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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장’ 세계화를 위해 뛴다! Success Way

셰프 출신 샘표 최정윤 팀장

글·김유림 기자|사진·김도균

2014. 12. 17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라고 했다. 그의 예언대로 최근 미식업계의 화두는 단연 발효. 그리고 우리에게는 발효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장’이 있다. 2011년부터 해외 유명 셰프들에게 우리의 장을 알리며 ‘장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샘표 최정윤 장 프로젝트 팀장에게 해외 공략 성공담을 들었다.

‘장’ 세계화를 위해 뛴다! Success Way
지난 1월 스페인에서는 전 세계적인 미식 박람회 ‘마드리드 퓨전’이 열렸다. 박람회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음식은 한국의 장을 응용한 발효 요리. 스페인 대표 요리사 다비드 무뇨스 셰프는 한국식 쌈과 김치를 선보였고, 키케 다코스타 셰프는 고추장을 이용한 생선 요리를 무대에 올렸다. 실제로 요즘 미식업계의 화두는 ‘발효’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끄는 주요 기동력 또한 발효의 대명사인 ‘장’이라 할 수 있다.

발효 전문 기업 샘표는 3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 장을 세계에 알리는 ‘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자리한 ‘알리시아 연구소’와 손잡고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을 서양 요리와 접목하는 시도를 해온 것. 그 결과 서양인들이 우리 장을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장 컨셉 맵’을 완성했다. 장 컨셉 맵은 간장, 된장, 고추장, 연두, 초간장, 향신 간장, 쌈장 등 우리 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찾아내 정리한 것으로 도표를 통해 장의 종류와 비율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국내 장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글로벌 프로모션인 장 프로젝트는 셰프 출신 최정윤(36) 팀장이 일련의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서울 충무로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에서 만난 최 팀장은 그간 이뤄낸 장 프로젝트 성과에 대해 “외국인 셰프들이 서서히 우리의 장맛을 알아가고 있다”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해외 마케팅의 첫 무대를 유럽, 그중에서도 스페인으로 선택한 데는 그의 셰프 경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 팀장은 호주 하얏트호텔에서 요리사로 근무할 당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알리시아 연구소 연구원으로 발탁돼 스페인과 인연을 맺었다. 스페인은 여러 레스토랑이 해마다 ‘세계 최고의 식당’으로 선정되는 등 현재 미식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식문화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타 문화 유입에도 개방적이어서 장 프로젝트 실행지로 안성맞춤이었다.

“알리시아 연구소는 세계 미식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엘 불리’ 레스토랑의 페란 아드리아 전 셰프가 소장을 맡고 있는 요리 과학 연구소예요.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요리사와 과학자, 영양학자가 한 팀을 이뤄서 주방에 과학적인 이론을 적용해 새로운 요리 방법을 개발한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과학자는 주방에서, 요리사는 실험실에서 서로 공조하며 최상의 맛과 영양을 찾아내죠. 그리고 이렇게 찾아낸 레시피는 누구에게나 공개돼요. 마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처럼 매년 다양한 음식 대회를 통해 자신들이 연구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고 누구에게나 비법을 전수해주죠.”

외국인 입맛도 사로잡은 버터와 ‘연두’의 환상적 궁합



‘장’ 세계화를 위해 뛴다! Success Way
최 팀장은 알리시아 연구소와의 합작으로 장을 이용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 1백50개를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드리드 퓨전에 2012년부터 3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세계적인 수준의 셰프들에게 한국의 장을 알리고 있다. 더불어 벨기에 코리안 컬리너리 행사 및 프랑스의 옴니보어 파리 박람회, 뉴욕 와인 · 푸드 페스티벌 등 다양한 미식 행사를 통해 우리 장을 선보이고 있다.

해외 셰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연두’. ‘요리 에센스’로 불리는 연두는 콩 발효액으로 쇠고기, 표고버섯, 새우보다 3배 이상의 맛 성분(주요 아미노산)이 들어 있고 맑은 액상이라 요리의 색을 해치지 않으며 음식을 한층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특징을 지녔다. 현재 장 프로젝트 내 해외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서양 요리에서 활용도가 높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버터와 연두의 궁합이 환상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감자버터구이를 할 때도 소금 대신 연두로 간을 하면 맛이 훨씬 풍부하고 감자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나요. 그라탱에도 베이컨 대신 연두를 넣으면 콩 단백질 때문에 고기 맛이 나요. 치즈 요리에 된장을 넣으면 된장 자체가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치즈 맛이 2배 이상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죠. 이처럼 장은 더 이상 한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느 나라 음식에도 잘 맞는 세계적인 소스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최정윤 팀장은 소금과 장은 완전히 다른 맛이라고 설명한다. 소금은 음식의 단맛, 쓴맛, 신맛 등 모든 맛을 일괄적으로 상승시키는 반면 장은 부정적인 맛(경우에 따라 쓴맛, 신맛 등)을 감소시키고 감칠맛, 단맛 등의 긍정적인 맛은 상승시켜준다는 것. 이처럼 해외 셰프들의 손이 한국 장에 가는 이유 역시 소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맛을 완성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장의 또 다른 특징은 음식의 밸런스를 맞춰주고 요리 과정을 쉽게 해준다는 거예요. 된장찌개 하나 끓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봤자 15분이잖아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 맛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깊은 맛을 내냐고 감탄해요. 자신의 할머니가 하루 종일 끓여낸 육수 맛과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물음의 정답은 바로 발효에 있어요. 장이 만들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깊고 풍부한 맛은 어쩌면 당연한 거죠.”

