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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 이야기 들려주는 동화작가 원유순

“힘든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더 큰 사랑 실천하는 지윤이 이야기 통해 진정한 행복 전해주고 싶어요”

글·백경선 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13.10.15 10:45:00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문화 행사 첫날 ‘지젤’ 공연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준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 씨.
그의 이야기가 최근 동화작가 원유순 씨에 의해 동화로 탄생했다.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 이야기 들려주는 동화작가 원유순


1월 30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7백여 명의 관객은 2분 동안 환상의 세계로 초대됐다. 2013년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축하 문화 행사의 하나로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다운증후군 백지윤(21) 씨가 2분가량 페전트 파드되(소작농 2인무)의 여자 솔로를 선보인 것. 감동적인 무대를 선물해준 백씨에게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
2010년 KBS ‘인간극장’에 나오며 화제가 된 백씨는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지젤’ 공연을 통해 ‘다운증후군 발레리나’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동화작가 원유순(56) 씨는 신문기사를 통해 백씨를 처음 알게 됐다. 유난히 밝은 표정의 백씨와 미인인 어머니가 인상 깊었지만, 처음에는 기사를 읽고 무심히 지나쳤다고 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도 있고, 팔다리 없는 몸으로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입이나 발가락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 화가도 있잖아요. 그렇게 장애우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다고 해서 발레인들 못하겠어요?”
출판사로부터 백씨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선뜻 수락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사연이 사회적으로 알려졌을 때, 그것이 백씨에게 긍정적 영향만 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조심스러움도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발레하는 수녀님’은 지윤이의 꿈
고민하던 그는 지난 4월 초 백씨의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윤이에게 주려고 보라색 꽃을 막 피운 양란 하나를 사갔어요.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윤이 동생 호성이가 슬그머니 나가더니 도자기 화분에 양란을 옮겨 심었어요. 알고 보니 호성이는 고3이라는 거예요. 여느 집 고3 같으면 수험생이라고 왕 노릇 하고 있을 텐데, 호성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지윤이 어머니 말을 들으니 누나인 지윤이를 동생처럼 돌보느라 일찍 철이 들어 그렇다네요.”
백씨의 가족은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 분담해서 돕는다고 했다. 어머니 혼자 딸을 돌보려면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일이라도 함께 나누면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지윤이네는 서로가 서로를 참 많이 사랑하고 모두가 따스한 품성을 지녔다”고 소개했다.
원 작가는 “지윤이가 발레를 하는 것이 부모님의 욕심일 수도 있다고 오해했다”고 고백했다. 백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것은 오롯이 그 자신의 선택이었다. 우연히 발레학원의 열려진 문 틈 사이로 ‘놀라운 세상’을 엿본 이후 백씨는 발레를 하고 싶다고 졸랐다. 오히려 부모는 근육이 약한 백씨에게 발레는 무리라고 생각해 반대했다. 결국은 딸의 고집에 두 손을 들었지만.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 이야기 들려주는 동화작가 원유순

발레를 하는 동안은 아프고 힘든 기억을 지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백지윤 씨.



발레를 배운 지 6~7개월이 지나도록 백씨는 발끝으로 서 있지도 못했다. 걸핏 하면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발레학원에서는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백씨는 발레를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온 백씨가 “발레를 하면 아프고 힘든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딸의 그 말에 부모는 다시 발레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원 작가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오직 딸의 행복을 위해 발레를 시켰던 백씨의 부모를 오해했던 것이 참 미안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백씨는 전국장애인댄스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을 만났다. 그를 눈여겨본 최 단장은 국립발레단 아카데미 오디션 참가를 제안했고, 오디션에 합격한 백씨는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발레를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지윤이 어머니는 참으로 현명한 분이에요. 장애가 있는 지윤이에게 무엇이든 억지로 시키지 않고, 지윤이가 어려서부터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찾으려고 했대요. 그 덕분에 지윤이는 발레뿐만 아니라 영어와 수영도 곧잘 해요. 어머니는 지윤이가 장애인으로서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지윤이가 발레를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요. 발레가 지윤이를 힘들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면 언제든지 그만두면 된다고 말해요.”
원 작가는 “무엇보다 지윤이 어머니에게 반해 지윤이 가족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 결심은 최근 ‘발레하는 수녀님’이란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 제목은 백씨의 꿈에서 따왔다고 했다.
“지윤이가 열여섯 살 되던 해 지윤이 가족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살았어요. 한창 사춘기인 지윤이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에게 상처 받을 것을 우려해 지윤이 부모님이 어렵게 결정했답니다. 지윤이 어머니는 그 결정을 잘한 것 같다고 해요. 필리핀에서 지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정말 행복하게 지냈으니까요. 특히 마닐라에 있는 한국인 성당의 마리아 수녀님이 지윤이를 많이 사랑해주셨고, 지윤이도 마리아 수녀님을 끔찍하게 좋아했대요. 마리아 수녀님을 보고 지윤이가 발레하는 수녀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는군요.”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 이야기 들려주는 동화작가 원유순


