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의 머리에 하얗게 세월이 내려 앉았다. 김용석 작가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세상에 자식 없는 사람은 있어도 어머니 없는 자식은 없다. 김초혜 시인이 시 ‘어머니 1’에서 노래한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이들은 원래 어머니와 한 몸이었다가 갈려나온 존재들이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생명’을 준 존재기 때문에, 자식은 어른이 돼 어머니 품을 떠나도 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바쁘고 고단한 생활 때문에 잠시 잊었다가도 힘들고 지칠 때 어머니를 떠올리면 힘과 용기가 솟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만병통치약’이자 ‘자양강장제’ 같은 존재다.
2 ‘당신이 웃으시는 이유는’. 주름투성이 어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자식들 마음을 오히려 애잔하게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각박한 세상을 이겨나갈 힘을 갖게 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고 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하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6월 20일부터 7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서울강남 하나님의 교회에서 처음 열린 이 전시는 “웃고 들어갔다 울고 나오는 전시” “큰 울림과 감동이 있는 전시”라는 입소문을 타고 성황을 이루며 짧은 기간 동안 7천여 명이 관람했다. 뿐만 아니라 재전시 요청이 이어져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앙코르 전시가 열렸으며 이어 대전, 인천, 부산, 대구, 광주, 울산, 경기도 수원, 전북 전주, 경남 창원, 경기도 안산, 서울(동대문) 등을 거쳐 현재는 서울 관악과 강원도 춘천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시 기획 책임을 맡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서승복 목사는 “길을 가다가 현수막을 보고 들어오는 분들도 많다. 한 번 보고 가신 분들이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다시 찾기도 한다. 관람하신 분들이 소중한 존재인 어머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입을 모으는 걸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전에도 수많은 지역 인사와 관람객들이 찾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람객들은 시인 문병란·박효석·김초혜·허형만·김용택·도종환·아동 문학가 김옥림 등 어머니를 주제로 쓴 기성 문인들의 글과 문학 동호인들의 문학 작품, 멜기세덱출판사에 투고된 일반 독자들의 글과 사진을 감상하느라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행사장 중간에 전시된 배냇저고리 앞에서 오랫동안 회한에 잠겼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는 “‘나도 저런 옷을 입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내게 하나님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달팽이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미토콘드리아 연구로도 유명한 그는 관람 후 이어진 축사에서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지금 1백5세가 되셨을 것”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고, 특히 잘못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그런데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몸의 DNA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절반씩 물려받은 것이지만 DNA를 싸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100%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해도 고스란히 내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편히 계세요. 곧 뵈러 가겠습니다”라는 말로 축사를 마친 그는 “이처럼 멋진 전시회가 오래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1 2 3 반짇고리와 털 목도리, 배냇저고리 등 엄마의 손길이 묻어 있는 소품들. 우리를 키운 건 어머니의 정성이 아니었을까.
4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린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오픈 행사. 배동기 목사가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A 구역 ‘엄마’ 코너는 유년 시절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의 ‘어머니는 사랑의 하나님이기에’라는 제목의 글도 만날 수 있다.
2006년 ‘동아일보’ 칼럼난에 게재되기도 했던 글의 내용은 이렇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린 동생을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외출을 했다. 심통이 난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오자 ‘하루 종일 동생과 놀아준 값 5천원, 오줌 싼 기저귀 갈아준 값 5천원, 배고플 때 우유 먹여준 값 5천원’을 적은 청구서를 내밀었다.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는 안방에서 종이를 가져와 이렇게 적었다. ‘10년 동안 아무 조건 없이 먹여준 값 공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밤새 간호한 값 공짜, 너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 값 공짜, 낳고 기르고 사랑한 값 모두 공짜.’ 종이를 받아들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내가 청구한 비용은 이미 다 지불되었음’이라고 적은 또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짧은 글이지만 어머니의 큰 사랑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B 구역 ‘그녀’ 코너는 여자로서의 삶을 내려두고 자식을 위해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어머니,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그런 고통을 먹고 자란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노모의 사진, 거울을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사진은 평범한 시골 아낙의 모습임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을 울린다.
전시를 단체 관람한 군인과 의경들은, 입대를 앞둔 아들이 미용실에서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를 담은 ‘아들 군대 보내는 날’이라는 사진 앞에서 유난히 많이 울었다. 얼마나 우는 사람들이 많은지, 사진 아래에는 티슈 박스가 놓여 있었다.
강원가정복지다문화신문의 김현숙(56) 씨는 모성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풀어낸 ‘엄마 안에 내가 있었다’라는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모든 포유동물은 임신을 하면 태아와 모체가 상호 유전자와 세포를 교환한다고 한다. 하지만 뇌의 경우에는 모체와 태아 간 세포 교환을 막는 혈뇌 장벽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 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 기간 중에는 혈뇌 장벽이 느슨해져 태아의 세포가 엄마의 뇌 속에 유입된다. 자식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엄마가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한다거나,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는 이런 과학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5 임상기 작가의 ‘그 뜨스한 사랑’.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해 어머니는 아랫목에 밥공기를 묻어놓곤 했다. 6 이서원 작가의 ‘당신의 젊음을 꿰어’. 7 8 어릴 적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은 늘 따뜻하고 편안하다. 어머니의 머릿속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리라. 김용석 작가의 ‘유년의 해 질 녘’,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멜기세덱출판사).
