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동아 로고

Celeb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송미령은 왜 다시 ‘나쁜 모성’에 갇혔나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KBS 제공

입력 2013.07.04 15:41:00

1986년 방송된 추억의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에서 양모 역의 김윤경과 생모 역의 김자옥은 딸 이슬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연기 대결 또한 화제였다. ‘최고다 이순신’의 갈등 구도는 ‘풀잎마다 이슬’의 그것과 똑 닮았다.
송미령은 왜 다시 ‘나쁜 모성’에 갇혔나

‘최고다 이순신’의 주인공은 이순신이지만, 극의 핵심을 차지하는 건 생모 송미령과 양모 김정애의 갈등이다.



예나 지금이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가장 문제인 것은 언제나 ‘모성’이다. ‘최고다 이순신’ 역시 주인공은 이순신(아이유)이지만, 극의 핵심을 차지하는 건 생모 송미령(이미숙)과 양모 김정애(고두심)의 갈등이다.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순신이 업둥이라는 사실과 송미령과의 모녀관계를 암시하며 시작했고, 모든 사실이 밝혀진 최근에는 순신의 내면 갈등보다 미령과 정애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대립에는 우리나라 가족극의 가부장적 시선이 반영돼 있다. 보수적인 가족 드라마는 흔히 갈등의 중심인 남성을 지운 채 여성 간의 대결로 극을 이끌어간다. 남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선 고부 갈등, 처첩 갈등이 대표적이다. 모성 갈등도 마찬가지다. 순신의 아버지 창훈(정동환)이 사망으로 일찌감치 퇴장했듯이, 출생의 비밀은 부재에 가까운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문제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계모의 구박이나 생모와 양모의 갈등 등 양상은 달라도 결론은 어김없이 ‘착한 어머니 vs 나쁜 어머니’의 구도로 이어진다.
‘최고다 이순신’의 초반부는 적어도 이 전통적인 이분법적 대립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는 업둥이 순신을 친딸보다 더 애틋하게 품어주는 정애의 뜨거운 모정과 딸을 버린 미령의 비정한 모성이 대립을 이뤘지만, 어머니이기 전에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내면 또한 중요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상징과도 같았던 정애가, 순신이 남편의 외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방황하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과정은 가슴을 울렸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미령의 캐릭터다. 욕망을 위해 천륜을 어긴 행위는 이기적이었지만, 최고의 배우가 되고자 그녀가 얼마나 고독한 길을 걸어왔는지 토로하는 심리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이 자리 얻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얼마나 피눈물 나고 더러운 꼴 겪었는지 알아? 그 고통, 외로움, 절망, 알기나 하냐고. 나, 죽을 각오로 버티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어!” 5회에 등장한 내면 묘사는 미령의 욕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리고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모성과 같은 다른 본능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순신이 자신의 딸임을 모른 채 관계를 맺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친모는 늘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이끌리는 설정으로 천륜과 모성의 덕목을 강조하지만, 이 작품은 순신과 미령을 배우라는 동일한 직업을 통해 대면시키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묘사를 선보인다. 톱배우지만 연기와 실제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미령과 아직 연기 지망생이나 연기에 진심을 담을 줄 아는 순신의 대조를 통해, 둘을 단순한 모녀지간보다 상반된 삶의 태도를 지닌 개성적 존재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반의 장점은 출생의 비밀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허공으로 사라진다. 야망을 위해 딸을 버렸던 미령은 이제 순신을 야망의 대리물로 삼는 전형적인 ‘나쁜 엄마’의 모습에 갇혀버린다. 순신을 데려오기 위한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은, 남편의 외도라는 상처마저 극복하고 순신을 보호하는 헌신적 어머니로 되돌아온 정애의 모정과 비교되며 더 독한 악녀처럼 그려진다. 이런 전개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 ‘내 딸 서영이’처럼 큰 인기를 구가한 전작들에 비해 지지부진한 시청률로 인해 갈등을 자극적으로 단순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이 작품 역시 모성이 최고의 덕목이었던 ‘풀잎마다 이슬’ 시절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송미령은 왜 다시 ‘나쁜 모성’에 갇혔나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 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Celeb 목록보기 좋아요

Print Edition

How to be a woman

생각하는 여자가 읽는 매거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번호목차이번 호 구입하기

독자알림

더보기

Follow up on SNS

여성동아 에디터가 핫뉴스, 최신 트렌드와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 여성동아 페이스북
  • 여성동아 인스타그램
  • 여성동아 유튜브
  • 여성동아 네이버포스트
  • 여성동아 네이버TV