소외된 아이들 이야기 주로 써와
원 작가가 백씨의 이야기를 동화로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폐아 이야기와 지체장애아 이야기를 단편으로 쓴 적도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그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아이들에게 주목했고 그 이야기를 써왔다. 33㎡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열평 아이들’ 이야기, 북한에서 온 ‘피양랭면집 명옥이’ 이야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글을 못 읽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까막눈 삼디기’ 이야기,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 ‘하이퐁 세탁소’ 등이 대표적이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을 만났고, 그중 소외된 아이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백씨를 만나게 해준 것 같다고 말하자, “지윤이의 따뜻한 마음에 비하면 제 마음은 미지근한 편”이라며 그가 웃었다.
“우리는 종종 의례적으로 장애우를 ‘천사’라고 불러요. 그래서 그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윤이는 정말 천사였어요. 학교생활과 고된 발레 연습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꾸준히 독거노인이나 장애 어린이를 돌보아온 거예요. 시력이 나쁘고 근육의 힘도 약하고 만 일곱 살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윤이가 비장애우인 우리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지윤이가 정말 크고 아름답게 보이는 한편, 욕심만 채우며 살아가는 제가 부끄러웠죠.”
원 작가는 ‘행복한 천사’ 백씨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 행복하냐”고 묻고 싶었다. 글을 쓰는 내내 똑같은 질문을 그 자신에게도 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백씨가 발레 때문에 행복한 것처럼 그는 글쓰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교대에 들어갔고,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위안해야 했다. 인천교대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생활이 그 열망을 뒤로하게 했다.
그러다 동료 교사가 가져다준 ‘아동문학평론’이란 잡지에 나온 신인 응모 공고를 보고 도전을 했고, 1990년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초등학교에 있다 보니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그간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그는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1년에 4~5권의 책을 펴냈다.
계몽문학상·MBC창작동화대상 등을 받으며 평단에서 인정도 받았고, 독자들에게 인기도 얻었다. 지난 2010년 100쇄를 찍었다는 ‘까막눈 삼디기’는 그의 이름 앞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수식어를 부여해주었다.
“교사와 작가 두 길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어요. 그런데 사람 욕심은 끝이 없더라고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사실 전업작가가 됐다고 더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웃음) 교사를 그만두었어요.”
2007년 29년 6개월간의 교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그는 전업작가가 됐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도 여주에서 전원생활도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강원도 산골에서 보낸 그는 늘 전원을 동경했었다. 글쓰기와 전원생활, 그의 바람은 모두 이루어졌다. 그래서 요즘 그는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행복은 부족한 것을 도와 함께 채워나가는 것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 이야기 들려주는 동화작가 원유순


“지윤이는 지난봄부터 보육교사로 일하는 어머니를 도와 장애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발레하는 수녀님이란 지윤이의 꿈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어요. ‘심리 치료를 하는’ 발레하는 수녀님이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지윤이가 그것을 통해 장애 어린이들의 심리 치료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는 “내가 꿈을 이룬 것처럼 지윤이도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록 지윤이의 꿈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현재진행형으로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고 더 큰 꿈으로 발전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지윤이가 꼭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며칠 전 지윤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발레하는 수녀님이 되는 지윤이의 꿈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윤이 어머니께서 지윤이를 받아줄 수 있는 수도회를 찾아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는데, 어디에서도 지윤이를 받아줄 수 없다고 그랬답니다. 모두를 감싸 안아야 마땅할 종교계가 오히려 더욱 굳게 닫혀 있더라며 지윤이 어머니께서 낙심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괜히 교육시키고 대학까지 보낸 것 같다고(백씨는 현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요즘 그것이 후회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장애우는 교육을 안 받을수록 취업이 잘된대요. 단순 노동 같은 것은 장애우에게 많이 열려 있다는군요. 그런데 지윤이는 단순한 것을 싫어한다며 자신이 지윤이의 눈높이만 높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대요.”
그는 “지윤이의 꿈이 지윤이의 의지에 의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다운증후군을 극복하고 발레리나가 된 지윤이처럼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행복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펴냈다는 원 작가는, “자기 영역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는 이러이러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경계를 짓는, 행복을 나누지 못하는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동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글이 아니에요. 모든 이에게 인간의 근원적인 것을 화두로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발레하는 수녀님’을 통해서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져봅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큰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할 때 얻어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진정한 행복은 서로 부족한 것을 도와 함께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냐”고 답했다.

참고도서·‘발레하는 수녀님’(동아일보사)

여성동아 2013년 10월 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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