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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이승철 일본 공항 억류 사건 후 첫 인터뷰

글·두경아 자유기고가|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뉴시스 제공

입력 2014.12.16 14:19:00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감추려 해도 얼굴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내와 두 딸뿐 아니라 대한민국, 한반도 그리고 세계와 사랑에 빠진 남자 이승철. 요즘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서울 동대문 한복판에서 이승철(48)과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조금 떨어진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거리가 짧은 횡단보도를 만났다. 어른 기준으로 서너 걸음 정도. 그런데 신호는 왜 이렇게 더디게 바뀌는지….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승철을 알아보고 웅성대고 있었다. 기자가 ‘그냥 건너자고 할까?’ 하고 눈치 보던 사이 반짝 파란불이 켜졌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길을 건너며 뼈 있는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빨간불일 때 제가 길을 건넜어 봐요. 사람들이 ‘독도 지킴이는 무슨! 교통질서나 지켜라’라고 했을걸요(웃음).”

언제부터인가 이승철은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 최근 불거진 독도 관련 이슈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캠페인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하나 된 나라를 꿈꾸며’라는 모토의 ‘온 캠페인 원 네이션(On Campaign One Nation)’ (이하 ‘온 캠페인’)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최근 문제가 됐던, 일본 입국 거부 사태부터 들어봐야 한다.

독도를 넘어 UN, 하버드대까지

“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이승철은 지난 11월 9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4시간가량 억류됐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입국이 거부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을 드나들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난 8월 14일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에서 공연한 걸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들여 유감을 표하고 설명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의 대답은 석연치 않았다. “입국 거부 사유는 독도와 무관하며,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구체적인 거부 사유는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에 독도 관련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나돈다는 소문이 떠돌자, 문제는 더 커졌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심지어 일본 등의 주요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

“갑자기 독도 사건이 터지면서 관심을 받게 됐는데, 사실 핵심은 독도가 아니에요.”

그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핵심이란 무엇인가? 이승철은 지난 8월 독도에서 탈북 청년 합창단 ‘위드유(with U)’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그날에’를 불렀다. 입국 거부 사태 이후 그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무료 배포한 바로 그 노래다.

“지난 3월 탈북 청년 합창단이 저를 찾아와 합창 지도와 함께 독도에서 부를 통일 노래를 써달라고 했어요. 독도는 그들(탈북 청년들)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예요. 독도에 관해서는 남북한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죠.”

이승철은 처음 부탁받았을 땐 그저 곡만 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위드유와 함께 독도를 방문하게 됐고, 그 이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위드유와의 공연은 통일 염원 프로젝트인 ‘온 캠페인’으로 발전했고, ‘그날에’는 캠페인송이 됐다.

“정치적인 목적은 없어요. 그저 노래를 통해 통일과 인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예요. 궁극적인 목표는 ‘그날에’가 ‘위 아더 월드’처럼 널리 불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통일과 인권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1 2 이승철은 탈북 청년 합창단과 함께 통일과 평화의 염원을 담아 8월 14일 독도, 8월 29일 하버드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독도에 이어 이들이 찾아간 곳은 바로 UN본부와 하버드대였다. 먼저, 8월 말 세계 평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UN의 문을 두드렸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 거부당했다. 그런데 이때, UN본부에서 제65차 NGO 총회가 열렸고, 이승철이 바로 그 행사에 초대받게 됐다.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을 높이 평가받은 덕분이다. 이승철은 이 행사에서 ‘아리랑’과 함께 영어 버전으로 ‘그날에’를 불렀고, 노래를 마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하버드대. 그는 하버드대 관계자에게 ‘온 캠페인’의 취지와 공연을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고, 마침내 하버드 내 메모리얼 처치에서의 공연이 성사됐다. 메모리얼 처치는 달라이 라마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강연을 했던, 하버드대에서도 의미 있는 곳이다.

“저나 위드유나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하버드대에 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설득해야 했어요. ‘독도 공연으로 끝내지 말고 북한의 인권, 통일 등 이슈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가야 한다’ ‘세계 무대로 나아가야 탈북한 사람으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죠.”

한국에서 날아온 가수와 탈북 청년 합창단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날 공연에는 하버드대 재학생은 물론, 외신과 특파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이곳에서도 ‘그날에’가 울려 퍼졌다.

“다음 프로젝트는 세계 유명한 가수들과 듀엣으로 ‘그날에’를 부르는 것이에요. 홍콩 마마 어워드에서는 중국의 유명한 가수와 함께 부를 예정이고, 그다음으로 미국과 영국의 팝 가수들이 될 거예요.”

음악이 세상과 나를 변화하게 했다

“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3 아내 박현정 씨는 음악만 보고 달려가던 이승철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주인공. 두 사람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 캠페인도 전개 중이다.

이승철이 인권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김천소년교도소 합창단의 지휘를 맡으면서부터였다. 2011년 1월 SBS 스페셜 ‘기적의 하모니’로 방영되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이승철이 멘토로 나서서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치유받고 변화되는 이야기로 큰 울림과 감동을 준 바 있다. 이후 SBS 예능 프로그램 ‘송포유’를 통해 대안학교인 성지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한 번 더 음악의 위대함을 깨닫게 됐다.

