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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로 돌아온 봉준호를 알고 싶다

글·구희언 기자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입력 2013.08.23 14:34:00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한층 더 스케일 큰 영화로 돌아왔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부터 인물 이름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쓴 ‘설국열차’ 관전 포인트.
‘설국열차’로 돌아온 봉준호를 알고 싶다


영화감독 봉준호(44)가 다섯 번째 작품인 ‘설국열차’로 돌아왔다. 국내 연출작으로 치면 2009년 ‘마더’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 셈이다. ‘설국열차’는 지구에 빙하기가 닥쳐 위기가 찾아온 가운데 달리는 기차에 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한 동명의 프랑스 만화가 원작이다. 7월 4일 열린 라이브 쇼케이스 자리에서 봉 감독과 주연배우 송강호·고아성의 영화 촬영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를 빨리빨리 찍는 감독이 되고 싶네요.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서는 만큼 공도 많이 들이고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봉 감독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게 2004년경이니 영화 완성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그는 “1년간 새롭게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새로운 빙하기가 왔고 생존자들이 달리는 기차에 타서 계층이 나뉘어 싸운다는 원작의 위대한 발상이 아니었다면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봉 감독의 전작 ‘괴물’에서 아버지와 딸로 나온 배우 송강호와 고아성은 이 작품에서도 각각 남궁민수와 요나 역을 맡아 부녀지간으로 재회한다. 두 사람은 원작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봉 감독은 “열차를 새로 만든 인물을 제외하고는 외국 배우들이 맡은 역도 대부분 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아직 시나리오를 쓰기 전인 2009년 여름에 송강호 씨와 고아성 씨에게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미리 말씀드렸어요. 송강호 씨는 포스터 사진에도 나오지만 외모 자체가 그간의 영화와 달리 많이 섹시해요(웃음). 스스로 독특한 역이라고 했는데 축구로 치면 리베로 같은,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캐릭터고 더 예측하기 힘든 딸내미가 붙어 있어서 재미가 있었죠.”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의 비밀
송강호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두만과 ‘괴물’의 강두, 그리고 이번에 개봉하는 ‘설국열차’의 남궁민수까지 벌써 봉 감독 작품의 주연만 세 번째다. 그는 “봉 감독이 만든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항상 느낌이 다르다. 그런 어떤 이상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봉 감독은 “변태감독이야, 난”이라며 웃었다.
“기차 꼬리칸 사람들은 제가 없으면 앞으로 전진을 못 해요. 신비롭기도 하고 이상하리만큼 따로 노는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저런 야심과 갈망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인물이에요.”(송강호)
“외국인들이 가장 발음하기 힘든 한국 이름을 찾다 보니까 남궁민수가 어렵고 재밌겠더라고요. 영화에 이름에 관한 개그도 슬쩍 넣었어요.”(봉준호)
고아성이 맡은 요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는 예언자 요나를 연상하게 한다. 봉 감독은 “남궁민수라는 이름과 달리 어감부터 다국적 의미가 담겨 있다”며 짐작대로 성경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밝혔다.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 씨가 고아성 씨를 괴물 입에서 끄집어내잖아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누가 ‘괴물’ 개봉 당시 고래 배 속에서 요나를 꺼내는 것 같은 상징을 쓴 거냐고 질문하시더라고요. 그때 그 이름이 인상에 깊이 남았죠.”(봉준호)
영화 ‘괴물’에서 원효대교 북단 좁은 공간에 갇혔던 고아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기차 감옥칸에 갇힌다. 그는 “감독님이 영화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예쁘게 나오리라는 건 기대하지 않았고, 얼굴에 검댕도 약간 칠하겠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촬영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체코. 송강호는 “프라하가 아름다운 도시이고 계절이 좋아서 촬영 끝나면 산책을 많이 다녔는데, 한국 관광객과 마주쳤을 때 ‘저 양반이 여기서 뭐 하나’ 하는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웃었다. 특히 그는 평소 맥주를 좋아하지만 긴장도 되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금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설국열차’에는 두 사람 외에도 크리스 에반스, 애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스타가 대거 출연한다. 각각 기차의 칸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봉 감독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전작을 보고 두 사람(송강호·고아성)에 대해 궁금해했다”고 밝혔다.
“크리스 에반스는 ‘살인의 추억’을 반복해서 보곤 송강호 씨가 싸우고 때리는 액션 장면을 보며 상대 배우를 실제로 때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아니다, 그만큼 실감나게 연기한 거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한 번 때린 적도 있어요. 차마 그런 얘긴 할 수가 없었죠. 크리스 에반스가 자기도 혹시 찍다가 맞는 것 아닌가 꽤 긴장하더라고요(웃음). 틸다 스윈튼은 송강호 씨 팬이에요. 영화에서 같이 맞붙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송강호 씨와 같이 찍는 장면을 더 넣어주면 안 되나요?’ 하고 부탁하기도 했죠. 옥타비아 스펜서는 고아성 씨에게 관심이 많아 정말 예쁘다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어요.”
송강호도 할리우드 배우들이 봉 감독의 ‘빅 팬’임을 현장에서 느꼈다고. 그는 “어떤 분은 ‘괴물’이 넘버원이라 하고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를 최고로 꼽는 사람도 있더라. 배우마다 취향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으로 봉 감독에 대한 신뢰감과 존경심이 굉장했다”고 전했다.

