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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집밥이 우리 사회를 살린다”

글·김명희 기자|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4.07.15 14:13:00

정성이 들어간 한 끼 식사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집밥을 먹으며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자란 아이는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아끼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튼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이 아닌가.
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 원장이 직접 차린 저녁 식탁엔 먹음직한 카레와 샐러드가 올라와 있었다. 퇴근 후 남대문시장에 들러 직접 장을 봐서 금방 요리해 내놓은 음식들은 소박하나 건강해 보였으며 무엇보다 그 아삭한 식감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살뜰한 정성이 느껴졌다.

그는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요즘 ‘안녕하세요’보다 흔한 인사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이지만 그는 그런 말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약속을 하면 정확하게 지킨다. 그를 둘러싼 여러 정황상 ‘이번에는 어렵겠지’ 짐작하는 날도 어김없이 제 시간에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 그는 또한 집밥 예찬론자다.

나를 키운 8할은 어머니의 집밥

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김행 양평원장의 핸드백 겸 시장바구니.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 그는 청와대 대변인 시절에도 이 가방을 들고 다녔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이라고 했지만,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바람이 나를 키웠을 리는 없고, 어릴 때 엄마가 밥상머리에서 늘 하셨던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베풀면서 살아라’ 같은 이야기가 소크라테스나 막스 베버 같은 사람들의 그 어떤 고귀한 철학보다 많은 영향을 끼쳤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 어렸을 적엔 아침에 부엌에서 풍기는 고소한 밥 냄새에 잠을 깨고, 저녁엔 마을 공터에서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멀리서 엄마가 “밥 먹자”고 부르는 소리에 자석에 이끌리듯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똑바로 앉아라” “젓가락질이 그게 뭐냐” 잔소리도 듣고…. 그 후로도 무수히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유년의 식탁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맛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아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툭툭 튀어나와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됐다.



어릴 적 그의 집은 서울 아현동에 있었는데, 어머니는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들에겐 쌀 한 바가지를 들려서, 잡상인이 찾아오면 물건을 사주진 못하더라도 식혜 한 사발은 대접해서 보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어머니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랐어요. 하루는 저녁밥을 먹으면서 물어봤더니,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악담을 하며 대문을 닫고 나가면 자손이 잘 안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고, 어머니가 가방 끈이 긴 분은 아니었지만 삶의 지혜가 있으셨던 거죠.”

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1 식구들이 과일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샐러드에 과일을 많이 넣어 먹는 것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소금과 후추로 간한 수란을 곁들이면 별도의 드레싱이 필요없다. 2 카레는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어 그의 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메뉴. 밥은 흑미에 콩을 넣어 짓고, 카레에는 감자· 당근·양송이버섯·아스파라거스 등을 넣는다. 고기 대신 견과류를 넣으면 고소하고 영양도 풍부해진다.

가족의 품격이 사회의 품격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김 원장은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위원, 인터넷 매체 위키트리 부회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의 첫 대변인을 지냈다. 그 사이 남편을 만나 딸(27)도 하나 얻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학을 전공한 남편의 평등의식은 한국 남자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가사 분담 같은 일로 신경전을 벌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된 집밥은 그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가 됐다.

