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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血男兒[열혈남아] 장혁의 중간 결산

글·진혜린 | 사진·뉴시스 페이퍼북 제공

입력 2013.09.17 09:52:00

배우에게는 저마다 각광 받는 해가 있다. 장혁은 자신의 ‘각광 연도’를 KBS2 ‘학교’로 인기를 끌었던 1999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KBS2 ‘추노’로 장식됐던 2010년을 두 번째로 꼽았다. 그리고 이제 그마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2013년 중반, 제3의 각광 연도를 맞이하고 있다. 데뷔 16년 만에 세 번째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장혁의 지금을 본다.
熱血男兒[열혈남아] 장혁의 중간 결산


항상 작품 이야기만 하는 배우는 재미가 없다.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심오한 연기철학으로 중무장한 채 매 순간마다 진지함으로 일관하는 배우들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봐야 제격이다. 고민의 수위는 늘 작품에 반영되기 마련이니까.
장혁(37)도 그 재미없는 배우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항상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유머를 할 때마저도 진지하다”고 할 만큼 그는 스타이기에 앞서 ‘작품으로 승부하는 배우’였다. 그런데 요즘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뒤집어졌다. 그 지루할 만큼 진지한 모습에 사람들이 포복절도하고 있는 거다.
실로 영화 ‘루키’를 연상시키는 씨름 강호의 모습으로 등장해 1초 한판승으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는 ‘허당 장혁’의 모습에 대중은 환호했다. 그가 출연하고 있는 MBC ‘일밤-진짜 사나이’가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평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 그 친구(상대 선수)가 페인트(운동 경기에서 상대편을 속이기 위한 동작)를 주더라고요. 거기에 속아서 팔로 목을 감아 당기려고 했는데, 넘어가는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공방에서 졌구나. 그리고 하늘을 봤죠. ‘아, 내가 졌구나.’ (승부를 결정짓는 데) 근육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고수들끼리의 한 합(치고받는 동작)에 있죠.”
웃자고 하는 소리에 또다시 진지하게 반응하는 장혁의 모습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예능 감각으로 피어난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예능감. 유재석도 강호동도 따라갈 수 없는 장혁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의 포인트다.
그 또한 “사실 몸으로 하는 것보다 브레인 쪽이다. 힘쓰는 것만 나오는 편집이 아쉽다”고 하면서도 “월요일만 되면 시청률을 꼬박꼬박 확인한다. 드라마 시청률이 잘 나올 때보다 ‘진짜 사나이’ 시청률이 잘 나올 때가 더 좋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10년 내공에 빛나는 절권도 고수이자 마라톤, 기계체조, 복싱, 승마 등으로 다져진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액션 배우에게 모래판에 메다꽂히는 ‘씨름 굴욕’이 신경 쓰일 것도 같다. 배우의 생명은 이미지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16년 동안 ‘진지함’으로 갈고닦아온 내공은 한판 씨름의 패배로 무너질 만큼 얄팍한 것이 아니다.
“이미지를 걱정했다면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 자신을 놓게 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대중과의 사이에 조금은 거리가 있는 이미지였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과) 한 발짝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요.”
이제 한 발짝, 아니 아예 대중 곁으로 바싹 다가서게 한 친근감은 그의 수많은 매력 리스트 중 하나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유난히 아픈 손가락, 군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혁의 ‘진짜 사나이’ 캐스팅을 놓고 갑론을박이 많았다. 장혁에게 ‘군대’는 유난히도 아픈 기억이다. 그는 2004년 병역 비리가 적발돼 다시 신체검사를 받고 현역으로 복무한 뒤 만기 제대했다. 병역 비리로 곤혹을 치른 사람이 군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가 과감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이를 두고 최근 MBC ‘무릎팍 도사’에서 그때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쁜 행동을 했어요. 잘못인 줄 알고도 그런 행동을 한 거죠. 잘못된 부분을 사람들이 알게 됐고, 당연한 수순으로 군대에 갔어요. 병무청에 가서 신검을 다시 받고 기자들 앞에 섰을 때 잘못했다고 말하는데 목이 메더라고요.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부모님도 보고 계실텐데’였어요. 숨을 데가 없는 거예요. 태어나서 그때가 제일 어리석었어요.”

熱血男兒[열혈남아] 장혁의 중간 결산


하지만 군대는 아팠던 만큼 장혁에게 많은 것을 남긴,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
“세상의 끈을 놓아버린 것처럼 앞길이 캄캄하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던 입대 당시를 지나 그는 GOP 부대(주력 부대의 전방에 배치된다)에서 바깥세상이 낯설어질 만큼 진짜 군인으로 생활했다. 배우라는 직업, 연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멀어지고 나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TV에 나오는 동료들을 보며 저도 그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입대 초반에는 거의 TV를 보지 않았죠. 휴가를 나가 대본을 들춰볼 때마다 대본 속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신나게 연기에 올인했던 예전 생각에 미칠 것 같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얼마나 촬영 현장을 좋아했고, 즐거워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죠.”
그는 입대를 하기 전에 자신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잊은 채, 생기를 잃은 연기자가 돼버린 자신이 보였다. 배우 장혁에게서 멀리 떨어져 정용준(본명)으로 2년을 살아보니 다시 배우 장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진짜 사나이’로의 도전은 그때 깨달음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제대 후에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나 자신을 대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떨어져 나 자신을 바라보면 생각의 변화가 생기고 연기를 대하는 시각과 관점이 변하거든요.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이를 가질 수도 있고요. 그로 인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아요. 군 시절이 30대를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처럼 ‘진짜 사나이’로 40대를 맞이하며 30대를 되돌아보고 싶습니다.”