“합창단을 통해 음악은 모든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어요. 처음 소년교도소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강했는지 몰라요. 징역 20년을 선고받을 만큼 중범죄를 저지른 아이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6개월 만에 그 눈에서 눈물이 나고, 메마른 가슴은 사랑과 정을 느끼면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되더라고요.”

성지고 학생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온몸을 휘감은 문신으로 거부감을 주었던 한 학생은 합창단 활동을 계기로 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Mnet ‘슈퍼스타 K6’에 ‘이승철 제자’로 화제가 됐던 임형우다. 희망 없이 살았던 아이들은 형우처럼 꿈을 갖게 됐다. 그 다음에 만난 합창단이 바로 위드유였다.

이승철이 지금의 ‘온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 데는 아내 박현정(50) 씨의 힘이 크다. 독도에 가게 된 것부터 UN본부, 하버드대까지, 모두 아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저는 말하는 은사(재능)가 있어요. 말을 하면 이루어져요. 일은 제가 벌이고, 아내가 뒷수습을 하는 식이죠. 아내는 사업을 한 사람이니까 일을 잘해요. 제가 ‘UN에 가야 해’ ‘보노 같은 가수와 콜래보를 해야 해’ 하면 아내가 관계자들을 수소문해서 편지를 보냈어요. UN과 하버드대 공연을 진행하면서 아내와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머리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처음부터 이승철과 함께하며 인터뷰를 지켜보던 박현정 씨가 거든다. 이승철만큼이나 그도 위드유의 활동과 관련해 할 이야기가 많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건 처음이에요. UN 같은 기구나 세계적인 가수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요. 그러면 ‘좋은 일을 하시네요. 그런데 우리가 왜?’라는 답이 돌아와요. ‘온 캠페인에 참여해야 하는 논리를 만들고, 이를 설득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았죠.”

올해로 결혼 8년 차 부부. 박현정 씨는 음악만 알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이승철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그는 아내와 결혼 후 교회에 나가며 삶의 기준이 달라졌고, 가슴으로 낳은 큰딸에 이어 둘째까지 얻었다.

“아내의 꿈은 우리 집안을 음악 명문가로 만드는 거예요. 가수라는 직업을 떠나서도 좋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고, 인생에서 다가오는 미션을 깨달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션이라는 것이, 누군가 ‘넌 이걸 해야 해’라고 일러줘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스스로 ‘때가 됐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좋은 일이 찾아오면 그걸 잘 이루고, 그렇게 한 발짝씩 가다 보면 아이들에게 좋은 가수이자 사회사업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내와 두 딸, 이승철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들

이승철은 현재 ‘온 캠페인’ 이외에도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짓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10개의 학교를(벌써 4개가 완공됐다!), SBS ‘희망TV’와 함께 10년간 1백 개의 학교를 세울 예정이다.

“예전에는 왜 아프리카까지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돈으로 기부하면 되지 거기까지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배우 박용하가 학교를 짓다가 개교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후 그 일이 제게 왔죠. 제 미션이 됐어요. 콘서트를 하면 그 수익금으로 부지를 마련하고, 학교를 지어요. 공연 중에 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오늘 쓴 돈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그렇게 감동을 주는 것이 제 미션이에요.”

또 다른 미션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인가 보다. 박현정 씨는 “미슐랭 스타 셰프를 포함해서 남편보다 고기 잘 굽는 사람은 못 봤다”며 남편의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

“남자들은 고기 좀 구워주고 설거지 잘해주면 자상하다는 말 들어요. 단순해요. 음… 음식은 다 조금씩 할 줄 알아요.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해줄 수 있는 정도?”

박현정 씨는 “남편은 볶음밥을 만들 때도, 밥 위에 김으로 하트를 만들어줄 정도”라며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서 먹지를 못했다”고 자랑한다.

“큰딸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과연 엄마, 아빠처럼 해줄 수 있을까?(웃음)’”

큰딸이 23세, 작은딸이 7세다 보니 이승철은 대학생 학부모인 동시에 유치원생 학부모로도 살고 있다.

“큰딸은 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운 지 3년 만에 명문대 다섯 군데에서 장학생으로 데리고 가려고 할 정도였어요. 지금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죠. 둘째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멀었어요.”

이승철은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공연에,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아프리카에 학교 짓는 일에, ‘온 캠페인’ 진행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그에게 또 다른 미션이 생겼다.

“이번에 신해철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면서 ‘행복한 추모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떠나서 슬프지만 우리는 행복했다’는 의미의 추모 공연요. 내년 1월이나 2월 말에 진행될 예정인데, 지금까지의 어떤 추모 공연보다 규모가 클 거예요.”

이날 인터뷰는 이승철의 ‘미션’으로 모아졌다. 그가 30년 동안 롱런할 수 있는 비결로 다름 아닌 ‘운명’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요. 낙천적이기보다 편안하게 물 흐르듯 따라가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고집스럽게 보이죠? 안 그래요. (아내) 말도 잘 들어요. 다만, 저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려고 해요.”

“독도는 시작, 내가 음악으로 꿈꾸는 세상에 관하여”


여성동아 2014년 12월 6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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