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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4백억 잭팟, 추신수의 아메리칸드림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02.18 09:34:00

최근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하며 1천4백억원대 ‘대박 계약’을 체결한 메이저리거 추신수.
그의 성공 뒤에는 아내 하원미 씨의 극진한 내조가 있었다.
2001년 마이너리그로 시작해 야구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부부의 이야기.
1천4백억 잭팟, 추신수의 아메리칸드림
‘1억3천만 달러의 사나이’. 지난해 12월 30일 아내와 입국한 ‘추추 트레인’ 추신수(32)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1억3천만 달러(약 1천3백80억원)라는 대박 계약을 체결했다. 역대 FA 단일 몸값으로 아시아인으로는 최고.

하지만 그도 한때는 연봉 1만 달러(약 1천60만원)가 안 되는 배고픈 삶을 살았다. 부산고를 졸업한 그는 계약금 1백35만 달러(약 14억원)를 받고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것은 2005년. 200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옮기면서 팀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2013년에는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해 20홈런-20도루-100포볼-100득점의 대기록을 세우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톱 타자가 됐다.

지난해 12월 28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 알링턴에 있는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진행된 추신수 공식 입단식에는 힘든 시절부터 곁을 지킨 아내 하원미(32) 씨도 아이들과 참석해 남편의 새로운 야구 인생을 축하했다. 추신수는 하씨와 2003년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 무빈·건우, 딸 소희를 뒀다.

추신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평소 멘토로 꼽던 혜민 스님과 만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추 파운데이션’의 첫 국내 자선사업을 펼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국내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친 그는 미국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에서 2월 중순부터 열리는 스프링캠프 대비 훈련을 위해 1월 15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택도 애리조나에서 새 홈 구장이 있는 텍사스 알링턴으로 옮겼다. 귀국 당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를 만났다. 야구 인생부터 가족 이야기까지 요리조리 던진 공을 그는 시원하게 받아쳐 홈런으로 만들었다.

새벽에 부부가 눈물 흘린 사연



▼ 그야말로 ‘대박 계약’을 체결했는데 감회가 남다르겠어요.

그때가 애리조나 시각으로 새벽 1시 반이었어요. 아내는 연락을 기다리다 지쳐서 자고 있었고, 저는 계속 기다리다 전화를 받았어요. 계약 소식을 듣고 아내와 이야기하는데, 1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13년이 5분 같았어요.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 이번 계약에서 우선시한 조건은 뭐였나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 FA를 경험하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반 이상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좋은 기회가 온 거죠. 텍사스 레인저스는 우선, 이기는 팀이기도 했지만 (팀을 옮겼을 때) 가족이 얼마나 그 지역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지도 중요했어요. 그런 모든 면에서 텍사스가 잘 맞았죠.

▼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이 장기 계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7년 계약을 맺었죠. 부담감도 생길 것 같은데요.

저도 에이전트로부터 사전에 존 단장이 금액은 몰라도 기간적인 부분은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만큼 부담도 있지만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 이번에 한팀이 된 일본인 선수 다르빗슈 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같은 아메리칸리그(AL) 서부 지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와의 맞대결에 대한 기대감은 없나요.

다르빗슈 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톱클래스인데, 같은 팀이 돼 좋아요. 이제는 한팀 동료라 먼저 다가갈 준비가 돼 있고, 마이너리그에서 배운 것처럼 먼저 다가가서 친해질 거예요. 이와쿠마 히사시는 좋은 구질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제가 잘 친 기억이 더 많기에(웃음), 한국 대 일본 선수를 떠나 타자 대 투수로 잘할 자신이 있어요. 누굴 만나도 자신 있습니다.

▼ 올해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건가요.

