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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배우에서 화가로, 김현정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다

글·김명희 기자|사진·홍태식

2015. 02. 13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의 직장 선배, 장 캡틴을 연기했던 배우 김현정이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토끼 ‘랄라’가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한없이 익숙하고 따뜻하다.

배우에서 화가로, 김현정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다른 이유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뒤로 밀쳐두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배우 김현정(36)의 그림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숨기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의 마음이 답입니다. 그러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라고.

배우 김현정, 이름만 들어서는 금방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그의 얼굴을 보면 ‘아 그 배우!’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999년 청바지 브랜드 ‘스톰’ 모델로 데뷔한 그는 ‘광끼’ ‘아버지와 아들’ 등 굵직한 드라마를 통해 연기 경력을 쌓았고,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사사건건 삼순이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09년 연극 ‘나비’를 끝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그림 공부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 서울 아트링크에서 첫 개인전을 연 데 이어, 서울 평창동 가나컨템포러리에서 이왈종, 이경렬 작가와 함께 전시회를 갖는 등 화가로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 최초의 사립 비영리 미술관인 진르미술관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이왈종 화백과 더불어 김현정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김현정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늘어진 큰 귀에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를 입은 토끼 인형 랄라가 등장한다. 쿨해 보이기도 하고 귀여운 듯도 한 이 인형 앞에 서면 사람들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장 해제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김현정은 2008년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심리상담 교육을 받으며 인형 치료법을 통해 내면아이 ‘랄라’를 만났다.

“연기자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게 중요한데, 저는 이상할 정도로 멜로 연기가 안 됐어요. 맏이였던 탓에 어릴 때부터 소꼽놀이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건 동생에게 다 양보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소녀적인 감성이나 여성적인 정서가 억눌렸던 거죠. 상담 선생님께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해보라고 권하시기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인형 가게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많은 인형 중 토끼 인형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왠지 저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를 입양하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심정으로 토끼 인형을 데리고 왔죠.”

마음의 문을 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배우에서 화가로, 김현정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다
당시 김현정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또 연기자로서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도 못 자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를 정도로 경직돼 있던 그는 랄라를 만나면서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욕구를 표현하고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어요. 내면아이와 대화를 한다니까 다중인격이 아니냐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랄라를 만날 무렵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그림에 랄라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은 화주수보(畵主繡補)라는 새로운 화법을 고안, 특허까지 냈다. 그의 그림은 동양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중국에서 특히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의 한 평론가는 “서양 인형에 감정을 이입한 것이 마치 문인화가들이 자신의 감정을 꽃이나 나무, 바위, 새 등에 빗대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세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며, 배우의 길을 중단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 물었다.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슴 뛰는 배역이 있어요. 친한 PD님들께 그림 그리는 뒷모습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도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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