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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기획·이은경 객원기자 | 사진·REX 제공

입력 2014.07.10 09:42:00

휴가지라서 생길 수 있고, 휴가라서 가능했던 우리의 발칙한 여름 추억들이 있다. 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너무 흔해진 시대지만, 직접 사랑하고 이별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담만큼 뜨거울 순 없는 법.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여름휴가 에피소드를 모았다.
Episode 1

나는 당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어학연수 시절 만난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유학생이었고, 나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먼저 귀국했기 때문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과는 다르게 장거리 연애임에도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고, 드디어 그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을 때 우리는 내일은 없을 것처럼 불타올랐다.

사실 남친과 잠자리를 하기 전에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작디작은 내 가슴이었다. 쭉쭉빵빵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사춘기 여학생이나 할 법한 브라가 나한테는 딱 맞았기 때문이다. 작은 가슴이 평생 내 콤플렉스였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자친구가 그런 내 모습마저 사랑스럽다고 말했기 때문에 남친과의 잠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날도 신나게 데이트를 하고 모텔로 들어가 간단히 술 한잔을 했고 자연스럽게 거사(?)를 치르고 잠들었다. 심지어 오랜만이라 그런지 역대 최고의 황홀감에 빠졌다. 그러나 그날 새벽, 나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남친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고, 두어 시간을 울고 나서 짐을 싸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남친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었는데, 가슴을 지분거리는 손길에 잠에서 깨서 “하지 마 왜 그래~” 라고 했더니 잠결에 남친이 하는 말. “너 등에 뭐 붙었어.”



Episode 2

대학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함께 큰맘먹고 그리스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이 친구는 살면서 연애 한 번 못 해본 모태솔로였는데, 여행 떠나기 전날까지 여행지에서 생긴 로맨스를 다룬 영화들만 수없이 찾아 보더니 급기야 ‘유럽 남자가 그렇게 스윗하다던데 나도 키 크고 잘생긴 유럽인 남자친구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었고, 우리가 상상하던 키 크고 잘생긴 남자는 없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주변엔 온통 신혼여행객뿐이었던 것. 로맨스는 얼어 죽을 로맨스냐며 포기할 때쯤. 귀국 전날이었다. 마지막 날을 불사르자며 아침부터 호텔 앞쪽 프라이빗 비치에 나갔다. 나는 선베드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친구는 혼자라도 놀겠다며 바다로 나가 놀던 중 갑자기 발에 쥐가 난 듯 허우적대며 가라앉았다. 수영을 못 하는 나는 당황해서 지나가는 직원에게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옆 선베드에 누워 있던 한 남자가 티셔츠를 벗어 던지더니 마치 박태환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축 처진 친구를 안아 들고 걸어 나오는 그에게서 후광이 비쳤다. 찾았다. 키 크고 잘생긴 유럽 남자! 다행히 친구는 금방 일어났다. 그리고 그 친구 눈에서도 하트가 발사됐다. 친구는 잘되지도 않는 영어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며 점심을 사겠다고 했고, 그 남자는 흔쾌히 응했다. 잘생긴 남자와 점심을 먹고 돌아온 친구는 그 남자가 파티에 초대했다며 트렁크 한쪽 구석에서 보랏빛 망사 속옷 세트를 꺼내 입었고, 가슴이 푹 파인 원피스 지퍼를 올리고 방문을 나서며 외쳤다. “내가 이러려고 여태 모쏠이었나 보다! 나 문란해 질거야!”

한 20분쯤 지났을까. 울상을 한 친구가 문을 열었다. 화들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하는 말. “남자 알몸은커녕 손도 한 번 못 잡아봤는데 남자끼리 섹스하는 거 구경하다 왔어.” 내막인즉슨 그 잘생긴 남자는 게이였고, 그가 말한 파티는 자기 파트너-물론 남자-와의 1주년 기념 파티였단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친구가 그 남자 방문 앞에 서니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섰는데, 맙소사 이미 그 남자는 그의 파트너와 한창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친구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알몸의 두 남자가 이리저리 얽힌 상태였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친구는 곧 정신 차리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일찍 귀국하는 일정이라 더 이상 그 남자와 마주치지는 않았다. 지금 터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그 남자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하며, 그날 이후 지금까지 모든 남자에게 철벽을 치며 모태솔로인 내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유럽에서 로맨스 꿈꾸기 전에 영어 공부부터 하자!”