벌써 스프링캠프와 이번 시즌이 정말 기다려지는데, 2013년 신시내티에서 한 것처럼만 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텍사스 레인저스도 저와 7년이라는 장기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고요. 몸만 건강하고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다면 원하는 수치는 따라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13년간의 외로움, 가족 생각하며 이겨내

텍사스 레인저스가 추신수에게 거금을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탁월한 출루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다. 그는 2013년 시즌 1백54경기에 출전해 출루율 0.423을 기록해 신시내티 시절 팀 동료인 조이 보토(0.435)에 이어 내셔널리그 출루율 부문 2위에 올랐다. 300출루라는 대기록을 세운 건 2013년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와 조이 보토(신시내티 레즈),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뿐이다.

▼ 1년여간 신시내티 선수들과 호흡해보니 어떻던가요.

조이 보토, 제이 브루스, 브랜든 필립스 등 야구 잘하는 쟁쟁한 선수들을 보며 놀란 건 경기를 대하는 자세가 아주 진지했다는 거예요. 다음 경기는 물론 3일 후 선발 투수까지 파악하고 분석할 정도로 열심이고, 코치가 지도하지 않아도 개개인이 알아서 잘해요. 잘하는 팀과 이기는 팀은 다르다고 생각했죠. 지는 팀은 (오늘 경기를) 이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기는 팀은 (오늘 경기도) 이긴다고 생각하죠. 마음가짐이 다르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 기자회견 할 때 성적에 만족한다고 하는 걸 거의 못 봤는데 어때요, 올해 정도면 ‘만족’인가요.

100% 만족은 못 하죠(웃음). 300출루를 기록한 게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전에는 그냥 듣고 흘렸거든요. 제겐 300출루가 가장 보람 있는 기록이었어요.

▼ 출루율이 높아진 비결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늘 같은 자세로 타격했는데, 지난 시즌에는 투 스트라이크 전후의 자세를 바꿨죠.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격 자세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었어요. 배트를 짧게 잡고, 보폭을 넓혀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는 거죠. 투수의 공을 1~2개 더 본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타자에게 큰 영향을 줘요. 지난 시즌에는 포수가 공을 잡기 전까지 최대한 공을 봤는데 실제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성적이 저도 놀랄 정도로 좋았어요.

▼ 2013년 메이저리그에서 몸에 맞는 볼 26개로 전체 1위를 했는데, 일부러 피하지 않은 건가요.

많은 분이 제가 타석에 바짝 붙어서 그런 걸로 생각하는데, 저는 절대 바짝 붙지 않아요. 비디오도 살피고 심판이나 상대 선수들과도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먼저 ‘왜 바짝 붙지도 않는데 공을 맞느냐’고 말해요. 저는 다만 피하지 않을 뿐이에요. 제가 잘 치는 코스가 있는데, 다른 코스로 오는 공을 치려고 타격 자세나 생각을 바꾸면 안 되잖아요. 공을 맞으면 아프지만 뼈가 부러지지만 않는다면 공을 맞고 출루해도 상관없어요.

▼ 등번호 17번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년 정도를 제외하곤 계속 17번을 달고 뛰었어요. 이번에 운이 좋게 그 번호가 비어 있었거든요. 팀에서 먼저 17번을 하겠느냐고 물어서 정말 좋았죠.

▼ 투수로도 뛰어난 기량을 가졌는데,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저도 그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지금만큼의 레벨은 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 정도 투수는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더 빨리는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보다 나아진 게 없었을 것 같네요.

▼ 왼손 투수에 대한 공포는 어떻게 극복했나요.(추신수는 2011년 6월 왼손 투수 조너선 산체스의 사구를 왼쪽 엄지에 맞아 손가락뼈가 박살 나는 부상을 당했다. 그는 이후 성적이 떨어지며 왼손 투수에 대한 약점을 보였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예요. 여기까지 잘해왔는데 그런 문제로 반쪽짜리 선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정신과 의사도 만나보고, 왼손 투수의 공을 잘 치는 타자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어요. 그런데 조언을 듣는 거랑 실전은 다르거든요. 타석에서 그만큼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왼손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벌써 공을 못 칠 거라고 겁을 먹은 거죠. 한때는 투수가 움직이기만 해도 공이 날아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가족을 생각하며 극복했어요. 여기서 겁을 먹고 물러서면 우리 가족은 바깥에 나가 앉는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섰어요. 저하고의 싸움이었죠. 공이 잘 맞아나가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지금은 제가 왼손 투수를 상대로 잘 못 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 2001년부터 고된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데, 선수 생활을 하며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국에서 야구만 하다 열여덟 살 때 처음 낯선 땅에 오니 사회성도 떨어지고, 친구 없이 혼자 생활하면서 무척 외로웠어요. 이제 저도 확실히 자리를 잡았기에 그때의 저 같은 선수들을 챙기고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1천4백억 잭팟, 추신수의 아메리칸드림

