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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SENSE&SEX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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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미소년 | 일러스트·송다혜

2015. 01. 08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 둘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과연 같은 무게일까.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전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서 헤헤 웃으며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남자 이해하기.

며칠 전에 결혼한 친구에게 결혼식 전날 물었다. “했어?” 그 친구는 여자친구를 1년 만났고, 신혼집까지 마련해둔 상황인데 여자 친구와 잠을 한 번도 안 잤다. 심지어 저녁 9시 이후에는 통화도 안 했다. “여자친구는 내가 늘 9시에 자는지 알아.” 우리는 만나면 늘 새벽 1~2시까지 같이 있었지만 친구의 여자친구는 그걸 몰랐다. 그 친구는 이혼한 엄마와 살았다. 외아들이었고,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원래 엄마가 돈을 많이 벌었는데, 5년 전부터 거의 돈을 못 벌고 계신다. 엄마 믿고 대책 없이 살던 친구는 졸지에 거지가 됐다. 일을 하긴 하는데 워낙 호화롭게 살았기 때문에 달라진 현실에 잘 적응을 못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엄마는 끔찍하게 생각한다. 혼자 자신을 키웠으니 애틋하긴 하겠지. 그래서 이 친구의 목표는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손자를 안겨주기 위해. 손녀 말고 손자.

그러다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여자는 친구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집안 형편도, 빈약한 경제력과 게으름까지. 심지어 저녁 9시에 잔다는 빤한 거짓말까지. 그리고 결혼 전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깍듯했다. 그런데 단점이 하나 있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

“왜 섹스를 안 하냐고? 하고 나면 둘 중 하나일 거야. 더 좋아지거나, 아예 꼴 보기도 싫어지거나. 그런데 나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잘하는 애를 어디서 또 찾겠어?”

둘은 결혼에 성공했다. 말 그대로 성공했다. 그저께 신혼여행을 갔다 왔는데 아직 못 물어봤다. “좋아?” 아니면 “꼴도 보기 싫어?” 어찌 됐건 이제 끝났다. 둘은 살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 한심하고 나쁜 남자라고 하겠지? 그렇지만 내 친구는 나름대로 사랑을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려면 누구나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하지 않나?

결혼을 앞두면, 아니 결혼을 준비하는 여자는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할까? 안 궁금하다. 남편 집안으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받아야 한다는 둥, 육아를 핑계로 대서라도 신혼집은 친정이랑 가까운 곳에 구해야 한다는 둥, 뭐 이런 이야기를 할까?



남자들도 힘들어요

남자는 결혼을 앞두면 한숨 쉬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한탄한다. 여자들의 어이없는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따지자니 체면이 안 살고, 안 따지자니 여자가 너무 치사하게 구는 것 같고. 여자들은 왜 받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주는 건 대단하고 거대하고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할까? 왜 그런 생각을 남자에게 강요할까? 결혼을 앞두면 뇌가 이상해지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맞는 얘긴지 모르지만, 내가 형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나는 뭘 받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이만큼 받을 수 있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혼 전략을 짠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여자분들, 맞나요? 아, 남자도 힘들어요, 좀 이해해주세요.

요즘은 집값이 워낙 비싸서 집값을 보태는 여자도 있다고 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 그런 얘기를 하면 남자들은 전부 이렇게 말한다. “잘해라. 그런 여자가 어디 있냐.” 나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 친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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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도 그렇다. 남자들끼리 있을 땐 얘기한다. “결혼식은 한 시간이면 끝나잖아. 근데 꼭 강남에서 해야 해?” 결혼식을 종로에서 할 때와 강남에서 할 때, 비용이 적게는 1백만원에서 많게는 3백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그런데 왜 굳이 강남에서 하려고 할까? 물론 나는 이해한다. 강남에서 해야지. 다들 강남에서 하는데 내 여자만 강북에서 결혼하게 할 순 없지. 그래서 결국 강남에서 하지만 여자들에게 묻고 싶다. 꼭 그래야 해?

물론 이런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결혼하면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 안 갈 거야?”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답을 안다. 여자친구 있었을 때 간 남자들은 부인이 생겨도 간다. “안 걸리면 바람피운 게 아니야. 걸리는 순간 바람피운 게 되지.” 내 친한 친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남편이 친구 생일 파티를 하러 나갔거나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집에 들어온 시간이 새벽 4시 이후라면 의심해야 한다. ‘우리 남편은 돈 없어서 못 간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오산이다. 친구가 ‘쏘는’ 날이 의외로 많고, 내가 아는 유부남들은 전부 부인이 모르는 비상금을 갖고 있다. 아니, 집에 예쁜 부인이 있는데 왜 그런 델 가, 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 예쁜 부인이 있을 수도 있다(모든 부인이 예쁜 건 아니다). 하지만 술집에도 예쁜 여자들이 있다. 심지어 남자들의 이상형이라는 ‘처음 보는 여자’다. 어지간하면 결혼한 남자도 술집에 간다. 내 주변엔 그렇다. 내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모두 정신 나간 놈들인가? 굳이 부연하자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진 않다. 1년에 많아야 3~4번. 그리고 ‘2차’는 거의 안 간다고 적어야 여자들이 마음 편하겠지?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이야기가 좀 샜는데, 결혼을 앞둔 남자가 가장 많이 묻는 말은 이거다. “결혼하면 좋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답이 없지. 이건 질문만 존재한다. 기껏해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니까,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어?” 정도다. 내가 그래서 결혼했다. 쓸데없는 말장난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결혼이라는 환상을 품고만 있을 때가 오히려 행복하다. 그리고 결혼 준비할 때 괴로운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왜 굳이 하고 후회를 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자들은 계산을 잘 못한다. 사실 이런 성향 때문에 결혼하는 과정이 힘들고 짜증 나는 거다. 여자는 남자보다 셈이 빠르니까. 남자는 여자를 당해낼 수가 없다. 아무튼 남자는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과 안 하고 후회하는 것을 저울에 올려두면 같은 무게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 마이 갓!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결국 술자리가 끝날 때가 되면 “그래, 하고 후회하자”라고 결론 내린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와버렸으면서 그 순간에 이르러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것이다. 내 결정이 옳을 거야, 라고 위로받는 거. 그래서 옆에 간혹 계산 빠른 유부남이 “야, 결혼하면 끝이야. 굳이 벌써 할 필요 없어. 조금 더 고민해봐”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은 술자리를 끝내고 엄마와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전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서 헤헤 웃는 것이다.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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