Episode 3

나는 당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는 남자친구랑 가기로 했다. 사귄 지 1년 만에 처음 떠나는 단둘만의 여행! 그것도 휴양지로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에 뭘 준비해야 할지 물었다. “나 남친이랑 코타키나발루 갈 건데, 뭐 준비해야 하지?” 내 의도와 다르게 대화는 이상한 쪽으로 튀었다. “속옷부터 사”, “야, 이 나이쯤 되면 야한 속옷으론 안 돼. 더 센 게 필요한데!”, “숙소에 개인 풀은 있지? 거기서 하는 게 죽인다던데” 등등. 업무 중이어서 한참 뒤에 확인한 카톡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부터 온갖 섹스 팁, 그리고 눈길을 바로 잡는 한 친구의 말까지! “가기 전에 왁싱 꼭 해라. 이왕이면 브라질리언으로 ㅋㅋ.”

며칠 뒤 집에 놀러 온 남자친구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휴가 전에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심심했는지 이거저거 만져보고 다니던 남자친구 손에 들린 택배상자 하나. “자기야, 이거 뭐야?” 왁싱용품이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왁싱용품을 구입은 했는데 고통이 상당하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아직 시도는 못 하고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뒀던 것을 들고 나온 것이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말도 더듬으며 설명하는 내게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거 지금 해 보면 안 돼?” 그렇게 우리는 나무막대 몇 개와 몇 장의 천 조각, 끈적하게 녹인 왁스 한 통을 앞에 두고 앉았다. 티셔츠만 입은 채 하의는 모두 벗고 밝은 방에 누워 있으니 새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밝은 데서 나체를 보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도 벗으라고 재촉했다.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 하나 걸친 그는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더니,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왁스를 바르려던 그 순간, 두려움에 떨며 나는 스톱을 외쳤다. 하면 편하지만 떼어낼 때 극한의 고통이 온다던 친구 A의 말이 떠올라 우선은 다리에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종아리 한 쪽에 왁스를 바르고 굳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밝은 대낮에 그것도 반 나체로 남녀가 있으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의 손이 스물스물 가슴께로 올라오더니 급기야 입고 있던 셔츠를 벗겼다. “야, 왁스 묻어, 왁스!”하는 내 외침은 그가 덮친 내 입 안으로 사라졌고, 결국 우리는 뒤엉켰다. 이리저리 왁스 바른 다리를 피해 잘도 공격 하더니, 섹스가 끝나고 나자 왁스는 너.무. 굳어서 살점까지 떨어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원래 목표였던 브라질리언 왁싱은 그날 하지 못했다. 며칠 뒤 죽어도 왁싱은 하지 않겠다는 나를 끌고 그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전문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망의 여름휴가! 휴양을 목적으로 코타키나발루를 선택한 것은 맞지만 정말 코타키나발루에 뭐가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남자의 취향이 이렇게 적나라하고 노골적이었던가. 그동안 정석대로만 섹스하던 선비 같은 이 남자가 나흘간 야수보다 더 야수로 돌변한 것이다. 휴가는 어땠냐는 친구들 물음에 나는 그저 “니들도 휴가 가기 전에 왁싱 꼭 해라! 기왕이면 브라질리언으로 ㅋㅋㅋ”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Episode 4

나는 당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2살 혈기 왕성하던 시절, 고등학교 동창생 6명과 함께 친목도모를 위해 서해안 해변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마 시즌과 겹쳤지만 우정을 확인하는 데 비가 장애물이 될 리 만무했다. 우리는 숙소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며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 녀석이 건너편 모텔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관계하는 커플을 목격! 그 순간 우리 모두 침묵을 지키며 낮은 포복으로 창문가에 포진, 라이브를 감상했다. 어두운 밤, 상대편 모텔은 불을 켜지 않았지만, 침대 옆에 놓인 TV를 켜 놓은 바람에 적나라한 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외모도 별로인 데다 콘돔도 쓰지 않고, 심지어 시간도 짧았던 남자. 그 남자가 괜찮은 여자와 관계를 맺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우리는 불타오르는 욕구를 참을 수 없다며, 가랑비 내리는 해안가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리라는 이름 아래 7명이 함께 움직였지만, 인원이 많아서인지 여성들이 부담스러워했고 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플레이를 결정. 이때부터는 친목이고 뭐고 잊어버렸다. 평일인 데다 날씨도 좋지 않아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우리 중 준수한 외모를 가진 몇몇은 새로운 만남을 갖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묵던 숙소는 방 하나, 주방, 화장실뿐이어서 적절치 못했으므로 승자들은 따로 숙박 시설도 잡았다. 친목도모로 시작했던 휴가는 산산조각이 났고, 각자 개인플레이를 시작한 친구들은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드디어 휴가 마지막 날, 궂은 날씨는 화창하게 개고 장마도 지났고 하필이면 토요일이라 해변은 여인들로 가득했다. 짝을 찾지 못한 채 남겨진 몇몇은 서로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의리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여성동아 2014년 7월 6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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