아내 하원미 씨와 1월 6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회공헌 협약식에 참석한 추신수.

1천4백억 잭팟, 추신수의 아메리칸드림

2013년 12월 30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추신수 가족.

▼ 후배들을 돕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이 궁금해요.(추신수는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한미은행과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 재단 ‘추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야구를 즐기라고 하는데, 야구를 즐긴다는 게 뭔지’ 더스티 베이커 전 신시내티 레즈 감독님께 여쭤본 적이 있어요. 감독님이 ‘우리가 받은 만큼 주는 게 진짜 인조이 베이스볼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시작해볼 생각이에요.

마흔까지 현역으로 뛰는 게 목표

그야말로 ‘완벽한 성공’을 이룬 추신수. 이런 성공 스토리에서 아내 하씨의 ‘완벽한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2002년 12월 소개팅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했다. 당시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배고픈 생활을 하는 마이너리거를 믿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가 바로 하씨였다.

2003년 초 미국에 추신수를 보러 갔던 하씨는 첫아들을 얻고 곧바로 혼인 신고를 했다. 이후 그는 홍삼과 구운 마늘,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 등을 밥상에 올리며 남편의 건강을 관리했고, 전문가로부터 배운 스포츠마사지를 남편에게 해주기도 했다. 2011년 5월 추신수가 음주 운전 파문에 휩싸였을 때도 묵묵히 남편을 응원하며 진정한 내조가 뭔지 보여줬다. 그 덕에 남편이 화려하게 재기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혹자는 이번 추신수의 ‘대박 계약’을 놓고 ‘아내가 잭팟을 맞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사실 일찌감치 로또에 당첨된 건 추신수였던 셈.

▼ 지금의 추신수 선수가 있기까지 아내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죠.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건, 한 번도 아내의 산후 조리를 곁에서 해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이를 낳으면 저는 곧바로 시합을 하러 갔어요. 2007년 9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 때였어요. 한국 팀에 가면 말도 통하고 상황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저를 말린 게 아내였어요. 그러자 뭔지 모를 힘이 생겨난 거죠. 그래서 정말 재활을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2개월 정도 빨리 복귀할 수 있었어요.

▼ 야구 선수로서의 재능은 노력의 산물인가요, 타고난 건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운동신경은 좀 타고난 것 같아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되게 빨리 배우는 편이거든요. 미국에서 말이 안 통해도 코치님이 자세를 잡아주면 ‘이런 걸 원하는구나’ 빨리 알아챘어요. 노력은, 글쎄요(웃음). 모르겠어요. 제 철칙이 ‘자신을 평가하지 말자’거든요. 저도 노력했지만 저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도 많으니 평가는 못 내리겠네요.

▼ 선수, 아빠, 남편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 않아도 되니까 가족과 매일매일 볼 수 있고, 시즌이 끝나고 옮겨 다니지 않아도 돼서 참 좋아요. 가족들과 생활할 시간이 많다는 게 큰 기쁨이죠.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마흔 살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뛰는 게 목표예요. 100(홈런)-100(도루)을 넘어 300-300까지 아무도 밟지 못한 고지에 오르고 싶어요.

▼ 야구 꿈나무들의 롤 모델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이게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운동했어요.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야구 외에도 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은데, 저는 다른 걸 한 번도 못 해보고 야구만 했거든요. 어린 친구들은 제가 못 했던 공부도 열심히 하면 좋겠고, 책도 많이 읽고 지식도 쌓으면 좋겠어요.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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