

이용선 씨는 캘리그래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소통이 가능한 작업’이라는 점을 꼽았다. 순수 예술처럼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글씨를 원하는 의뢰인이 있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글씨체에 변화를 주는 등 누군가와 교감하며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프러포즈용 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자신이 마치 예비 신랑이 된 것 같은 생각에 글을 쓰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이용선 씨는 “캘리그래피를 ‘감성 손글씨’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캘리그래피가 상업적인 용도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전시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다. 그 역시 최근 이산글씨학교 출신들과 ‘사투리’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가시나 오늘 깔롱지기네(멋 좀 부렸네)’라는 문구를 시트지에 써서 오린 뒤 원목 거울에 붙여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작품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 섰다가 그 문구를 보고 웃음이 나지 않은 이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최근에는 문화센터 등에서도 캘리그래피를 손쉽게 배울 수 있다. 취미 목적이라면 12주 코스도 충분하다. 좀 더 욕심을 내 직접 숍을 열어 수강생을 받고, 돌 답례품, 부채, 텀블러 등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소품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글씨를 배우기 시작해서 3주쯤 지나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길거리에 온통 다 글씨라는 거죠. 실제로 상가 간판부터 커피숍 메뉴판, 라면 봉지에 쓰인 글씨까지 모두가 캘리그래피거든요. 수강생 중에는 임신부들도 많아요. 왕실 태교에 서예가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 글씨를 잘 쓰려면 붓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되고 자세도 발라지죠. 아이가 태어나면 족장을 찍은 종이 위에 캘리그래피로 글씨를 입히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용선 씨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멘토링도 종종 나간다. 최근 몇 년 사이 캘리그래퍼란 직업에 관심 갖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이씨가 해주는 말이 한 가지 있다. ‘취미로 하는 것과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씨 역시 캘리그래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글씨보다는 의뢰인이 원하는 글씨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린 친구들의 경우 또래들이 하는 칭찬에 너무 자신감이 붙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웃음). 하지만 캘리그래퍼에게는 내 기분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요.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하면 ‘왜 내 글씨를 좋아하지 않지?’ 하고 슬럼프에 빠지기 쉽거든요. 상대방의 지적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지만 실력이 늘어요.”

혹시 악필이어서 ‘캘리그래피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가들 중에는 악필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씨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악필인 경우 새하얀 도화지와 같기 때문에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필체를 찾아내기 더 쉽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일러스트를 배우는 것과 영화 포스터 타이틀 작업에 도전해보는 것. 일러스트를 배우려는 이유는 간혹 글씨와 그림이 조화를 이뤄 더 좋은 효과를 낼 때가 있어서인데, 특히 미술 전공자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이용선 씨가 작업에 들어가기 전 연습용으로 주로 쓰는 ‘캘리로 힐링하자’는 문구처럼, 평소 큰 품 들이지 않고 취미 하나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오늘부터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여성동아 2015년 4월 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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