기차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



‘설국열차’로 돌아온 봉준호를 알고 싶다

원작 만화가인 장 마르크 로셰트가 ‘설국열차’ 꼬리칸에 그린 그림들.



‘설국열차’의 핵심 콘셉트는 ‘기차’와 ‘혹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더운 여름에 개봉하게 된 작품 속 겨울 느낌을 영화 촬영장에서 ‘디테일’까지 신경 쓰기로 유명한 ‘봉테일’은 어떻게 살려냈을까. 봉 감독은 “실제로 겨울에 눈 덮인 오스트리아 산악지대에서 촬영한 장면도 있다”고 했다.
“그때는 배우나 스태프가 추위를 그대로 느꼈죠. 세트에서는 추위를 전달하기 위해 온갖 특수효과의 향연이 펼쳐졌고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초반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추위가 느껴지고 사람의 몸이 얼어붙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시면 아마 (추위를) 뼈저리게 느끼실 거예요.”
봉 감독은 대학생 시절 대학 신문에 그림을 그리던 실력을 발휘해 이번 영화에서도 콘티와 스토리보드의 30~40%를 직접 그렸다. 그는 “많은 나라 스태프와 배우가 뒤섞인 가운데 그들을 정확하게 한 방향으로 묶는 방법은 정교한 스토리보드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거라고 생각해 스토리보드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작품에서 좁고 긴 공간을 자주 활용하던 봉 감독에게 ‘기차’는 그야말로 최적의 연출 장소였다.
“그야말로 흥분 그 자체였죠. 배우를 보고 느끼는 흥분도 있지만 감독은 자기가 촬영할 공간을 보고 느끼는 흥분이 있거든요. 좁고 긴 공간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 심지어 기차잖아요. 완전히 미치는 거죠. 마약 중독자가 대마밭에서 뒹구는 느낌? 하하하. 기차는 정말로 특이한 영화적 공간이에요. 너무 좁고 긴데 그게 살아서 계속 움직여요. 휘어졌다가 펴지고, 다리 위와 터널로 가고. 이런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지 정말 공을 많이 들였죠.”
17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던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봉 감독은 “설국열차는 지하철 2호선 같은 순환선”이라고 했다.
“설국열차가 전 세계 6대륙을 뱅뱅 돌아요. 재미있는 것이, 1년에 정확히 한 바퀴를 돌다 보니 어느 계곡을 지날 때가 크리스마스고, 어느 다리를 지나면 새해가 됐다는 걸 승객도 알 수가 있다는 점이죠. 지하철 2호선의 목적지를 종합운동장역이라고 하지 않듯 모든 역이 다 목적지인 거예요.”
인류의 위기와 계층 간 갈등 등 다양한 이슈가 영화에 녹아 있지만 무엇보다 봉 감독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격렬한 기차 액션’. 그는 “몸과 몸이 충돌하고 싸우고 피가 터지고, 그런 격렬한 충돌을 만들고 싶었다”며 “입체적인 영화라 생각하고 찍었다”고 했다.
“거칠고 격렬한 영화예요. 질주하는 기차 안에서 인간들도 질주하고, 그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영화죠. 송강호 씨와 고아성 씨를 포함해 많은 배우의 멋진 모습이 나오는 영화라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셨으면 해요.”

여성동아 2013년 8월 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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