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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하고 화끈한 마흔넷 박선영

“외롭지 않으니까 싱글이다”

글·진혜린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7.16 16:23:00

박선영은 데뷔할 때부터 ‘제2의 누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제2의 박선영’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박선영의 캐릭터는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서 정소녀도 보이고 박정수도 보이고 견미리도 보인다. 11년을 묵혔더니 장맛이 제대로 들었다.
털털하고 화끈한 마흔넷 박선영


데뷔 22년 차인데, 그 절반은 공백이다. 11년을 바짝 달리더니 4년을 쉬고, 두어 작품 하는가 싶더니 6년을 또 내리 쉬었다. 대한민국 최초 레즈비언 역을 맡은 드라마 ‘아들과 딸’에 이어 영화 ‘가슴 달린 남자’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며 사랑받던 박선영. 그런 그가 2002년 ‘위기의 여자’를 끝으로 긴 공백기를 가졌다. ‘왜 그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나니 ‘어떤 말 못할 사연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멋쩍어졌다.
“그냥 자연스럽게 쉬게 됐어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여배우의 자리가 어정쩡한 것 같아요. 대개 드라마 속 역할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이나 많은데, 20대에 30대 역은 해도, 30대에는 40대 역이 어렵더라고요. 40대 여자는 대부분 엄마인데, 연인에서 엄마로 껑충 뛰기에는 30대가 애매해지는 거죠. 그래서 그즈음 많이 쉬는 것 같아요.”
여배우가 연인에서 엄마로 넘어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그것은 최정상급 배우, 일일드라마 단골 주·조연급 배우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처음 주연을 맡을 때만큼,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중에는 때 맞춰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공백기를 갖다가 멋지게 ‘주부’로 컴백하는 성공적인 케이스도 있다. 박선영 또한 그 알맞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 시간 빨리 간다’고 할 만큼 세월을 잊고 살았다.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럽게 무르익어야 되더라고요. 천천히 바닥을 잘 다져놓으면 저에게 잘 맞는 역할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2006년 ‘내 사랑 못난이’에 출연했을 때도 ‘컴백’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는 과정이었죠. 그때도 ‘이제는 주부 역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어쩜, 넌 그대로니?’라는 말을 듣고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했죠(웃음). 그 뒤 ‘한성별곡’을 찍었는데…. 뭐라고요? 벌써 그게 6년 전이라고요? 하하하.”
박선영을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한 신선놀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외롭지 않은 싱글 라이프에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필드에 나가는데, 그것도 많이 줄인 거예요. 또 일주일에 한 번은 액션스쿨에서 검도를 배우고요. 또 작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해 학원에도 빠지지 않고 가요. 매일 저녁 숙제를 해야 해서 엄청 바빠요. 또 친구들, 아는 언니들, 챙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연애도 해야 하잖아요. 결혼한 친구들이 ‘넌 뭐하기에 그렇게 바쁘냐’고 묻는데 원래 혼자가 더 바쁜 거예요(웃음).”
털털하고 화끈하고 골치 아픈 것은 딱 질색인 성격. 한눈에 박선영에게서 ‘강한 언니’의 포스가 흘렀다. 연기자에게는 긴 공백이 속 쓰린 일이지만 그 감정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연이 닿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 붙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래서 마흔넷의 싱글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준프로 골프 실력, 생활의 활력이다

털털하고 화끈한 마흔넷 박선영


2000년부터 시작한 골프는 그의 일상을 싱그럽게 채워주는 주역이다. 본업은 연기자지만 골프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란다.
“골프채를 잡은 지 6개월 만에 싱글이 됐죠. 취미를 넘어선 지는 오래됐고, 거의 직업적으로 친다고 보면 될 거예요. 개인적으로 초청해주는 분들도 있고, 시니어 대회에서 초청을 받기도 해요.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필드에 나가죠. 보통 (아마추어 선수들이 파트너로) 프로골퍼를 초청하는데 감사하게도 저는 프로도 아닌데 불러주는 데가 많아요. 아마 조금만 더 일찍 골프를 시작했다면 프로골퍼가 되는 것도 고려해봤을 것 같아요. 하체가 튼튼해서 아주 골프에 제격이거든요(웃음).”
운동신경 없는 사람은 평생을 쳐도 18홀을 72타 만에 들어가는 싱글 기록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아마추어 동호회 내에서 싱글이 탄생하면 잔치도 열어주고 기념패도 전달한다. 그런 것을 6개월 만에 이뤘으니 타고났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박선영은 자신을 테스트도 해볼 겸 자격증에 도전해 티칭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한때는 SBS 골프채널 ‘골프아카데미’의 MC를 보기도 했다. 여전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필드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지인들조차 비 오는 날에만 그에게 연락을 한단다. 그처럼 열심히 운동을 한 덕분에 강인한 구릿빛 피부가 그를 더욱 건강하고 활기 넘쳐 보이게 했다.
“아버지가 국가대표 스키선수셨고, 저도 워낙 운동을 좋아해요. 아버지가 올해 76세인데 여전히 겨울만 되면 스키를 타세요. 다치실까봐 걱정인데 그렇게 고집을 피우세요(웃음).”
운동에 대한 애정만큼은 부전여전이다. 동덕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운동을 안 하면 병이 날 것 같단다.
“운동만큼 좋은 게 없어요. 혼자 살면 외롭고 심심할 것 같다고 하는데, 심심할 새도 없어요. 운동을 하면 몸이 피곤해서 지쳐 잠들거든요. 대신 잠도 푹 자고, 건강도 좋아지잖아요. 스트레스 푸는 데도 좋고요. 저는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냅다 뛰어요. 그럼 속이 좀 후련해지고 머릿속도 정리되죠.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으면 병나요 병.(웃음).”
최근에는 ‘예스 마담’을 꿈꾸며 검을 배우고 있다. 구르고 나르는 무술을 배우려고 액션스쿨에 갔다가 검이 멋있어 보여 덜컥 시작했다.