장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그 역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우리 장은 물론 ‘한식의 세계화’에 있어 가장 대표되는 주제어는 바로 ‘발효’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루 세끼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을 보면 국, 김치, 젓갈, 나물, 장아찌, 조림 등 대부분이 발효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채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양한 채소 요리는 다양한 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 일례로 나물 무침을 할 때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된장으로 무칠 때와 조선간장으로 무칠 때 전혀 다른 맛이 난다.

장이 품은 발효 미학

“처음 우리 장을 해외에 알리는 업무를 맡았을 때 솔직히 마음 한쪽에 ‘이미 브랜드 이미지가 잘 구축된 일본 기꼬망과 쇼유가 있는데, 우리 간장이 해외에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장 프로젝트의 전신인 ‘서울 고메 페스티벌’과 ‘글로벌 셰프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샘표 공장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전통 장 만드는 곳을 다 돌아다니며 장에 대해 정확히 알고 난 뒤 해외 진출에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어느 나라든 음식의 근간이 되는 모체 소스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에는 무려 3가지(간장, 된장, 고추장)나 있으니 참으로 복 받은 일이죠(웃음).”

스페인에서의 활발한 연구 활동과 박람회 참가 등을 통해 현지에 장을 알린 최정윤 팀장은 유명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다니며 셰프들에게 우리 장의 활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스페인에서 샘표 장을 이용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1백여 곳이 넘는다. 심지어 이들 유명 셰프들은 특별한 대가 없이 자진해서 홍보 동영상에 출연해줄 정도로 확실하게 제품의 질을 인정받았다.

최 팀장은 “지금껏 홍보 동영상을 20여 편 만들었는데, 흔히 홍보물이라고 하면 돈을 받고 출연해서 듣기 좋은 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이렇게 좋은 소스를 소개해줘서 고맙다며 돈을 받지도 않고 출연하는 셰프들이 대다수”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이처럼 해외에서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단순한 ‘셀러(seller)’가 아닌 ‘식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덕분이다.

“간장 한 병 더 파는 것보다 우리의 식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끔은 이런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셰프들도 있어요. 장을 팔러 와서 왜 제품 얘기는 안 하고 식문화만 얘기하느냐고요(웃음). 하지만 우리 맛이 생소한 외국인에게 음식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음식의 탄생과 성장 배경을 이해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왜 우리가 장을 먹고, 어떻게 장 음식이 발전해왔는지를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의 장점도 알게 되죠.”

또한 그 자신이 셰프 출신이라는 점이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사실 지금껏 그가 해온 일의 특성을 보면 마케팅 혹은 PR 매니저로서의 역할이 큰데, 여기에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 해외 셰프들과의 네트워크 등이 결합해 큰 시너지를 이뤄냈다.

어려서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최정윤 팀장은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조선호텔 외식사업부에 당당히 입사했다. 처음 맡은 보직은 호텔 라운지 주방담당이었는데, 당시 그는 요리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총주방장의 수행비서 역할을 겸했다. 문서 작업을 비롯해 총주방장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것. 이미 그때부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간 최 팀장은 그토록 꿈꿨던 총주방장의 삶을 바로 옆에서 체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외국 요리 서적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꿈꿨고, 스물아홉의 나이에 호주 하얏트호텔로 이직했다.

“한국에서는 나름 영어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나가니 언어의 장벽이 가장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요리는 제쳐두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죠. 처음 석 달 동안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단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빠졌어요. 그래도 그 덕에 석 달 만에 진급하는 등 조금씩 실력을 인정받았죠.”

‘장’ 세계화를 위해 뛴다! Success Way

1 초절임용 간장과 흑초로 맛을 낸 ‘초절임멸치와 라즈베리’. 2 고추장을 넣어 매콤함을 더한 ‘새우고추장볶음’.

세계인의 입 매료시킬 때까지 계속 도전

‘장’ 세계화를 위해 뛴다! Success Way

3 연두로 감칠맛을 살린 ‘맑은닭고기수프’.

그리고 2년 뒤 일본 여행 중 현지 셰프들과의 모임에서 스페인이 새로운 미식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한 달 동안 스페인을 여행한 뒤 알리시아 연구소에 무작정 지원서를 내 연구원으로 발탁됐다.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또다시 모험을 시작한 그는 알리시아 연구원으로 일하며 스페인 요리사들의 남다른 철학에 매료됐다.

“뭔가 다시 시작하기에 애매한 나이였지만 요리사로서 부족한 게 많다고 느꼈던 찰나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어요. 요리사와 과학자가 함께 주방과 과학실을 오가며 일하는 것도 새로웠고, 무엇보다 자국 음식의 발전을 위해 정부를 주축으로 모든 관련 분야 사람들이 똘똘 뭉친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음식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요.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모든 게 재밌고 신이 나서 몸은 고되지만 얼굴은 항상 싱글벙글했던 때였죠(웃음). 덕분에 6개월 인턴 과정이 끝날 무렵 좋은 평가를 얻었고,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 장 프로젝트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샘표와의 인연은 4년 전 그가 스페인에서 돌아와 잠시 한국에 머물던 때 이뤄졌다. 마침 해외 시장 개척을 준비 중이던 샘표가 그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고 2010년 6월 정식 입사했다. 현재 그는 스페인에 머물며 해외 마켓을 확장하는 업무를 추진 중이다. 조만간 장 프로젝트는 유럽을 넘어 한국과 중국, 미국에서도 진행될 예정인데, 미국의 뉴욕과 중국의 상하이를 거점으로 그들의 전통 식문화와 한국의 장이 어울릴 수 있는 방향을 연구 중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확고하다. 우리의 장으로 세계인의 입을 매료시키는 것이다. 최정윤 팀장은 “전 세계인이 마트에서 샘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자연스럽게 집어 드는 날이 하루빨리 오도록 열심히 우리의 식문화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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