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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우승 배상문 선수 어머니 시옥희 씨

땅·집·반지 팔아 골프 뒷바라지

글·진혜린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7.16 09:49:00

박세리와 박지성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최근 한국인으로 세 번째 PGA 우승을 일궈낸 배상문 선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골프백 둘러메고 골프장에서 아들을 키운 시옥희 씨. 긴 세월 홀로 키운 아들이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서기까지, 엄마는 ‘별나다’는 손가락질도 두렵지 않았다.
PGA 우승 배상문 선수 어머니 시옥희 씨



“지가 다음 경기 끝날 때까지 전화를 못 받을끼라예. 그때까지는 해인사에 있을 껍니더. 밤새 기도하고 한숨도 못 자고 판교로 올라가믄 오전 나절 조금 눈 좀 붙일 수 있지 않겠습니꺼?”
구성진 사투리 억양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US오픈 지역 예선전 경기가 끝나고 판교에 위치한 배상문(27·캘러웨이) 선수의 집을 찾았다. 다행히 배상문 선수가 연장전 끝에 US오픈 출전권을 따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온 후라 마음이 가벼웠다. 눈을 붙일 거라던 시옥희(56) 씨는 기자가 도착했을 때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집 앞 화단을 손보고 있었다. 부지런도 하다. 아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상금왕에 오르면서 마련한 귀한 집. 이제 아들은 미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그 집을 어머니 혼자 지킨다.
“경기가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집에 있으면 애가 타니까 절에서 기도를 합니다. 해인사에 못 가면 혜국사에도 갑니다. 아는 나 힘들다고 그러지 말라 하는데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불안해가 집에 앉아 있지를 못하겠습니다.”
경기가 크든 작든 엄마의 마음은 똑같다. 벌써 아들이 프로 골퍼가 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 긴장감은 여전하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아들은 프로 데뷔 10년, 미국 진출 2년 만인 5월 20일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자치했다. 최경주(2002), 양용은(2009)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 PGA 우승자다. 최경주 선수의 당시 나이 서른둘, 양용은 선수는 서른일곱 살이었다. 지금 배상문 선수의 나이가 스물일곱이니 우승 나이도 가장 어리다.
“저는 (배상문 선수가) 잘할 줄 알았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 아입니다. 승부욕도 있고, 운동신경도 좋고, 아예 운동하는 아이예요.”
아들에 대한 대견스러움과 뿌듯함으로 어머니의 얼굴에는 기쁨이 만개했다. 어머니는 지나온 세월의 아픔을 싹 잊을 만큼 ‘좋고, 또 좋다’고 했다.
배상문 선수는 어릴 때부터 효자였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나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이 없었단다. 유난히 참견도 간섭도 많은 엄마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고분고분한 아들이라며 모두 칭찬을 했다. 반면 엄마는 모두들 ‘별나다’고 했다. 아들이 필드에서 실수를 하면 등짝을 때리는 것부터, 하품을 하면 대번에 양산으로 콕콕 찌르며 눈치 주는 유난스러운 엄마였으니까. 그 모습을 본 누군가는 “나라면 골프 안 한다”고 할 정도였단다.

운동 감각 하나는 타고난 아들
“상문이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일곱 살 때였을 겁니다. 아이가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아기 때는 수영도 하고, 스케이트도 타고, 스키도 타고 그랬습니다. 겨울만 되면 하루도 안 빠지고 스키장에 갔어요. 내가 아파서 못 간다 하면, ‘엄마 나 돈 6만원만 도(줘), 5만원만 도(줘)’ 이래서 혼자 스키 버스 타고 스키장 간다 아닙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스키 선생님들이 다 상문이를 알죠. 내가 따라가는 날이면 밑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내려와요. 올라가보면 혼자 점프하고 오만 가지 다 하고 있어요. 모험적인 거 좋아한다 아닙니까. 그런 성격에 침착한 골프 하라 하니까 얼마나 간이 뒤집어지겠어요. 그니까 날 때 ‘팍’ 나고, 못 칠 때는 전혀 못 치고 그러는 겁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선수 출신 프로 골퍼 유백만 선수에게 1년간 골프를 배운 적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공부 안 할란다. 운동할란다” 하며 큰소리 뻥뻥치는 아들이었다. 배상문의 꿈은 골프가 아닌 야구 선수였다.
“야구는 단체 게임이고 골프는 자기 혼자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골프가 괜찮겠다 싶었던 거지요. 스케이트나 스키도 잘 탔는데 그것보다는 골프가 더 고생을 안 하지 싶었어요. 또 제가 혼자 상문이를 키우다 보니 늘 데리고 다녔는데 상문이 어릴 때 제가 골프를 좀 배웠거든요. 자꾸 야구 하고 싶다고 해서 골프를 시켜봤더니 야구 한다는 말이 쏙 들어갔어요. 아직도 야구를 좋아해서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오면 만날 캐치볼 같은 거 한다 아닙니까.”

