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기사

SENSE&SEXIBILITY

[PAGE.170]

글·미소년 | 일러스트·송다혜

2014. 12. 10

어디에서 시작하든, 결국은 여자 이야기로 흘러간다. 게다가 무료 야동 링크라는 축복까지. 단언컨대 채팅방은 유부남에게 가장 완벽한 선물이다.

남자들의 단체 채팅방은 더럽다. 하루 종일 여자 얘기를 한다. 사실 하루 종일 여자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목적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하지만 결국 여자 얘기로 흘러간다. ‘기승전여’다.

나는 단체 채팅방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축구 팀 방이 인원이 가장 많다. 44명이다. 숫자가 무섭다. 그래서 한 명을 더 영입하자고 얘기했을 때도 이야기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누군가 그 한 명은 여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와 축구를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누군가 여자는 이미 가슴에 축구공을 두 개나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딴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남자들만 있는 채팅방이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누군가 축구를 할 여자 말고, 여자 매니저를 영입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또 누군가 여자 매니저가 등장하는 야한 동영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참 그 야동의 내용을 적었는데, 평일 대낮에 20, 30대 남자들 44명이 거의 동시에 그걸 다 읽었는지 ‘44’라고 적힌 노란 숫자가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다 보니 예전에 내가 본 야동이랑 내용이 똑같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여자 매니저가… .’ 아, 이거 다 적으면 내가 잡혀갈지 모르니까 안 적겠다. 아무튼 여자 매니저 한 명이랑 선수 세 명이 사랑을 했다. 사랑은 뭐, 나쁜 게 아니니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여자 매니저를 정말 영입해오는 사람에겐 축구 팀 1년 회비를 면제해주자는 제안이 나왔다. 나는 부자라서 그런 제안에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남자 대학생들은 아무래도 솔깃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떤 애가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여자 사진이었다. 팀원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를 매니저로 영입하겠노라고 그가 말했다.

여자들이 정말 다 예뻤다. 긴 생머리의 가녀린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축구공은 컸다. 그래서 우리는 열성적으로 투표를 했다. 우리가 뽑으면 그 여자가 팀에 들어오는 걸까, 라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 사진을 올린 남자애가 워낙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 거라고, 나는 판단했다.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우리가 여자 매니저를 정말 그렇게 원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몇 달 전에 한 팀이랑 시합을 했는데 우리 팀이 이상하게 골을 못 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 팀 응원석에 엄청 긴 생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몸에 딱 붙는 하얀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축구공 두 개가 너무 볼록했다. 그리고 얼굴도 예뻤다. 보통 이럴 땐 얼굴을 먼저 얘기하지만, 축구공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엉뚱한 공에 시선이 빼앗겨서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존심이 상했다. 상대편 선수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딱히 잘생긴 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뭐가 모자란 건가? 경기가 끝나고 굉장히 낙담했던 기억이 난다. 경기에 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 그러니까 여자 매니저는 필요하다. 매니저가 아니더라도 관중석에 앉아 있기만이라도 할 여자가 필요하다. 우리 팀이 아니라, 어쩌면 상대 팀을 위해! 그날 우리는 고심해서 겨우 한 명으로 압축했다. 그 과정에 굉장한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여기 일일이 적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또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 명으로 압축하려고 애쓴 이유를 모르겠다. 두 명 다 뽑으면 되는데… 왜 그랬지? 그러나 이게 남자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고른 사람이 일등이 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

잘생긴 대학생 후배는 우리가 뽑은 여자를 매니저로 영입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우리는 기뻤다. 44가, 그 재수 없는 숫자가 45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그리고 그 낮의 채팅방이 잠잠해졌다. 두 달이 지났다. 채팅방은 여전히 44명이다. 성비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놈은 아직 말이 없다. 그러나 괜찮다. 다 금방 잊었다. 나도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난 거다. 이것이 남자!

섹스를 못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본 적이 없다

[PAGE.170]
여자 얘기는 끝이 없다. 우리 축구 팀엔 정말 축구 선수가 있다.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이다. 상무나 경찰청에 갈 실력은 아니라서…. 이 동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 아무튼 얘가 시간이 많아서 우리 팀은 행복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을 찾아 올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예인 누구와 누가 사귄다더라, 따위의 가십이 돌기 시작하면 걔는 귀신같이 그 증거를 찾아낸다. 사진을 찾기도 하고, 과거에 당사자들이 SNS에 올린 글들을 조합해 둘의 루머가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 수준이 거의 국정원급이다. 국정원이 뒷조사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여러 이득 중에 으뜸은 무료 야동 링크다.

야동 링크! 그렇다. 이 훌륭한 축구 선수는 채팅방에 무료 야동 링크를 올린다. 누르기만 하면 스마트폰 화면이 갑자기 가로 모드로 바뀌면서 여자와 남자가 그거, 한다. 와우! 사실 남자들만 아는 얘기지만 이런 무료 링크는 금방 잘린다. 잘린다는 게 무슨 의미냐면 통신법에 관계된 사람들이 악착같이 찾아내서 링크를 차단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 열린 야동 링크가 내일 안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지키는 우리의 공익근무요원 친구는 기어코, 번번이 새로운 링크를 찾아온다. 그것은 정말이지 나 같은 유부남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집 컴퓨터에 야동을 내려받으면 폴더를 복잡하게 여러 개 만들어 숨겨야 아내에게 들키지 않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채팅방은 유부남에게 가장 완벽한 선물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채팅방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음… 여자들도 섹스하고 싶다는 얘기를 채팅방에 하나? 실제 섹스한 얘기도? 남자들은 하는데. 완전히 허세에 취한 상태로.

채팅방에서든 얼굴을 마주 보고 나눈 대화에서든 스스로 섹스 못한다고 말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남자는 전부 섹스를 잘하나 보다. 아, 아까 낮에는 채팅방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군가 그림 파일을 하나 올렸다. 남자가 여자 등 뒤에서 삽입한 자세로 섹스를 하는 그림이었다. 그림 아래,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체위, 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는 정말 이 체위를 가장 좋아하나? 몇 명이 분석에 들어갔다. 결론은 이랬다. 남자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섹스를 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몸 어느 곳도 보지 못한 채 섹스를 해야 한다. 불평등하다.

아무튼 이러다가 남자의 그, 거기, 크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크냐를 두고 논쟁이 펼쳐졌다.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막상 화두가 던져지니 궁금했다. 사실… 나는 일등이 될 수 없다. 일등이 돼서도 안 된다. 내가 일등이 된다면 우리 44명의 수치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중간은 되겠지만 일등이 될 만한 크기는 아니다. 몇몇이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해대는 바람에 내가, 그러면 이번 주 일요일에 경기가 끝나고 전원 목욕탕에 가거나, 운동복을 벗을 때 자신 있는 사람은 구석에서 공개하라고 했다. 막상 이렇게 말하니까 아무도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그때 한 친구가 공익근무요원을 지목하며 말했다. “같이 목욕탕에 갔는데, 제 눈으로 봤어요. 완전히 자연인이에요.”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그러냐고 묻자 “잘 하면 한 번 정도는 매듭을 지을 수도 있겠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44명은 말이 없었다. 1분쯤 후에 공익근무요원은 ‘ㅋㅋ’ 메시지와 함께 무료 야동 링크를 우르르 올렸다. 누르는 손끝이 민망했다.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