C 구역 ‘다시, 엄마’ 코너는 어머니에 대한 자식들의 회한과 고마운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꾸며졌다.
회사원 최모(38) 씨는 어린아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라는 작품을 최고로 꼽았다. 정겨운 골목이며, 아이들의 싱그러운 미소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유년 시절의 한 토막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그렇게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언제나 내 편이던 든든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사진을 보면서 옛날에 살던 집이 생각났다. 무한한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가 새삼 보고 싶다. 감동적인 자리를 마련해준 주최 측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D 구역 ‘그래도 괜찮다’ 코너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용서와 끝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수필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 앞에는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아들은 몇 번 가르쳐주는 시늉을 하다가는 짜증을 내며 포기하라고 툴툴거린다. 혼자서 방법을 터득한 엄마가 처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아들 사랑해’였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글을 읽고 돌아서는 아이들의 눈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한 김성미(41) 씨는 “아이들 정서 교육용으로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전시회를 확대해서 학교에서도 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린 전시에는 학교를 마치고 교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손을 잡고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먼저 관람했던 친구의 추천으로 전시를 보러 왔다”는 유송희(15·난우중학교) 양은 “엄마가 말을 걸거나 공부하라고 하면 짜증을 내고 귀찮아했는데, 전시회를 둘러보며 우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시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E 구역 전시의 마지막 ‘성경 속 어머니 이야기’다. 솔로몬이 모성애를 이용해 아기의 진짜 엄마를 알아낸 이야기, 인류 최초의 어머니인 하와 이야기 등을 통해 어머니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영상문학관에는 10~12분 정도의 감동적인 영상 작품 4편이 마련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다. 이 가운데 ‘가장 소중한 존재 어머니’라는 작품은 초등학교 교사 김혜연 씨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수필을 동화 같은 영상으로 담아냈다.
김씨는 도덕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8가지씩 카드에 적게 한 다음, 항해 중 배가 난파될 위기에 처해 하나씩 차례로 버려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들고 있던, 그리고 마지막까지 차마 버리지 못한 카드는 바로 ‘어머니’라고 적힌 종이였다. 어리고 철없게만 보이는 아이들도 가슴속 깊이 엄마를 사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눈물 쏟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전시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 이우섭 목사는 “얼마 전에는 70대 노부부가 함께 와서 보고 울고 돌아갔다. 누가 보든 울 수밖에 없는 전시이기도 한데, 깊이 울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작품과 영상을 관람한 후에는 ‘사랑의 우편함’, ‘포토존-어머니라고 말해요’, ‘북카페’ 등 따로 마련된 부대 행사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어머니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는 ‘사랑의 우편함’, 지인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존-어머니라고 말해요’ 행사장은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랑의 엽서 발송과 사진 인화 모두 주최 측에서 무료로 해준다.
특히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던 말들을 적어 보낸 사랑의 엽서는 단절됐던 가족 간에 사랑과 화해, 용서를 부르는 매개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전시회 관계자는 “무뚝뚝한 남편이 전시회를 보고 나서 아내도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상한 남편으로 돌아왔다거나, 유산 상속 문제로 연락을 끊었던 어머니와 화해를 하게 됐다, 고부 간 사이가 좋아졌다는 등의 후일담을 접하면 마치 내 자신의 일처럼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은 앞으로 경북 구미(4월 17일), 경기도 남양주(4월 24일), 서울 마포 지역에서도 잇따라 개최될 예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할 수 있고,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자세한 문의는 031-738-5999로 하면 된다.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은 꼭 봐야 할 감동적인 전시라는 입소문을 타고 22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김주철 총회장 인터뷰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을 주최한 김주철 총회장으로부터 전시의 취지와 반향을 직접 들었다.
글·김명희 기자|사진·김형우 기자
지난해 서울강남 하나님의 교회에서 처음 시작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은 이후 종교의 벽을 넘어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하며 22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올해로 선교 50주년을 맞는 하나님의 교회는 현재 1백75개국에 2천5백여 교회가 있으며 신도는 2백만 명 정도다.
하나님의 교회는 한국을 모태로 출발해 어머니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번 전시를 마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김주철 총회장으로부터 전시의 의미와 성과를 들었다.
▼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하는 관람객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전시를 구상하게 됐습니까.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렵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삶의 만족도나 행복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희망과 사랑이 고갈돼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 때 가장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현실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메마른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사랑을 넉넉하게 채우고 생기를 불어넣고자 전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 서울 강남에서 시작한 전시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는데, 예상했던 건가요.
저희가 의도적으로 키운 건 아니고, 다녀가신 분들 사이에서 감동이 전해진 덕분입니다. 전시에 다녀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또 학생은 친구들에게 추천을 하다 보니 규모가 커진 것이지요. 이번 전시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 직접 ‘어머니는 사랑의 하나님이기에’라는 글을 출품했던데, 총회장님께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제 자신의 전부이자 사랑의 주체시죠. 온 인류를 통틀어 최고의 사랑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번 전시는 교회 신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행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회의 주된 역할은 인류를 천국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내용과 과정이 있어야겠지요. 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으니 자선 활동이나 봉사 활동, 문화 행사 등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념이나 정치적 색깔을 떠나 너그러운 마음가짐으로 사회가 선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아우르는 것 또한 교회가 할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시회에 다녀간 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우리는 자기밖에 모르는 각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확산되면 세상은 더 밝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여름날 갈증을 씻어주는 시원한 물처럼 사람들의 영적,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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