별나고 유난스러운 캐디 엄마
대한민국에서 운동 선수의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손꼽히는 국가대표 선수들 뒤에는 늘 억척같이 뒷바라지한 부모들이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시옥희 씨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에는 학교 선생님한테 맡겼더니만 수업도 안 들여 보내고 골프장에만 데리고 있었어요. 그럴 바에 프로 골퍼한테 레슨을 받자 해서 대구에서 용인으로 보냈지요. 상문이는 ‘걱정 말라’하는데 그게 됩니까. 쫓아가서 여관방 잡고 보름을 지켜봤어요. 그런데 완전 엉망이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레슨비는 3백만원씩 내고 시합 나가면 한 달에 7백만원도 들어갔어요. 그런데 하루에 공을 한 박스밖에 안 쳐요. ‘안 되겠다. 내가 가르쳐야겠다’ 싶어서 제가 데리고 다녔지요.”
그때부터 엄마는 운전기사이자 캐디이자 코치로서 늘 아들과 함께했다. 당시 배상문 선수는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보통의 프로 유망주들은 이미 아마추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배상문은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들지 못해 열악한 훈련 여건을 감수해야 했다. 뒷바라지는 오롯이 엄마 몫이었다.

PGA 우승 배상문 선수 어머니 시옥희 씨




PGA 우승 배상문 선수 어머니 시옥희 씨


“만날 따라다니다 보니 제가 죽겠는 겁니다. 하루 종일 필드에 있다 여관방에 돌아와 탱탱 부은 다리를 물에 담그고, 상문이가 하도 지 맘대로 할라 하니까 속이 상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상문이랑 싸우는 것도 지치고 정말 못 하겠다 싶어서 포기하려 했는데, 상문이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분들이 계셨어요. 2, 3년만 고생하면 되지 않겠나 하시더라고요. 또 상문이는 운동해야 하는 아인데 골프 그만두면 어쩝니까. 그래서 죄 따라다녔던 거지요. 아이 혼자는 아무것도 안 돼요. 따라다니는 코치가 있어요, 선생이 있어요. 죄다 부모가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엄마 눈에는 보였다. 남 보기에는 설렁설렁 넘어가도 될 일인데 엄마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상문이가 성격이 급해서 천방지축으로 막 치고 나오면 제 속이 다 뒤집어집니다. 제가 늘 따라다니면서 혼내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 엄마만 안 오면 더 잘하겠다’ 했더랍니다. 처음에는 상문이도 ‘오지 마라’ 했어요. 그런데 시합에 내리 지고 나면 제가 달려갑니다. 그러면 바로 좋은 성적이 나거든요. 서너 번 내리 지면 다시 치고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제가 골프백 들쳐 메고 쫓아다니다 ‘와(왜) 그카는데?(그렇게 하는데?)’ 하다 보면 경상도 말씨라 싸우는 것 같고 한 대 쥐어박으면 엄마가 아들 때렸다고 난리 나고 그랬어요. 상문이도 알죠. 엄마가 쫓아와야 한다는 걸요.”
아들 캐디 노릇은 2003년 프로 골퍼로 전향한 뒤 2010년 일본으로 건너갈 때까지 계속됐다. 고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나 그냥 프로 할란다. 프로 하면 된다’ 하던 속 깊은 아들.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지 못할 바에야 프로로 전향하는 게 더 빨리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프로가 되고 2부 생활을 할 때의 우여곡절을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힘든 때도 없었지 싶다고.
“아이들 골프 처음 시키는 엄마들은 그걸 몰라요. 시합 한 번 나가는 데 드는 돈이 엄청납니다. 교통비에 여관비에 그린피까지 다 합치면 돈 1백만 원이 훌쩍 넘거든요. 공 한 개, 장갑 한 개 공짜로 받아본 게 없어요. 그래서 프로 중에 시합 한 번 제대로 못 나가는 프로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때 있는 집 팔아, 있던 땅 팔아, 나중에는 타고 다니던 차도 바꾸고, 하물며 끼고 다니던 반지까지 팔았죠. 마지막에는 친정에서 돈도 빌리고 그랬어요. 그건 상문이가 더 잘 압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기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2부에서 내리 우승하던 배상문은 2006년 KPGA 에머슨퍼시픽그룹 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시옥희 씨는 그날 고향 마을에서 어르신들 모셔놓고 크게 잔치를 열었고, 그게 연례행사가 돼 지금도 해마다 한 번씩 꼭 마을 어귀에서 동네 사람들 불러다 뷔페 잔치를 연다. 그 뒤 배상문 선수는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2009년 국내 상금왕에 오른 후 일본에 진출해 2011년 JGTO 최우수 선수상과 상금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며 미국 무대에 오른 지 2년 만에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죽고 싶을 때 “괘안타 엄마야” 토닥여주는 아들