털털하고 화끈한 마흔넷 박선영


“왕년에는 좀 날아다녔는데(웃음) 이제 유연성도 떨어지고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액션스쿨에 가면 젊은 연기 지망생이 많아서 즐거워요. 요즘은 만날 그 친구들 밥 사주기 바쁘죠(웃음).”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 그에게 ‘결혼’은 ‘불편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제 ‘백세 시대’니까 지금 결혼해도 60년을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나요? 아직 젊었을 때, 그 아까운 시간을 결혼에 매여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남자친구가 있더라도 내 생활이 있어야 살 수 있지,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남자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요. 그건 나를 죽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저에게는 한가한 사람도 남자친구로 꽝이에요.”
그렇다고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결혼을 확신할 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 결혼도 두렵지 않단다.
“결혼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를 보는 순간 ‘딱 이 사람이다’ 싶었대요. 그런데 그런 남자랑 결혼해도 신혼 때 잠깐 좋았다가 만날 지지고 볶거든요.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적도 없는데 남들이 다 하니까, 나이가 먹었으니까,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덩달아 지지고 볶게 될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하셨는데(웃음), 그것도 마흔이 넘으니까 완전히 포기하신 것 같아요(웃음).”

싱글의 자격, 경제력과 남자친구

털털하고 화끈한 마흔넷 박선영


그 또한 우격다짐으로 싱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싱글로 지내는 것 또한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니까.
“혼자 노는 거 좋아하는 저도 크리스마스에 혼자 밥 먹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남자친구는 꼭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자신을 관리해야 해요. 피부 관리도 받고, 운동으로 몸매 관리도 해야 하고요. 옆에서 아무도 챙겨줄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건강만큼은 챙길 수 있어야 싱글 자격이 있다고 봐요.”
경제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돈 없으면 싱글 노릇도 재미없을 텐데, 싱글이라 젊어서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또 장점이다.
“노년을 생각하면 50세 되기 전까지는 확실한 기반을 잡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을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기반을 잡으려고 하니까 너무 빠듯해하더라고요. 당연히 아이는 최선을 다해 키워야 하지만 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아요.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다 행복한 건 아니죠.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할 거예요. 물 한 잔을 마셔도 감사한 마음으로 마시느냐, 아니면 ‘왜 난 물밖에 못 마시고 살지?’ 하고 사는 것은 천지차이니까요.”
그는 연예인으로 데뷔하던 1992년부터 지금까지 돈 관리를 스스로 해왔다고 했다. 벼락 스타는 아니었지만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자고 6, 7년간 연기에 몰두하던 때 모아둔 돈은 그에게 종잣돈이 됐다.
“사업을 하신 아버지 조언으로 재테크를 해왔어요. 적금도 들고요. 공백기에 와인바를 운영했는데, 순수익이 한 달에 1천만원 정도 됐죠.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장사가 잘됐지만 권리금 받고 팔았어요. 무엇보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삶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행복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얼마 전 MBC ‘세바퀴’에 출연해 7세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혔다. ‘남자친구가 애교가 많다’ ‘50세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 등 그가 하는 말마다 화제가 됐다.
“방송 나가고 나서 (남자친구가) 한동안은 저를 못 만나겠대요. 다들 알아볼 것 같다며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웃음). 그런데 며칠 전에 만나서 식사하고 청계천을 한 시간이나 걸었네요(웃음). 제가 결혼 안 하겠다는 말을 너무 대차게 해서 조금 미안했는데, 그렇게 서운하진 않았대요. 제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걸 잘 아니까.”
지금의 남자친구를 꽤 오랫동안 만나왔지만 당장 결혼할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50세가 되면 결혼할 생각도 아니다.
“지금의 생활이 좋아요. 서로 좋아하는 일 하고 즐겁게 쭉 지내고 싶은 거죠.”
박선영은 6년 만에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이제는 주부 역도 할 수 있겠죠?”라던 그의 얼굴은 ‘편안한 언니’ ‘밥 잘 사줄 것 같은 언니’ ‘가끔 혼내기도 하는 언니’ 같은 느낌을 풍겼다. 오랜만의 외출이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박선영. 이미 솥의 추는 돌았다. 오래 뜸들인 만큼, 농익은 연기를 브라운관에서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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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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