“사실은 너무 바빠서 딸에게 집밥을 잘 못 해 먹였는데,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어떤 남자와 집 앞에 서 있는 거예요. 딸이 그 남자와 결혼할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제대로 밥 한 끼 못 먹여서 시집보내면 쟤는 나중에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은 마음이 들어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딸이 시집가기 전에 제대로 밥을 해주자, 하다못해 라면 한 그릇을 끓이더라도 파도 좀 넣고 제대로 해주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가 밥상머리에서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인류애를 가지라는 것. 한번은 딸이 통장 정리를 하면서 구호단체에 보내는 기부금을 몇 차례 연체한 적이 있는데, 그 일로 호되게 야단친 적도 있다. 실컷 야단을 들은 딸은 “다른 일도 아니고, 인류애가 없다고 야단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넋두리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집밥을 챙기기 시작한 그는 최근의 우리 사회를 보며 집밥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사고를 하게 됐다. 잘 살려면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죽도록 경쟁해야 하며,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결혼도 못 하고, 출산은 더더욱 엄두를 못 내며, 가장은 밤늦게까지 돈 버느라 집안일은 뒷전이고 그러다 은퇴하면 아내에게 ‘삼식이’라고 구박받거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가진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고….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우리의 자화상이 반영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금쪽같은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팽목항에 눈물의 밥상을 차리고, 바다에 밥을 떠 넣었다. 먹인다는 것은 부모의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표현이며, 아이는 그것을 통해 생명을 얻고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김 원장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산적한 많은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이 집밥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남녀 불평등, 노인 빈곤, 청소년 자살률,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폭력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우리가 치르는 사회적 비용의 상당 부분은 자존감 상실이나 가족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고 해결책 또한 가정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돼요. 부모로부터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타인을 존중하는 법도 알게 되고,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이성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죠. 직장에서도 보면 엄마가 존경받는 환경에서 자란 남자들은 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배려할 줄 알더라고요. 자존감이란 학벌이나 직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느냐에서 나와요. 집밥이 건강에도 좋지만 아빠가 하든 엄마가 하든 가족이 같이 하든, 그러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가족의 가치가 올라가면 청소년 자살이나 결혼을 안 하려는 풍토도 바뀌지 않을까요.”

양성평등은 기본적인 인권 찾아가는 과정

김행의 집밥[zip-bob] 이야기

그가 직접 키우는 허브. 카레나 생선 요리를 할 때 곁들이기도 하고, 소화가 잘 안될 때 탄산수에 스피아민트 같은 허브를 넣어 마시면 속이 편안해진다. 허브를 잘 키우려면 화분에 옮겨 심지 말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물을 주되 잎에 물을 닿지 않게 하면 된다고.

양평원은 국민과 공무원을 상대로 성 인지 및 평등 교육을 하고, 이를 담당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 양성평등 하면 여성 편에 치우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여자라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되며 남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양성평등은 남자나 여자나 인간의 기본권에 근거해서 태어날 때부터 가져온 천부적인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는 경제력이나 연령 등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나이 들고 가난한 여성이 더 차별받는 식이죠. 그래서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죠.”

공무원들의 의식을 바꿔 실질적으로 모든 정책의 집행 과정에 변화가 있도록 유도한다는 면에서 양평원은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다. 지난 2월 말 원장에 취임한 그는 가장 먼저 양평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리는 CI(기업 이미지) 작업을 했다. 가정, 안전, 건강, 복지, 일자리, 의사결정, 문화정보, 교육 등 8개 부분에 대한 젠더 이퀄리티를 그래프화한 배지도 만들었다. 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건강(91.2%)과 교육(79.9%) 부분에서는 남성과 비슷한 정도 수준에 이르렀지만 의사결정(22.6%) 부분은 후진국에 가깝다.

“여성의 교육 수준은 높아졌지만 취업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40% 후반에서 맴돌고, 양질의 일자리에는 못 들어가고 있어요.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하고, 남성들도 여성들과 일하는 데 좀 더 익숙해져야 해요.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적 사고가 필요하고요. 때로는 회사나 조직을 위해 양보도 하고 희생도 해야 하는데,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성들은 그런 점이 약한 것 같아요. 그건 여성들을 둘러싼 환경이 그만큼 열악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남자들보다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거쳐 정말 어렵게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 클 수밖에 없죠.”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인맥과 평판 관리에 신경 쓴 남성들은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에 약한 여성들은 능력이 뛰어나도 은퇴 후 막상 갈 곳이 없고 사회로부터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양평원이 여성 인재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본(Born) 포럼에 이어 은퇴한 여성들을 위한 리본(Re-born) 포럼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삶이란 내 뜻대로 온 것 같지만 가끔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그렇게 오도록 예정돼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머니로부터 “남에게 베풀며 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란 그가 대학원에 입학한 첫해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 서문에 적혀 있던 ‘사회학은 자기가 남보다 사회에 빚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글귀를 보고 감동을 받아 평생의 지표로 삼고 살아온 것, 그리고 지금 양평원장으로 재임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일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동아 2014년 7월 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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