이러한 영광이 있기까지 남들은 ‘별나다’ 손가락질을 해도 어머니 홀로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들이다.
“남들은 모를 겁니다. 정말 천 번 만 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죽어버리면 아이가 불쌍해서 어쩌나 싶어서 못 죽고, 또 제가 자식 하나 보고 살았는데, 진짜 못 죽어서 산 겁니다. 상문이요? 제 인생의 전분기라예.”
시옥희 씨는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고통의 시간들은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싫다고 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핏덩이 아들과 홀로 남겨졌을 때는 살길이 막막해 죽고 싶다가도 아들 얼굴이 어른거려 차마 죽지 못했다. 아들 덕에 살았고, 그래서 삶의 이유가 됐다.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는 겁니다. 사업이 고꾸라지고 그러니까 도망간 거겠지요. 나중에 보니 스님이 됐습디다. 그래도 아이 아빤데, 중학교 2학년 땐가 두어 번 상문이랑 밥도 같이 먹고 그랬어요.”
시옥희 씨는 ‘그래도 살아지더라’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아이와 단둘이 남겨졌지만 이들 모자에게는 뜻하지 않은 은인이 나타났다.
“상문이가 돌쯤 됐을 땐가, 이모 친구가 있는 절에 갔다가 연세 지긋한 재미교포를 만났지요. 교포들 사이에서는 ‘아버지’ 소리를 듣던 분이셨죠. 제가 하도 불쌍하니까 도와주겠다고 하대요. 저 말고도 여럿 도와주셨지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아이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늘 마음 한쪽에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배상문 선수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시옥희 씨는 재혼을 결심했다. 오로지 아들에게 듬직한 아버지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단다. 그렇게 살던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한때 매스컴을 시끌벅적하게 했던 개그맨과의 재혼은 가슴 찢기는 상처만 남겼다.
“그 사람이 전 부인하고 완전히 정리가 안 된 상황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결혼을 한 거예요. 결혼하고 보름 정도 지났을까, 그 일로 방송국에서 찾아와 제게 물었을 때야 알았으니까요. 그 뒤로 그 사람은 오히려 저를 몰아세우고 화를 내더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나중에는 얼굴도 볼 수도 없어서 방송국으로 찾아가고 그랬죠. 결혼 생활은 불과 한 달 남짓이었을 거예요. 적반하장으로 그쪽에서 위자료를 청구하고 소송도 냈는데, 결국 제가 위자료를 받고 이혼했어요. 정말 죽고 싶었죠.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릴까도 생각했는데 또 상문이가 저를 살리더라고요.”
“엄마, 난 아무 상관 없다. 대구 내려가자.”
시씨는 아들의 듬직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추슬렀다. 이미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공개된 터라 대구에 있던 아들의 친구들한테도 속속들이 소문이 났을 터였다. 그런데도 ‘나는 친구들 보기 안 민망하다. 괘안타. 퍼뜩 대구 내려가자’던 아들.
“서울 올라올 때 상문이랑 같이 왔으니까 옆에서 다 봤잖아요. 어려도 초등학교 6학년이면 다 알잖아요. 그러니까 괜찮다고 하는 거지요. ‘엄마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다’ 합디다. 아들 얼굴을 보니 어찌 죽겠습니까. 내가 힘을 내야지요.”
세상에 둘뿐이었다. 아들에게는 엄마, 엄마에게는 아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살았다. 그때도 “엄마야, 돈 없을 때 없더라도 없다는 말 하지 마라”던 아들은 한국과 일본을 휩쓰는 상금왕이 되더니, PGA 데뷔 후 첫해였던 작년만 해도 1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1백17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으니 골프 뒷바라지하느라 팔았던 집이며, 차며 다 골프로 원 없이 갚고 있는 셈이다.
필드가 떠나가라 아들을 혼내던 어머니. 어릴 때는 아들이 남들 안 보는 데서 반항도 하고 대들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성적이 부진할 때면 ‘미안하다’ 하며 엄마 마음을 가장 잘 챙기는 아들. 지금도 시합 도중 퍼팅이 끝날 때마다 카카오톡으로 엄마의 평가를 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아들이다. ‘니캉 내캉’ 해가며 친구같이 살갑다. 그 어머니는 올봄에도 매실청을 담갔다. 이제 아들은 집보다 외국의 호텔에서 생활하는 날이 더 많지만, 언젠가 집에 돌아올 아들에게 먹일 생각을 하니 매일 장독대를 쓰다듬는 마음이 벌써부터 뿌듯하다.

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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