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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쇼핑몰 설립과 해군 입대 최태원 SK 회장 둘째 딸의 ‘청춘’

재벌가 밖으로

글·김명희 기자 | 사진·더팩트 제공

입력 2014.10.16 14:03:00

재벌가 아들이 군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더구나 여자는 최근 해군 사관 후보생 모집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민정 씨가 처음이다. 민정 씨는 대학 시절에도 다양한 모임을 조직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었으며 졸업 후에는 벤처 기업을 설립하는 등 독립심과 도전 의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권 쇼핑몰 설립과 해군 입대 최태원 SK 회장 둘째 딸의 ‘청춘’

9월 15일 해군 장교 입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장교교육대대로 들어서고 있는 최민정 씨와 노소영 관장.

지난 9월 15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장교교육대대에 최태원 SK 회장의 둘째 딸 민정(23) 씨와 엄마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월 해군 장교 시험에 합격한 민정 씨의 입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제복 깃에 닿지 않아야 한다는 해군사관학교 규정에 따라 길게 길렀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민정 씨는 차분하게 행사에 임했으며 마지막에는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부모에게 큰절을 올렸다. 오빠인 노재헌 변호사와 함께 입영식에 동행한 노소영 관장은 딸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가 하면, 의젓한 딸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카메라에 담았고, 헤어질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등 아들을 군에 보내는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재벌가 ‘상속녀’가 군에 자원 입대한 것은 민정 씨가 처음이다. 특히 그는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함정 승선 장교를 지원했는데, 이는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보직이다. 대기업 오너의 딸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그는 왜 굳이 험한 군인의 길을 택했을까. 해군에 따르면 민정 씨는 면접 시험 때 ‘남극을 탐험한 섀클턴의 도전 정신과 좌초를 돌파한 리더십에 감동을 받아 해군에 지원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1914년 대원 27명을 이끌고 남극 도전에 나섰다가 유빙에 떠밀려 배가 좌초됐지만, 뛰어난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6백34일 만에 대원들과 함께 무사 귀환했다.

대학 때는 편의점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민정 씨 입대는 갑작스럽거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한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집안에 외할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한 명쯤 나와도 좋지 않겠냐”는 말을 지인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노소영 관장은 딸의 결심을 듣고 처음에는 다소 걱정했지만 필기시험, 실기, 면접과 신체검사 등 전형 과정을 하나씩 통과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척 대견해했다고 한다.

민정 씨는 입대 전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최 회장은 15분 정도 짧은 만남 동안 딸에게 스스로 선택한 길인 만큼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것과 건강 조심할 것, 그리고 단체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솔선수범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민정 씨는 언니 윤정(25) 씨, 동생 인근(19) 군과 함께 어릴 때부터 중국에서 유학했다. 민정 씨는 국제학교 대신 현지인들이 다니는 런민대 부속중학을 거쳐 베이징대에 다니는 동안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편의점과 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입시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용돈을 벌어 썼다. 이는 집안에 기대지 않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SK와 관련 없는 곳에서 사회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노소영 관장은 한 인터뷰에서 “민정이는 대학에 들어간 후 집에서 용돈을 한 번도 받아간 적이 없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 말을 안 듣는다. ‘엄마, 아빠가 내게 원하는 게 있으면 설득을 해달라’고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건 장단점이 있지만 민정 씨에게는 자립심과 도전 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혼자 있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그는 어린 나이지만 리더십과 조직력이 뛰어나다. 중국 일부에서 반한 정서가 대두되던 대학 1학년 때 중국과 한국 학생이 참여하는 ‘손에 손잡고’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반한 정서를 제대로 알고 대처할 방법을 찾기 위한 모임이었다. 대학 2학년 때는 2백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ICU(Inter-cultural Union)라는 단체를 만들어 도서관을 짓고 소수민족이 일자리를 찾는 것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했다. 2012년엔 노소영 관장과 함께 한국과 중국 대학생들의 교류를 위한 ‘2012 상생 영(young) 리더십 포럼’을 개최했으며 지난해에는 벤처 기업 판다코리아닷컴을 창업했다.

판다코리아닷컴은 한국 중소기업과 중화권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온라인 플래폼으로 화장품, 의류, 생활용품 등을 판매한다. 서울과 상하이에 사무실이 있으며 직원 절반이 중국인이다. 6개월 동안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 생산과 배송 등 철저한 시장조사 끝에 탄생한 이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높아 국내 대기업과 엔터테인먼트 회사들 사이에서도 투자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민정 씨는 해군에 지원하면서 이 회사에서 퇴사, 지금은 주주로 남아 있다.

남동생은 올해 브라운대 입학

민정 씨의 이런 도전에는 SK가의 교육법이 자리 잡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SK 회장은 자녀들에게 “네가 생각하고 네가 고민해서 네 실력으로 해결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또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은 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교육관 덕분인지, 자녀들은 중국에 기반을 두고 공부를 했지만 각자 다른 길을 택했다. 큰딸 민정 씨는 베이징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 진학, MBA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아트센터 나비와 SK그룹의 사회 공헌 재단인 행복나눔재단의 일을 돕고 있다. 막내인 인근 군은 상하이에서 어학 연수를 한 뒤 하와이의 고등학교를 거쳐 최근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인 브라운대에 합격했다. 노소영 관장은 아들의 입학식을 지켜보기 위해 8월 말~9월 초 미국을 다녀왔다.

노소영 관장은 대통령의 딸이자 재벌가 안주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미디어와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자녀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 최근 그는 시어머니 고 박계희 여사로부터 “너 미술 좋아하니?”라는 질문을 처음 받고 미술 세계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이후 15년간 그 길을 걸어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디지털 아트’(자음과 모음)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는 ‘이 땅에 디지털 아트를 정착시키기 위해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했지만 워낙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작가도 작품도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기억부터 발로 뛰어 작가를 발굴하고 관객들과 코드를 맞추고 교감하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 첨단 기술과 예술 융·복합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그런데 도대체 이런 것들을 왜 자꾸만 만드는 거지? 다 어디에 쓰려고?’라는 반성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시행착오와 고민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주변에 따르면 민정 씨는 자녀들 가운데서도 엄마의 이런 호기심 많은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는 입영식을 시작으로 11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오는 11월 말 해군 소위로 정식 임관한다.

여성동아 2014년 10월 6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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