熱血男兒[열혈남아] 장혁의 중간 결산


의지의 사나이, 장혁
30대를 되돌아보고 40대를 준비하는 진지한 장혁의 고민은 최근 발간한 자서전적 에세이 ‘열혈남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부터 데뷔 이후 지금까지의 자신을 롱 테이크로 되짚어놓은 책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고백건대, ‘열혈남아’를 처음 집어들었을 때 책의 무게를 가볍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워 넣기 위한 구실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장혁이라는 사람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그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했던 모든 작품마다에 담긴 고민과 생각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명랑소녀 성공기(2002년)’에서 독창적인 재벌 2세 캐릭터로 성공한 뒤 ‘대망’에서도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 없이 무조건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려고만 했던 것이 문제였죠. 결국 ‘대망’에서는 제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시청자 또한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캐릭터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에도 차이를 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결국 똑같은 성공은 두 번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다가왔어요.”
행운의 연속은 거저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직업을 철저히 공부해 인물의 보편타당한 배경을 섭렵하고 이를 자신의 느낌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최근 개봉한 영화 ‘감기’까지 이어진다. 크고 작은 실패를 발판 삼아 한 단계씩 앞으로 전진해왔던 장혁. 그것이 그에게 성실함과 진지함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체육 교사를 갈망하던 고등학생은 우주 먼지가 돼버릴 것같이 위축됐던 신인 시절을 거치고, ‘왕의 남자’의 장생과 할리우드 영화 ‘그린호넷’, ‘시크릿 가든’의 현빈 역을 놓치고도 이만큼이나 성장했다. 그것은 “넘어졌다면 굴러서라도 가라” “자만하지 말라, 성공은 당신 몫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뿌리 깊은 ‘열정’과 ‘의지’가 있어 가능했으리라.
가끔은 깜박할 정도로 ‘유부남’이나 ‘아이 아빠’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도 이제 어엿한 두 아이의 아빠다. 어찌 보면 사랑 앞에서의 장혁도, 아버지로서의 장혁도 연기에 임하는 장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02년 꽤나 잘나가던 배우가 헬스클럽에서 재즈 필라테스를 가르치던 강사, 김여진 씨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데이트를 신청하기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그의 아내는 군 생활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나왔다.
“제가 군에 있는 동안 아내가 기다려줬잖아요. 아내가 저보다 두 살 연상인데, 그 나이에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면회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잔뜩 싸가지고 와서 선임이랑 후임들을 먹이고 그랬어요. 왜 기다려줬냐고 물었더니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제가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대 후 SBS 드라마 ‘고맙습니다’로 조심스러운 재기에 성공한 그의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기다려준 소속사도 결혼을 만류했다. 사실 그는 맨 처음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준 싸이더스 HQ라는 둥지를 지금껏 떠나본 적이 없다. 그가 형이라고 부르는 싸이더스 HQ 정훈탁 사장의 말이라면 2000년 실제 그가 그랬듯 가수 T.J로 변신해 무대 위에서 춤을 출 수도 있고, 시상식장에 곰돌이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갈 수도 있으며, 소림사는 못 가도 절권도를 10년 동안 연마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두 살 연상의 아내를 생각하면 더 이상 결혼을 늦출 수만은 없었다.
“임신 후 결혼, 생각했던 대로 된 거예요. 임신을 계획하고 여행을 가서인지 첫째 아이가 바로 생겼죠.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손자가 태어나니까 완전히 바뀌시더라고요.”

熱血男兒[열혈남아] 장혁의 중간 결산

8월 14일 그가 주연한 영화 ‘감기’가 개봉됐다. 장혁이 분한 인정 많고 정의감 넘치는 구조대원 ‘지구’는 어딘지 모르게 그를 닮아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렇게 첫아들을 낳고 2008년 결혼한 후 아들까지 낳았다. 여섯 살, 다섯 살 사내아이들의 아빠. 집에서도 근육을 불끈거리며 절권도로 아이들을 조련하는 아빠일 것 같지만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힘들어서 몰래 숨은 적이 있다”고 깜짝 고백을 할 만큼 자상한 아빠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들과 영화를 함께 보며 부자간의 정을 쌓고 싶다고 말한다.
“ 약 5천 장의 DVD를 소장하고 있는데, 가끔 DVD를 전부 끄집어내 다시 한 번 살펴봐요.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가 눈에 띄면 정리를 뒤로한 채 DVD를 틀어놓고 거기에 빠지는 날이 있어요. 그렇게 혼자 영화를 보고 있으면 뭘 아는 건지, 아들 녀석이 옆에 와서 놀아달라고 보채곤 하죠. 그때마다 이 녀석이 다 자라면 제가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영화 보며 부자간의 정을 쌓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돼요. 비록 무뚝뚝한 대화만이 오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들을 경험해보니 그 무뚝뚝함 속에 얼마나 깊은 애정이 서려 있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됐으니까요.”
데뷔 때만 해도 누구누구를 닮은 아류 배우로 머물 줄 알았다. “어눌한 말투는 누구를 닮았구나, 저 몽롱한 표정은 누구를 닮았어” 하곤 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대한민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병역 비리에 연루되면서 연기자의 미래도 끝나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제2를 넘어 제3의 각광 연도를 맞고 있다. 각광 연도를 지날 때마다 그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라도 인생의 테이크를 나눠 자신을 다시 한 번 추스르며 마음을 연마하고 있다. “즐거운 기분으로 40대를 기다린다”는 장혁이 다음 테이크에서 어떤 인물로 거듭날지 궁금하다.

참고도서·‘열혈남아’(페이퍼북)

여성동아 2013년 9월 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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